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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고대왕조실록 - 고대사, 감춰진 역사의 놀라운 풍경들
황근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주말저녁 '대조영'을 시청하시던 아버지의 입에서는 오늘도 변함없이 탄식이 흘러나온다. "저, 저, 쳐죽일 넘들~ 저게 한 나라의 최고관직을 지낸 자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나? 또 저 놈은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부귀 영화 다 누렸던 놈들이 앞다투어 나라를 팔아먹고, 당에 구걸을 하는구나. 저 모양이니 나라가 망할 수 밖에... 임금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당의 신하가 된 꼴이니... 허~ 참...." 내일 모래면 연세가 70이신 아버지가 태조 왕건 이후 유일한 낙으로 시청하는 프로가 '대조영'이다. 드라마 보면서 울고 웃으시는 어머니 탓하실때를 까맣게 잊으신듯 TV를 보시면서 저리도 역정을 내신다.
<엽기조선 풍속사>를 통해 역사서에 맛을 들인 후 <엽기 고대왕조실록>이 출간 되었다는 소식에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고대왕조는 근대와 조선에 비해 사료가 턱없이 부족할 터인데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졌을지 사뭇 궁금하였다. 우선 책의 소제목을 죽~ 살펴보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순장,축제,주몽,이차돈,발해,미천왕, 원효대사등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어도 교과서를 통해 한번이상은 언급된 사실과 인물들에 관한 내용, 그러면서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우선은 고대 왕조를 이야기할 때, 가장 '엽기'적인 사실로 꼽는 것중 하나인 '순장'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련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다양한 신을 믿었다. 새나 짐승을 비롯해 바위, 나무등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고 그 신들 중 가장 위에 있는 '천신'을 으뜸으로 여겼다. 당시 왕과 귀족들은 천신이 사람이나 짐승처럼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 존재하고, 자신들 또한 죽어서도 그 지위와 부귀영화가 지속된다고 믿었다. 한번 왕은 죽어서도 왕이었으니 사후에 수행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죽어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왕권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니 '절대권력자'에게 순장은 유용한 '칼자루'였다. 고대 사회에 신앙처럼 뿌리 내린 이러한 사고방식은 '공수레 공수거'를 내세우며 현실에 공덕을 쌓음으로써 내세에 위치가 달라진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마찰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왕(권)=천신과의 소통자=천신의 권력"이라는 등식은 고대왕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왕이 직접 주도했던 '기우제'에서도 왕이야 말로 천신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임을 알리는 의식이라고 하겠다. 익히 알고있던 기우제라는 것은 산 위에서 불을 피워 연기를 내면서 '비'를 기원하는 의식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고대왕조에는 특별한(?) 기우제가 등장하는데 여인들이 냇가에서 물을 담아 키질을 하거나 발가벗고 물장난을 치기도 했고, 신전 앞에서 집단 방뇨를 하기도 했단다. ㅠ.ㅜ 천신이 노하여 신전을 씻기위해 비를 내리신다고 생각했다는데 어쩜 행위는 '엽기'적이기나 발상은 '기발'하다. ^^;;
'주몽'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삼족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당시 한나라의 상징인 용을 대적할만한 동물이 필요했다. '삼족오'는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아니라 '세 발 달린 검은새'로 해석해야 하며, 태양 속에 산다고 알려진 검은 새다. 이는 용을 '지렁이과'로 보고 새 중에서 천적을 찾은 결과라고 한다.
'소서노',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하고 유리왕 등장 후 미련없이 남으로 내려와 백제와 십제를 세운 철의 여인, 그녀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고구려,백제,십제를 건국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내용만으로도 대단한 여인이라 여겨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를 세 번이나 건국한 여인은 아마 소서노 밖에 없을 것이다. 사료가 빈약할 것임을 각오하고라도 조만간 소서노에 관한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
<삼국사기>가 이토록 말 많고 탈 많은 책인줄 몰랐다. 왜 몰랐냐고 물으신다면... "그동안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삼국사기의 기술방식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사대주의' 사관에서 씌여졌다고 매도할 수는 없겠지만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다고 판단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화랑세기> 를 비롯하여 전해 내려오는 역사적 사료가 많지 않아 <삼국사기>를 빼고는 고대 역사를 이야기할 수 조차 없다는데 더 말해 무엇하랴. 최근 역사에 관해 황당을 주장을 펼치는 인근 국가에 대항하듯 볼만한 사극이 여러편 제작되고 있으나, 대퇴부 뼈하나로 공룡 모형을 만들어내는 상황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책을 덮은 후, 후손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역사서에 대한 안타까움과 조상님들에게 대한 원망이 불쑥 솟구친다. 나 같았음 마당 한켠에 땅 파서묻는 방법으로라도 지켜냈을 터인데... ㅠ.ㅜ 이를 두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는가. 앞서 언급한 순장에 대해 다시한번 언급하자면 현재 우리가 박물관에서 관람하는 고대 유물은 대부분 순장묘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순장 풍습이 없었다면 우리는 고대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얻었을까? p.19 " 라고 묻는 저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러게나 말입니다요. 왕릉이 좀 더 컸으면 좋았을 것을... 중국이나 이집트의 규모에 비한다면 우리의 고대 왕조는 너무 소박(?) 합니다요. " 라고...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애국가의 첫 소절만 보아도 당장 '동해'는 '일본해'가 '백두산'은 '창바이산'이 되게 생겼으니 그저 원통할 뿐이다. 최근에 읽은 다른 책에서... 조선시대 피난을 가는데 다른 무엇보다 조정의 자료(문서 등)들을 챙겨갔다는 충신이 떠오른다. 그저 투철한 직업정신(?) 인가 하면서 이름조차 기억해 드리지 못했는데... 고귀하신 뜻,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고대 왕국부터 이어져온 중국에 대한 지나친 사대주의, 조공 외교, 중국 연호 사용등 은 나라를 지켜내기위한 궁여지책이었다고는 하나 후세에 '동국공정'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일본과도 마찬가지다. 일제 강점기때 역사와 영토관련 문서들을 얼마나 많이 폐기하였을까 짐작가고도 남지 않은가? 우리가 역사를 지켜내지 못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혼과, 문화와 영토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편 <엽기조선 풍속사>보다 좀더 점잖아진(?) 말투라서 오히려 편했다. 가족 모임때 형부가 우연히 이 책을 들춰보고는 재미있긴한데 내용이 좀 유치하고 가볍지 않냐고 물었다. 실제로 책에 언급한 내용중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듯한 내용, TV 프로를 언급한 것도 있어 책이 유행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같은 책이라도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은 당연한 것. "40대인 형부에겐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요. 형부는 좀더 심도있는 역사책을 보시와요. 서른 초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저는 이 책이 딱 맞아요. 지루해 보이는 책이었다면 애초에 읽을 작정도 하지 않았겠지요." 라고 대답해 주었다. 초등 5학년인 조카가 김동인,염상섭등 한국 단편소설들을 읽는다고 하는데 이 책인들 못 읽어 내겠나 싶다. 우리 '역사'에 한 걸음더 가까워진 느낌이고, 한 권의 책을 통해 이토록 많은 생각의 가지들을 펼쳐냈으니 그것만으로도 흡족한 시간이었다.
어려운 역사서는 가라~ 역사시리즈는 계속 진화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