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에게 물을 (양장)
새러 그루언 지음, 김정아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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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게도 서커스에 얽힌 추억이 있었던가. 솔직히 말하자면 대형 천막 아래서 "신사~ 숙녀~ 여러부운~" 하고 외쳐대는 제대로 된 서커스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 지역에서 가장 큰 시장에서 '차력쇼'를 보았던 기억만 있다. 철근을 목으로 구부리고, 불을 뿜는등 한바탕 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의 장바구니에는 회충약이 들려있었다는... ^ ^;; 요즘은 명절만 되면 약속이나 한듯이 '세기의 서커스'가 방송되곤 한다. 사정없이 몸이 휘어지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관절이 뻐근해지고, 맹수의 입속에 머리를 넣는 장면은 언제 보아도 손에 땀이 난다. '명절용'이 아니냐며 투덜거리면서도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보면 재미가 몇 배는 더해진다. 

 책의 배경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기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수의사가 되고자 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제이콥은 부모님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거기다 유산에 대해 설명해 주겠다던 변호사는 제이콥에게 남겨진 유산이 전혀 없다는 소식을 전한다. 아버지는 지난 20여년간 진료비를 낼 돈이 없었던 마을 사람들로부터 콩과 달걀을 받았을 뿐이라고 말이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제이콥은 자신에게 일어난 믿어지지 않는,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에 몸부림치면서 괴로워 하다가 졸업전 마지막 시험을 치르게 된다. 하지만 시험도중 교실을 뛰쳐나오고 때마침 제이콥의 곁으로 기차가 다가온다. 덜컹덜컹 칙칙폭폭, 칙칙폭폭... 제이콥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현실에서 도피하듯 기차에 올라탄 제이콥에게 서커스 기차에서의 생활은 너무나도 낯선 환경이다. 당시의 시,공간적 배경을 떠올려 본다면 대략 어떤 캐릭터들이 등장할지 상상할 수 있을것이다. 탐욕스러운 총감독 엉클 앨은 도산하는 다른 서커스를 찾아가 필요한 연기자와 동물등을 헐값으로 사들이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다. 오거스트는 동물감독이면서 동물들을 학대하고, 기차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더러운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잔인한 사람이다. 동물 연기자 말레나는 오거스트의 아내이자 제이콥에게는 운명같은 사랑이기도 하다. 뒤이어 등장하는 코끼리 로지를 통해서 두 사람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기차 안에서는 엄격한 계급이 존재하고 어떤 이들은 동물들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서커스에 인생을 건다. 제이콥에게 서커스는 낯선듯 하면서도 또 하나의 '세상'인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제이콥의 생활은 '대공황'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 생활을 하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이 보내 주시는 학비와 생활비로 살았을테니 말이다. 대공황은 미국인들에게 아니 전 세계인들에게 원자폭탄같은 위력으로 삶을 위협하였듯이 제이콥에게도 한순간 인생의 '대공황'이 닥쳤다. 사람들에게 '서커스'는 유일한 오락이고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밀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신기한 것은 그 무렵 우리 나라에도 유랑극단 이라고도 불리었던 유랑서커스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유일하게 남은 동춘서커스단은 7-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극단으로 가끔씩 방송에 소개되면서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다. 요즘엔 단원들이 거의 중국무용단으로 이루어져 있다니 아쉽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명맥이 유지되었음하는 간절함도 있다.  

