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병기 활 - War of the Arrow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재미있긴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이 죽고 주인공이 좀 무적임. 그래서 15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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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추석이다. 비도 와서 밖에서 못 놀 것 같으니, 갖고 갈 책을 미리 정해본다. 

  

 이 책은 번역을 할 계획이다. 틈틈이.  

 

 

 

 

 

  

 다 갖고 갈 건 아니지만, 이 책들을 후보로 삼아본다.   

  

 

 

 

 

  

  누구에게나 아무 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를 마치 백과사전처럼 풍부하게 실어놓은 책이다. 이런 외계인 같은 작가.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충실한 지구인이다. 중앙일보 기사에서 일부 발췌한 글: 실제 조씨는 엄청난 다독가다. “집에 소장 도서가 1만5000권쯤 된다”고 했다. 대학시절 목회자를 꿈꿨던 이력 때문에 관심 분야도 다양하다. 장르문학은 물론 종교철학·자연과학을 아우른다. “요즘도 도서 구입비로 한 달에 100만원쯤 지출한다”고 했다. 대학교 교직원이기 때문에 주중에 관심 있는 책을 읽고 주말에 쓰는 식으로 작가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담배는 피우지 않고 소설을 쓰기 위해 술도 마시지 않는다. 영감보다는 근면과 위트로 승부하는 21세기형 작가다.
 소설은 왜 쓰는 걸까. “꿈을 공유해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SF를 좋아하는 착한 지구인 작가다. 

 

 

 꼭 이런 기사 보면 읽고 싶어진다니까. (마찬가지로 중앙일보 기사에서 발췌) "대중적인 소설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대중적’이란 말을 ‘문학적 성취가 모자라는’이란 뜻으로 쓰지 않았다. 존 그리샴의 신작 『고백』은 쉬 읽힌다. 그러면서도 문학적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술술 책장을 넘기다가도 인종차별과 사형제도를 성찰하는 몇몇 대목에서 멈칫하게 된다. 평론은 종종 과장의 유혹을 외면하지 못한다. ‘최고’나 ‘최악’이란 꼬리표에 쉽게 굴복한다. 미국 평론가들이 ‘최고의 스토리 텔러’ 운운했기에 또 시작이군, 했다. 다 읽고 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최고’의 대중소설이었다.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다. 직접 검증을 해보시라." 덕분에 이 소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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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over 2011-09-14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가지고 간 책은 반역과 비스트다.
 

 훗날 연말에, 또는 정말로 '훗날'에 내가 다시 알라딘 서재를 찾을 때, 과연 대한민국 출판의 역사는 어떤 방식으로 흘러갔는가를 주관적인 관점으로 판단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또, 난 지금 『아까운 책』을 읽고 있다. 나만의 아까운 책을 또 다시 주관적으로 몇 개 넣어본다.   

  

 상식(Common Sense)하니, 떠오르는 것은 역시 토머스 페인의 『상식』이다. 그의 이 짧은 팜플릿이 『분노하라』처럼 사람들을 일깨웠다. 그의 책이 미국의 역사를 바꾸었다. 여기에 저자는 상식의 역사를 보탠다. 상식. 우리는 무엇을 상식이라 부르는가? 저자에 따르면, 상식이란 '현실의 일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매일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판단을 간단히 내리도록 해주는 인간의 기본적인 재능, 또는 이 기본적인 재능에서 나온, 자명하면서도 폭넓게 공유되는 결론들'이다. 결국 '상식'이란 대중성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상식'이 없는 사람들을, 곧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그 상식이 과연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일반적으로 통용되어 왔다. 저자가 문제점을 잘 집었다. 상식의 역사는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생소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원제에 '상식의 정치적 역사(Common Sense: A Political History)'이자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이 나왔으니, 이 책은 상식에 대한 정치적 분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촘스키, 촘스키. 왜 이렇게 '촘스키'에 대한 책이 많을까? 라고 의심해 보지 않았나? 아무리 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양심적 지성인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촘스키를 다루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 중 하나가 그가 '러셀'의 뒤를 이은 뛰어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는 어떻게 러셀을 말했을까?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러셀은 98년이란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듣고 보았다. 그리고 러셀은 그것을 자신의 저서에 모두 털어놓았다. 그리고 촘스키는 그것을 밝혀냈다. 자기 식으로. 사실 촘스키가 뛰어난지 러셀이 뛰어난지 난 잘 모르겠지만, 말하는 자보다는 말하기를 받는 자가 더 존중받는 것은 틀림없으리라. 

