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평점 :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의 방법과 기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이 30년 세월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좋은 글을 쓰고 싶어하고 그 방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인터넷과 워드프로세서의 발달로 과거보다 글쓰기의 기회가 많아졌고 한결 수월해진것도 있지만 인간은 뭔가 읽고 쓰고 남기고 추억하는 욕망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쳤던 강사이자 작가였던 윌리엄 진서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글쓰기는 힘 안들이고 쉽게 써내려간 글처럼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피나는 연습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글은 편안함과 평범한 속에 누구나 느끼는 진실을 담고 있다.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글쓰기 행위는 자기 성찰이며 반성이고 또한 용서이자 이해의 과정인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상처받고 긴장하게 마련이다. 자신의 일부를 종이 위에 펼쳐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이끌리지만,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대로 쓰지 못한다. 집필이라는 것을 한답시고 앉아 있지만, 종이 위에 나타나는 자신은 글을 쓰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보다 훨씬 뻣뻣하게만 보인다. 문제는 그런 긴장 뒤에 있는 진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글 쓰는 이가 팔아야 하는 것은 글의 주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나를 발견하는 글쓰기 中-
그 다음으로 윌리엄 진서가 말하는 좋은 글의 조건은 다름 아닌 '간결함'이다. 문장 속에서 뺄 수 있는 표현은 뺄 수 있는데까지 전부 빼야 한다. 사실, 글쓰기 과정에서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빼거나 생략하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 즉 글쓰기의 결과에 얽매이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글다운 글은 입력키보다는 삭제키를 잘 사용함으로써 탄생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사람들은 대체로 글을 난삽하게 쓰는 병이 있다. 살다보면 불필요한 단어, 반복적인 문장, 과시적인 장식, 무의미한 전문용어 때문에 숨이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글이 난삽하다는 것은 뜻이 같은 짧은 단어를 제쳐두고 까다로운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 장황한 완곡어법을 써도 문장이 난삽해진다. (...) 자기 잘못을 감추기 위해 사용하는 공식적인 표현도 난삽하다. 무언가를 설명하려 할 때 쓰는 긴 표현도 조심해야 한다. "~라 덧붙일 수 있다.", "~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은 흥미롭다"따위가 그렇다. 덧불일 수 있다면 그냥 덧불이자. 어떤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면 그냥 지적하자. 무언가에 주목하는 것이 흥미롭다면 그냥 흥미롭게 하자.
-버릴 수 있는 만큼 버리자 中-
윌리엄 진서가 지적한 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즐겨 쓰는 표현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지금껏 나는 난삽한 글들만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서 뭔가 대단한 것을 만들어낸다는 자기 만족감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윌리엄 진서가 구체적인 예시문장을 들어 설명한 부분은 비록 원문이 영어 문장이긴 하지만 한국어 문장을 '난삽'하게 만드는 표현들로 채워져 있어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밖에도 <글쓰기 생각쓰기>에는 인터뷰, 여행기, 회고록, 설명문, 비즈니스문장, 비평문, 콩트 등등 다양한 장르에 적합한 글쓰기 방법들을 세세하게 알려준다. 다만, 윌리엄 진서의 모국어가 영어인 관계로 한국어 번역본을 통해 글쓰기 방법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전달되기를 바란다는 건 독자의 과욕인 것 같다. 문법이 중요하지만 기본 회화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이해하기 쉽듯이, 글쓰기의 이론 또한 분명 중요하지만 충분한 실전 연습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렵고 지겨운 '공부'일 뿐이다. 일단, 쓰고 보자. 그것도 많이......
글쓰기 이론에서 멈짓한 책장은 어렵게 4부로 넘어갔고,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의 자세'에 귀기울이던 나는 3부에서 읽기를 멈추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제목들을 눈여겨 보자.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글쓰기 자세란 무엇인지 가르쳐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른 작가를 모방하기를 주저하지 말자. 모방은 예술이나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창조적 과정의 일부이다. 바흐도 피카소도 애초부터 완전히 바흐나 피카소인 채로 솟아난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본보기가 있어야 했다. 글쓰기에서는 특히 그렇다. 관심 있는 분야에서 최고의 작가를 골라서 그 작품을 큰 소리로 읽어보자. 그들의 목소리와 감각을, 다시 말해 언어에 대한 태도를 귀로 받아들이자. 모방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와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일랑 말자. 곧 그 껍질을 벗고 여러분 자신으로 자라게 될 테니.
