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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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진지함에서 벗어나 유쾌하게 읽은 책이다.

미스터리 추리소설에서 최근 진화학과 사회학에 관한 책들을 읽게 되면서 순식간에 재미에서 지식습득을 위한 독서가 되어버린 터였는데, 법학자 김두식교수의 고백에 마치 물이 스펀지에 스며들듯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제목이 말해주듯, 저자의 주장은 단순명백하다.

바로, 욕망을 억누르려고만 하지 말고 적절하게 분출하고 살아야 한다! 이다.

일명 모범생으로 대표되는 '계(戒)'의 세계에 있던 사람들이 일정한 상황과 마주하면, 어느 순간 욕망을 어찌하지 못하고 결국 '색(色)'의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고 한다.


그 실례로 저자는 2007년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학력위조 사건과 스캔들을 언급하고 있다. 바로 '신정아와 변양균 스캔들'이다. 이 사건이야말로 학벌주의와 엘리뜨주의로 똘똘 뭉친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요 초상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그 당시 스캔들의 주인공들을 맘껏 술안주로 삼았음은 물론이요, 사건을 계기로 이루어진 유명 인사들의 '학력커밍아웃'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마음껏 즐기지 않았던가. 내면속에 가라앉아 있는 내 욕망의 표출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거대한 욕망의 늪이라 하겠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깊숙히 발목이 잡힌다. 저자가 보기에 신정아 역시 학벌이라는 늪에 빠진 피해자 중 하나다. 여기에서 '피해자'란 그녀가 아무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행한 '죄'보다 훨씬 가혹한 '벌'을 받지 않았나 하는 의도에서 나온 표현일 뿐이다. 저자 역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학벌이란 무시무시한 장벽 앞에선 누구나 한번쯤 거짓말의 유혹을 느낍니다. 출신학교 이야기를 할 때 누구도 증명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아주 사소한 거짓말을 해보면 주변 분위기가 당장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신 정아씨도, 윤석화씨도 처음 시작은 그랬을 겁니다. 우리 모두가 느끼는 똑같은 열등감, 유혹 앞에서 조금씩 선을 넘다보니 그렇게 망가지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희생양 사냥이 시작되고 나면, 누구나 느끼는 학벌 앞의 우월감, 열등감, 유혹의 존재를 아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거짓말한 사람만 죽일 놈, 미친 놈이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 욕망이 들통날까봐 두려워하며 더 맹렬한 사냥을 벌입니다. 그 과정에 분명한 쾌감이 있습니다.


-김두신, <욕망해도 괜찮아>중 p62-


왠지 숙연해진다.

칸 자스대학 졸업장도 없는 신정아로 하여금 예일대 박사학위까지 위조하게 만든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모든 걸 다 걸만큼 그렇게 절박하게 예일대 박사학위가 필요했단 말인가? 그건 바로 내 안에서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학벌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열등감이리라.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꾼다'라는 말로 귀결되는 바로 그 열등감말이다.


한편, 스캔들의 또 다른 주인공인 변양균에 대해서 저자는 "제때 불태우지 못한 소년의 열정"이라는 말로 정곡을 찌른다. 학벌지상주의 사회에서 그 학벌을 갖춘 사람들은 모범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생 계(戒)의 세계에서 살아오면서 내면의 욕망을 억눌러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연히 내면의 욕망이 자극을 받자 하염없이 무너지고 만다. 보통은 아무런 일없이 혹은 집안의 풍파 정도로 끝이 나지만 변양균 전실장은 운이 없었다면 없다 하겠다.


이 남성들은 기본적으로 '계(戒)' 즉, 규범의 세계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고, 늘 칭찬받았으며, 규범을 어긴 일이란 기껏 과속딱지 몇번 끊은 게 전부입니다. 법을 만들어 적용하고 집행하며 평생을 살아온 살마들도 있습니다.

(......)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리에 너무 '훌륭한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깊은 내면에서 이들의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때 불태우지 못한 '소년'입니다.


-김두신, <욕망해도 괜찮아>중 p86-


제때 불태우지 못한 소년의 열정은 결국 중년에 접어들어 '일탈'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일탈의 길에 빠져들지 못한 소년들의 반대편에는 '사냥꾼이 된 소년들'이 기다리고 있단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계(戒)'의 결정판인 이들은 남의 사생활에 유난히 관심이 많아서 억눌린 욕망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엿보기'를 선택한단다. 탁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 밖에도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가족들-주로 저자의 모친-을 회상하면서 우리 사회에 고착되어 있는 '중산층 신화'를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평생 부부교사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적이 없는 저자의 모친이야말로 '중산층 신화'의 희생양이라 하겠다.


어 머니로 상징되는 중산층은 규범을 만들고 바꿀 의지도 힘도 없으면서 규범의 화신처럼 살ㄹ아온 사람들입니다. 신사보다, 귀족보다, 재벌보다 훨씬 강하게 규범을 내면화한다는 점에서 포리스티어 대위아 똑같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상류층보다는 오히려 중산층입니다.

(......)

그들은 정직이 최선의 덕목이라고 믿고 자랐지만 하루하루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도 내면화된 규범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돈이란 성실히 살면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지 굳이 추구할 목표가 아니라는 고상한 가르침을 진짜로 믿고 실천하지만 이상하게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분노가 쌓이지만 표출할 방법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기껏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이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다른 당나귀를사냥하는 것입니다. 그게 지금 인터넷 공간에서 매일처럼 벌어지는 싸움입니다.

-김두신, <욕망해도 괜찮아>중 p156~p157-



나보다 윗세대이긴 하지만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언급된 저자의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은 상당히 익숙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현기증이 일었다. 바로 질투다. 저자의 부친은 중학교 교장선생님이었고 엄마는 여상 윤리선생님이란다. 누나는 수학박사에 교수남편을 두었고 형은 저저와 마찬가지로 미국 유학파에 대학교수이다.


저자는 또한 어떠한가? 교수 아내를 둔 사법고시 통과하고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석사를 땄단다. 이 정도 수준의 집안이 대한민국의 평균은 결코 아니다. 정말 아주 잘 나가는 집안이라 하겠다. 재벌과 비교하며 중산층의 비애를 운운하는 것 같아 솔직히 불편하다. 물론, 이 땅의 중산층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획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지만 세대를 거듭하며 놀고 먹어도 될 만큼 풍족한 자산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노동자'로 볼 수는 있겠지만 이마저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서민이라 불리우는-이 대다수이다. 


생존을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야하는 이들에게 '욕망'은 사치일 뿐이다. 그들에게 욕망해도 괜찮다는 저자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하여, 이 책은 중산층을 위한 책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종교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온 저자가 가하는 종교적 비판(?) 은 상당한 수위의 통쾌감을 전해주는 한편, 선(線) 밖의 사람들에게는 역시나 상당히 억지스럽게 다가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교회오빠 출신의 자기반성처럼 들리니 말이다. 그러나 법학자로서 종교를 바라보는 저자의 태도에는 상당히 날이 서 있다.


이와 같은 작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 모두 한두가지는 갖고 있는 욕망이 자극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에 꼭꼭 숨겨져 있는 욕망들과 하나씩 마주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고 정신적 피곤함을 불러오지만 또한 신선하고 흥미로운 작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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