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서태후 - 개정판
펄 벅 지음, 이종길 옮김 / 길산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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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읽는 동안 소서노, 장희빈, 장록수, 명성황후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를 장식한 여인들의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이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로도 몇차례나 제작되었고, TV에서 사극으로도 여러차례 방영되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내용이야  모르는 이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단 한번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지금에라도 다시 제작될 기미가 보인다면 쟁쟁한 여배우들이 배역을 탐낼 것이 분명하고, 다시금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킬 것이다. 역사는 history,  서구나 동양 할것없이 남성 중심으로 흘러왔고,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역사가  씌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역사의 기록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궁중을 배경으로 한 여인들의 암투에 대한 소재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좋은 소재다.  군왕 중심,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서 한 줄이라도 이름을 남긴 '여인'이라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평범한 여인네는 아니라는  뜻이다.  한 때 한류 문화의 붐을 주도했던 <대장금>도 실제 역사에는 단 한 줄의 기록만 가지고 있을 뿐이고, <여인천하>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조선 사회가 이러할진데 유교의 근원지인 중국 대륙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거대한 중국대륙을  호령한 '꽃과 칼날의 여인'.  서태후라는 인물이 매력적으로 와닿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26세의 나이에 수렴청정을 시작하여 70여 평생을 통해 죽는 순간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철의 여인.  살아 생전 자신의 힘으로 세명의 황제를 등극시킨 여인. 누가 감히  서태후가 단지 미모만으로 함풍제의 총애를 받았고,  충성스러운 대신을 얻었을 뿐인 운 좋은 여인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시대적 배경은 청말기다.  곳곳에서 봉기가 일어나고, 민심은  흉흉하다.  서구 열강이 앞다투어 개화를 요구하였지만 사실은 침략 전쟁을 일으키기위한 빌미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나약한 황제인 함풍제를 모성과도 같은 정성으로 감싸안고, 때를 기다리며 내적, 외적으로 스스로를 가꾸어 나가는 서태후의 모습은 치밀하다 못해 영악하기까기 하다. 함풍제 서거 후  동치제가 즉위할 무렵  내부적으로는 거칠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정적들로부터 아들을 지켜 무사히 황제에 오르도록 하고, 정치적 기반을 다져주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결국,  동치제 등극 후에도 권력에서 멀어지지 못했지만 말이다.   서태후는 동치제가 죽자 여동생의 아들을 데려다가 광서제로 삼는다.  서태후의 여동생은 함풍제의 동생인 순친왕과 혼인하여 광서제를 낳았던 것이다.  아들에게도 그토록 엄한 어머니였던 서태후는 조카인 광서제도 자신의 명령하에 있기를 바랐다.  서태후를 아들의 어머니로, 사랑을 갈망하는 여인으로 묘사한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서태후의 강한 면을 숨기지는 못했다.  