서커스에 관해 생각하다보니 문득 피카소가 떠오른다. 파리에 정착해 몽마르뜨의 세탁선에서 작업을 하던 피카소는 우울했던 청색시대를 지나 장미빛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피카소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또 하나 서커스가 있었다. 가난해서 끼니를 걱정할 정도였지만 매일같이 서커스를 구경다녔다고 한다. 공연과 함께 단원들의 생활에 관심이 많았고 그들과 친하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서커스... 어떤 이에게는 현실을 도피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삶의 모든 것이기도 했다. 낙심한 이들에게는 희망이 혹은 삶의 빛이 되어 주었고, 천재 화가에게는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었다. 서커스의 천막속에는 분명 웃고 즐기는 오락 그 이상의 '무엇'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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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국보 이야기> 서평단 알림
숨어 있는 국보 이야기
이정주 지음, 유성민 그림 / 가교(가교출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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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화재 뭐냐고 묻는다면... 예전 같으면 남대문, 불국사, 석굴암 이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부터 낙산사가 젤 먼저 생각난다. 우리나라 삼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한곳이고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한 곳 낙산사, 몇 년 전 유난히 산불이 많던 그 해 강원도 쪽에도 큰 불이 나서 낙산사를 휩쓸고 지나갔는데 절이 모두 타버리고 보물인 동종도 녹아 없어져 버렸다. 당시 암으로 투병중이시던 시어머니는 병상에 계시면서 낙산사에 시주를 하셨단다. 기와를 헌납한다고 하나? 하여간 울 아들 이름으로 시주를 하신 거다. 그 인연으로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낙산사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번째는 우리 문화재, 국보등 문화유산에 '감탄'이다. 우리 선조들은 풍류와 놀이를 즐길줄 아는 분들이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정'적인 성품을 가졌다. 문화재는 저마다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만들어진 후에도 이런저런 사연을 간직하였는데 그 사연들은 문화재 자체가 자지는 예술성과 어우려서 신비스러움을 뿜어낸다. 두번째는 '안타까움'이다. 먼저 나 자신부터 우리 문화재에 대해 너무나도 아는 것이 없었다는 반성이다. 물론 남대문, 부석사, 불국사, 선덕대왕 신종등 역사책에 등장하거나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문화재는 알고 있지만, 나머지 등장하는 대부분의 문화재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바가 없었다. ㅠ.ㅜ

<숨어 있는 국보 이야기> 이 책은 우리 문화재중 국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국보에 관련된 이야기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등과 함께 국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오는데 12가지 국보이야기가 너무 짧게 느껴져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금새 읽어버렸다. (이 책은 초등용이다 ^^) 그렇다면 국보란 무엇이고 누가 정하는 것일까? 국보는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훌륭한 솜씨로 만들어 졌는지, 얼마나 연구 가치가 있는지를 문화재 위원회에서 의논해 결정한다. 그리고, 국보에 매겨진 번호는 지정한 순서일 뿐 역사적 가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한다. 국보인 문화재의 종류는 건물, 탑, 불상, 석비, 금속제품(종 또는 장신구), 탈, 책과 그림, 그릇, 과학 기구등 아주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거의 사찰 건물 자체이거나 절과 관련된 것이 많다. 다시말해 목조건축물이 많아서 화재에 너무나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유지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방치되어 소중한 문화재를 잃는 경우가 많다. 낙산사의 동종이 녹아 내렸을때도  책임자는 본 뜬 것이 있으니 다시 만들면 된다고 인터뷰를 하였던 기억이 있다.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책임자의 모습을 바랬던 나로서는 그런 담담한 말투가 몹시 서운했다. 그 후 약속대로 다시 만들어졌지만 과연 그 종이 그 종일까. 도굴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문화재 주변을 24시간 감시할 수도 없고... 하며 인력과 예산 부족을 말하는 담당 공무원들의 하소연에 더 이상 뭐라 말하겠는가. 우리의 문화재를 보존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과거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이 무척 가슴 아프다. 

 한 집안의 가보라 하여도 대대로 소중히 여기고 후손에 전하는데 하물며 나라의 보물들은 어떻게 여겨야 하랴. 결국은 정책탓으로 돌린듯 하여 씁쓸하지만 먼저는 나와 우리의 관심이다. 소중한 문화재가 무관심 속에 버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흔히... 환경 문제를 이야기할 때, '자연은 후손들에게 빌려쓰고 있는 것'이라는 표현을 쓴다. 깨끗하게 쓰고 물려주어야 한다는 뜻일게다. 문화재 또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을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 뿐이다. 그것만 기억하자.

