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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 - 세계도시여행
이나미 글 사진 / 안그라픽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터키는 이슬람 문화권이면서도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나라다. 그 친숙함이 월드컵 이후 갑작스럽게 관심이 커지면서 형성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한국전쟁에 가장 많은 군인이 참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금까지의 무관심이 너무나 미안했는데 국제사회에서 그들이 보여준 변함없는 우호적인 모습에는 약간 의아스럽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말하기 이전에 고구려와 돌궐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역사에서 복잡한듯 일관되게 유지되었던 양국의 긴밀한 유대관계는 '형제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첫장면은 여행지에서의 첫날 살랴트(이슬람에서 하루 다섯 차례 예배를 드리는 의식)를 알리는 소리에 잠을 깨면서 시작한다. 살라트 의식이야말로 이슬람 문화권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는 낯선 문화가 아닐까 싶다. 소음으로 들릴만큼 엄청나게 자극적인 소리, 여행자들에게는 신기할지 모르나 그들에게는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것 만큼이나 일상적인 삶일 것이다. 저자는 과거 대한민국의 새벽을 깨웠던 "새벽종이 울리네~ "라는 소리에 비유했지만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이 될수도 있고, 통금도 될 수 있다. 훨씬 이전으로 올라가서는 상투 머리와 쪽진 머리도 될 수 있을려나. 다른 문화권을 방문할때의 낯설음은 싫지 않은 독특한 자극이다. 어쩌면 여행의 진정한 목적이야말로 낯설음을 익숙함으로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두 가지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 가지 않을 수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돌출행동으로 이슬람 전체를 평가해서는 안된다. 사실상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비율은 전체 이슬람인들에 비하면 극소수일뿐이며 이슬람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평화'라는 사실이다. 중동지역에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들이 호전적인 민족이어서가 아니라 강대국들의 뒤얽힌 이해관계가 더 큰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다른 한가지는 이슬람 여성의 인권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거리에서 마주친 히잡을 쓴 소녀들의 밝은 웃음을 통해 '히잡'이 더이상 여성의 억압을 상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히잡이 무채색에서 화려함으로 변신하였을뿐만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 히잡을 벗어던진 여성들도 눈에 많이 띈다는 것이다. 히잡이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여인들의 삶의 일부가 되었고 그들 스스로가 히잡을 편하게 생각한다면 외부에서 써라 말아라 입댈 것이 못된다는 주장에도 공감한다. 그리고, 이슬람 자체가 여성들을 억압하기보다 남성에 의한 남성 중심의 잘못된 해석(이는 세계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다)이 더 큰 문제라는 점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 문화속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여성에 대한 잘못된 사고방식이 치명적인 것은 사실이다. 터키는 그나마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가장 개방적인 나라이며 다른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아직도 공공연히 명예살인, 강제결혼, 다수의 부인, 히잡(차도르, 부르카 등)의 강제 착용등 여성의 인권이 심각한 수준이다. 가족의 명예를 들먹이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를 죽이라고 사주하고 오빠에게 누이를 죽이도록 종용한다. 이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벌이 가볍기 때문이라고 한다. 끔찍하다못해 엽기적이다. 그들 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참견이나 간섭은 피하더라도 최소한 여성에 대한 '교육'의 기회만이라도 확보함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느끼고 변화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히잡 쓴 소녀들의 웃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은 두 번째 만난 터기 여행서이다. 앞서 만난 책은 오소희님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라는 책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본적이 없는 내게 세살배기 아이와 외국여행을 감행한 저자의 용기는 무척 충격적이었다. 여행지에서 아이와 함께한 순간들을 감성적으로 써내려간 그 책을 읽은 후, 줄곧 터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차여서 이 책이 더욱 반가웠다. 책을 받아 든 순간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표지와 정성들인 제본에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얼핏 넘겨보았을 뿐인데 글반 그림반이랄까. 게다가 그림은 거의 한페이지 혹은 두페이지에 걸쳐 시원시원하게 실려있어 화보집 같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 책의 저자인 이나미님은 대학생 딸과 함께 이스탄불을 여행하였다. 두 저자의 공통점은 여행을 통해 자신들의 경험했던 소중한 것을 자녀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내 아이도 여행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학연수등을 겸한 1석 2조, 3조는 바라지도 않는다. 두려움 없이 세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사람, 여행이 주는 '감동'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느끼고 오는, 여행을 위한 여행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신 니가 벌어서 가라~ ^ ^;;
끝으로 터키인들의 보편적 인식과는 달리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잘 몰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전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교육의 차이 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역사책에서는 돌궐에 대해 스쳐지나가듯 다루고 있지만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대한 역사적 자부심 강한 터키의 경우는 그 시대의 역사가 소중한만큼 교과목에서도 상세하게 다루어지다보니 우리가 터키를 아는 것보다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좋은 인식이 자리잡았던 것이라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무엇이 계기인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쨌거나 터키는 더이상 낯선 나라가 아니며, 월드컵 때 서로가 보여준 끈끈한 우정 그 자체로써 양국간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