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전쟁 -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과 세계 최강 육군국 일본의 격돌 우리역사 진실 찾기 2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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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 관심이 많다. ^^ 역사는 그저 지나가버린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곤 한다.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대할 때면, 혼란스럽다기 보다 오히려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특정 인물이나 사건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재평가 되었다가 후대에 또다시 재평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역사는 시대에 따라,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역사는 카메라에 찍힌 피사체처럼 고정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에 따라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는 것이다. 
 

 <조일전쟁>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도 '다양성'이라는 부분과 연결된다. 우선은 임진왜란을 조일전쟁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을 제목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맘에 들었다. 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국토는 황폐해 지고 왕궁은 불탔으며 수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다. 더구나 명군이 출병했고 조선에서도 의병을 비롯해 수많은 영웅을 낳았던 사건을 단순히 왜란이라고 주장하다니 이것은 분명 역사적 오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감과 기대로 시작했던 책 읽기는 시작과 동시에 암초에 부딪혔다. 책읽다가 던져버리고 싶었다, 라는 경험을 들은 적이 있는데 기분이 딱 그랬다. --;; 차례에서 부터 '거지 같은 공신 책봉', 이거 왠 막말이지? 라고 했는데 갈수록 가관이다. 본문 첫페이지부터 '등신 같은 선조 임금', '일본애들은, '애새끼라도 오기가 있으면', '쳐먹고 놀다가', '개같은 서인'(p.25-27) 등등 표현이 너무 거칠다. 술 한잔 걸치고 까마득한 후배들에게나 할말이지(현실에서 이런 선배 만나면 다시는 안볼거지만) 대중서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A가 B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여 C한테와서 육두문자 섞어가며 B욕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C는 B에게 향할 것이기는 하나 면전에서 욕을 들어야만 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상황 매우 싫어한다. 그냥 자초지종과 억울한 일만 전달하고 공감을 호소할 것이지 왜 욕까지 해대냐는 것이다. 더구나 역사학자라면서 이토록 감정적인 표현을 쓴다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주장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냉철하게 판단하고 증거 자료를 제시하면 될 것을... 이렇게 막나가니 객관성이 떨어지고 횡설수설하는 것 처럼 보인다. 

     

 일단은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임진왜란 보다 조일전쟁' 이라는 주장에 공감하고, 당시 선조의 무능함과 썩어빠진 조정 신료들에 관한 부분도 인정한다. 솔직히 신라나 고려에 대한 사료가 워낙에 부족한 이유도 있고, 근대와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보니 조선시대가 많이 비춰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교니 성리학이니 저자가 흥분하는 것 만큼이나 싫어하는 독자들 많으리라 생각한다. 나라가 위급한 상황이나 천민들은 군에 지원할수도 의병으로 활동할 수도 없어 그들끼리 뭉쳐서 싸워야만 했다. 전쟁 후 논공행상의 부당함은 말할 것도 없고 억울하게 끌려간 백성들을 향한 차가운 시선은 그 시대를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하는 아픔이었다. 

 

 우리 역사 바로 알기에 대한 의견은 좋은데 이순신 장군의 키가 실제보다 부풀려 졌다든지 해전의 승패에 연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저자 스스로도 밝혔듯이 '해전다운 해전'의 기준과 승과 패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 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말이다. 이순신 장군의 최후에 대한 자살설, 은둔설과 원균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서 거북선의 실제 모습까지도 수년전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 나왔던 이야기라서 새로울 것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순신이라는 영웅과 거북선은 역사의 한 부분에 머물지 않고 애국심을 상징하는 '신화적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유별나서가 아니라 세계 어느라든지 마찬가지다. 역사의 왜곡이 아닌, 역사의 진화인 것이다.    