* 이 책은 알라딘 서평단 도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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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 털털털 웅진 지식그림책 6
김윤경 지음, 한승임 그림, 윤소영 감수 / 웅진주니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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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은 털보야. 얼굴에 까칠까칠한 수염이 덥수룩하고, 팔다리에도 굵고 시커먼 털이 수북해. 혹시 아빠는 늑대가 아닐까? " 본문인용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우리의 주인공은 익살스럽고도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털보 아빠를 힐끗 쳐다봅니다. 
"어라? 가만히 보니 누구나 털이 있네. 얼굴과 팔다리뿐 아니라 온몸에 털이 있어. 아주 짧고 가늘어서 눈에 잘 띄지 않았을 뿐이야. " 본문인용
아빠는 늑대가 아닐까? 라고 질문을 던졌던 주인공은 사실 '털 박사'님 이었나봐요. 털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네요. 지금부터 '털'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러 갑니다. 슈슝~~

먼저 우리 몸에 털이 없는 곳은 어디일까요?
이 질문을 여섯살, 아니 해가 바뀌어서 이제 일곱살이 된 준민이에게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손톱! 발톱! 눈알! 이라고 대답하네요.  아빠도 오세요~ 하고는 준민이 아빠한테 물어보니 세상에... 마치 둘이서 약속이나 한듯이 손톱! 발톱! 눈알! 이라고 똑같이 대답해요. 책에는 손바닥, 발바닥, 입술이라고 적혀 있는데 두 부자는 자기들이 말한 것도 정답이라면서 계속 우기는데요. 어쩌면 좋아요? ㅎㅎ

우리 몸에는 100만개가 넘는 털이 있어요. 그리고 500만 년쯤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침팬지처럼 털이 많았데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사냥을 하고 불을 다루면서 털이 점점 줄어들었지요. 하지만, 털이 모두 없어지지는 않았어요. 털은 아직 할 일이 있거든요. 털은 우리 몸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지켜주고, 피부를 보호해요. 또한 몸속과 바깥이 만나는 곳인 콧구멍, 귓구멍, 눈의 눈섭은 더러운 것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지요. 털은 어른이 되었음을 나타내주기도 하고, 털(머리카락)을 꾸며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기도 해요. 그런데 한가지, '아빠는 있고 난 없는 털! 엄마는 있고 난 없는 털!' 이라는 부분의 삽화가 너무 적나라해서 엄마 얼굴이 빨게 졌어요.  ^ ^;; 사실 우리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읽고 넘어가서 더 놀랬답니다.  ㅎㅎ

우리 아이가 털에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때가 생각나네요. 첫 장면의 주인공처럼 아빠 다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아빠 다리에는 왜 이렇게 풀(?)이 많아?" 그리고, 목욕하다가 "아빠는 털이 있는데 난 왜 털이 없어?" 또, 아빠랑 뽀뽀하자고 하면 "아빠 수염은 너무 따가워."라며 도망다니곤 했지요. 요즘은 헤어스타일까지 신경쓸 정도가 되었으니 정말 많이 발전했지요? ^^ 

