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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가면 키스를 훔쳐라 - 에로틱 파리 스케치
존 백스터 지음, 이강룡 옮김 / 푸른숲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90년대 로멘틱 코미디의 대명사였던 멕 라이언 주연의 '프렌치 키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약혼자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케이트(멕 라이언)는 세미나 때문에 파리로 떠났던 애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프랑스행 비행기에 오른다. 오직 약혼자를 되찾겠다는 일념하나로 무작정 프랑스로 떠난 케이트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친 뤼크라는 인물과 얽히게 되는데 기차에서 비몽사몽간에 뤼크와 키스하던 장면이 바로 두 사람의 사랑을 암시하는 중요한 장면이라 하겠다. 당시 갓 스무살을 넘긴, 뽀뽀와 키스의 차이조차 몰랐던 순진한 아가씨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근데 '프렌치 키스'가 뭔 뜻이야?"
<파리에 가면 키스를 훔쳐라> 표지부터 참으로 에로틱하다. 붉다고 하기엔 좀 밝은 듯한 주홍색 립스틱을 연상시키는 색깔, 둔감한 독자를 위해 '에로틱 파리 스케치'라는 부제를 달아주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형용사 '프랑스적인'이라는 말에는 섬세하고, 풍부하고, 감칠맛나는 풍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하는데 궂이 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예술적이고 고상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프렌치 키스'와 같이 '성적인'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는 동성애가 공공연하게 인정되는 나라일 뿐만 아니라 동거문화로 유명하다. 서양에서는 결혼전에 동거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관대하긴 하나 프랑스에서 태어난 2명의 신생아중 근 1명이 동거하는 남녀에게서 낳은 아이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는데 프랑스인들의 기본 사고방식, 이혼절차의 까다로움등과 맞물려 법적, 제도적으로 동거문화를 자연스럽게 정착시킨 점이 놀라웠다.
흔히 중국의 음식 문화를 이야기할때, "책상 다리 빼고는 다리 네 개 있는 것은 다 먹는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음식이 다양하고, 그 다양성은 음식을 즐길줄 아는 문화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러나, 세계적으로 미식가의 나라를 손꼽으라면 프랑스가 빠질 수 없다. 프랑스 또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재료의 놀랄만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17세기의 한때는 모든 말과 개, 고양이, 쥐들까지 미식가들의 밥상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이들은 종종 동물원을 급습해서 코끼리 귀, 삶은 들소, 원숭이 스튜등을 즐겼다고 하니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니들도 개 맛을 알어?
거리 청소와 공중 비용으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도시가 파리란다. 이유인즉 개들이 하루동안 거리에 쏟아내는 배설물이 일 톤에 이른다는 것이다. 관광객이 두 걸음을 뗄 때마다 마주치는 것이 개 응가라는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런저런 정책에도, 심지어 대형 공원에 개화장실까지 만들었음에도 개주인들은 자신들의 개가 공원에서 혹은 길에서 실례하도록 방치한다는 점은 더욱 믿어지지 않는다. 1년중 바캉스철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달이상의 긴 휴가를 가져야 하고, 그토록 애지중지 한다는 애완견들이 대책없이 거리에 버려지는 나라, 프랑스인들의 양면성이 아닐 수 없다.
책의 저자인 존 백스터는 호주 출신이며 영화계 인사들의 전기로 유명한 작가이자 영화 평론가이다. 프랑스인 여자친구 마리-도를 따라 프랑스에 정착하는 시점부터 루이즈를 낳고 결혼식을 올리기까지의 일상이 에세이를 이루는 큰 뼈대가 된다. 책의 시작은 분명 에로틱했다. 자유분방한 프랑스인의 삶의 모습과 여유로움, 무엇보다 인생을 즐길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부러웠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낯익은 모습과 약간은 쇼킹한 다른 모습도 함께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간혹 프랑스에 대해서 예술적이고 로멘틱한 환상만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는 좀 깬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을만큼 신랄한 시선으로 씌여진 부분도 있지만 저자의 기본적인 관점은 변함이 없다. "파리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전부 러브 스토리다. p.17" 라고 말할만큼 프랑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앞서 프랑스를 다녀 온 지인들이 전한다. 세느강은 한강보다 못하고, 몽마르뜨 언덕에 더이상 예술가는 없다고 말이다. 개선문은 사진에서 본 그림과 그저 똑같다고 생각하면 되고, 상제리제 거리는 명동과 흡사하다고... 아놔~ 그렇거나 말거나 그래도 가고싶다고. ㅠ.ㅜ 문득, 에펠탑이 파리가 아닌 다른 도시에 세워졌어도 '명물'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다른 건축물에 비해 예술성이 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모파상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파리의 미관을 해친다는등의 이유로 철거를 주장하였음에도 꿋꿋하게 버티어 온 에펠탑이 아닌가. 그렇다!! 거대한 철근 덩어리도 파리에 서 있으면 무언가 특별한 구조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