서태후는 일생동안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만든 인물이다. 그녀가 가진 복중에 복이라면 청왕조에 대한 희망을 품은 체 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태후가 세 번째로 등극시킨 황제가 바로 푸이(부의)다.  진정 서태후가 청을 떠받친 철의 여인이었는지 집권 초기에 쇄국정책으로 일관함으써 쓰러져 가는 왕조를 넘겨주고 떠난 폭군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녀가 죽은 후 한참의 세월이 흐른뒤 중국 오지에서 서태후의 사망 소식을 접한 민초들이 "이제 누가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 하며 탄식했다는 점은 궁중의 대신들이나 백성들 모두에게 서태후란 인물이 얼마나 큰 산이었는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서태후의 아명인 예흐나라에서 자희황후, 서태후, 노불야(늙은 부처)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가 마치 수십편 분량의 대하드라마를 한권의 책에 압축해 놓은 느낌이다.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때론 포악하고 변덕스러웠던 서태후의 복잡한 심리묘사가 빠른 전개와 박진감넘치는 구성과 어우러져 책속에 푹 빠지게 만든다.  펄벅이 여류작가였기 때문에 더욱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몇년만에 기록적으로 두꺼운 책을 읽었다.  724페이지. 하필 적지 않은 분량의 이 책을 처음 펼친 날로부터 일상생활의 분주함이 겹쳐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를 찾는 이 없는 어디론가로 이 책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면서 읽은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서태후에 대해서 잘 몰랐다. 책을 덮은 후, 책의 내용이 어디까지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궁금했던 까닭에 한동안 인터넷을 뒤지고 다녔다.  생각보다 그녀에 대한 평이 좋지 않았다. 특히, 책을 통해 일부 언급된 서태후의 사치스러움은 당시 어두운 시대적 상황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아픔과 대비되면서 그녀가 정적에게 행했던 가혹함 만큼이나 잔인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야사에 서태후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알수 없지만 이 책에서 서태후가 한평생 사랑한 남자 영록은 실존 인물이다.  <마지막 황제>의 푸이(부의)는 광서제의 이복동생인 순친왕 재풍(아버지 순친왕과 같은 작호를 씀)의 아들로 순친왕 재풍은 영록의 딸과 혼인한 관계이므로 푸이는 영록의 외손자가 된다.    헉헉~  ㅠ.ㅠ   왕족의 족보는 너무 복잡해   --;; 그러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가  소설적인 요소와 결합했을 때,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구성이 가능한지를 보여준 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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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쟁이 유씨
박지은 지음 / 풀그림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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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세상에 좋은 일, 베푸는 일이 따로있지 않은 것 같다. 모두가 생소하게 여기는 일이지만 염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많은 시신은 누가 거두겠는가? 그들의 손길에 새삼 찬사를 보낸다. " p.121

문득 수년전에 TV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염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장의업'을 자신의 천직이라고 믿는 사람, '소명의식'이 분명하고, 죽은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그 분, 스스로 자원해서 강 바닥을 뒤지며 수습되지 못한 이들을 찾아 헤메고, 지역에서도 신원미상의 사체가 발견되면 그 분을 젤 먼저 찾는다고 한다. 처음엔 '염을 하는 사람'에 대한 낯설음때문에 진짜로 '간 큰' 아저씨로만 느껴졌고, 무섭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말할 수 없는 존경심이 솟아났다. 아직은 앳되어 보이는 그분의 두 아들이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며 가업을 잇겠다는 다짐을 밝혔을 때, 또 한번 놀랬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갑자기 그분의 근황이 궁금해 졌다.

<염쟁이 유씨> 이 책은 60평생을 염을 하면서 살아온 유씨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대대로 염을 하는 집안에 태어나 그토록 하기 싫었던 염쟁이 노릇을 되물림 받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유씨의 마지막 염 이야기로 끝을 맺으니 분명 유씨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유씨의 이야기는 책의 굵은 뼈대와도 같고, 그분이 염을 했던 사람들의 사연이 주를 이룬다.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생을 마감하는데 어찌 사연이 없을수가 있으랴.슬픈 죽음, 안타까운 죽음, 가슴아픈 죽음, 황당한 죽음, 어이없는 죽음등... 20여편의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유씨가 말해준 사연들 중 '솔로몬의 지혜'를 연상케하는 내용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재산이 좀 있어보이는 젊은 남자의 염을 앞두고 두 명의 어머니가 나타나 서로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표면적으로는 장례절차를 두고 싸우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미혼인 죽은 남자의 재산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염쟁이 유씨가 그럴듯하게 꾸며대기를 폐병으로 죽은 사람이 출상할 때, 주변에 여자가 있으면 그 집안 사람들에게로 병이 옮는다고 말하자 무정한 생모는 바로 달아나 버리고, 공들여 키웠다는 계모가 남아 장례를 치른다는 내용이다. 남자의 생전에는 두 어머니가 존재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한 명의 어머니, 진짜 어머니만 남았다. 애초에 자식을 버린 것도 모자라 자식을 두 번 버린 생모에 대한 씁쓸함과 가슴으로 낳아 가슴에 자식을 묻은 계모에 대한 안타까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사연이다.   