<우리 몸 털털털> 이 책은 털에 대한 많은 지식이 담긴 책이에요. 앞서 언급한 이야기들 외에도 털이 어떻게 생기고 자라는지 털의 일생(?)과 윤기나는 털이 건강의 척도가 된다는 사실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답니다. 어떤 면에서는 털과 관련된 '과학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재미있는 삽화와 코믹한 전개등으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책이에요. 쉽고 재미있는 과학책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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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불행하다
카리 호타카이넨 지음, 김인순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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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 총 서른아홉 집을 돌아보았는데, 그때 건네받은 온갖 다양한 팸플릿을 전부 모아두었지요. 그렇게 모은 팸플릿 뭉치만 대략 15센티미터에 높이였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 팸플릿 속의 형용사들이 순전히 허구에 거짓말이라는 점이었죠." p.435  이 말은 핀란드 작가 호타카이넨이 했던 말이다.  내가 아는 핀란드는 일단, 미수다 따루의 나라? ㅎㅎ 그리고 관광자원이 풍부한 부유한 나라로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핀란드에서 집을 구입하는 과정은, 주택업자들의 횡포는 대한민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작가는 직접 집을 구입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이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2,3년 전쯤 집을 참 많이도 보러 다녔다. 호타카이넨처럼 그때 모은 팜플렛을 쌓으면 15센티도 넘을 것이다. 경품행사도 어찌나 많은지. 자동차를 준대서 열심히 응모도 해보고(그때 주민번호를 너무 많이 노출한 게 아직도 맘에 걸린다. 쩝~ ^ ^;;) 유명한 서예가를 초빙하였다고 해서 가훈도 여러장 받았다(액자는 알아서 맞춰야 한대서 둘둘말아 잘 보관한다고 두었는데 지금은 찾지도 못하겠다) 각종 허브티 시음회에 발맛사지까지 체험시켜주는 곳도 있다. 그런 잡다스런 이벤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생애 첫집을 장만한다는 기대감에 들떠 인테리어를 유심히 살피고, 소품도 눈여겨보며 언젠가 이렇게 꾸며놓고 살고싶다는 상상을 할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

주인공 마티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함께 연립주택에 사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어느날 아내는 쌓였던 불만과 불신이 극에 달해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가 버린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마티는 아내와 딸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소원하는데... 정원이 있는 멋진 주택을 구입하면 분명 가족을 되찾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집구하기 대작전에 돌입한다. 마티의 엉뚱하고도 막무가내식의 집구하기는 '블랙유머'답게 당혹스런 웃음을 짓게 만든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마티의 행동은 점점 '광기'처럼 느껴지면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작가는 마티라는 인물을 망가뜨리면서도(?) 오직 집을 구하기위해, 가족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평범한 남자임을 재차 확인시켜주려고 애쓰는 듯 보였다.   

현대인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인간의 삶을 위해 필수라는 '의식주'의 하나로 지친 심신을 달래는 안식처? 스위트홈? 그것은 집의 의미를 최소한으로 축소시킨 것에 불과하다. 집은 공공연하게 투자 내지는 투기의 대상이다. 또한 집이 브랜드화 되면서 어떤 집에 사느냐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식으로 위화감까지... --;; 최근에 읽은 재테크 책에 의하면 팔아야만 유동자산이 되는 집에 거금을 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계부나 저축,연금등 모든 부분에서 조언을 수용할 지언정 집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대출을 해서라도 장만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릴수가 없었다. 한해 저축할 수 있는 금액보다 더 치솟는 집값을 무슨수로 따라 잡는단 말인가.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수첩에 '부동산 중개인'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남겼다. 집값이 터무니없이 높게 하늘을 난다, 새들보다 더 높이. 과학들이 설계하고 조종사들이 조종하는 비행기들이 그렇듯 하늘끝까지 치솟는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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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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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옛 선인들에 관한 책을 대할 때면 수세기 전의 상황이 오늘에 재현되는 것에 대한 신기함과 미래를 예측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기대감이 앞선다. 책의 배경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조선 후기다. 심각한 경제적 위기 상황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민심은 흉흉하였다. 이때, 조선 후기 최고의 개혁 군주로 손꼽히는 정조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정제정책을 수립하는데...  조선 후기의 모습은 IMF 이후 우리 사회에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가 심화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군왕과 정치가들이 해결하여야 문제로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것, 부의 재분배, 토지개혁, 일자리 창출등으로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당시 활동하였던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정치,경제등 조선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김육이 주장했던 대동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대동법은 조세를 거두어 들이는 방법에 대한 개혁으로 당시 지방 군현의 가구 단위로 부과하던 공물을 토지 소유 면적으로 부과하도록 바꾸고, 조세 방식을 지방의 토산물로 받던 것을 일정한 수량의 베나 쌀로 통일해서 납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앞의 이유는 타당하나 뒤의 주장에는 오히려 지방의 토산물이 더 낫지 않을까 고개 갸우뚱해 진다. 그러나 지방, 중앙 할것없이 조세를 담당하는 관리들의 횡포가 만연하였으니 운반하기 어려운 토산물을 납부토록 하거나 지방의 토산물이 아닌 것을 납부토록 하여 결국은 대납,방납(관리가 대신 납부하고 대금과 이자를 받음)의 형태로 막대한 이득을 챙겼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었다. 대동법이 광범위하게 시행되기까지는 무려 10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백성의 것을 빼앗던 이들은 도둑질을 멈추려 하지 않았고, 지주들은 고통을 분담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일관된 정책을 고수하였고, 또한 그 정책을 받들 신하들이 있었기에 법이 폐기되지 않고 시행되었던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건지. 100년... 참으로 오랜 세월이다. ^ ^;;
 