  

 끝으로 한 마디만, 초장에 머리말에서 역사 왜곡의 심각성은 '수많은 멍청한 독자들이 조작된 역사에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부분에서 하도 어이가 없어서 소리 내어 웃었다. 역사 왜곡이란 그 시대의 정치가들과 그에 부응하는 역사학자들 때문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독자는 학자들이 쓴 글을 통해서 지식을 습득하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전문가들 보다 더 역사를 왜곡한다는 말인가? 대중들이 잘못된 역사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면 학자로서의 게으름을 먼저 탓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전적가지고 딴지 걸 여력이 있다면 동북공정과 독도 문제에 열정을 쏟으라고 말하고 싶다. 대신 욕은 하지 말고. 이런 문체로 중국이나 일본에 대응한다고 생각하면 그들이 우리 수준을 어찌 볼지 생각만해도 낯이 뜨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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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09-09-04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백지원씨의 책은 왕을 참하라를 읽었는데요. 상하로 된 두권의 책을 읽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정말 돈이 아까워 오기로 읽었던 기억이. 그 후 두번 다시 이분의 책은.ㄷㄷㄷ

푸른바다 2009-09-07 11:43   좋아요 0 | URL
제가 평소에는 긍정적인 책읽기와 서평을 자부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다소 격한 표현을 쓰게 되었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독자들에게 어떤식으로 다가가느냐도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책인 것 같아요. 서평 올려놓고도 괜시리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빨간 클립 한 개
카일 맥도널드 지음, 안진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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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니 우리 옛이야기 중에 '좁쌀 한 알'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총각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다가 주막에 묵게 되었는데 주인에게 특별히 좁쌀 한 알을 보관해 달라고 요청한다. 주인은 어이가 없어 생각 할 것도 없이 담 너머로 던져 버렸는데 다음날 총각이 좁쌀을 내 놓으라고 하고, 주인은 쥐가 먹었다면서 둘러대고는 총각의 요구대로 쥐를 잡아준다. 이 쥐는 고양이, 말, 황소를 거쳐 정승댁 사위가 되는 영광으로 이어지게 된다. 전래동화의 '좁쌀 한 알'은 현실에서 '빨간 클립'이 되었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마침내 실현되었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신기한 일인가.  

 

카일 맥도널드는 약 1년간 총 열네 번의 거래를 통해 집을 장만한다. 처음 시작은 빨간 클립이었고 다음은 물고기 펜 한 개, 문손잡이 한 개, 캠핑 스토브 한개, 빨간 발전기 한 개, 즉석 파티 세트, 스노모빌 한 대, 야크 여행권, 큐브밴 한 대, 음반 취입 계약서 한 장, 피닉스의 일 년 무료 임대권, 앨리스 쿠퍼와의 오후, 키스 스노 클로브 한 개, 영화 출연권 그리고 다음이 키플링의 집 한 채가 되었다. 위의 순서를 보면 뭐랄까...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숫자가 연상된다. 시작부터 몇단계가 지날때까지도 클립 한 개의 가치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물론 클립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저 거래를 성사시킨 것 자체로 만족스러운 상황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말 '크고 좋은 것'이 그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여기에는 사소한듯 보이지만 중요한 것이 있다. 매번 거래 때마다 같은 셔츠를 입는다든지 당사자가 만나서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는등의 어떤 형식을 갖추어야만 거래가 성립된다는 점등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는 것도 그렇고 서너번째 거래부터 개인블로그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거래 상황을 업데이트하고 컨트롤하면서 자신이 이 일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를 알렸던 것이 언론의 관심을 끌게된 이유가 아닐가 싶다.  지역신문이나 라디오 방송등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그와 거래를 원하는 사람들이 폭팔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는 억세게 운도 좋은 사람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에겐 운도 따라야 하고, 인복도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들은 무언가 남과는 다른 사고를 하고, 냉철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사람들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도 그 만의 특별함이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가진 것보다 '크고 나은 것'과 교환해야 하지만 그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 자체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느 순간 카일은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각종 언론에 알려지게 된다. '피닉스의 일년 무료 이용권'을 거래할 쯤에 일부 사람들은 그를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기를 원했고 최종 목표인 '집'을 제안했다. 하지만 카일은 철저하게 자신이 가진 것을 진심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 유용하게 쓸 사람과 상대가 가진 것을 교환하고자 하는 원칙이 있었고 이는 최종 거래시까지 지켜졌다.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 참으로 엄청나다. 책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전하는, 많고 많은 '자기계발서' 중 한 권이겠지 했는데 실화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갑자기 읽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나는 것이었다. 몇번의 거래후에 그만둘법도 하구만 자칫 비웃음을 살지도 모를 일을 끝까지 해낸 끈기도 대단하고, 구두로 성사된 거래를 매듭짓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간 정성도 대단하다. 물론 먼 거리의 경우 교환만을 위해 이동한 적은 없다. 그는 매사에 치밀하고도 신중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흘리면 허리 굽혀 줍지도 않을 보잘것 없는 클립하나로 꿈을 이루다니... 정말 대단한 청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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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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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나의 독서량이나 방식이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다. 가능하면 두루 다방면에서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떤 책이 좋을까. 어떤 책이 재미있을까 많이 고민을 하게 되는데 더글러스 애덤스 라는 작가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 정말 많이 들어봤다. 솔직히 두께와 표지만으로도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책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SF 판타지이면서 지나치게 황당한 스토리라는 의견도 들었던지라 망설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이 책을 통해 작가의 필력을 느끼고 싶어 읽게 되었다.

