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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 1 : 플롯과 구조 -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에는 뛰어난 플롯이 있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1
제임스 스콧 벨 지음, 김진아 옮김 / 다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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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쓰기의 모든 것>시리즈는 Part 01~Part 04로 총 4 Part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Part는 각기 다른 작가에 의해 쓰여질 예정이다. 현재(2011.10월) '플롯과 구조(part 01)'편과 '묘사와 배경(Part 02)'편이 출간되어 있으며 앞으로 인물,감정,시점(Part 03)과 대화(Part 04)편이 출간될 예정이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시리즈는 글쓰기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는 '기술'이라는 점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각 파트를 담당한 지은이들 역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 하나만으로 작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쓰기의 방법을 이야기한다.


특히, Part 01의 플롯과 구조에서 지은이인 제임스 스콧 벨은 어떻게 하면 독자의 시선을 사로 잡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준다. 그는 스티븐 킹, 리처드 매드슨, 딘 쿤츠 등등 스릴러 소설 분야의 거장들의 작품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소설이 어째서 재미있는지 꼼꼼하게 분석하여 설명해준다.


스콧 벨은 '우선, 비정상적인 사건들을 일으켜라. 그리고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라.'고 주장한다.

날씨나 계절 혹은 지리적 배경을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지루함을 동반할 따름이다. 스토리와 관련이 없는 부수적인 설명들은 가차없이 삭제한다.

썸네일 

놀라운 사건 사고 혹은 장면으로 독자의 시선을 붙드는데 성공했다면 이제부터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사건의 개요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독자들을 납득시켜라.' 독자로 하여금 사건의 발생 원인이나 인물의 행위에 대해 '충분히 그럴 만 하다'고 동의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작가가 여러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범죄소설이라면 범죄자와 피해자의 심리와 행동 및 인체구조와 의학적 배경 지식을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정소설 역시 법에 대한 기초 상식만으로는 독자를 효과적으로 설득시키지 못한다.


끝으로, '마지막 대단원에서 독자의 긴장감이 풀릴 즈음 막판 반전도 빼먹으면 안된다.'고 강조하다. 막판 반전으로는 제프리 디버의 <소녀의 무덤>을 최고로 치고 싶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시리즈 Part 01에서 많은 소설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대부분 스티븐 킹, 리처드 매드슨, 딘 쿤츠 등의 작품들이었다. 아무래도 문학소설보다는 대중소설이 플롯과 구조가 훨씬 더 선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임스 스콧 벨은 어린 시절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생계를 위해 로스쿨를 마치고 로펌에서 변호사로 10여년 간 근무하다가 전업 작가로 들어선 인물이다. 그는 소설을 쓰기에 앞서 20여 편이 넘는 스릴러 소설들을 읽고 꼼꼼하게 분석한 후, 하나의 공식을 도출해냈다.


(목표를 위한) 행동 --> (그에 대한)반응 --> 대단원(비극/해피엔드)이 바로 그것이다.


각 단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예를 들면, 겉으로는 목표달성을 했지만 주인공이 불행할 수도 있고, 비록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주인공이 삶의 의미라든가 가족간 사랑 등등 비물질적인 가치를 깨닫게 되다는식말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이유 역시 다양하다. 직업적 소명일수도 있고 사랑이나 우정 혹은 약속등을 지키기 위한 것일수도 있고 그것을 깨트리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소설쓰기의 모든것 part01을 읽은 후, 나는 이 책에 언급되어 있는 작품들 중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와 제임스 스콧 벨이 좋아한다는 딘 쿤츠의 작품이었다. 딘 쿤츠 역시 많은 작품을 갖고 있는 작가였는데 내가 읽은 작품은 <검은 비밀의 밤>이었다.


