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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사람들 -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보고서, 개정판
M. 스콧 펙 지음, 윤종석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07년 8월
평점 :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이와 같은 질문에 그 누구도 정답을 내놓지
못한다. 다만, 만약 인간이 선하기만 한 존재라면 이런 질문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인간은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라는 질문 자체야말로 인간에게는 선한 면 못지 않게 악한 면도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인간은 선한 면보다는 악한 면을
더 많이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신과 전문의로 정신분석과 상담 및 치료를 실시해온 스캇 펙 박사
역시 인간에게는 악한 면이 있다는 걸 부인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직업적으로 인간의 선한 모습보다는 악한 모습을 마주한 경우가
훨씬 더 많은 저자에게,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라는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일지도 모른다. 1983년도에
쓰여진 그의 명저, <거짓은 사람들>은, 인간은 왜 악한 걸까? 아니면 인간은 어떻게 악해지는 걸까? 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거짓의 사람들>에서 스캇 펙 박사가 예로 든 사람들은
병리학적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아니다. 이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의 상처로 정신적 퇴행이나 투사 혹은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적 폐해가 크지 않다. 스캇 펙 박사가 주목한 '거짓의 사람들'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자신을 위해 타인의 삶을 망치거나 사회에 크나큰 폐해를 끼치는 사람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식을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부모들 역시 스캇 펙 박사가 말한 '거짓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으며, 국민과 대중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정치인들 역시
'거짓의 사람들'에 포함된다.
흔히,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만을 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스캇 펙 박사가 지적했듯,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갇혀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비록 입으로는
자신은 억울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형량을 낮추기 위한 자구책일뿐,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잘못을 안다는 건 바로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죄책감이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면서 인류가 처음 느꼈던 감정 역시 바로 이 부끄러움이였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스스로의 모습과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에서 용서가 시작된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종교적 가르침도 바로 이와 같은 이치에서 나온
것이리라.
엄밀한 의미에서 이들은 스캇 펙 박사가 말한 '거짓의 사람들'이 아니다. 악을 일삼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행동이 '잘못'되었으며, 타인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째서 악에 굴복하는 마는 걸까?
어떤 식으로든 말할 수 없는 고통, 보통 사람들이 겪는 것보다 훨씬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랆들이 대부분 정신적으로는 누구
못지않게 건겅하고 진보된 사람들이다. 위대한 지도자들 중에는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극심한 고통들을 견뎌 내는 이들이 많다.
거꾸로, 정서적 질환의 가장 밑바닥을 파 보면 감정적인 고통을 겪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마음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우울과 회의와 혼란과 절망을 고스란히 경험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감 있고 편안하고 자신에 만족하는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건강할 수 있다. 사실 고통을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보다 확실한 질병에 대한 정의이다.
악한 사람들은
투사와 희생양 찾기(책임전가)를 통하여 자신들의 고통을 남에게 떠너밈으로써 죄책감의 고통을 깨끗이 거부한다. 죄책감은 자신의 죄,
부적절성, 불완전성을 일깨워 주는 고통스러운 인식인 까닭에서다. 이로써 그들 자신은 고통이 없을는지 몰라도 대신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들은 고통 유발자이다. 악한 사람들은 자기 지배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병 든 사회의 축소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 스캇 펙, <거짓의 사람들> p166 中-
마음의 고통을 거부할 때, 악과 손을 잡는다.
자신의 미흡함과 부족함을 직시하지 않고 부정하고 외면할 때가 바로 악한 모습이 발현되는 순간인 것이다.
악한 개인은 나약한 영혼일 뿐이다. 그러나 악이 하나 둘 모여 집단을 이루면 어떻게 될까? 바로 영혼을 잃어버린 집단의 악이
만들어진다. 인류 역사상 자행된 전쟁과 학살은 모두 하나같이 집단 악의 발로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끄는 존재가 아닌 따르는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은 집단 속에서 훨씬 더 안정감을 느끼고 집단의 이름으로 잔인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스캇 펙 박사는 베트남의 밀라이 학살 사태를 예로 들어 개인의 악이 어떻게 집단의 악으로 표출되는 탁월하게 분석하고 있다.
