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 소아정신과 최고 명의가 들려주는 아이들의 심리와 인성발달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1
노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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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일터에서 지친 엄마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종일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가 "엄마" 하고 외치며 달려오지요. 그날따라 엄마는 매달리는 아들이 무난히 무겁게 느껴집니다. 엄마는 아이를 가볍게 안아준 뒤, "엄마 옷 갈아입어야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합니다. 낮에 할머니한테 혼이 나서 엄마한테 위로받고 싶었던 아이는 엄마의 성의 없는 포옹에 화가 나서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씁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엄마가 화를 냅니다. "엄마가 옷 갈아입고 놀아준다고 했지! 이렇게 떼쓰고 난리피우면 다시는 안 놀아 줄거야!" 엄마의 말에 아이는 더욱 심하게 떼를 쓰고, 엄마도 기진맥진 합니다. (p. 158페이지 예문 요약)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이라면 한번쯤은 위와 같은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부분을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대게 네 살 미만의 아이에게는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없다고 합니다. '부족하다'는 표현이 아니라 아예 없다고 표현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리고 대응하는 뇌의 기능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네 살 이전에는 아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유일한 사실이라고 여기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생각한다고 느낍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어린이집에 보내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기를 기대하는 것, 놀이터에서 낯선 아이들과 잘 어울리기를 바라는 것, 식당에서 얌전하게 있어 주기를 바라는 것등이 부모의 욕심일 뿐이라는 겁니다. 네 살 이전에는 오로지 절대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지요. 
 
좀더 거슬러 올라가 아가들의 상태를 살펴보자면, 갓난 아이의 가시거리는 20cm정도 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이 거리는 엄마가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일 때, 서로 바라보는 거리와 일치합니다. 즉, 갓난아기는 엄마를 알아볼 만큼의 시력을 가지고 태어나며 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진화의 결과인 것입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서 눈을 맞추고 쓰다듬어 주고, 말을 걸고, 엄마의 체취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다각도로 아기의 뇌를 자극시키는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아기에게 말을 걸때만 사용하게되는 목소리 톤은 청각을 가장 민감하게 자극하는 음역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모든 생물은 자극을 받으면 반드시 반응하도록 되어 있지요. 사람의 경우 뱃속 태아 시절의 경험도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답니다. 어른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가 '애들이 뭘 안다고' 하면서 별 생각없이 아이에게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아이의 뇌는 다 자라지 않아서 경험을 의식적이고 논리적인 기억으로 정지하지는 못하지만, 모든 자극이 기억으로 남아 아이의 평생에 걸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장기기억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억으로 볼 수 있다. 변연계 뇌의 해마체와 편도핵 등이 장기기억에 영향을 미치는데, 해마체와 편도핵은 스트레스에 특히 약하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해마체와 편도핵이 손상되어 장기기억 체계가 나빠질 수 있다. 이는 마음이 불안한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없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p.91"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제목 그대로 '자녀교육'에 관한 책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육아서에서는 아이와 친구가 되라는 책이 있었던 반면 친구보다는 엄한 부모가 되라는 책도 있었습니다. 아낌없이 칭찬해주라는 책과 칭찬이 아이를 망친다는 책도 있었지요.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육아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 이라는데 있습니다. 유아의 심리를 설명하면서 뇌의 구조와 발달 단계를 함께 이야기해주니 조금은 어려운 용어가 등장함에도 큰 틀을 이해하는 데는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지금 6세인 우리 아이에게 적용할 수 있는 내용도 많지만 태아와 영아에 대한 언급이 많아 예비부모님이 읽으면 더 좋을 책입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아이게 대한 사랑도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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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꼭 읽어야할 필독서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0-22 17:10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 노경선 지음/예담Friend 아들을 데리고 백병원 소아정신과에 상담 받으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담당 의사가 꼭 읽어라고 권해줬던 책이었지요. 이 책을 읽고 나름 내 방식대로의 교육이라는 저의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이 초래한 결과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반성하면서 책을 두번 꼽씹어서 읽었습니다. 아시는 분 아시겠지만 저는 책 다시 읽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너무 좋은 내용이 많아서 다시 봤던 거지요. 부모라면..
 
 
다가섬 2007-08-29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선 '지식'도 꼭 필요한 것 같아요.머리와 가슴, 온몸으로 키워야 할 것 같아요.
 
