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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첫장면은 주인공 호은이 학교앞으로 불쑥 찾아온 아빠를 만나면서 시작한다. 아빠는 재혼한 부인의 딸 승지를 호은에게 데려다 주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호은은 승지와 함께 엄마의 집으로 돌아오고, 엄마는 곧바로 아빠를 찾아 나선다. 솔직히 좀 당황스런 출발이었다. 아빠는 왜 호은에게 승지를 데려다 주고는 사라져 버린 것일까. 또한, 그런 무책임한 전남편을 찾아 나서야만 했던 호은의 엄마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결과적으로 아빠찾기에 실패한 세 여인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혼한 남성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마도 가사와 육아라고 대답할 것이다. 반대로 이혼한 여성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경제력'을 꼽을 것이다. 어쩌면 부부가 서로에게 많이 기대었던 부분이 이혼 후에도 가장 큰 어려움으로 와 닿는 것이리라. 호은의 엄마가 '집'을 가졌다는 사실은 경제적으로 안정권에 접어들었음을 뜻할 뿐만 아니라 내적 공허함을 초월한, 세상의 그 어떤 외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줄 공간을 가졌다는 것, 다시말해 온전히 자유롭게 존재함을 의미한다.
주목할 것은 '엄마의 집'이 결코 손쉽게 얻어진 결과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호은의 아빠는 운동권 학생으로 시위도중 쫓기다가 엄마의 화실로 뛰어들면서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모든 세속적인 것들을 경멸하며 겁없이 시작한 신혼은 차가운 현실앞에 차츰 무너져 내리고... 엄마는 점차 가정에 충실한 아빠를 원하게 된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던 아빠의 모습은 가족에 대한 무책임함과 무능력으로 비치게 되고, 엄마도 변절자라는 양심의 가책을 떨쳐내지 못한채 이혼하게 된다. '집'을 가지겠다는 일념으로 힘든 노동을 견디어 내야만 했던 엄마의 삶도 힘들었겠지만 호은도 어린시절을 엄마와 떨어져 외가에서 성장하는등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다.
이즈음에서 호은의 아빠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게된다. 아빠는 한마디로 '미치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였다. 이 얼마나 관대한 분위기인가. IMF이후 경제적 이유로 이혼하는 가정이 급격히 늘고 있다.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고, 일을 하더라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아버지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이 가혹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가정사라고 생각되었던 '이혼'이 사회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음을 또한 그 자체로 사회적 문제임을 말하고 있다.
문학작품은 작가가 집필활동을 했던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한다. 역사적 사실이나 그에 바탕을 둔 책을 펴낸다 하더라도 현실의 관점 에서 재평가된 역사가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것일진데 현대문학에서는 '현재'가 고르란히 반영된다고 하겠다. 불과 수십년전만 하더라도 여성에게 이혼은 수치스러운 것이었고,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더라도 가정만은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호은의 엄마를 통해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준다.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서로에게 책임에 묻지 않았고 그렇다고 부부의 '재결합'에 대한 뉘앙스를 담지도 않았다. 호은의 엄마처럼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사는 이들에게 편견없는 시선으로 대해 줄것을, 또한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회적인 제도와 장치를 마련해주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 또한 바람직한 현상들이다.
사랑은 현실이지요? 이제 스무살이라는 후배, 까마득한 후배가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후 오랫동안 죄책감에 빠졌었다. 그녀가 떠올릴 핑크빛 하트에 검은 크레파스로 '엑스자'를 그려넣은 사실에 대해. 다음에 만나면 전경린 작가의 말을 전해주어야 겠다. 사랑은 어쩌면, 달나라에 가는 것과 비슷할 거라고.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별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무한의 우주를 지나 꿈꾸어온 달에 착륙하는 여행. 그리고 달나라에 갈 수는 있지만 그곳에서 살 수는 없는 것처럼, 사랑 속에 안주해서 살수도 없다고 말이다. 지상으로 돌아올 때는 우주선을 버리고 각자의 낙하산을 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삶은 사랑의 열정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로 산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이 말을 해주면 죄책감이 더 깊어 질려나... ^ ^;;
덧붙임.... 누구나 사랑의 열정으로 살아가고 싶어한다. 나 또한 그렇게 살고싶다. 평생토록...
그런 바램이 냉정한 현실을 감싸 안아주고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