그리고 세번째로 읽은 작품은 제프리 디버의 <소녀의 무덤>이다. 이 작품은 도살장을 배경으로 한 인질극이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Part 01:플롯과 구조>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성공한 소설 작품들은 하나같이 근사한 주인공과 탄탄한 플롯 및 구조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참고로, <나는 전설이다>와 <검은 비밀의 밤> <소녀의 무덤>등 이상 세작품에 대한 도서감상문을 알라딘 서제의 같은 카테고리 안에 올려놓았으니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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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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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년도에 처음으로 출판된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수업>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이들을 '작가의 길'로 인도한 글쓰기의 '바이블'이라 할 만하다. 다만 그 명성에 비해 한국에서는 상당히 뒤늦게 번역 소개되었고, 최근 인터넷 개인 블로그의 발달과 더불어 '일반인의 책쓰기와 책내기'가 유행하면서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주로 구체적인 방법론을 언급하고 있다면 도러시아 브랜디는 이보다 훨씬 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점이 그 어떤 글쓰기의 기술을 논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사람들은 '내가 살아온 인생을 책으로 쓰면 한 열권은 될 것이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을 갖고 싶어하며 어떠한 형식이든지 글쓰기를 시도해 봤다는 걸 감안한다면 이 세상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작가들이 살았었고 또 살고 있어야 하리라.


사실, 모든 일들이 그렇듯 글쓰기의 성패 역시 추진력과 인내심에 달려 있다. 즉, 모든 사람들이 신선하고 창의적인 이야기들을 알고 있고 또 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그것을 글로 엮어 내는 이들은 결국 추진력과 인내심을 갖춘 소수의 사람들일 뿐이다.



이제 '재능은 배운다고 해서 트이는 것이 아니다'라는 맥빠지는 말 속에 숨은 진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이 말은 옳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거의 전적으로 그르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재능이 느는 것은 아니지만 재능이 늘기를 바랄 이유가 없다. 재능이라는 자원은 그 양이 아무리 미미하다 하더라도 평생을 가도 다 쓸 수 없을 만큼 충만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시대와 인종을 초월해 위대한 사람들은, 마치 처음부터 불순물이 섞이지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재능을 타고나기라도 한 듯 너무나 위대해서 편의상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삶과 예술 작업에서 나머지 인간들보다 그러한 기능을 좀더 자유롭게 발휘했을 뿐이다. 재능의 흔적을 아예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보잘것없는 인간은 없다.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너무나 위대해 타고난 재능을 남김 없이 무한정 사용하는 인간 또한 없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수업>중-

 

 

도러시아 브랜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바로 '작가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글쓰기 또한 연습을 통해 향상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본성은 이중 인격이 아닌 삼중 인격이라는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작가는  이중 인격이 아니라 삼중 인격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본성은 이중이 아니라 삼중이라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다. 희미하든 뚜렷하든, 지속적이든 산발적이든 삼중 인격 가운데 이 세 번째는 바로 각자이 타고난 재능이다. 번득이는 통찰력과 날카로운  직관 그리고 상상력은 서로 협력해 평범한 경험을 '더 고귀한 현실이라는 환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런 점에서 이 세 가지는 예술의 필수 요소다. 아니면 한 발 양보해 삶을 해석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수업>중-

 

쓰여진지 다소 오래된 책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책을 읽는 독자로서의 자세를 갖추지 못한 때문인지는 몰라도 <작가수업>을 읽으면서 솔직히 깊게 빠져들지는 못했다. 다소 어려웠다고나 할까. 그건 아마도 작가로서 갖추어야 하는 내면적인 면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작가도 아닌 내가, 작가가 되려고 제대로 된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내가 어떻게 동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책을 읽는 과정 곳곳에서 벽에 부딪쳤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는 나 자신을 보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와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뜨거운 욕망이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음을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지 이제는 욕망을 행동에 옮겨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확인하게 되었다.


참고로, 만약 내가 이 책을 다시 손에 든다면 그건 순전히 <작가수업>에 대한 영국의 소설가 겸 문학 창작 강사인 하비 채프먼의 다음과 같은 평가 때문일 것이다.

 

1934년에 처음 출간된 <작가수업>은 오늘날 글쓰기에 관한 가장 훌륭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지난 75년 동안 끊임없이 판매됐으며, 똑같이 그렇게 판매됐다고 주장할 만한 다른 창조적 글쓰기 지침서는 사실상 없다. 도러시아 브랜디는 누구든 글을 쓸 수 있고 모든 이가 제각가의 글쓰기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녀는 창조적 글쓰기라는 행위가 어렵지 않을뿐더러 소수의 지식인들이나 추구할 일로 보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야기 구성을 어떻게 짜고 등장인물을 어떻게 만들어 내고 하는 것 따위에 관한 조언은 한마디로 하지않느다. 대신에 자신의 창조성을 강화하고 그녀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다고 믿는 무의식적 글쓰기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지침을 제시한다. 그녀는 이 책에서 이런 주제들을 다룬다.