청소년 경제사전 - 경제신문과 함께 읽는
김은경 지음 / 황금나침반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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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시대는 제국주의를 앞세운 나라들이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식민지의 인력과 물자등 모든 경제권을 장악하였지만 앞으로는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기 보다 '경제전쟁' 시대가 다가온다. 예를들어 미국이라는 나라가 넓은 땅과 기계화된 시설로 쌀농사를 지어 저렴한 가격으로  수출하기 시작하면 쌀농사가 주인 우리나라 같은 나라는 쌀 농사를 포기하고 미국에서 수입한 쌀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이때, 미국은 쌀값을 엄청 높이게 되고 이미 농업 기반이 무너진 우리는 다시 농업에 투자할 엄두도 못내는 것이다. 다른 분야도 이와같이 된다면 점차 경제적으로 미국의 속국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이야기는 20여전,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뒤이은 선생님의 당부 말씀을 들으면서 말뜻을 모두 이해하진 못했지만 어린 마음에도 '아~ 나라의 새싹인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일제강점기처럼 나라의 미래가 위태롭겠구나' 하는 절박한 심정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기업에 사람이 귀했던 시절이고 경제 상황이나 구조,발전 속도등이 어찌보면 지금의 중국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더이상 싼 임금, 저가 상품에 치중해서는 안된다고, 기술개발과 브렌드가 국가 경제의 힘이라고 말씀하시던 선생님이셨는데 지금 생각하니 대한민국의 경제를 꿰뚫고 계셨던 예리한 통찰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선생님의 수 많은 제자들이 현재 경제를 이끌어가는 30,40대로 성장하였음에도 그분이 걱정하셨던 최악의 경제상황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저 경제 이야기가 화두로 떠올를때마다 "진짜 신기하거덩~ 옛날에 말야 우리 샘이 했던말대로 다 되어버렸닷!!" 이 말이나 하고 있으니 문득 내 자신이 부끄러워 진다. 생각해보니 그 시절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가정의 경제 상황을 제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았고, 아무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당부했다. 사회적으로도 어린 아이나 청소년들이 '돈'이야기를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분위기였다.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경제 캠프'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때만해도 상위 몇퍼센트에 해당되는 부자들의 자녀교육법 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몇년사이 점차 확대되어 경제 부분에 관심이 많은 자녀와 부모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경제관련 서적이 줄지어 출간되는 것만 보아도 '경제'가 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소년 경제사전>, 이 책도 그러한 분위기의 연장 선상에서 발행된 책이 아닐까 싶다. 제목 그대로 경제에 관한 각종 용어들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는데 중간중간에 해당 용어가 나오는 경제 신문을 스크랩하여 표기해 준 부분과 어렵거나 중요한 용어는 강조하여 표시해 주었다. 

 본문 내용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경제'라는 용어 자체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돈벌이'가 아니다. 경제를 뜻하는 영어 단어 'economy'는 '절약' 또는 '집안 살림을 관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중략) 따라서 서양에서는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아껴 쓰면서 집안 살림을 잘 꾸려가는 것을 의미하고, 동양에서는 통치자가 국민들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잘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p.20" 우리가 경제를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자원은 희소한데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며 누구나 욕구한 바를 최대한으로 만족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사고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고 경제가 좋다는 의미는 결국 다수가 만족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리라. 

종합주가지수가 2000포인트를 넘어섰다는 기쁨도 잠시 뿐 곤두박칠 치는 주가를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수 없었다. 우리 증시가 미국 시장에 너무 예민하다는 것, 그럼에도 외국인들은 거의 손해보는 경우가 없으며 그들에 의해 철저히 농락당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 때문이다. IMF 이후 본격화된 금융 자유화및 외국 자금이 지금의 우리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한미 FTA에 관하여도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경제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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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가면 키스를 훔쳐라 - 에로틱 파리 스케치
존 백스터 지음, 이강룡 옮김 / 푸른숲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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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0년대 로멘틱 코미디의 대명사였던 멕 라이언 주연의 '프렌치 키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약혼자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케이트(멕 라이언)는 세미나 때문에 파리로 떠났던 애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프랑스행 비행기에 오른다. 오직 약혼자를 되찾겠다는 일념하나로 무작정 프랑스로 떠난 케이트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친 뤼크라는 인물과 얽히게 되는데 기차에서 비몽사몽간에 뤼크와 키스하던 장면이 바로 두 사람의 사랑을 암시하는 중요한 장면이라 하겠다. 당시 갓 스무살을 넘긴, 뽀뽀와 키스의 차이조차 몰랐던 순진한 아가씨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근데 '프렌치 키스'가 뭔 뜻이야?"  