개혁군주 정조를 보필하였던 최고의 명재상은 바로 채제공이었다. 채제공은 남인으로 이전 80여 년 동안 노론 출신이 아닌 사람이 정승 자리에 오른 적이 한번도 없었을 만큼 파격적인 인사였다. 진보적 학문과 실학사상을 익혔던 그는 상업과 시장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로 시장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정조에게 금난전권 혁파를 청하기도 하였다. 채제공은 화성 건설의 총지휘를 맡은 인물이기도 하다. 화성은 채제공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이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결과로 10년 공기를 2년 6개월로 단축하였다. 공사전에 설계에서 완공 후까지 모든 상황을 예측하여 공사 비용을 경제적으로 산출하였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약용의 거중기같은 과학기술기기들이 동원되고, 돌대신 벽돌을 사용하고, 빈농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면서 노동력을 충원하는등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역사를 이루어 냈다. 천민 노동자의 반나절 임금까지 계산하여 지급하고 기록으로 남겼을만큼 건설과정의 철저함과 세세함에 놀라고 인력, 물자등의 효율적 운용에 감탄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정조가 죽은 후, 개혁을 반대하던 무리가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정조를 따르던 인재들이 가을날의 낙엽처럼 힘을 잃어버린 사실이다. 가진자가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다보니 결국 부의 재분배부터 모든 것이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혔다. 개혁은 한 사람의 군주만으로도, 몇몇의 충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하늘이 임금을 내었듯이 군주와 신하가 하나가 되어 이루어내는 것이다. 물론 훗날에 개화파와 그 이후 역사, 오늘날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정조가 자신을 믿고 따른던 이들에게 더 넓은 길을 열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전체적으로는 정약용과 박지원같은 잘 알려진 인물들 외에 보다 많은 경제학자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당시 민생과 정치, 경제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어서 흥미로운 책읽기 였다.

유명한 경제학자와 경제 이론을 떠올려보더라도 '경제학'은 전적으로 '서양'의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저자는 경제학이 서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이 책을 저술하였다.  등장하는 13인의 경제학자들은 저마다의 이론을 내세워 경제를 구하고자 하였다. 그 중에는 지나치게 이론에 치우쳐 현실에 적용하는데 문제가 많았던 의견도 있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실학자들의 노력은 실제로 백성들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이론에 그쳤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헛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이 후세에 전하여져 또 다른 경제학자들에게 수용 내지는 비판의 형식으로 영향을 미침으로써 경제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근대 경제학이 봉건 체제에서 근대화로 이행되는 과정을 통해 확립되었듯이 조선의 경제학자들도 우리의 상황에 맞는 독자적인 경제 방안을 모색하였음을 주장하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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