작가의 기질을 배양하는 방법, 작가의 이중 인격, 쉬운 글쓰기, 일정한 시간에 글쓰는 방법, 순수한 시각을 되찾는 법, 독창성 대 모방, 작가의 비법 등등. 이 가운데 마지막 것이 최고다. 이것은 자신의 독창성을 직접 발굴해낼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이다. 사실 이책을 작가의 비법에 관한 이 한 장(章)만으로도 구입할 가치가 있다.


   -하비 채프먼(영국 소설가 겸 문학 창작 강사, www.novel-writing-help.com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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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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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진서의

 

글쓰기의 방법과 기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이 30년 세월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좋은 글을 쓰고 싶어하고 그 방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인터넷과 워드프로세서의 발달로 과거보다 글쓰기의 기회가 많아졌고 한결 수월해진것도 있지만 인간은 뭔가 읽고 쓰고 남기고 추억하는 욕망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쳤던 강사이자 작가였던 윌리엄 진서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글쓰기는 힘 안들이고 쉽게 써내려간 글처럼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피나는 연습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글은 편안함과 평범한 속에 누구나 느끼는 진실을 담고 있다.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글쓰기 행위는 자기 성찰이며 반성이고 또한 용서이자 이해의 과정인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상처받고 긴장하게 마련이다. 자신의 일부를 종이 위에 펼쳐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이끌리지만,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대로 쓰지 못한다. 집필이라는 것을 한답시고 앉아 있지만, 종이 위에 나타나는 자신은 글을 쓰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보다 훨씬 뻣뻣하게만 보인다. 문제는 그런 긴장 뒤에 있는 진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글 쓰는 이가 팔아야 하는 것은 글의 주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나를 발견하는 글쓰기 中-


 

그 다음으로 윌리엄 진서가 말하는 좋은 글의 조건은 다름 아닌 '간결함'이다. 문장 속에서 뺄 수 있는 표현은 뺄 수 있는데까지 전부 빼야 한다. 사실, 글쓰기 과정에서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빼거나 생략하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 즉 글쓰기의 결과에 얽매이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글다운 글은 입력키보다는 삭제키를 잘 사용함으로써 탄생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사람들은 대체로 글을 난삽하게 쓰는 병이 있다. 살다보면 불필요한 단어, 반복적인 문장, 과시적인 장식, 무의미한 전문용어 때문에 숨이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글이 난삽하다는 것은 뜻이 같은 짧은 단어를 제쳐두고 까다로운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 장황한 완곡어법을 써도 문장이 난삽해진다. (...) 자기 잘못을 감추기 위해 사용하는 공식적인 표현도 난삽하다. 무언가를 설명하려 할 때 쓰는 긴 표현도 조심해야 한다. "~라 덧붙일 수 있다.", "~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은 흥미롭다"따위가 그렇다. 덧불일 수 있다면 그냥 덧불이자. 어떤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면 그냥 지적하자. 무언가에 주목하는 것이 흥미롭다면 그냥 흥미롭게 하자.

                                                                       -버릴 수 있는 만큼 버리자 中-


윌리엄 진서가 지적한 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즐겨 쓰는 표현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지금껏 나는 난삽한 글들만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서 뭔가 대단한 것을 만들어낸다는 자기 만족감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윌리엄 진서가 구체적인 예시문장을 들어 설명한 부분은 비록 원문이 영어 문장이긴 하지만 한국어 문장을 '난삽'하게 만드는 표현들로 채워져 있어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밖에도 <글쓰기 생각쓰기>에는 인터뷰, 여행기, 회고록, 설명문, 비즈니스문장, 비평문, 콩트 등등 다양한 장르에 적합한 글쓰기 방법들을 세세하게 알려준다. 다만, 윌리엄 진서의 모국어가 영어인 관계로 한국어 번역본을 통해 글쓰기 방법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전달되기를 바란다는 건 독자의 과욕인 것 같다. 문법이 중요하지만 기본 회화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이해하기 쉽듯이, 글쓰기의 이론 또한 분명 중요하지만 충분한 실전 연습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렵고 지겨운 '공부'일 뿐이다. 일단, 쓰고 보자. 그것도 많이......