전문화란 집단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이점이다. 집단이 개인보다는 훨씬 더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다. 제너럴
모터스사는 직원들이 업무부, 설계부, 생산부, 조립부 등으로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토록 엄청난 수의 자동차를 생산해 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고도의 생활 수준도 그 기반은 전적으로 우리 사회의 전문화에 놓여 있다. 전문화 자체를 악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시대의 많은 악들이 이 전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철저한 확신을 갖고 있다. 전문화가 집단의
미성숙과 집단 악의 잠재성에 이바지하는 양상은 몇 가지 기제를 통해 다양하게 나타난다. 집단 내 개인들의 역할이 전문화될수록
개인이 도덕적 책임을 집단의 다른 부분에 전가시키는 일은 가능해지며 쉬워진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자신의 양심을 버리는 것은 물론
집단 전체의 양심도 너무 분해되고 희석되어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될 수 있다.
- 스캇 펙, <거짓의 사람들> p292~ 294-
이
밖에도 저자는 베트남전 초기 미국 사회의 '골치거리들'이 어떻게 군대에 자원 입대하게 되는지, 그리고 '골치거리들'만 집단적으로
모아 놓은 '군대'가 어떻게 이성을 잃고 민간인을 대상으로 잔인한 학살을 하고도 그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스캇 펙 박사는 미국의 베트남 반전 시위가 본격화된 건 1967년 이후 그러니까 '골치거리들'이 다 군대에 입대한
후 더이상 보낼 사람들이 없어지자 징병제를 실시하면서 사회적 '골치거리들'이 아닌, '모범시민들'이 군대에 끌려가게 되자,
들불처럼 일어났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미국 사회의 망썽쟁이들이 군대에 갈 때에는 미국 사회 전체가 침묵하거나 암묵적으로
지지하다가, 법과 질서를 잘 시키는 모범시민들이 군대에 가게 되자, 이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집단 이기심과 집단
악이 발현되는 메커니즘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미국 사회의 '골치거리들'은 집단 악의 희생자이자, 집단 악의 집행자인 것이다.
스캇 펙 박사는 이처럼 집단 악이 발현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을 꼽고 있다.
게으름이란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은 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투표로 뽑은 정치인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지켜보며 감시하는 것을 귀찮아한다. '알아서 잘 하겠지...'하는 마음은 사실 '믿음'의 발로라기 보다는 '귀찮음'의 소산인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자기 성찰과 죄책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악은 바로 자기 성찰과 죄책감을 회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르시시즘은 어떻게 집단의 악을 불러일으키는 걸까? 바로 집단의
응집력을 높이기 위해 외부의 적에 대한 집단 증오심과 적개심을 조장하고 실패와 패배를 모욕으로 받아들이며 무차별 보복을 감행한다.
무의식적이든 고의적이든 나르시시즘의 이용은 악한
것일 수 있다. 악한 개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들춰내는 것이라면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다 비난하고 파괴하려 함으로써 자신들의 자기
성찰과 죄책감을 피한다. 이처럼 악독한 나르시시즘적 행동이 집단에서도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 바로 실패한 집단이 가장
악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패는 프라이드에 손상을 가져온다. 짐승도 상처를 입으면 악해진다. 건강한 유기체에서라면 실패는 자기
성찰과 비판에 자그제가 도리 것이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자기 비판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어ㄸ너 양상으로든 불가피하게
격렬히 분노하게 되는 것이 바로 실패의 시간이다. 집단도 마찬가지다. 집단의 실패 및 자기 비판에 대한 자극은 집단의 프라이드와
응집력을 해치는 쪽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집단 지도자들에게는 실패의 시절이 오면 다른 나라 사람이나 '적'을
향한 집단의 증오심을 한층 끌어올림으로써 집단 응집력을 강화하려 하는 것이 기본이다.
- 스캇 펙, <거짓의 사람들> p303~304-
스캇 펙 박사는 전문화가 갖고 있는 악의 잠재성과 함께 집단이 갖고 있는 악의 잠재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가 집단 안에서 조금만
더 개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책임감을 갖는다면, 우리가 평소 나태함에서 벗어나 조금만 더 진리와 선을 추구하기 위해 부지런해지고
교만 대신 겸손함을 배운다면, 집단 악이 탄생할 가능성 또한 현저하게 낮아지리라.
'결코 쉽지 않은 책'이라는 추천사처럼 이 책은 정말 쉬운 책이 아니다.
처음에는 저자의 '고백'처럼 지나치게 종교적 색채가 강해서 거부감이 일었으나,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의 주장에 귀 기울이게 된다. 첫 페이지부터 좀 더 마음을 열고 읽어볼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처음 질문인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라는 원론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자.
이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내본다면, 인간은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선으로 향할 것이냐 아니면 악으로 향할 것이야 는 전적으로 우리의 판단과 자유의지 그리고 행동에 달려 있다.
저자의 지적처럼, 이책은 위험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