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 머물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김활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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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저자 카타야마 쿄이치의 작품이라는 떠들썩한 홍보 문구는 사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쉽게도 그의 전작에 대해 어렴풋이 들어본 것 같기도 하지만 소설이든 영화든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순애보 완결작'이라는 문구와 마치 그곳이 세상의 끝인 양 물위에 떠있는 작은 배가 그려진 표지 였다. 결혼한지 올해로 9년째다. 여섯살된 아들도 있다. 그런데도 '순애보'라는 말에 가슴 설레이는 나 자신이 싫지는 않다. ^^;


매일 밤 아파트 벽 넘어로 들려오는 여인 사에코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사랑에 빠져버린 남자 šœ이치. "짜증나지 않았어?" "그런 생각은 안 들었나봐. 왠지 나를 대신해서 울어주는 것 같았거든." p.44 인연이 될려면 그렇게도 되는가 보다. "당신은 당신대로 제정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 역시 위험했어. p.46" 인생에 있어 힘든 시기에 만났던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여느 부부들처럼 행복한 생활을 누린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두 사람은 사에코가 여동생 이즈미를 위해 대리모가 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임신 초기, 중기를 거치면서 잘 견디어(?) 냈던 사에코는 출산일이 가까와 올수록 아기에 대한 집착이 극에 달하고, 정서적 혼란이 심해져 정신 분열증에 가까운 증세를 보인다. 결국 아기를 유산하고서야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버렸다고 후회하는데...

10달동안 새끼를 품어 본 어미로서 사에코의 심정, 혼란등은 전적으로 이해가 된다. 내 속에 또 하나의 생명, 밤낮으로 태아와 소통하면서 내 몸과 마음을 함께 나누었던 그 경이로움을 어찌 말로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에코의 광기가 지나친 면이 있어 섬뜩하기도 했지만,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 책의 어떤 점이 순애보인가? 책을 읽으면서 혼란에 빠져 버렸다.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트는 부분과 평온한 일상은 뒤이어 몰아닥칠 폭풍같은 상황에 강한 대비를 이루는 듯 지극히 평범한 부부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비슷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세상에 자신의 부인이 (아무리 형제라도) 대리모가 되겠다는데 하고싶은대로 하라고 남의 이야기 하듯 대답해 버리는 남편이 어디 있으며, 만삭의 부인이 심각한 정신병 증세를 보이는데 밤마다 눈 덮힌 거리를 배회하도록 방치하는 남편은 어디 있으며, 아내가 유산할 지경인데도 철저히 남의 아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내 눈에 비친 šœ이치는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남편일 뿐이었다.

šœ이치는 아기가 죽고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아이임을 인정하고 이로써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된다. '순애보'는 말그대로 순수한 사랑, 사랑을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방관'하듯 지켜만 보는 것이 순애보일까? 사랑하는 연인을 곁에서 지키며, 설사 자신을 떠나버려도 언젠가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편히 쉴 수 있는 '둥지'가 되어 목빠지게 기다리는 옛날식 '순애보'는 싫다. 서정적이긴 하지만 조금은 밋밋한 것이 자기 표현이 확실한 요즘 세대의 사랑 방법과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또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안타깝게도 내 주위엔 간절히 원하면서도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부가 여러쌍 있다. 그들 중에는 육제적으로 문제가 있어 임신률이 낮은 부부도 있지만 아무 이유없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등으로 불임인 부부도 있다. 그들의 아픔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사에코만큼이나 이즈미부부도 안쓰러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책을 덮으며, 처음 기대했던 설레임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내가 바라던 현실에 맞춰 업그레이드 된 '순애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깊은 숨을 고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 책 <세상의 끝에 머물다>는 젊은 남녀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뛰어 넘어 이 시대를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되었다. 굵은 줄거리는 šœ이치와 사에코 부부의 이야기지만 불임으로 고민하는 이즈미 부부, 주식 투자를 통해 재테크를 하려다 손해 본 이야기, 암 선고를 받은 한 가정의 가장, 정신병을 앓는 이웃 아주머니등 주변 인물들을 통해 현대인들이 겪을 법한 여러가지 삶의 모습, 그것도 위기의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소설의 소재로서는 다소 무거운듯한 내용을 담담하게 풀어낸 점은 좋았다. 부부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이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을 의식하지 않는 인간의 습성, 언젠가 분명하게 일어날 파국이라고 할지라도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현실감을 모르는 편리한 회로가 우리 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p. 173" "마지막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 지금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요? 현재를 사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거죠. p. 176"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절실히 느낀것이 있다면 모리 교수가 이야기 한 것이 분명 '죽음'이 아니라 '삶' 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것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같다. 세상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다면...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누리고, 나누면 된다.

