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역사와 옛 선인들에 관한 책을 대할 때면 수세기 전의 상황이 오늘에 재현되는 것에 대한 신기함과 미래를 예측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기대감이 앞선다. 책의 배경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조선 후기다. 심각한 경제적 위기 상황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민심은 흉흉하였다. 이때, 조선 후기 최고의 개혁 군주로 손꼽히는 정조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정제정책을 수립하는데...  조선 후기의 모습은 IMF 이후 우리 사회에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가 심화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군왕과 정치가들이 해결하여야 문제로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것, 부의 재분배, 토지개혁, 일자리 창출등으로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당시 활동하였던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정치,경제등 조선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김육이 주장했던 대동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대동법은 조세를 거두어 들이는 방법에 대한 개혁으로 당시 지방 군현의 가구 단위로 부과하던 공물을 토지 소유 면적으로 부과하도록 바꾸고, 조세 방식을 지방의 토산물로 받던 것을 일정한 수량의 베나 쌀로 통일해서 납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앞의 이유는 타당하나 뒤의 주장에는 오히려 지방의 토산물이 더 낫지 않을까 고개 갸우뚱해 진다. 그러나 지방, 중앙 할것없이 조세를 담당하는 관리들의 횡포가 만연하였으니 운반하기 어려운 토산물을 납부토록 하거나 지방의 토산물이 아닌 것을 납부토록 하여 결국은 대납,방납(관리가 대신 납부하고 대금과 이자를 받음)의 형태로 막대한 이득을 챙겼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었다. 대동법이 광범위하게 시행되기까지는 무려 10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백성의 것을 빼앗던 이들은 도둑질을 멈추려 하지 않았고, 지주들은 고통을 분담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일관된 정책을 고수하였고, 또한 그 정책을 받들 신하들이 있었기에 법이 폐기되지 않고 시행되었던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건지. 100년... 참으로 오랜 세월이다. ^ ^;;
 
개혁군주 정조를 보필하였던 최고의 명재상은 바로 채제공이었다. 채제공은 남인으로 이전 80여 년 동안 노론 출신이 아닌 사람이 정승 자리에 오른 적이 한번도 없었을 만큼 파격적인 인사였다. 진보적 학문과 실학사상을 익혔던 그는 상업과 시장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로 시장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정조에게 금난전권 혁파를 청하기도 하였다. 채제공은 화성 건설의 총지휘를 맡은 인물이기도 하다. 화성은 채제공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이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결과로 10년 공기를 2년 6개월로 단축하였다. 공사전에 설계에서 완공 후까지 모든 상황을 예측하여 공사 비용을 경제적으로 산출하였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약용의 거중기같은 과학기술기기들이 동원되고, 돌대신 벽돌을 사용하고, 빈농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면서 노동력을 충원하는등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역사를 이루어 냈다. 천민 노동자의 반나절 임금까지 계산하여 지급하고 기록으로 남겼을만큼 건설과정의 철저함과 세세함에 놀라고 인력, 물자등의 효율적 운용에 감탄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정조가 죽은 후, 개혁을 반대하던 무리가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정조를 따르던 인재들이 가을날의 낙엽처럼 힘을 잃어버린 사실이다. 가진자가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다보니 결국 부의 재분배부터 모든 것이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혔다. 개혁은 한 사람의 군주만으로도, 몇몇의 충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하늘이 임금을 내었듯이 군주와 신하가 하나가 되어 이루어내는 것이다. 물론 훗날에 개화파와 그 이후 역사, 오늘날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정조가 자신을 믿고 따른던 이들에게 더 넓은 길을 열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전체적으로는 정약용과 박지원같은 잘 알려진 인물들 외에 보다 많은 경제학자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당시 민생과 정치, 경제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어서 흥미로운 책읽기 였다.

유명한 경제학자와 경제 이론을 떠올려보더라도 '경제학'은 전적으로 '서양'의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저자는 경제학이 서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이 책을 저술하였다.  등장하는 13인의 경제학자들은 저마다의 이론을 내세워 경제를 구하고자 하였다. 그 중에는 지나치게 이론에 치우쳐 현실에 적용하는데 문제가 많았던 의견도 있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실학자들의 노력은 실제로 백성들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이론에 그쳤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헛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이 후세에 전하여져 또 다른 경제학자들에게 수용 내지는 비판의 형식으로 영향을 미침으로써 경제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근대 경제학이 봉건 체제에서 근대화로 이행되는 과정을 통해 확립되었듯이 조선의 경제학자들도 우리의 상황에 맞는 독자적인 경제 방안을 모색하였음을 주장하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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