<파리에 가면 키스를 훔쳐라> 표지부터 참으로 에로틱하다. 붉다고 하기엔 좀 밝은 듯한 주홍색 립스틱을 연상시키는 색깔, 둔감한 독자를 위해 '에로틱 파리 스케치'라는 부제를 달아주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형용사 '프랑스적인'이라는 말에는 섬세하고, 풍부하고, 감칠맛나는 풍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하는데 궂이 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예술적이고 고상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프렌치 키스'와 같이 '성적인'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는 동성애가 공공연하게 인정되는 나라일 뿐만 아니라 동거문화로 유명하다. 서양에서는 결혼전에 동거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관대하긴 하나 프랑스에서 태어난 2명의 신생아중 근 1명이 동거하는 남녀에게서 낳은 아이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는데 프랑스인들의 기본 사고방식, 이혼절차의 까다로움등과 맞물려 법적, 제도적으로 동거문화를 자연스럽게 정착시킨 점이 놀라웠다. 

흔히 중국의 음식 문화를 이야기할때, "책상 다리 빼고는 다리 네 개 있는 것은 다 먹는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음식이 다양하고, 그 다양성은 음식을 즐길줄 아는 문화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러나, 세계적으로 미식가의 나라를 손꼽으라면 프랑스가 빠질 수 없다. 프랑스 또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재료의 놀랄만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17세기의 한때는 모든 말과 개, 고양이, 쥐들까지 미식가들의 밥상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이들은 종종 동물원을 급습해서 코끼리 귀, 삶은 들소, 원숭이 스튜등을 즐겼다고 하니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니들도 개 맛을 알어?

거리 청소와 공중 비용으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도시가 파리란다. 이유인즉 개들이 하루동안 거리에 쏟아내는 배설물이 일 톤에 이른다는 것이다. 관광객이 두 걸음을 뗄 때마다 마주치는 것이 개 응가라는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런저런 정책에도, 심지어 대형 공원에 개화장실까지 만들었음에도 개주인들은 자신들의 개가 공원에서 혹은 길에서 실례하도록 방치한다는 점은 더욱 믿어지지 않는다. 1년중 바캉스철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달이상의 긴 휴가를 가져야 하고, 그토록 애지중지 한다는 애완견들이 대책없이 거리에 버려지는 나라, 프랑스인들의 양면성이 아닐 수 없다.  

 책의 저자인 존 백스터는 호주 출신이며 영화계 인사들의 전기로 유명한 작가이자 영화 평론가이다. 프랑스인 여자친구 마리-도를 따라 프랑스에 정착하는 시점부터  루이즈를 낳고 결혼식을 올리기까지의 일상이 에세이를 이루는 큰 뼈대가 된다. 책의 시작은 분명 에로틱했다. 자유분방한 프랑스인의 삶의 모습과 여유로움, 무엇보다 인생을 즐길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부러웠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낯익은 모습과 약간은 쇼킹한 다른 모습도 함께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간혹 프랑스에 대해서 예술적이고 로멘틱한 환상만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는 좀 깬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을만큼 신랄한 시선으로 씌여진 부분도 있지만 저자의 기본적인 관점은 변함이 없다.  "파리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전부 러브 스토리다. p.17" 라고 말할만큼 프랑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앞서 프랑스를 다녀 온 지인들이 전한다. 세느강은 한강보다 못하고, 몽마르뜨 언덕에 더이상 예술가는 없다고 말이다. 개선문은 사진에서 본 그림과 그저 똑같다고 생각하면 되고, 상제리제 거리는 명동과 흡사하다고... 아놔~ 그렇거나 말거나 그래도 가고싶다고. ㅠ.ㅜ  문득, 에펠탑이 파리가 아닌 다른 도시에 세워졌어도 '명물'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다른 건축물에 비해 예술성이 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모파상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파리의 미관을 해친다는등의 이유로 철거를 주장하였음에도 꿋꿋하게 버티어 온 에펠탑이 아닌가. 그렇다!!  거대한 철근 덩어리도 파리에 서 있으면 무언가 특별한 구조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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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인간적인 삶
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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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긋지긋한 밥상머리 전쟁이다. 아들 녀석이 젓가락으로 밥을 휘젓고 있다. 몇차례의 주의와 경고를 무시한 채 콩을 가려내느라 머리를 들지 않는다. "콩은 어디에 좋다고 했지?" 아이는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몸을 튼튼하게 해줘." 그 다음은 마치 노래를 하듯 질문과 대답이 이어진다. "계란은 머리가 좋아져. 김치는 나쁜 세균 물리쳐. 당근은 눈이 좋아져. 우유는 키를 크게 해. 멸치도 키를 크게 해. 시금치는... "  밥상에 올라있는 반찬을 한번씩 읊을 때마다 한젓가락씩 입으로 들어간다. 여섯살 아이는 골고루 먹어야 뱃속에서 '합체' 해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굳게 믿는다. 