세상의 끝과 지금 서 있는 곳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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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 1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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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고 많은 성씨들중 가문에 대한 자긍심이 특별하셨던 시어머니는 '광산'을 본으로 하는 성씨를 가진 분이셨다. 사시던 마을 일대가 집성촌이었고, 집안을 통틀어 장녀였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흡사 토지의 '서희'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10대의 나이에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았고, 이따금씩 집을 나설때마다 남녀노소가 '아씨'라는 호칭으로 예를 갖추었단다. 개울가 건널 땐 따라다니던 머슴이 업어다 건네주고 했다는데... 말년에 가세가 기운 것을 애달아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요즘 세상에 양반, 상놈 없다지만 그래, 타고 난 양반이 무슨 소용인가. 돈이 양반이지. "


소설 <반야>에는 낯익은 설정이 몇가지 있다. 먼저 책의 시간적 배경은 영조 때로 추정된다. 기가 세고 장수한 성군, 그 자식이 굶어 죽는 다는 암시, 노론과 소론이 대립을 이루는 배경이 독자로 하여금 영조 때 쯤인 것 같다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설정은 책의 내용이 100% 허구임에도 조선시대 어느 때쯤이라는 막연한 설정보다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또 한가지는 '사신계'라는 조직이 등장한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가꿀 권리가 있다'라는 강령아래 그 시대의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특별한 단체, '동학'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사신계'는 법을 초월한 조직이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특수 암살조직 비슷하기도 한데 크게는 고위 관직자들중에도 사신계원인 자가 있으면서 정치, 외교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든지 탐관오리나 사신계에 위협을 가하는 인물을 죽인 후 사고로 위장하는 일을 하고, 작게는 사신계원들의 사사로운 어려움을 해결하는 목적으로도 움직이는 흥미로운 조직이다.