-글의 목소리를 듣자 中-
'언어에 대한 태도를 귀로 받아들이자'란 문장이 특히 마음에 든다. 오랫동안 이 문장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글은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청각과 시각, 촉각등 오감뿐만 아니라 때론 환각까지도 동원해야 한다. '언.어.에. 대.한. 태.도.를. 귀.로. 받.아.들.이.자.' 정말 어디선가 귓전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윌리엄 진서는 말한다.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어 하지만 글을 잘 쓰는 일은 어렵다. 만약 글쓰기가 고통이고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건 정말 글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습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한마디만큼 위로와 용기를 일깨워주는 말도 없을 것이다.
작가는 글을 쓰는 순간 스스로에게 시동을 걸어야 한다. 그것은 배우나 무용가나 화가나 음악가에 못지 않은 일이다. 한바탕 강렬한 에너지를 쏟아 우리를 휩쓸어가는 작가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이 자리에 앉기만 하면 글이 술술 나오는 줄 안다. 아무도 매일 아침 그들이 시동을 걸기 위해 쏟는노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즐거움, 두려움, 자신감 中-
한때 정상에 있었지만 이젠 스포츠 뉴스에서 멀어진 프로골퍼인 박지은선수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솔직히 골프를 제일 잘 치던 때에도 골프 그 자체보다는 골프를 잘 쳤을 때 따라오는 것들 예를 들면 상금이라든지 인기와 같은 것들에만 관심을 갖었었어요."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한다면 오히려 과정에 집중할 수 없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는 법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과정이 아닌 결과에 집중하게 되면 글의 형식과 내용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윌리엄 진서는 이를 '최종 결과물의 횡포'라고 일갈했다.
작가들이 완성된 글에 집착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글의 형식과 목소리와 내용을 정하기 위해 미리 내려야 하는 모든 결정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단히 미국적인 문제다. 미국 문화는 승리를 숭배한다. 코치는 이겨야 돈을 받고, 교사는 학생들을 최고의 대학에 보내야 인정을 받는다. 그보다 덜 매력적인 성취, 예를 들어 배움, 지혜, 성장, 자신감, 실패의 극복 따위는 성적을 매길 수 없으므로 그만큼 존중받지 못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돈이 최고의 성적표이다.
-최종 결과물의 횡포 中-
윌리엄 진서는 '어떻게 하면 제 글을 팔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그는 글 쓰는 사람에게 글을 파는 법을 가르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글 쓰는 법을 가르치고 싶을 따름이고, 글쓰기가 탄탄하면 저절로 좋은 글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저절로 팔릴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어 번역을 하면서 전문적으로 중국어 번역을 가르치고 있는 나 역시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중국어 번역으로 돈을 벌 수 있나요? 얼마나 벌 수 있나요?" 번역가는 물론 번역 의뢰가 들어오고 의뢰에 따라 번역을 완료하여 납품하면 번역료를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번역 의뢰를 받느냐?'하는 것이다. 나는 '번역실력이 좋다면 언젠가는 번역을 할 기회가 오고 그리고 인정받게 된다'고 말한다. 나 역시 번역을 잘 할 수 있는 방법과 이를 되도록 잘 가르치려 노력할 따름이지, 번역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나 자신의 번역을 잘 파는 방법만큼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내리는 결정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많은 시간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 여러분의 세심한 노력이 문장 하나가 제대로 나왔을 때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여러분도 알고 독자도 안다.
-글쓰기는 결정의 연속 中-
글쓰기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이 바로 결정의 연속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린다. 너무 큰 결정이라서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릴 기회는 일생을 통털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고작해야 한 두번이고 많아도 다섯손가락을 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인생을 좌우할 큰 결정보다는 매일 매일 이루어지는 작고 사소한 결정들이 모여 우리 인생을 만든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고 시시한 결정일지라도 신중하되 일단 하기로 결정했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종종 글쓰기의 가장 큰 목적은 기억을 간직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윌리엄 진서는 회고록 쓰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작가는 기억을 지키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그래 맞다! 작가는 바로 기억을 지키는 사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진서는 글쟁이가 갖추어야 할 자세로 '최선을 다해서 쓰되, 자신의 글을 끝까지 지키고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통 글을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원고료가 입금된 걸 확인한 뒤에는 자신이 넘긴 원고의 여정에 동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위험하다. 자신의 글이 함부로 수정되고 인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대중을 위한 글을 쓸 자격이 없는 것이다. 윌리엄 진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