 인문학이라는 분야는 왠만큼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밥공기 속의 '콩'같은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편독하면 안되는데, 소설만 읽어서는 될 일이 아닌데 하면서 가끔씩 역사,예술등의 교양 서적을 뒤적이다가도 막상 인문학 서적은 덜컥 겁부터 나는 것이 사실이다. <자유와 인간적인 삶>이라는 이 책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도 과연 잘 읽어내고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실제로 처음 몇페이지를 넘기면서 결코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은 두깨가 얄팍하는 것이었다. ^^;;

"사람은 자유 속에 태어나지만, 어디에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 (중략) 윤리, 도덕이 중요해지는 것은 바로 그것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자유에 대한 추구가 일어나는 것은 바로 자유를 잃었기 때문이다. " p.57-58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자유'를 부르짖는 이들의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이루기위해 농성하는 이들만 보더라도 그들을 구속하는 제도나 환경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유'는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자유'란 말 그대로 남에게 구속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말로 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할까. 앞서 자유의 개념을 넓게 보았듯이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자유의 영역으로 포함하였을 때, 자신을 위하여 이러한 삶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똑같은 삶의 완성과 행복을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자유'는 권리와 의무속에서 추구할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첫부분을 페렐만으로 시작해서 페렐만으로 끝맺고 있다. 페렐만은 수학의 난제로 알려진 '푸앵카레 추측'이라는 문제를 푼 러시아의 젊은 수학자이다. 페렐만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논문 발표가 아닌 인터넷에 올리는 방법을 선택하였고, 미국의 사립 수학연구소에서 내걸었던 100만불의 상금도 거절하였다. 그는 연구소나 대학에서 제시하는 자리를 거절하고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에서 조용히 사는 삶을 선택하였다. 취미는 등산과 등산하면서 버섯을 따는 일이란다. "그가 보여준 것은 간단히 말하여 사람이 자신의 삶을 자신의 생각대로 선택하여  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동시에 거꾸로 우리가 그러한 자유 선택의 가능성을 얼마나 멀리하고 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p.25

  얇다고 그나마 위로를 삼았었는데 사실 내겐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고등학생시절 성경을 처음 완독했을 때가 얼핏 떠올랐다. 너무나도 눈물겨운 여정이었기에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운 책을 읽더라도 이보다 더 힘겨우랴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문맥이 막히고 눈이 닫힐때마다 처음 일독으로 전부를 알려고 하지 않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인문학에 관해 좀 더 내공이 쌓인후에 다시 읽어주마하고, 그때는 또 다른 느낌으로 사고의 폭을 넓혀주겠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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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밴드왜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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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등장하는 일본 가옥이 무척 인상적이다. 지은지 70년이나 되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고 설명한 것 치고는 아담하고 정겹게 생겼다. 책을 펼쳤을 때, 등장인물 리스트가 따로 표시된 책은 왠지 겁이 난다. 일단은 등장인물이 많다는 뜻이므로 책을 읽는 내내 앞장을 뒤적거리면서 누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이 책은 '도쿄밴드왜건'이라는 오래된 서점에 4대가 함께 모여살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역시나 등장인물이 많다. 하지만 책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므로 섣부른 오해는 없길 바란다.    
 
"이만큼 개성 풍부한 등장인물들이 있으면, 작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 가계를 스윽 들여다보면 그들이 거기 살고 있고, 나는 그저 그걸 기록해나갈 뿐. 모든 건 러브다. " p.361  작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성이 풍부한 등장인물을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책의 내용을 반이상 쓴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4대, 그 많은 사람이 하나 같이 개성 넘치고 사연있는 가족 구성원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도쿄밴드왜건'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크게 네 파트로 나누었는데 각 장마다 사소한 사건이나 오해가 등장인물간의 갈등을 일으키고, 위기의 순간을 잘 넘김으로써 갈등이 해결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작가가 이 책을 "그 시절 많은 눈물과 웃음을 거실에 가져다준 텔레비젼 드라마에" 바친다고 하였는데 책의 내용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궂이 표현하자면 시트콤과 흡사하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유난히 가지가 많은 '도쿄밴드왜건'에도 사건과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주인공들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서 가족을 지켜준다. 참, 빼놓을 수 없는 가족이 있는데 도쿄밴드왜건의 주인인 훗타 칸이치영감의 아내 훗타 사치 할머니다.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하늘에서 '도쿄밴드왜건'을 지켜보는 존재로서 이 책의 나레이터 역할을 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대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책의 관점에 대해 말하자면 보통은 젤 막내인 초등학생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것에 익숙했었는데 하필이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가족을 내려다보면서 독자에게 대화를 걸듯 써내려간 문체가 상당히 독특하게 와닿았다. 어쨌거나 이 책은 한마디로 '가족'과 '가족애'에 대한 내용이다. 올 여름 미스테리와 스릴러로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하는 이들에게, 혹은 휴가철 문득 가족의 소중함을 떠올린 이들이라면 이 책이 가슴 깊이 와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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