다음은 등장인물에 관한 것이다. 주인공 반야는 뛰어난 미모에 가냘픈 이미지, 당차면서도 여리고, 당돌하면서도 생각이 깊은 약간은 복잡한 인물이다. 타고난 신기로 예정된 수순에 따라 사신계의 '칠요'라는 중책을 맡아 많은 것을 예언하지만 정작 동마로와는 어긋날 수 밖에 없는 사랑을 하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는 앞날을 보지 못하는 슬픈 운명을 가진 여인이다. 거기다 평생 반야를 흠모하며 지켜주는 동마로, 무녀의 삶을 사는 딸을 안타까이 여기며 버려진 아이들을 돌봐주는 반야의 어머니,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백성들을 핍박하는 김학주등 사극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케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사신계의 강령과 조직도, 수련과정등에 관한 것은 작가가 많은 공을 들였을 것이라 짐작됨에도 책을 읽을 때는 겉돌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고, 반야가 사신계원들의 적극적인 권유에도 불구하고 불행의 씨앗을 일찌기 처리하지 못한 점, 어머니와 동마로에 관한 이야기는 매끄럽지 못하면서 조금 아쉬웠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주지 않았을 때의 섭섭함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던 것,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는 이유는 사신계가 추구하는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 무녀 반야에 대한 연민... 어떤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표지에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자신을 던져 악과 싸우는 피투성이 검투사 무녀 반야',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끝없는 투쟁의 대서사시' 우리 역사에서 인간을 동등하게 보지 않았던 시대일지라도 분명 다른 이름의 사신계와 또 다른 반야가 존재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작가의 주장처럼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현재를 사는 우리는 진정 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정치인들과 기업총수의 비리, 폭력등 연일 듣고 싶지 않은 뉴스를 대할 때마다 왠지 또다른 천민과 평민, 중인과 양반 사회에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류층, 중산층, 서민, 하층민의 기준은 결국 '돈'이 아닌가. 게다가 예전처럼 거의 대물림 되기까지 한다. 권력이 양반인 세상, 돈이 양반인 세상, 유전무죄... ? 시대와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반야가 묻는다.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 마땅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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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고대왕조실록 - 고대사, 감춰진 역사의 놀라운 풍경들
황근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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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저녁 '대조영'을 시청하시던 아버지의 입에서는 오늘도 변함없이 탄식이 흘러나온다. "저, 저, 쳐죽일 넘들~ 저게 한 나라의 최고관직을 지낸 자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나? 또 저 놈은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부귀 영화 다 누렸던 놈들이 앞다투어 나라를 팔아먹고, 당에 구걸을 하는구나. 저 모양이니 나라가 망할 수 밖에... 임금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당의 신하가 된 꼴이니... 허~ 참...." 내일 모래면 연세가 70이신 아버지가 태조 왕건 이후 유일한 낙으로 시청하는 프로가 '대조영'이다. 드라마 보면서 울고 웃으시는 어머니 탓하실때를 까맣게 잊으신듯 TV를 보시면서 저리도 역정을 내신다.

<엽기조선 풍속사>를 통해 역사서에 맛을 들인 후 <엽기 고대왕조실록>이 출간 되었다는 소식에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고대왕조는 근대와 조선에 비해 사료가 턱없이 부족할 터인데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졌을지 사뭇 궁금하였다. 우선 책의 소제목을 죽~ 살펴보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순장,축제,주몽,이차돈,발해,미천왕, 원효대사등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어도 교과서를 통해 한번이상은 언급된 사실과 인물들에 관한 내용, 그러면서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우선은 고대 왕조를 이야기할 때, 가장 '엽기'적인 사실로 꼽는 것중 하나인 '순장'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련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다양한 신을 믿었다. 새나 짐승을 비롯해 바위, 나무등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고 그 신들 중 가장 위에 있는 '천신'을 으뜸으로 여겼다. 당시 왕과 귀족들은 천신이 사람이나 짐승처럼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 존재하고, 자신들 또한 죽어서도 그 지위와 부귀영화가 지속된다고 믿었다. 한번 왕은 죽어서도 왕이었으니 사후에 수행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죽어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왕권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니 '절대권력자'에게 순장은 유용한 '칼자루'였다. 고대 사회에 신앙처럼 뿌리 내린 이러한 사고방식은 '공수레 공수거'를 내세우며 현실에 공덕을 쌓음으로써 내세에 위치가 달라진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마찰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왕(권)=천신과의 소통자=천신의 권력"이라는 등식은 고대왕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왕이 직접 주도했던 '기우제'에서도 왕이야 말로 천신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임을 알리는 의식이라고 하겠다. 익히 알고있던 기우제라는 것은 산 위에서 불을 피워 연기를 내면서 '비'를 기원하는 의식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고대왕조에는 특별한(?) 기우제가 등장하는데 여인들이 냇가에서 물을 담아 키질을 하거나 발가벗고 물장난을 치기도 했고, 신전 앞에서 집단 방뇨를 하기도 했단다. ㅠ.ㅜ 천신이 노하여 신전을 씻기위해 비를 내리신다고 생각했다는데 어쩜 행위는 '엽기'적이기나 발상은 '기발'하다. ^^;;