"며칠 전 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때, 나는 누구보다도 죽음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유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죽음에 대한 고민은 삶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배제하고 단순히 죽음의 길을 쉽게 가려 했던 내 모습이 자꾸만 부끄럽게 느껴진다." p.116

책의 주인공이면서 기자인 '나'는 사랑으로 인해 목숨을 끊으려고까지 했었다. 말그대로 죽을만큼 사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유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삶과 죽음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데 삶과 죽음을 따로 떼어놓지 않고 같은 선상에 두어야 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여간 어떤 이유로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산다는 것이 때론 죽기보다 더 힘들다는 말을 한다. 죽을 각오를 하면 살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들 한다. 그 말이 참으로 옳다. 삶을 쉽게 포기하려들기 전에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려는 이들과, 그 순간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들을 한번쯤 떠올려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염쟁이로 평생 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네. 아직도 잘 모르겠네만, 죽는다는 건, 생명이 끝나는 거지 인연이 끝나는 게 아닌 거 같거든. 그러니께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뭔가 남기는 죽음, 부끄럽지 않은 죽음, 그런 죽음은 그런 삶에서 비롯되는 거 아니겠는가 말여." p.203
 
 결론을 말하자면 유씨의 이야기는 단지 '죽음'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단 하루만 더> <좀머씨 이야기>등에서처럼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내게 주어진 삶의 소중함과 지금 내 옆에 있는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떠올려 본다. 유행가 가사처럼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싶은 생각이 든다. 또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임을 되새겨 본다. 내가 죽고 난 뒤에 뭔가 남기는 죽음, 부끄럽지 않은 죽음은 그렇게 살았던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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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쪽빛그림책 2
이세 히데코 지음, 김정화 옮김, 백순덕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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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지, 내 도감이... 망가진 책은 어디로 가져가야 될까? 특별한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 소피는 아끼던 식물도감이 파손되자 크게 상심한다. 책방에는 새로 나온 책들이 잔뜩 있었지만 소피는 '자신의 책'을 꼭 고치고 싶었다. 그렇게 중요한 책이면 를리외르를 찾아가 보려무나. 소피는 자신의 책을 고쳐줄 를리외르를 찾아 파리의 거리를 헤메고, 를리외르는 여느때처럼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시작한다. 소피와 를리외르가 한페이씩 번갈아 등장하면서 두사람이 만나기까지 아슬아슬한 엇갈림이 영화속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마침내 공방을 찾은 소피는 를리외르의 작업장과 작업 공정을 함께 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된다.  
 
 '를리외르'는 프랑스어로 제본을 뜻하며, 제본을 하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유럽에서 인쇄 기술이 발명되어 책의 출판이 쉬워지면서 발전한 직업으로 60가지도 넘는 공정을 모두 수작업으로 해내야만 하는 '장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날에는 '예술제본가'로 불리운다. 이 책은 단행본으로는 드물게 전문가의 감수와 추천을 받은 책이다. 책을 감수한 백순덕님은 프랑스 정부가 공인하는 한국 최초의 를리외르로 파리에서도 모든 공정을 해낼 수 있는 를리외르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를리외르 - 상업적인 책은 사지도, 팔지도 않는다.'


공방 창문 한 귀퉁이에 붙여놓은 메모가 무척 인상적이다. 이 책은 작가가 파리 여행중 낡은 공방 유리창 너머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를리외르와 마주쳤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아 구상하였다고 한다.  그순간 를리외르와 마주친 사람은 누구라도 그의 열정에 공감하였으리라. 책에 대한 자부심, 책임감, 우직함, 고집스러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예술가의 '혼'을 담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문장은 간결하게, 그림이 주가되어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제본 장면을 스캐치한 부분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는데,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수채화풍의 그림이 책의 감동을 극대화 시킨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아들아,  저 나무처럼 크게 되어라."   p.44 

