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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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자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다루는 내용이 '불편한 진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본래 진실은 불편하다. 내가 힘들게 지탱해 온 일상조차 사실 누군가를 짓밟고 선 것임을, 내가 간신히 번 돈은 사실 누군가로부터 갈취해낸 것임을,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필연적으로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임을 인정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5초마다 한 어린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아도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다"며, 자신의 주변인들에 신경쓰는 일이 어떻게 비난 받을 수 있겠는가? 무지는 인류에게 주어진 최대의 축복이었다. 진실을 알고 난 자는 충격에 휩싸이고, 차마 견딜 수 없어 이전처럼 살 수 없다. 


 어떤 사실들은 비교적 쉽게 읽힌다. 소말리아는 군벌 우두머리의 횡포로, 에티오피아는 경제적 위기로 기아를 맞았다. 비인간적인 체제에 저항한 상카라의 개혁은 변화를 원치 않는 세력에 의해 좌절된다.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 음식을 공중에서 투하하는 것은 기아의 영양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며, 반군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꼴이 된다. 이러한 사실을 접할 때, '참 안타깝다', '얼른 현실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감상에 빠진다. 그저 '느낀 점'과 '교훈'을 얻어내는 것에서 그친다면, 그 사실은 나에게 그다지 힘이 없는 것이다. 


 불편한 지점은 신자유주의, 나아가 자본주의 구조에 대한 비판에서 발생한다. 기업의 이윤 추구, 내지는 곡물 회사의 이윤 극대화 원칙으로 인해 전 세계 인구가 다 먹을 만한 식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곡물이 대량 폐기되는 현실이 드러난다. 선진국에서 온 수많은 구호 단체가 나서지만, 그들 역시 재정난에 시달린다. 제3 세계에서 목숨을 걸고 구호 활동을 감행하는 이들도 있지만, 회생이 불가능한 기아를 직면하면 좌절한다. 살릴 수 있는 존재보다 죽어야 하는 아이가 더 많은 현실을 보고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끔찍하게도,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극단적인 광기를 택한다. 맬서스의 자연도태설을 겉으로 지지하지 않지만, 마음 깊은 한구석에서는 그러한 희생이 필연적이며, 그들의 굶주림이 있었기에 이 풍요로운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신자유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주어진 현실은 가혹하다. 우리는 잠재적 기아가 될 수 있는 현실에 살아간다. 1등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가치 없다고 여겨진다. 안정적인 자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돈을 축적하고, 투자하고, 부풀린다. 그러한 노력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계산적인 사람이 되어 간다. 나에게 1원의 손해도, 1초의 시간 낭비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을 한 번이라도 하면, 내 인생에서 영구히 끊어내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나에게 약간의 손해가 될 상황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게 당연한 거야'라고 말하는 세태의 목소리가 조금은 두렵다. 결국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외침이 그렇게 외칠 수 없는 자들을 짓밟을까 봐.


 사실 기아 문제도 이 책에서 다룬 것처럼 복잡하지만, 이것이 환경 문제에 결합되었을 때 전 지구적 재앙이 될까 봐 두렵다. 근미래에 인류가 재배할 수 있는 곡물이 줄어들고 종말이 확정되었을 때, 지금과 같은 일상이 유지될까? 출출하면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커피를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들고 다니며, 쓰레기를 길거리에 아무렇게 버리며, 깨끗한 식수와 온수, 정화 시설을 누리는 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전국을 이동하고, 여름철에 전기 기구를 마구 틀어놓고, 전자 기기를 시도 때도 없이 사용하는 이 낭비는 무한하지 않다. 우리가 누리는 편의는 결국 종말을 맞을 것이다. 이 진실 앞에서 대부분의 어른은 현실을 외면한다. 아직 나에게 그 미래가 닥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내 자손은, 내 자손의 자손은 분명 그러한 세상에 던져질 것이다. 그때도 "인류의 누군가는 굶어 죽는 것이, 인류 전체의 보존을 위해 필연적이다"는 헛소리를 남발할지,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또 다른 진실은 개인의 실천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탄소 중립을 선언한 이상, 국가가 책임을 지고 그것에 앞장서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경제 성장 그래프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세대의 지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나라가 유지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경제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누리던 혜택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수행해야 한다. 현 상황이 편하다면, 진실을 찾아 보라. 어른이 변화를 두려워하면, 아이도 그렇게 자란다.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먹고 잘 사는지 가르칠 것이 아니라,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육성해야 한다. 그렇게 가르쳐도, 본래의 이기심 때문에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국가는 그 세태를 부추기지 않고, 개인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이 책에 언급된 나라들의 비극이 우리나라에 재현된다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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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2-22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3세계에서 기아와 빈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지도층의 독재와 부정 부패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지요.1차적인 원인은 독재와 부정부패지만 이를 타파한다고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 역시 또한 독재와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일이 만연하고 결국 내전 상태에 빠지게 되어서 식민지 독립이후 근 80년이 되어도 아직까지 기아와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3세계의 기아와 빈곤과 관련해서 거대 곡물회사들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 식량을 저렴하게 판매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들이 자선단체가 아닌한 원가 이하로 팔라고 강요할 수도 없거니와 과거에는 선진국(이라고 쓰고 식민 지배국)들이 곡물등을 많이 무상 원조했으나 결국 독재세력의 뒷배나 불리게 된 것이 사실이지요.실제 트럼프가 해외 원조를 중단하기 전까지 미국은 매년 100억불씩 무상 해외원조를 했다고 하는데 만일 해당 국가에서 이를 투명하게 처리했다면 기아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을 겁니다.실제 한국에서도 50년대 미국이 준 원조 밀가루를 꿀꺽해서 사복을 채운 정치인들이나 관료가 비일비재 했지요.

좀 다른 이야기지마 제 3세계의 기아와 반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제 3세계들이 모두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 설 수 있는 정치체계가 갖추어져야 되는데 이게 사실 꿈같은 이야기고 제일 좋은 방법은 세계 단일 정부가 만들어 지는 것인데 요즘처럼 전 세계가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이것 역시 참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