'주몽'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삼족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당시 한나라의 상징인 용을 대적할만한 동물이 필요했다. '삼족오'는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아니라 '세 발 달린 검은새'로 해석해야 하며, 태양 속에 산다고 알려진 검은 새다. 이는 용을 '지렁이과'로 보고 새 중에서 천적을 찾은 결과라고 한다.
'소서노',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하고 유리왕 등장 후 미련없이 남으로 내려와 백제와 십제를 세운 철의 여인, 그녀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고구려,백제,십제를 건국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내용만으로도 대단한 여인이라 여겨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를 세 번이나 건국한 여인은 아마 소서노 밖에 없을 것이다. 사료가 빈약할 것임을 각오하고라도 조만간 소서노에 관한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

<삼국사기>가 이토록 말 많고 탈 많은 책인줄 몰랐다. 왜 몰랐냐고 물으신다면... "그동안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삼국사기의 기술방식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사대주의' 사관에서 씌여졌다고 매도할 수는 없겠지만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다고 판단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화랑세기> 를 비롯하여 전해 내려오는 역사적 사료가 많지 않아 <삼국사기>를 빼고는 고대 역사를 이야기할 수 조차 없다는데 더 말해 무엇하랴. 최근 역사에 관해 황당을 주장을 펼치는 인근 국가에 대항하듯 볼만한 사극이 여러편 제작되고 있으나, 대퇴부 뼈하나로 공룡 모형을 만들어내는 상황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책을 덮은 후, 후손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역사서에 대한 안타까움과 조상님들에게 대한 원망이 불쑥 솟구친다. 나 같았음 마당 한켠에 땅 파서묻는 방법으로라도 지켜냈을 터인데... ㅠ.ㅜ 이를 두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는가. 앞서 언급한 순장에 대해 다시한번 언급하자면 현재 우리가 박물관에서 관람하는 고대 유물은 대부분 순장묘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순장 풍습이 없었다면 우리는 고대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얻었을까? p.19 " 라고 묻는 저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러게나 말입니다요. 왕릉이 좀 더 컸으면 좋았을 것을... 중국이나 이집트의 규모에 비한다면 우리의 고대 왕조는 너무 소박(?) 합니다요. " 라고...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애국가의 첫 소절만 보아도 당장 '동해'는 '일본해'가 '백두산'은 '창바이산'이 되게 생겼으니 그저 원통할 뿐이다. 최근에 읽은 다른 책에서... 조선시대 피난을 가는데 다른 무엇보다 조정의 자료(문서 등)들을 챙겨갔다는 충신이 떠오른다. 그저 투철한 직업정신(?) 인가 하면서 이름조차 기억해 드리지 못했는데... 고귀하신 뜻,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고대 왕국부터 이어져온 중국에 대한 지나친 사대주의, 조공 외교, 중국 연호 사용등 은 나라를 지켜내기위한 궁여지책이었다고는 하나 후세에 '동국공정'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일본과도 마찬가지다. 일제 강점기때 역사와 영토관련 문서들을 얼마나 많이 폐기하였을까 짐작가고도 남지 않은가? 우리가 역사를 지켜내지 못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혼과, 문화와 영토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편 <엽기조선 풍속사>보다 좀더 점잖아진(?) 말투라서 오히려 편했다. 가족 모임때 형부가 우연히 이 책을 들춰보고는 재미있긴한데 내용이 좀 유치하고 가볍지 않냐고 물었다. 실제로 책에 언급한 내용중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듯한 내용, TV 프로를 언급한 것도 있어 책이 유행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같은 책이라도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은 당연한 것. "40대인 형부에겐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요. 형부는 좀더 심도있는 역사책을 보시와요. 서른 초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저는 이 책이 딱 맞아요. 지루해 보이는 책이었다면 애초에 읽을 작정도 하지 않았겠지요." 라고 대답해 주었다. 초등 5학년인 조카가 김동인,염상섭등 한국 단편소설들을 읽는다고 하는데 이 책인들 못 읽어 내겠나 싶다. 우리 '역사'에 한 걸음더 가까워진 느낌이고, 한 권의 책을 통해 이토록 많은 생각의 가지들을 펼쳐냈으니 그것만으로도 흡족한 시간이었다.