"아버지 손도 나무옹이 같았어. 하지만 얼마나 섬세했는지....  아버지가 얇게 갈아 낸 가죽은 벨벳 같았지. (중략) 책에는 귀중한 지식과 이야기와 인생과 역사가 빼곡히 들어 있단다. 이것들을 잊지 않도록 미래로 전해 주는 것이 바로 를리외르의 일이란다. " p.45

 

 앞서 읽은 <꽃밭>이란 책에서 최인호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활자의 매력은 서서히 사라져버리고, 기록으로서의 종이도 점점 사라져버리며, 문학의 영원한 명제인 '인간존재'에대한 질문은 따분하고 고통스러운 주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문학이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는가. 문학은 한낱 오락거리로 추락하였고... 게임기가 팔리듯이 상업적인 틀에 맞춰 제작된 책이 서점을 가득 메우고 있다. '책'이란 무엇이고, 를리외르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책을 읽는 독자와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함께 읽어야 할 책. 초등이상의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일 뿐만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 이기도 하다. 
 
"아저씨가 만들어 주신 책은 두 번 다시 뜯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식물학 연구자가 되었다."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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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 제10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 수상작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5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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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늘상 노후를 농촌에서 보내고 싶다고 말씀하곤 하셨다. 자식들 모두 제 짝을 찾아주고 나면 헐직한 촌집 한채 구해서 깔끔하게 수리해서 자리 잡고, 텃밭 일구면서 마을 뒷산에 등산이나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촌으로 가고 싶다는 말씀을 더이상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병원 가깝고, 차편 좋고, 자식들 가까운데 살고 싶다고, 지금이 좋다고 하신다. 농촌에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부모님처럼 한평생 귀농을 꿈꾸었던 분들조차 생각을 달리할 정도니 그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된다.

 소설속의 우시아나 마을도 위기에 처한 농촌이다. 남은 사람은 딸랑 여덟 명. 작년 가을까지 열 명이던 청년회 멤버가 올 봄에 또 두 명이 줄었다. 이젠 워쪄? 우시아나 마을의 미래가 청년회 회장인 신이치에게 달렸다. "마을 맹글기를 할 겨!!!." 그래 그거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큼 확실하게 마을을 띄워보겠어. 도쿄의 에이전시와 마을 사람들이 심사숙고 끝에 내 놓은 안은 '공룡 출현', 용신호수에 나타났다는 '우시아나 사우루스'로 인해 전국민의 관심이 마을로 쏠리고, 마을은 취재진과 관광객으로 붐빈다. 그러나, 공룡의 실제 모습이 '클로즈 업' 되는 순간 마을에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 지는데...

 "우리 엄마는 자주 말했어요. 뒷마당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은 어딜 가봤자 발견되지 않는다고. p.120"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책을 거의 다 읽어 갈무렵 '파랑새'라는 동화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갖은 고생끝에 찾아 다녔던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지 않았던가. 어려서 이 동화를 읽었을 때에는 결과가 너무 허탈해서 약간은 속이 상하기도 했었다. 오누이의 수고가 헛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파랑새를 찾기위한 수고로움이 결코 헛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모든 과정이 어찌보면 최종적으로 발견한 '행복'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는 것이다. 

"행복이 도망가유?"
"네?"
"한숨 한번 쉬면 복 하나가 달아나유. 마을에서는 그렇게들 말해유.  p.212"