글쓰기 이론에서 멈짓한 책장은 어렵게 4부로 넘어갔고,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의 자세'에 귀기울이던 나는 3부에서 읽기를 멈추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제목들을 눈여겨 보자.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글쓰기 자세란 무엇인지 가르쳐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른 작가를 모방하기를 주저하지 말자. 모방은 예술이나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창조적 과정의 일부이다. 바흐도 피카소도 애초부터 완전히 바흐나 피카소인 채로 솟아난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본보기가 있어야 했다. 글쓰기에서는 특히 그렇다. 관심 있는 분야에서 최고의 작가를 골라서 그 작품을 큰 소리로 읽어보자. 그들의 목소리와 감각을, 다시 말해 언어에 대한 태도를 귀로 받아들이자. 모방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와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일랑 말자. 곧 그 껍질을 벗고 여러분 자신으로 자라게 될 테니.

                                                            -글의 목소리를 듣자 中-


'언어에 대한 태도를 귀로 받아들이자'란 문장이 특히 마음에 든다. 오랫동안 이 문장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글은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청각과 시각, 촉각등 오감뿐만 아니라 때론 환각까지도 동원해야 한다. '언.어.에. 대.한. 태.도.를. 귀.로. 받.아.들.이.자.' 정말 어디선가 귓전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윌리엄 진서는 말한다.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어 하지만 글을 잘 쓰는 일은 어렵다. 만약 글쓰기가 고통이고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건 정말 글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습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한마디만큼 위로와 용기를 일깨워주는 말도 없을 것이다.


작가는 글을 쓰는 순간 스스로에게 시동을 걸어야 한다. 그것은 배우나 무용가나 화가나 음악가에 못지 않은 일이다. 한바탕 강렬한 에너지를 쏟아 우리를 휩쓸어가는 작가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이 자리에 앉기만 하면 글이 술술 나오는 줄 안다. 아무도 매일 아침 그들이 시동을 걸기 위해 쏟는노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즐거움, 두려움, 자신감 中-


한때 정상에 있었지만 이젠 스포츠 뉴스에서 멀어진 프로골퍼인 박지은선수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솔직히 골프를 제일 잘 치던 때에도 골프 그 자체보다는 골프를 잘 쳤을 때 따라오는 것들 예를 들면 상금이라든지 인기와 같은 것들에만 관심을 갖었었어요."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한다면 오히려 과정에 집중할 수 없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는 법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과정이 아닌 결과에 집중하게 되면 글의 형식과 내용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윌리엄 진서는 이를 '최종 결과물의 횡포'라고 일갈했다.


작가들이 완성된 글에 집착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글의 형식과 목소리와 내용을 정하기 위해 미리 내려야 하는 모든 결정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단히 미국적인 문제다. 미국 문화는 승리를 숭배한다. 코치는 이겨야 돈을 받고, 교사는 학생들을 최고의 대학에 보내야 인정을 받는다. 그보다 덜 매력적인 성취, 예를 들어 배움, 지혜, 성장, 자신감, 실패의 극복 따위는 성적을 매길 수 없으므로 그만큼 존중받지 못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돈이 최고의 성적표이다.

                                                                -최종 결과물의 횡포 中-


윌리엄 진서는 '어떻게 하면 제 글을 팔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그는 글 쓰는 사람에게 글을 파는 법을 가르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글 쓰는 법을 가르치고 싶을 따름이고, 글쓰기가 탄탄하면 저절로 좋은 글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저절로 팔릴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어 번역을 하면서 전문적으로 중국어 번역을 가르치고 있는 나 역시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중국어 번역으로 돈을 벌 수 있나요?  얼마나 벌 수 있나요?" 번역가는 물론 번역 의뢰가 들어오고 의뢰에 따라 번역을 완료하여 납품하면 번역료를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번역 의뢰를 받느냐?'하는 것이다. 나는 '번역실력이 좋다면 언젠가는 번역을 할 기회가 오고 그리고 인정받게 된다'고 말한다. 나 역시 번역을 잘 할 수 있는 방법과 이를 되도록 잘 가르치려 노력할 따름이지, 번역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나 자신의 번역을 잘 파는 방법만큼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내리는 결정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많은 시간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 여러분의 세심한 노력이 문장 하나가 제대로 나왔을 때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여러분도 알고 독자도 안다.