 

 "제 탐정사무소에 '성스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모든 사물은 기본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일처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세상만사가 돌아가는 패턴, 그리고 이리저리 얽혀 있는 관계 속에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죠. (p.184)" 

 

 그냥 탐정사무소도 아니고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라는 이름이 무척 궁금했었는데 주인공이 시원스럽게 대답해 준다. 더크 젠틀리는 사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고리들을 파악하는데 특별한 능력이 있는 인물이다. 학창시절에는 시험 문제를 보기 전에 답안을 미리 맞추기도 했는데 비록 문제아로 찍히긴 했지만 그가 가진 능력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능력을 노부인들의 고양이를 찾아주는데 쓰고 있다니 좀 괴짜이긴 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고든 웨이라는 인물은 유령이 되어 떠돌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리고자 하고, 더크 젠틀리는 동창인 리처드의 누명을 벗겨주기위해서 살인 사건을 조사한다. 리즈 교수는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과거의 변화가 현재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다. 40억년전, 지구에 외계인이 왔었는데 착륙선이 폭팔하면서 외계인중 한 영혼이 지구를 떠돌게 되었다. 그 외계인은 오랜 세월을 거쳐 지구에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착륙선의 폭팔을 막고싶어한다.     

 

 '도대체 이게 뭔 소리람...' 책 읽으면서 이 생각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SF판타지에 대한 이해력 부족인지 앞부분에서 여러 스토리가 한꺼번에 전개되자 내용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서는, 소설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줄거리가 파악이 안되기는 사라마구의 <수도원의 비망록> 이후 오랜만이다. ^^;; 더크 젠틀리는 사물은 기본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복선내지는 암시이기도 한데 책의 내용도 마치 퍼즐을 맞추어 나가듯이 조금씩 윤곽이 들어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감탄하기 보다는 궁금한 것이 많은 책으로 남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일반적으로 과학과 영혼에 관한 이야기는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는 외계인, 타임머신과 함께 영혼, 빙의, 외계인의 영혼 등과 같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으로 이루어져 신선한 느낌이다. 그리고 인류의 탄생에 있어서 신화적인 요소나 과학적인 면보다 외계인을 등장시킨 점도 독특하다. 책 읽을 때마다 작가들의 상상력에 감탄하곤 하는데 더글러스 애덤스의 경우는 상상력의 폭이랄까 범위가 굉장히 넓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4차원적인 사고를 가지지는 않았을지 책 내용만큼이나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커져만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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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릴린 - 이지민 장편소설
이지민 지음 / 그책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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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나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아름답다기보다 견딘다는 말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견디는 자만이 아름다움의 기회를 갖는다. 어느 책에서 본 이 문구를 나는 벌써 몇 년째 의혹에 시달리며 몸소 시험해보고 있는 중이다. p.13"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그녀는 오늘도 죽음을 생각하면서 출근을 한다. 얼굴에는 아낌없이 분가루를 바르고, 낡은 스타킹에 구두코가 닳은 슈즈, 구멍 난 레이스 장갑, 거기에다 맥주로 감아 노랗게 탈색된 머리가 유난히 눈에 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은 마치 그녀가 '미군들이 쓰다 버린 인형' 일 거라고 생각하며 손가락질 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미군부대에서 번역일을 하고 있다. 김애순이란 본명보다 앨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는, 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처를 가진 여인이다.   

