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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김두식 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를 읽고 진부함과 신선함이 교차했다.
진부함이란 저자 스스로
지적(?)하고 있듯 특정 종교의 색채를 남김없이 발산한다는 점이고, 신선함이란 성인 남성의 일탈과 중산층의 이중성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저자의 또다른 저작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찾아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불편해도 괜찮아>는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법학 교수의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 속 인권
이야기다.
국내외의 다양한 영화 속 장면과 대화 혹은 줄거리 및 등장인물 설정에는 우리도 모르게 소수자의 인권이 무시되거나 심지어 유린되기까지 한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예를 들면, 영화 <300>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시키면서까지 배신자인 에피알테스를 꼽추 장애인으로 설정한 점과 뇌성마비
장애인 여성과 전과자 남성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역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은연중에 스며들어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영화 <오아시스> 속 장애인의 관점이 사실은 장애인이 실제로
느끼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장애인은 이러할 것이다'라는 정상인의 상상 혹은 추측이야말로 이미 명작의 반열에 오른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맹점'인 것이다.
공주는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뇌성마비 장애인 중에 일부가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주의 경우 의사표현이 분명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지적장애가 동반되지 않은 뇌성마지 장애인입니다. (......) 그런데 영화 속의 공주는 남자친구가 교도소에
가는데도 무기력하게 그냥 방치하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 공주는 경찰서에서 몸을 부딪치며 저항해본 것을 마지막으로
남자친구를 구하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합니다. (......) 종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의 동의에 의한성관계였다는 점은
전과3범인 그가 당연히 주장해야 하는 내용입니다.입증이 어려운 상태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영화는 '사회적 편견'떼문에 공주와
종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사회의 편견 대무에 그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
시각 자체야말로 편견입니다. 이창동 감독이나 문소리가 뇌성마비 장애인의 외적인 모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대로 재현해내는 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뇌성마비 장애인의 내면을 제대로 읽어내는 데는 실패한 것입니다.
-김두식, <불편해도 괜찮아> 147~149 中-
장애인에 대한 인권 유린뿐만이 아니다.
'
드라마 천국'이라 할만한 이 땅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랑으로 어떻게 미화되고 있는지 그 궤적을 따라가 보면 심각한
남성우월주의와 마주하게 되고, 노동 관련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서는 노사갈등이 어떻게 노노갈등으로 변질되었으며 노동운동단체들의
권력지향성과 이중성을 접하게 된다. 특히, 울산현대자동차 식당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 전원을 해고한 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밥, 꽃, 양>은 그 제목만으로도 한동안 명치끝이 아파왔다.
우리나라에는 비정규직들이 겪는 이런 기막힌 상황을 그린 훌륭한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분야의 선구적인 영화로는
1998년부터 3년간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벌어진 사건을 그린 임인애, 서은주감독의 <밥, 꽃, 양>(2002)을꼽을 수
있지요. 1998년 8월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정리해고에 반발하여 36일간 파업을 계속합니다. 이 파업의 결과로 노사는
277명만 정리해고하는 데 합의했고, 파업의 평화적인 종결은 새로운 노사문화의 창출로 기록되었습니다. 원래 노사는 식당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 276명 전원과 남성직원 한명을 해고하는데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식당 여성노동자 132명이 위로금을 받고
자진퇴사하자, 뒤늦게 그 빈자리르 여러 부서의 남성 노동자들로 채워넣었습니다. 이 식당 여성노동자들은 평상시뿐만 아니라
파업기간중에도 동료 남성노동자들을 위해 밥을 지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노사는 이들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평화로운
노사화합을 이끌어냈습니다. 정규직에서 잘린 여성노동자 144명은 현대자동차가 아니라 노조의 하청노동자로 재고용되었습니다. 월급은
60%깎였고 인원도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이듬해 현대자동차가 4천억원의 순이익을 내자 식당 여성노동자들은 함께 해고되었던 생산직
남성노동자들과 함께 복직투쟁에 나섰는데, 회사는 남성노동자들만 다시 채용하고 여성노동자들과는 아예 협상에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노조는 이 모든 과정에서 침묵했습니다.
(......)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 노조와 소규모 노조,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자기들끼리 싸우게 하는 '이노제노(以老制老)'정책이 성공을 거두기시작한 것입니다.
'
밥'을 짓다가 파업의 선봉에서 투쟁의 '꽃'이 되었고, 결국 남성중심의 노조와 회사측의 협상에 희생'양'이 되고 만 아줌마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싸움의 희생양은 일차적으로 <밥, 꽃, 양>의 식당 여성노동자들이었지만, 결국
남녀를 불문한 비정규직전체로 확산되었고, 앞으로는 정규직 노조로 이어질 게 분명합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아직 자기 힘을
유지하고 있지만, 회사가 정규직 자체를 잘 뽑지 않는 상황에서 정규직 노조의 입지도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김두식, <불편해도 괜찮아> 189~191 中-
'노동계의 이해집단 속에서 외면받아온 다큐멘터리 <밥, 꽃, 양>이 만들어진지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살펴보면,
결국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노조공동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저자의 이 한 마디야말로 오늘 우리가 직면한 이 땅의
노동 시장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많이 배우고 공부했으며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의 직업 안정성이 우선되어야 하며 더 많은 보수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두식 교수가 책에서 밝힌 것처럼
철도공사 직원 월급이 교수보다 더 많아도 된다는 데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해먹고는 내팽개치는 '짓'만큼은 어떤 말로도 용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노동계를 이끄는 노동운동가들은 반드시 이
점을 직시해야 하리라.
일본 제조업의 위력은 장인 정신에 밑바탕이 있다.
장인
정신이란 , 내가 만든 물건에 혼(魂)을 담아내는 것이다. 대량 생산 체제 속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있는 노동자의 손을 거친 물건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중국산 제품은 이제 전세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지만 '위조와 저질'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물건과
먹거리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전문가도 있다.
"사형제도가
건재하며 중형을 면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중국사회애서 먹거리에 가해지는 불법행위는 전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심각한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중국인들에게는 장인정신 즉 자존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책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와 특정 종교인 및 여성과 외국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그동안 얼마나 편협하고 이기적인지 확인하는 과정은 '불편'함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다소 엉뚱한 책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다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참으로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편견의 시작은 불편함 즉 마음의 불편함에서 시작되고 편견이 곧 차별과 폭력을 부른다. 그러므로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개인 마음속에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있는 불편함을 극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리라.
2012년 임진년 한해를 마감하고 2013년 계사년 새해를 맞이하는 길목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명저를 한편 만난 것 같아 기쁘고도 고맙다.
참!
여담이지만 한마디 남기자면, 외래어 표기법 원칙과는 다소 다른 표기법이 마음에 걸렸다. 예를 들면, 씨나리오, 씨애틀, 후쎄인, 메씨지, 씨스템, 쿄오또, 초오센진, 스딸린식 등등 외국어 표기에 있어 된소리되기가 혀용된 언어는 베트남과 타이어뿐으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하나같이 외국어 표기법을 무시했나 싶다. 특히, 영국의 대처 수상을 '마가릿 새처'로 표기한 데에 이르자 정말 하마터면 화가 날뻔 했고 정말 그 이유가 궁금했다. 물론, 이와 같은 표기법은 저자의 의도라기보다는 출판사의 의도가 반영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