                                                                          -글쓰기는 결정의 연속 中-


글쓰기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이 바로 결정의 연속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린다. 너무 큰 결정이라서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릴 기회는 일생을 통털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고작해야 한 두번이고 많아도 다섯손가락을 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인생을 좌우할 큰 결정보다는 매일 매일 이루어지는 작고 사소한 결정들이 모여 우리 인생을 만든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고 시시한 결정일지라도 신중하되 일단 하기로 결정했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종종 글쓰기의 가장 큰 목적은 기억을 간직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윌리엄 진서는 회고록 쓰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작가는 기억을 지키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그래 맞다! 작가는 바로 기억을 지키는 사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진서는 글쟁이가 갖추어야 할 자세로 '최선을 다해서 쓰되, 자신의 글을 끝까지 지키고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통 글을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원고료가 입금된 걸 확인한 뒤에는 자신이 넘긴 원고의 여정에 동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위험하다. 자신의 글이 함부로 수정되고 인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대중을 위한 글을 쓸 자격이 없는 것이다. 윌리엄 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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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의 책읽기 - 내 삶을 리모델링하는 성찰의 기록
유인창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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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하나만을 먹고 살아가기에는 너무 늦은...

그렇다고 꿈꾸기마저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마흔이란 나이는 바로 이런 나이일지도 모르겠다.

 

 

공자는 사람이 나이 40에 이르면 '미혹한 것이 없다'하여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일컬었지만, 마흔을 건너본 사람은 안다. 마흔이 얼마나 마음을 위태롭게 하고 마음을 뒤흔드는 나이인지를 말이다.

 

 

나이 40을 왜 '마흔'이라 하는지 아는가.

바로, 마음이 흔들린다를 줄여 마흔인 것이다.

 

썸네일

온 마음을 다해 살아온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과연, 이 삶이 내가 원했던 그 삶이었는지'

'혹시, 다른 사람의 삶을 내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이대로,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 것인지'

'만약, 이렇게 살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이 흔들린다.

 

 

이런 나에게 한권의 책이 찾아왔더랬다.

마치 건조한 봄가뭄이 계속되던 어느날 예기치 않게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허둥지둥 소나기를 피해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아무 담벼락이나 찾아들 듯 그렇게 유인창의 <마흔살의 책읽기> 속으로 숨어들었다.

'나만이 아니었구나. 마음 흔들리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었구나...'

특별히 정답을 찾은 것도 아니요 삶이 바뀐 것도 아니지만, 그저 이점 하나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수많은 시험문제를 풀면서 살아 왔지만 자신의 문제에는 질문을 던져 본 적도 답을 구해 본적도 없고, 그저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돈을 벌며 살았을 뿐이다. 그저 그것 뿐이다. 밥 먹은 힘으로 돈을 벌고 번 돈으로 또 밥을 먹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세월도 먹어치웠다.'

이와 같은 필자의 고백이 나의 독백으로 바뀌었다. 나 역시 그랬다.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전쟁하듯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며 투쟁하듯 살았다.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그게 잘못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

처절한 외침으로 바뀐 나의 독백은 안다.

그건 바로 지나간 세월에 대한 미안함이자, 앞으로 다가올 세월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걸...

.

.

.

밑줄긋기와 메모하기 그리고 페이지 밑단 접기...

책읽을 때마다 나에게 나타나는 못된 습관들이다.

그런데...

유인창의 <마흔살의 책읽기>는 나에게 더 이상의 밑줄긋기도 메모도 밑단 접기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대신 나는 살아온 삶에 밑줄을 쭉ㅡ긋고 마음을 고이 접어 그 위에 메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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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의 철학 - 열정의 서른에서 결실의 마흔으로
가와기타 요시노리 지음, 박혜령 옮김 / 토네이도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열정의 서른에서 결실의 마흔으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불혹'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평소 내 생각과 엇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공자가 살던 시절에는 사람이 나이 마흔에 이르면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다고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요즘도 과연 그럴까? 평균 수명이 늘어난 오늘날 마흔은 안타깝게도 '불혹'이 아닌 '유혹'의 시기에 더 가깝다. 세상을 어느 정도 알고 적당한 사회적 지위과 경제를 부를 갖춘 40대는 남여를 불문하고 멋있다. 그래서 그만큼 유혹도 많고 마음도 흔들리기 쉽다. 

