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서태후 - 개정판
펄 벅 지음, 이종길 옮김 / 길산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는 동안 소서노, 장희빈, 장록수, 명성황후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를 장식한 여인들의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이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로도 몇차례나 제작되었고, TV에서 사극으로도 여러차례 방영되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내용이야  모르는 이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단 한번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지금에라도 다시 제작될 기미가 보인다면 쟁쟁한 여배우들이 배역을 탐낼 것이 분명하고, 다시금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킬 것이다. 역사는 history,  서구나 동양 할것없이 남성 중심으로 흘러왔고,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역사가  씌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역사의 기록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궁중을 배경으로 한 여인들의 암투에 대한 소재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좋은 소재다.  군왕 중심,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서 한 줄이라도 이름을 남긴 '여인'이라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평범한 여인네는 아니라는  뜻이다.  한 때 한류 문화의 붐을 주도했던 <대장금>도 실제 역사에는 단 한 줄의 기록만 가지고 있을 뿐이고, <여인천하>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조선 사회가 이러할진데 유교의 근원지인 중국 대륙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거대한 중국대륙을  호령한 '꽃과 칼날의 여인'.  서태후라는 인물이 매력적으로 와닿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26세의 나이에 수렴청정을 시작하여 70여 평생을 통해 죽는 순간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철의 여인.  살아 생전 자신의 힘으로 세명의 황제를 등극시킨 여인. 누가 감히  서태후가 단지 미모만으로 함풍제의 총애를 받았고,  충성스러운 대신을 얻었을 뿐인 운 좋은 여인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시대적 배경은 청말기다.  곳곳에서 봉기가 일어나고, 민심은  흉흉하다.  서구 열강이 앞다투어 개화를 요구하였지만 사실은 침략 전쟁을 일으키기위한 빌미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나약한 황제인 함풍제를 모성과도 같은 정성으로 감싸안고, 때를 기다리며 내적, 외적으로 스스로를 가꾸어 나가는 서태후의 모습은 치밀하다 못해 영악하기까기 하다. 함풍제 서거 후  동치제가 즉위할 무렵  내부적으로는 거칠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정적들로부터 아들을 지켜 무사히 황제에 오르도록 하고, 정치적 기반을 다져주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결국,  동치제 등극 후에도 권력에서 멀어지지 못했지만 말이다.   서태후는 동치제가 죽자 여동생의 아들을 데려다가 광서제로 삼는다.  서태후의 여동생은 함풍제의 동생인 순친왕과 혼인하여 광서제를 낳았던 것이다.  아들에게도 그토록 엄한 어머니였던 서태후는 조카인 광서제도 자신의 명령하에 있기를 바랐다.  서태후를 아들의 어머니로, 사랑을 갈망하는 여인으로 묘사한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서태후의 강한 면을 숨기지는 못했다.  

서태후는 일생동안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만든 인물이다. 그녀가 가진 복중에 복이라면 청왕조에 대한 희망을 품은 체 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태후가 세 번째로 등극시킨 황제가 바로 푸이(부의)다.  진정 서태후가 청을 떠받친 철의 여인이었는지 집권 초기에 쇄국정책으로 일관함으써 쓰러져 가는 왕조를 넘겨주고 떠난 폭군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녀가 죽은 후 한참의 세월이 흐른뒤 중국 오지에서 서태후의 사망 소식을 접한 민초들이 "이제 누가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 하며 탄식했다는 점은 궁중의 대신들이나 백성들 모두에게 서태후란 인물이 얼마나 큰 산이었는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서태후의 아명인 예흐나라에서 자희황후, 서태후, 노불야(늙은 부처)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가 마치 수십편 분량의 대하드라마를 한권의 책에 압축해 놓은 느낌이다.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때론 포악하고 변덕스러웠던 서태후의 복잡한 심리묘사가 빠른 전개와 박진감넘치는 구성과 어우러져 책속에 푹 빠지게 만든다.  펄벅이 여류작가였기 때문에 더욱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몇년만에 기록적으로 두꺼운 책을 읽었다.  724페이지. 하필 적지 않은 분량의 이 책을 처음 펼친 날로부터 일상생활의 분주함이 겹쳐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를 찾는 이 없는 어디론가로 이 책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면서 읽은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서태후에 대해서 잘 몰랐다. 책을 덮은 후, 책의 내용이 어디까지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궁금했던 까닭에 한동안 인터넷을 뒤지고 다녔다.  생각보다 그녀에 대한 평이 좋지 않았다. 특히, 책을 통해 일부 언급된 서태후의 사치스러움은 당시 어두운 시대적 상황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아픔과 대비되면서 그녀가 정적에게 행했던 가혹함 만큼이나 잔인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야사에 서태후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알수 없지만 이 책에서 서태후가 한평생 사랑한 남자 영록은 실존 인물이다.  <마지막 황제>의 푸이(부의)는 광서제의 이복동생인 순친왕 재풍(아버지 순친왕과 같은 작호를 씀)의 아들로 순친왕 재풍은 영록의 딸과 혼인한 관계이므로 푸이는 영록의 외손자가 된다.    헉헉~  ㅠ.ㅠ   왕족의 족보는 너무 복잡해   --;; 그러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가  소설적인 요소와 결합했을 때,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구성이 가능한지를 보여준 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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