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런던의 삶을 조사하던 중, 호보(Hobo, 떠돌이 노동자)로서의 생활을 담은 자전적 전기인 『더 로드(The Road)』가 최근에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참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 런던의 이스트엔드에서의 생활을 담은 기록인 『밑바닥 사람들』도 함께 구매하여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알아보고자 했다.
두 작품은 시기와 배경이 서로 다르지만, 어조는 동일하다. 『더 로드』가 조금 더 생존에 치중한 모습이라면, 후자는 문명을 비판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문명의 보호에서 벗어나 힘겹게 생활하는 이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리다가 격앙되는 방식은 동일하다. 다만, 『더 로드』는 자신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그리다 보니 더욱 차분하다. 그래서 다소 서투르더라도 더 어린 시절에 남긴 글이 애착이 간다.
『밑바닥 사람들』에서 느낀 점은, 잭 런던이 이후의 작품에서 보이는 강한 문명 비판적인 태도가 이스트엔드에서의 생활을 통해 확고해지지 않았나 싶은 것이었다. 특히나 보여주기 식 자선을 행하는 이들을 강하게 비판하는 부분은 생활 전선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이라면 감히 제기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기계문명과 밑바닥의 인간이 되는 것보다, 황야와 사막의 인간, 동굴과 움막의 인간이 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구절에서 그가 왜 그토록 원시세계의 원형을 작품 속에서 제시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원시세계는 잭 런던이 보여주고 싶었던 이상향이 아니었을까? 그는 토머스 모어나 사회주의가 설명하는 "모두가 똑같이 행복한"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차라리 적자생존과 격세유전의 원리로 작동하는 원시세계가 차등의 행복일지라도 모두가 행복에 가까워지는 세상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나머지 작품을 모두 분석한 뒤에야 알 수 있겠지.
어쨌든 잭 런던이 런던 생활을 통해 내린 결론들은 상당히 극단적이다.
문명이 보통 인간의 생산력을 향상시켰는데 왜 인간의 운명을 개선하지 못하는가?
답은 딱 하나다. 잘못된 관리. 문명은 온갖 육체적 정신적 안락과 기쁨을 제공해줄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의 영국인들은 그러한 것들을 누릴 수가 없다. 만약 영원히 누릴 수 없다면 그 문명은 몰락할 것이다. 그렇게 실패가 빤히 보이는 문명이 계속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인간이 놀라운 문명을 헛되이 일으켰다고는 믿을 수 없다. 이성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렇게 완전한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노력과 진보에 치명타다. (p.309)
한편, 『더 로드』는 방랑자이자 청년인 잭 런던의 모험을 다룬다. 꽤 박진감 있고 흥미롭다. 게다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왠지 모르게 따뜻하다. 그들이 겪어야 할 삶은 고통과 생존의 처절한 노력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동시에 소소한 즐거움과 현재의 행복을 찾으려는 기대가 공존한다. 물론 호보 생활을 자발적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 세상에 나그네로 지내는 것 역시 또 다른 삶의 양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1장부터 3장까지 그려진 자전적 일대기는 근래에 본 어떤 모험소설보다 흥미진진했다. 살아남기 위해 구걸하고, 친절한 이들에 의해 식사를 대접받고, 그에 응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는 그의 모습은 진정한 '강함'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기차에 뛰어드는 호핑(hopping)에 대한 노하우를 핏줄 속에 새기고 있는 잭의 움직임은 야생동물을 보는 듯 했다.
내가 잭 런던의 삶과 작품을 본격적으로 탐구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된 소설은 그의 마지막 저서인 『별 방랑자』였다. 그리고 『더 로드』를 통해 작가 자신이 다름 아닌 별 방랑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육신은 언제나 실패를 거듭했으나, 영혼은 자유로웠다.
내가 떠돌이가 된 것은, 글쎄 쉬게 두지 않는 내 안의 생명력과 내 핏속을 흐르는 방랑벽 때문이었다. 물에 빠지면 피부가 젖는 것처럼 사회학은 단지 부차적이었다. 추후에 따라온 것일 뿐이다. 벗어날 수 없기에 나는 '길'에 나섰다. 주머니에 기차표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평생 한 가지 일만 반복하며 살 수 없게 태어났기 때문에, 글쎄 아마도 내게는 길이 더 쉬웠기 때문이리라. (p.165)
여운을 남기는 것은 작품의 말미에 수록된 '호보 코드'와 '호보 윤리 강령'이었다. 이는 그들이 각자의 생존을 위해 움직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 대한 뜻 모를 연대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15가지 항목의 윤리 강령을 모두 옮길 수는 없지만, 그 중 인상 깊은 것 세 가지를 꼽자면, "1.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할 것. 다른 사람이 휘두르게 두지 말 것. 4. 일시적인 일이라도 찾기 위해 노력하고 항상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을 찾을 것. 그렇게 해야 산업에 도움이 되고 다시 그 지역에 오더라도 일을 얻을 수 있다. 15.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서나 동료 호보들을 도울 것. 언젠가 당신도 그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이다. 곰곰이 읽고 있자면, 어쩌면 우리 모두 호보가 아닐까, 라는 인상을 받았다. 21세기의 우리 역시 한 곳과 한 직장에 머물지 않고 노동하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었다가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지 않는가?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호보 윤리 강령을 마음속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더 로드』 가장 뒤에 쓰인 문구가 공감이 간다. "잭 런던이 쓴 가장 위대한 이야기는 바로 그의 삶 자체이다." 이는 그의 대표작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의 생애만큼 모순으로 가득 찬, 역설적인 문학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잭 런던을 단순히 사회주의자 내지는 자연주의 작가라고 정의하기에는 수식어가 너무나 다양하다. 자연의 냉혹한 섭리를 꿈꾸면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백인우월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다른 문화를 담아내려고 한다. 자본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다가도 자신의 부를 마음껏 과시하며 어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육체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요컨대, 그가 걸었던 길은 '항상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과 같다. 변화하는 정신은 그에 따르는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 넘치는 모순은 운명과도 같고 그가 살아낸 사회의 초상이기도 하다. 『더 로드』와 『밑바닥 사람들』의 이면에는 글에 담기지 않는, 수많은 죽어가는 이들이 있다. 언젠가 그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을 대비해서라도, 언제 어디서나 동료를 도와야 한다는 정신을 간직해야 한다.
각자에게는 언제나 불가능한 길이 있다. 차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 여기고 언제나 마음 한켠에 담아두고 있는 길이다. 대부분은 그 종착지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두렵기 때문에 가지 않는다. 일부는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무모한 도전을 한다. 그리고 소수는 불가능한 길 끝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잭 런던은 7년 전, 수많은 고민 속에서 방랑하던 나에게 작은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그가 나에게 그랬듯, 나 역시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인생에 단서를 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게 어떠한 방식으로 결말을 맺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잭 런던의 삶에 대해 써 보자. 만약 전기를 번역할 수 없다면 직접 써 보자. 나는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실패한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실패를 무릅쓸 최소한의 용기는 남아 있기에 한 번 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