  

 살다 보면 힘들 때가 많다. 우리의 삶은 항상 고통투성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가끔씩 또는 언젠가 기쁨과 즐거움이 온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것들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위로의 수단을 찾는다. 많은 것들이 스스로 위로해준다며 손짓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위로, 아니 위로하는 척에 불과하다. 반드시 책을 읽는 것만이 위로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저자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의 저자인 이화경도 마찬가지디. 제인 오스틴, 조르주 상드, 실비아 플라스, 프랑수아즈 사강, 버지니아 울프, 잉게보르크 바흐만, 로자 룩셈브르크,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시몬 드 보부아르. 이 책에 등장하는 10명의 멘토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저자는 이들과 밤을 새우며 깊은 대화를 나눈다. 우리가 지금 존경하고 있는 인물도 한때는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뜨겁고 치열한 삶을 살았기에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다. 소설가 이화경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위로받자. 

 소설가를 꿈꾸는 평범한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과연 베스트셀러 작가들이나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들은 일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소설 속에서처럼, 인터뷰에서처럼 진지하고 냉철하게 살아갈까? 사실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현재에 사는 이들뿐만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위대한 사람들, 예컨대 플라톤이나 데카르트는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하다. 우린 그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사고만 알았지, 그들의 인간적인 삶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철학자라고 해서 반드시 철학적으로 살아야 할 필요는 없고, 소설가라고 해서 소설 속에서 보여준대로 살아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답게 사는 것이 훨씬 낫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한 것과 전혀 별개로 살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쓴 대로 살아갔을 것이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기에 기대가 더욱 크다. 하지만 제목부터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요즘 소설보다는 인문서에 더 끌리는 까닭은 읽을 만한 소설이 없는 까닭일까, 아니면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인가? 아직 9월이 다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래, 일단 이 세 소설에 만족하자. 

 『와인드업 걸』은 24000원에 거의 700쪽에 가까운, 요즘 소설치곤 꽤 드문 소설이다. 이 소설을 보니 떠오르는 게 『스완 송』과 『더 로드』다. 이 세 소설 모두 세기말 소설이다. 세기말 소설은 내용이 풍부하여 흥미롭지만, 자칫하다간 산만해질수도 있다. 『더 로드』처럼 압축성을 띠지 않는 한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놓아도 괜찮다. 태국을 배경으로 하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띠지만 색다른 SF를 선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레드셔츠와 옐로우셔츠를 보니 떠오르는 게 그린셔츠와 블랙셔츠(반파시스트 당원들과 파시스트 당원)........ 솔직히 말하면 표지 때문에 마음에 든다. 참고로 '와인드업(windup)'은 '결말, 끝장'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대충 한글 뜻으로 번역하면 '최후의 소녀' 정도? 

 미셸 우엘벡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지도와 영토』는 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예술가'하면 얼른 스티븐 데덜러스를 떠올리는데, 과연 지금, 여기에 나오는 제드 마르탱의 삶과 예술은 어떤 모습일까? 예술가가 가진 고뇌는 어떻게 설명할까? 여기에다가 살인 사건이라는 요소를 더해 독자들에게 흥미를 더한다. 우엘벡은 무엇보다 내용만큼이나 문체와 언어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니까, 직접 봐야겠다. 

 『비밀의 도시』는 역사와 미스터리를 함께 합한 소설이다. 성배의 전설을 추적하는 내용인데,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와는 뭔가 다르다고 한다. 뭐, 난 그 책을 안 읽었으니까 순수하게 즐겨야지. 요즘 기대되는 역사소설에 『공성전』 다음으로 이 책을 추가하겠다.  

  

 이외에도 필립 딕 걸작선인 『높은 성의 사내』와 글쓰기에 도움이 될 책 『누구나 쉽게 따라하는 글쓰기 교실』도 참고해 본다.  

 

 

 

 

 

  

 소설 키워드: 사라의 열쇠, 공성전, 와인드업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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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의 번역글은 여기에다 올림. 

 http://cafe.naver.com/banya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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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의 백인신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일찍이 인디언에 대한 이야기나 내용을 많이 접해 보았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었다. 비록 인디언의 슬픈 비극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산속에서 살아가는 인디언 가족의 이야기였지만, 소설 간간히 배어 있는 인디언의 슬픈 역사가 나오기도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고 했던가. 많은 미국의 역사가들이 자국의 역사서를 쓰면서 미국의 개척시대를 "미국의 진보적 걸음이자 오늘날 미국의 바탕이 된 자랑스런 일이다"라고만 적어놓는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할 진실이 있다. 지금 미국이 가진 넓은 땅은 그 땅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쫓아내거나 학살한 것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물론 백인들을 위협하고 약탈하는 인디언 부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기만의 문명을 이어나가고 있던 부족들이었다. 
 