어려운 역사서는 가라~  역사시리즈는 계속 진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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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
권현숙 지음 / 세계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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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머리 아픈 것은 남보다 열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라는 카피 문구가 떠오른다. 인정한다. 앞만보고 달려가다가 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만나면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처럼 무언가 허전함을 느낄 때,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있을 때, 혹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누구나 두통을 느낄 것이다. 열정, 고민, 선택 이런 것들은 결국 '외로움'과 '고독'의 다른 모습 일 수 도 있다. 현대인의 보편적 만성질환(?)인 '외로움' 뒤에는 정서적 빈곤과 실체를 알 수 없는 욕망이 있다.

이 책에서는 외로움을 정념 즉, 불같이 타오르는 욕정의 다른 모습으로 보았다. 여섯개의 단편에는 각각 도시를 배경으로 정념(외로움)과 죽음이라는 소재가 함께 들어있다. <삼중주>는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는 남자와 남자의 집을 몰래 드나드는 여인의 아슬아슬한 이야기인데, 여인이 들킬까봐 손에 땀을 쥐면서 읽어가다가 문득 남자와 여자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하는 '불평등'한 사고를 떠올렸다. 죽은 아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의 외로움과 그 남자를 옆에서 지켜보는 여인의 외로움 과연 누구의 몫이 더 무거울까 잠시 엉뚱한 생각에 잠겨도 보았다.

<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 에서는 음악제 취재를 위해 메사드라는 지역으로 가려하는 자유기고가 여인과 그녀를 사랑하게된 남자의 이야기 이다. 주인공이 머문 지역은 내전으로 불안정하고, 외국인에 대한 테러가 심한 도시이다. "정오에 가까운 시각. 도로는 퍼붓는 태양 아래 하얗게 눈멀고, 방안은 덧창을 닫아 무덤처럼 어둡다. 거친 태양, 난폭한 차들, 총기 난사, 하얀 묘비들... 이 도시는 죽음의 요소들을 고루 갖추었다. p. 101 " 메사드라는 위험 지역으로 가려하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달빛 아래에서 유적지의 기둥 아래를 걷고 싶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지독한 외로움이 그녀를 도시로 내모는 것인지... 말 그대로 죽기 위해 도시를 찾아 가는 것 같다.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힌 도시에서 두 남녀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데 다른 단편에 비해 희망적인 결말이어서 좋았다.

<순장>은 외모로 인해 사회로 부터 냉대받던 여인이 마침내 수술대에 오르는 내용을 담았는데 역사속에서 실제로 행해졌던 '순장' 과 멀쩡한 여인이 제 살을 찢고 새로 꿰메기 위해 수술대에 오르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는 강열한 메세지가 느껴져서 섬뜩했다. 현대인들은 '순장'이라는 것이 너무나 잔인하고 가혹하다고 여기지만, 옛 사람들의 입장에선 현대인들이 더 끔찍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중세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인들에게 있어서 '미'의 기준이 '흰 피부'인 때가 있었다. 당시 '납'을 얼굴에 발라 창백하게 만드는 방법때문에 많은 여인들이 납중독으로 죽었다고 한다. 어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조차도 현대인들이 미에 집착하는 모습을 모면 경악할 수 밖에 없으리라. 과거와 현재가 지속적으로 교차되는 장면도 흥미로왔거니와 마지막에 "내세에는 남자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박색으로 태어나게 하소서" 하는 대사에서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책에 실린 다른 단편에 비해 분량이 제일 많고, 짜임새 있으며, 비교적 쉬워서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순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각 단편들의 공통점은 '도시-정념(외로움)-죽음' 이 세가지다. 책을 읽은 직후에는 내용이 머리속에 담기지 않고 허공에 둥둥 떠있는 것 같았다. 생각이 정리가 잘 되지 않았던 조금은 난해한 책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용을 곱씹을 수록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정념으로 통하는 외로움과 고독을 이처럼 치밀하고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너무나 적나라하기에 씁쓸하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건 '사랑'이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면적 외로움을 단지 욕정으로만 다스리려 한다면 아무리 취하여도 갈증을 없에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작가도 분명 회색빛 도시의 외로운 도시인과 정념에 의지한 사랑의 한계를 말하고 싶었으리라.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라고 말했던 시인의 말처럼 서로를 어여삐 여기는 사랑, '사랑을 위한 사랑'이 되기를 소망한다.

