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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
권현숙 지음 / 세계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당신이 머리 아픈 것은 남보다 열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라는 카피 문구가 떠오른다. 인정한다. 앞만보고 달려가다가 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만나면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처럼 무언가 허전함을 느낄 때,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있을 때, 혹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누구나 두통을 느낄 것이다. 열정, 고민, 선택 이런 것들은 결국 '외로움'과 '고독'의 다른 모습 일 수 도 있다. 현대인의 보편적 만성질환(?)인 '외로움' 뒤에는 정서적 빈곤과 실체를 알 수 없는 욕망이 있다.
이 책에서는 외로움을 정념 즉, 불같이 타오르는 욕정의 다른 모습으로 보았다. 여섯개의 단편에는 각각 도시를 배경으로 정념(외로움)과 죽음이라는 소재가 함께 들어있다. <삼중주>는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는 남자와 남자의 집을 몰래 드나드는 여인의 아슬아슬한 이야기인데, 여인이 들킬까봐 손에 땀을 쥐면서 읽어가다가 문득 남자와 여자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하는 '불평등'한 사고를 떠올렸다. 죽은 아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의 외로움과 그 남자를 옆에서 지켜보는 여인의 외로움 과연 누구의 몫이 더 무거울까 잠시 엉뚱한 생각에 잠겨도 보았다.
<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 에서는 음악제 취재를 위해 메사드라는 지역으로 가려하는 자유기고가 여인과 그녀를 사랑하게된 남자의 이야기 이다. 주인공이 머문 지역은 내전으로 불안정하고, 외국인에 대한 테러가 심한 도시이다. "정오에 가까운 시각. 도로는 퍼붓는 태양 아래 하얗게 눈멀고, 방안은 덧창을 닫아 무덤처럼 어둡다. 거친 태양, 난폭한 차들, 총기 난사, 하얀 묘비들... 이 도시는 죽음의 요소들을 고루 갖추었다. p. 101 " 메사드라는 위험 지역으로 가려하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달빛 아래에서 유적지의 기둥 아래를 걷고 싶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지독한 외로움이 그녀를 도시로 내모는 것인지... 말 그대로 죽기 위해 도시를 찾아 가는 것 같다.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힌 도시에서 두 남녀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데 다른 단편에 비해 희망적인 결말이어서 좋았다.
<순장>은 외모로 인해 사회로 부터 냉대받던 여인이 마침내 수술대에 오르는 내용을 담았는데 역사속에서 실제로 행해졌던 '순장' 과 멀쩡한 여인이 제 살을 찢고 새로 꿰메기 위해 수술대에 오르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는 강열한 메세지가 느껴져서 섬뜩했다. 현대인들은 '순장'이라는 것이 너무나 잔인하고 가혹하다고 여기지만, 옛 사람들의 입장에선 현대인들이 더 끔찍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중세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인들에게 있어서 '미'의 기준이 '흰 피부'인 때가 있었다. 당시 '납'을 얼굴에 발라 창백하게 만드는 방법때문에 많은 여인들이 납중독으로 죽었다고 한다. 어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조차도 현대인들이 미에 집착하는 모습을 모면 경악할 수 밖에 없으리라. 과거와 현재가 지속적으로 교차되는 장면도 흥미로왔거니와 마지막에 "내세에는 남자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박색으로 태어나게 하소서" 하는 대사에서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책에 실린 다른 단편에 비해 분량이 제일 많고, 짜임새 있으며, 비교적 쉬워서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순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각 단편들의 공통점은 '도시-정념(외로움)-죽음' 이 세가지다. 책을 읽은 직후에는 내용이 머리속에 담기지 않고 허공에 둥둥 떠있는 것 같았다. 생각이 정리가 잘 되지 않았던 조금은 난해한 책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용을 곱씹을 수록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정념으로 통하는 외로움과 고독을 이처럼 치밀하고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너무나 적나라하기에 씁쓸하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건 '사랑'이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면적 외로움을 단지 욕정으로만 다스리려 한다면 아무리 취하여도 갈증을 없에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작가도 분명 회색빛 도시의 외로운 도시인과 정념에 의지한 사랑의 한계를 말하고 싶었으리라.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라고 말했던 시인의 말처럼 서로를 어여삐 여기는 사랑, '사랑을 위한 사랑'이 되기를 소망한다.
봄바람이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지난주엔 부모님을 모시고 세자매의 가족들이 함께 경남 황매산에 갔었다. 5월 6일부터 시작되는 철쭉제에는 사람이 너무 붐빌 것 같아 한주 전에 다녀오기로 했던 것이 정작 철쭉꽃의 봉오리만 구경하고 왔다. 군락이 제법 많이 형성되어 있던데 축제때는 제대로 장관일 것 같다. 부모님은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하니 그것이 흐뭇하다 하시고, 아이들은 그저 신이나서 능선을 따라 뛰어 다녔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오늘만 같이 내일도 모래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외로움? 고독? 그게 뭐야 하고 묻고 싶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행복했던 시간들은 마치 꿈이었던양 머리가 아파오고, 외로움에 진저리치는 날도 있겠지만 나만의 외로움 극복방법은 오직 '가족'이다. 등산 할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목이 마를 때, 갈증이 정말 심할 때는 달콤한 혼합음료보다는 시원한 생수 한잔이 더 그립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