젊은 부부가 귀농을 하거나, 촌 동네에 아이가 태어나면 '인간 극장'에 소개되는 시대가 되었다. 한미FTA 결사반대에 온 몸을 던지는 우리의 농촌 현실이 이웃나라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무척 공감이 갔다. 하지만, 한숨만 쉬고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목표가 있다면 과감하게 시도해보려는 용기도 필요하다. 뒷마당에 묻힌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묻힌 상태로서의 아무 의미가 없다. 찾기 위해 시도하는 사람 즉, 땀흘려 삽질하는 자의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농작물은 거둘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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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의 세계 - 생생 입체 사진 팝업북
리처드 퍼거슨 지음 / 애플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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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팝업북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두돌무렵쯤 되었을 때인가 큰맘 먹고 구입했던 책인데... 아이보다 엄마가 더 신이나서 호들갑을 떨며 짜잔~ 하고 책을 펼쳤는데 유난히 겁이 많던 아이는 입을 크게 벌린 '입체 개구리'를 보고 겁에 질려 버렸다. ^^;; 일단 철수!! 한동안 치워 두었다가 다시 꺼내주었을 때, 반응이 차분하길래 방심했더니 잠시 눈돌린 틈에 "때찌!!~~" 하는 소리와 함께 개구리를 확 뜯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우째 이런일이... 다른 애들은 입체북 사주면 좋아서 난리라는데 그게 얼마짜린지나 아니? ㅠ.ㅜ 

 <곤충의 세계> 정말 오랜만에 만난 팝업북이다. 우선 표지에 대해 말하자면 시선을 끌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선명한 초록이 아닌 청록색이라고 해야하나 어두운 느낌의 초록빛 바탕, 아랫쪽은 빨간색, 그것도 하필 어두운 주홍빛이 난다. 거기에다 나비는 흔히 연상되는 노랑나비나 호랑이 무늬 나비, 혹은 하얀색 배추흰나비도 아닌 어쩡쩡한 색의 나비다. 조금 박하게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표지와 책의 가격때문에 별 반쪽을 빼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랩으로 포장되어 있는 이 책이 표지로 인해 선택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에게서 기쁨을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온단 말인가. 

하지만, '애플비'라는 이유만으로 품었던 기대감이 결코 헛되지는 않았다. 첫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책을 덮을 때까지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도 엄마도 입이 다물지 못할만큼 신기하고 매력적인 책이다. 책 읽다가 할머니,할아버지,아빠도 불렀다. 책구경 하시라고... ^^;; 곤충모양이 입체적으로 모양을 갖추자 무당벌레가 아이의 주먹만해졌다. 잠자리도 사슴벌레도 실사라서 더욱 생생하게 와닿았다. 더듬이를 만지작 거리던 아이는 무당벌레를 떼어내려고 낑낑거린다. 엄마는 화들짝 놀라서 그러면 안된다고 말해주었다. 이번에는 감자리를 지그시 눌러본다. 그러면 책이 덮히지 않게 될지도 몰라~ 아이는 깜짝 놀라며 이리저리 책을 관찰하였다. 

"샤랑해~ 샤랑해~ 내 쇼중한 책아~~ "
여섯살 아들 녀석이 혀를 굴려가며 말을 한다. 책을 끌어안고 몸을 살랑살랑 흔드는데... 아들내미 맞아? 싶을 정도로 오버하는 녀석의 반응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될 만큼 잘 만들어진 책이다. 책의 단계가 너무 낮은 것은 아닐까도 생각했는데 화살표 방향으로 당기면 각각의 곤충들에 대한 부가설명이 나오는 부분에서 답을 찾았다. 곤충의 생애, 서식지, 먹이등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내 아이가 읽어도 충분할만큼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아이의 책장에는 팝업북이 많지 않다. 동화책은 이쁜 그림과 어여쁜 내용으로 채워지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기에 어떤 기능을 추가한(말하자면 소리가 난다든지, 그림이 벌떡 일어난다든지) 책에는 관심이 부족했다. 아니 가격적인 압박이 심하다보니 선듯 손이 가질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솔직하겠다. '팝업북'하면 대부분의 엄마들이 비슷한 생각을 떠올릴 것이다. 아이들은 너무 좋아하는데 비싸다는 점. 플랩북도 마찬가지고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작업이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던데 하여간 좋은 책을 저렴한 가격에 많이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아이는 애라서 그렇다쳐도 이 책만 보면 엄마인 나도 너무 기분이 좋다. 책을 읽고 나면 나름대로 책에대한 평을 하는 아이가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인다.
"엄마, 리처드퍼거슨 아저씨한테 감사하다고 전해줘. 참, 다음엔 '동물의 세계'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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