 그리고 인디언 부족이 많은 만큼이나 그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천 명의 백인신부』에 등장하는 '샤이엔 족'도 결국 과거에 존재했던 수많은 인디언 부족들 중 하나일 뿐이다. 작가는 '인디언 신부 계획(Brides for Indians)'과 연루되어 있는 흥미로운 인디언 부족인 샤이엔 족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 아니다. 기본적인 역사적 배경은 '프롤로그'에 주로 담겨 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도 써져 있듯이,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이 일부 들어가긴 하지만 전적으로 허구이다. 우리는 '백인 신부'의 주인공인 메이 도드가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이 백인 신부들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주인공 '메이 도드'의 일기 방식(가끔 언니와 전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다)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메이 도드가 인디언 신부 계획에 참가하기 위해 정신병원을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왜 그녀가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저자는 여기서부터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헨리 에임스라는 남자와 불륜을 맺어 아이까지 낳았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 수감된 그녀는 온갖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구속되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인디언 신부 계획에 참가하면 여기서 풀어준다는 말에 혹하여 동의하게 된다. 즉, 메이 도드가 처음부터 인디언의 신부가 되기 위해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바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정작 인디언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 그녀를 반긴 건 무엇이었나? 정부의 결정이 없이는 마음대로 이탈할 수 없는 '구속'이었다. 『천 명의 백인 신부』는 인디언의 풍습이나 문화를 보여주는 한편, 백인들의 모순적인 행동과 횡포가 한 여성의 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유분방한 여성 메이 도드는 거리낌없이 정부의 행동을 고발한다.
 
 하지만 그녀가 참을 수 없는 미개한 행동(특히 동물적인 성교 행위)에 참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견딜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자신과 함께 했던 47명의 백인 여성들이었다. 제목이 '천 명의 백인신부'라 해서 1000명의 백인 신부가 다 등장하리라고 기대했다면 당장 버리라. 이 소설은 한 여성의 시점으로 쓰여진 일종의 1인칭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 도드가 본 것들, 들은 것들만 기록되어 있고 만나지 못한 여성, 기록하지 않은 여성들에 대해선 독자들에 대해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하지만 오히려 이것은 독자들에게 소설에 집중하게 해주는 효과를 해 준다). 인물의 수를 적게 한 만큼 인물 하나하나의 성격이 분명하게 제시된다. 주인공 메이 도드와 피미는 자유분방한 성격이고, 그에 비해 마사는 소극적인 성격이다. 하지만 이들 하나하나가 가치 있는 존재이고, 보호받아야 할 여성들이다. 인디언 여성들이었던 콰이엇 원이나 페더 온 헤드도. 그리고 노새꾼 지미, 더티 거티도. 그러나 메이 도드 일행은 백인군의 공격과 한겨울의 추위로 죽는다. 그들은 여기에 오게 된 사연도, 그 동안 겪었던 일들도 달랐지만 그들은 인디언의 움막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태어난 시기와 장소는 많이 달랐지만 죽은 시기와 장소는 비슷했다. 세라는 예외지만. 

 비록 『천 명의 백인 신부』에는 지나치게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하여 '진짜 줄거리는 언제 나오나' 하며 지루해하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인디언들의 라이프이자, 인디언들과 동화되려는 백인 여성들의 라이프다. 인생은 원래 굵은 뿌리보다는 자잘한 에피소드의 길이가 더 긴 법이니까. 그리고 그 한 줄기 줄기가 모여 누군가의 영양분이 되지 않겠는가? 비록 죽음으로 끝났지만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은 까닭은 누군가가 그들을 기억했으며, 그 증거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마치 메이 도드가 존 버크와의 사랑을 과거의 인간 셰익스피어를 통해 연결했듯이. 짐 퍼거스가 보여주는 셰익스피어는 인생의 모든 면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 한 구절 한 구절이 이 소설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기묘한 운명이리라.
 
 "평화는 정복의 본성이다. 그 때는 양편이 모두 고결하게 누그러들고, 어느 편도 패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헨리 4세」2부 4막 4장
 
 "가, 친구. 여기서 네가 버크 대위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릴게. 어서 가. 군인들한테 우리가 누구인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 줘. 그리고 존 버크 대위에게 이 말을 해 줘. '현명한 아버지는 자기 아이를 알아본다'고……." - 소설 마지막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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