 

 전쟁전만 해도 일본에서 그림을 공부하며 귀하게 자랐던 앨리스는 귀국 후 미군정 공보처에서 일하던 여민환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유부남이었던 여민환은 가정을 버릴려는 의지가 없었고 그런 사실이 앨리스로 하여금 복수를 결심하게 만든다. 그녀가 받았던 상처만큼 그도 마음이 아프기를 당혹해 하기를, 단지 그 정도만 바랬을 뿐이었다. 그녀는 몰랐던 것이다. 한순간의 치기어린 행동이 전쟁이라는 변수와 맞물리면서 이토록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될줄은... 그로인해 너무나 오랜 세월을 고통속에서 보내게 될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 

 

"하얀 눈가루가 꽃잎처럼 날리고 마릴린 먼로는 무대 한가운데 서 있다. 그녀의 블론드는 지금 이 시간 모든 브라운과 레드와 블랙을 무의하게 만든다. (중략) 열이 나고 아플수록 그녀는 무대 위에 서야 한다. 외롭고 고독할수록, 오해받고 거부당할수록, 그녀는 사람들 앞에 있어야 한다. 어쩌면 그녀는 한 남자의 사랑도 받지 못하면서 모든 남자를 사랑해야 하는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p.95)"

 

 앨리스는 때마침 한국에 위문공연을 온 마릴린 먼로의 통역을 맡아 3박 4일의 일정을 함께 하게 된다. 그런데 앨리스와 마릴린... 이상하게도 닮았다. 만인의 연인이지만 외로움에 움츠러든 세기의 스타 먼로와 전쟁으로 인해 산전수전 다 겪고 정신줄까지 놓아버렸던 적이 있는 앨리스가 묘하게도 닮은 것이다. 화려한 의상과 짙은 화장으로 외로움도 감추고 슬픔도 감추고 상처도 감춰야만 하는 생활, 두 사람은 상대방의 아픔과 삶에 대처하는 방식에 공감하며 말없이 서로를 보듬어 준다. 

 

 <나와 마릴린> 처음엔 '모던 보이' 원작자의 작품이라는 이유와 퓨전시대극에 대한 관심으로 가볍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괜찮은 작품을 만났다. 한국 전쟁당시 유엔군과 북한 포로 사이에서 통역을 하던 여인의 사진 한 장과 한국에 위문 공연을 왔던 마릴린 먼로의 사진, 이렇게 두 장의 사진에서 소설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작가의 상상력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아름답던 그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작가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나로서도 무척 궁금하다. 그리곤 알수 없는 이유로 코끝이 찡해진다.  

 

 무수히 많은 책에서 전쟁과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전쟁의 검은빛과 사랑의 핑크빛은 너무나 강한 대비를 이루면서 독자들의 가슴을 울린다. 이 책에서는 특히 섹시함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마릴린 먼로를 등장시킴으로써 더욱 강열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는데, 마릴린과 앨리스가 동질감으로 이어진 모습을 통해 화려함의 이면에 감추어진 인간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폐허 속에서도 밤마다 댄스홀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미친듯이 살아가는' 치열함이랄까 슬픔을 잊기위해 몸부림치는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전쟁에 대한 아이러니는 그 시대만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일제 강점기가 남긴 흔적은 많아도 전쟁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줄어들고, 삶의 질을 고민하는 시대가 오면서 때론 물질적 풍요가 '휴전'이라는 상황을 잊어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점차 줄어들고 젊은 세대들은 전쟁을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만나게 된다. 전쟁을 떠올릴 때, '사랑을 애틋하게 만드는 배경' 쯤으로 이해하지 않기를, 전쟁으로 인해 이 땅이 얼마나 피폐해 졌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그리고 살아 남은 자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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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 상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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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로마나 이후 지중해의 수난사가 담겨있어요. 시오노 나나미의 필력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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