봄바람이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지난주엔 부모님을 모시고 세자매의 가족들이 함께 경남 황매산에 갔었다. 5월 6일부터 시작되는 철쭉제에는 사람이 너무 붐빌 것 같아 한주 전에 다녀오기로 했던 것이 정작 철쭉꽃의 봉오리만 구경하고 왔다. 군락이 제법 많이 형성되어 있던데 축제때는 제대로 장관일 것 같다. 부모님은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하니 그것이 흐뭇하다 하시고, 아이들은 그저 신이나서 능선을 따라 뛰어 다녔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오늘만 같이 내일도 모래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외로움? 고독? 그게 뭐야 하고 묻고 싶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행복했던 시간들은 마치 꿈이었던양 머리가 아파오고, 외로움에 진저리치는 날도 있겠지만 나만의 외로움 극복방법은 오직 '가족'이다. 등산 할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목이 마를 때, 갈증이 정말 심할 때는 달콤한 혼합음료보다는 시원한 생수 한잔이 더 그립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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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 행복을 채우는 詩 138편
박영만 지음 / 프리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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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시(投詩)

                                              윤동주/ 序詩

100억을 벌 때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번의실패도 없기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바뀔 때마다
나는 괴로워했다

뒷거래 웃돈을 주고라도
학군 좋은 재개발 아파트를 잡아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프리미엄을
확실히 챙겨야겠다

오늘도
100억의 꿈이 나를 스치운다



정당 총수가 에로틱한 영화 포스터에 등장한 것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적이 있는가 하면 기업의 회장님이 코믹영화의 주인공으로, 이쁜 연예인이 한순간 골룸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펄쩍 뛰었겠지만 요즘은 인터넷과 사진 합성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각종 '패러디'가 넘쳐난다. 심지어는 온통 패러디만으로 만들어진 영화에다 하루에도 이런저런 사진이나 포스터가 인터넷에 올라온다. '패러디'의 주목적은 '웃음'이다. 이를 뒷받침하기위해 '풍자','위트'등을 동원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상대를 키득키득 웃겨주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에 행복을 채우는 시>이 책은 하이네,푸쉬킨, 워즈워드, 릴케, 이육사, 황진이 등 한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유명시인들의 작품을 패러디한 시집이다. 시의 기본 틀과 운율은 살리면서, 소재와 내용을 새롭게 한 전형적인 '패러디'로 내용면에서 일상의 다양한 상황을 풍자적으로 묘사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솔직히 책을 처음 받았을 때는 '패러디' 시집이라는 것을 잠시 망각하고 조금 당황하였다. 윤동주님의 서시, 김소월님등 워낙에 유명한 작품은 '패러디'의 진정한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하였지만 간혹 모르는 시가 나오면 아무래도 느낌이 반감되곤 했다. 그리고, 138편의 시가 모두 패러디다 보니 한번에 모든 시를 음미하려고 한다면 패러디 특성상의 한계도 있고, 조금은 식상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원작과 나란히 싣는다든지 단락별로 원작, 패러디작, 새로운 창작을 고루 편집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집의 좋은 점은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페이지에 상관없이 책을 펼쳐 시 한수를 읽고 그저 웃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웃음으로 채워주는 시' 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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