그러므로 '불혹'이란 더이상 '흔들림이 없는 것'이 아닌 오히려 정반대로 흔들리기 쉬운 '유혹'으로 읽힌다.


기와키타 요시노리가 꼽는 마흔살의 철학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로 요약할 수 있다. 마흔에 접어들면, 이젠 쉬고 싶고 습관적으로 은퇴 이후를 기웃거리게 되는데 이러면 안 된다. 그럴듯한 노년을 꿈꾼다면 스스로에 대한 책직질을 더더욱 늦추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40대의 노력은 2,30대의 노력과는 뭔가 달라야 한다. 2,30대의 노력이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인 혜택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40대의 노력은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여야 한다.


돈만 보며 달려가는 인생은 돈만 있는 인생일 뿐이다. 아니 오히려 돈조차 붙들지 못한 채 빈손으로 원망 가득찬 가슴만을 두들길 뿐이다. 돈은 마치 그림자와 같아서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잡히지 않는다. 따라갈수록 그만큼 더 멀리 도망치고 만다. 그래서 돈이 절실하면 할수록 돈을 쫒지 말아야 한다.


중국말에 "女人为钱而变坏,男人有钱而变坏"라는 말이 있다. 의미인즉, 여자는 돈을 위해 나쁘게 변하고 남자는 돈이 생기면 나쁘게 변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사람은 돈에 약하고 또 돈 때문에 변한다.

변하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부자가 되면 당연히 빈자 때와는 달라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빈자가 부자가 될 수도 없거니와 설령 운이 좋아 부자가 되었다 한들 빈자의 마인드에 머물러 있다면 금방 빈자로 되돌아오고 말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변하되 어떻게 변하는냐하는 것이다. 좋게 변하면 좋은데 나쁘게 변하기가 쉽다. 주위를 둘러봐도 돈 없던 사람이 정당한 방법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돈을 갖게 되면 열에 아홉은 변하기 마련이고 또 대부분은 나쁜 쪽으로 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마흔에 접어 들면 조급해할 것이 아니라 담백하고 단순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과감히 도전도 해보고, 자신이 잘 하는 분야에 더욱 매진해서 일가견을 이루도록 힘써야 한다. 즉, 매슬로우의 인간욕구 5단계(생리적욕구-안전의 욕구-사회적 욕구-존경의 욕구-자아실현의 욕구) 중, 최고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바로 사십대인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즐겁고...즐거우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주 하게 되니...더욱 더 잘 하게 되고... 이러다 보면, 명예도 얻고 돈도 얻게 되는 것이다. 설령, 돈도 명예도 얻지 못했다 해도 아쉬울 하나 없다. 그만큼 자신만의 삶을 살았기에 삶에 대해 만족하고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추구했기에 자존감 또한 크기 때문이다. 

 

무릇, 나이들수록 멋있어지는 사람은 자존감이 큰 사람이다. 이런 자존감은 젊은 시절의 오기나 패기와는 분명 다르다. 오기나 패기는 사람을 역동적으로 만들긴 하지만 때론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중년에 이르러서도 오기나 패기로 가득한 사람들은 주변사람들에게는 그저 피하고 싶은 골치덩이일 뿐이다. 청년의 열정이 폭발적인 에너지와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구현된다면 중년의 열정은 은근과 끈기 그리고 연륜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채우려면 우선 버려야하다.

버리지도 못하면서 채우려고만 한다면 줄줄 흘려 넘친 술잔처럼 품위가 없다. 자기 스스로에겐 엄격하되, 주변과 공동체에 대해서는 너그러워야 한다. 종종 나이 들어서 보이는 '노욕(老慾)'은 역겹다 못해 사람을 서글프게 만든다. '노욕(老慾)'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것도 아니다. 지하철에서 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도 노욕이요, 노인석 비어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반석에 앉아 젊은이들 서있게 만드는 것도 바로 노욕이다. 자식 며느리에게 연락 자주 안한다고 불호령을 내는 것도 노욕이요, 주말마다 불러내는 것도 노욕이라면 노욕일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나이 들어가면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돈욕심'과 더불어 '돈자랑'이다. 

 

기와기타 요시노리의 <마흔살의 철학>은 마흔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삼십대를 위한 책이 아닐까 싶다. 삼십대 중반부터 다가올 '마흔'에 대비해야 한다. 정신적으로 나태해지지 않도록 또한 정서적으로 공허해지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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