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경 유착에 그 어떤 신뢰(?)마저 느끼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반갑거나 하는 부류의 것은 아니어도 거기에는 일정하게 약속된 그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 우호적인 입장을 -비록 '경제'라는 말로 대체하지만- 대변해주고, 기업은 그런 정부가 운영되도록 뒷받침해주고 여러 노후자리까지 알아봐 주는, 불치의 서로를 서로가 케어해 주는 세련된 관계로 발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미르·K스포츠 재단 문제가 지면화되고, 그 과정에서 비선실세라고 하는 이들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는 등의 문제를 겪으면서 나의 순진했던 믿음이 배신감마저 느낀다. 해당 문제가 지금과 같이 다뤄지기 한참 전인 15년 11월 [한국경제]에 실린 '이런데도 법인세를 올리자고?'라는 제목의 칼럼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안 믿고의 판단 시비를 불식시킬만큼 '안 봐도 비디오' 수준의 현 작태를 소개했다.


 '재단법인 미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지난달 문을 연 문화재단이다.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한류를 넘어 음식과 의류, 라이프 스타일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겠다며 정부가 주도해 세운 조직이다. 당연히 정부 재정이 투입됐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16개 기업이 486억원을 출연했다. 기업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문화융성정책에 화답한 결과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과연 그럴까. 몇몇 기업에 물었다. 미르에 왜 돈을 냈냐고. 답은 "내라니까 냈다"였다. 누가 내라고 했느냐고 다시 물었다. "다 아시면서"라는 꼬리 없는 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111880821


 이게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고 줄창 주장하는 국가의 면모다. 물론 그렇다고 해당 사안에서 기업이 피해 신분에 머물 수는 없다. '내라니까 내야' 하는 기업의 사정 또한 '다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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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픽션일 것이다.


 전의 직장을 퇴직하고 한 4개월을 놀게 되었다. 분명히 하자면 그런 타동형보다 놀았다는 자동형이 맞을 것이다. 당연히 집은 나를 배려하기 위해 직접 외색하지 않았지만 달라진 공기를 나는 은연 중에 느끼고 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나왔고, 나와서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 나는, 스펙이 무덤처럼 쌓이는 현실과 그 어떤 접점도 찾지 않고서 무의미하게 열람실을 오가는 동선만을 그리며 일상이라는 사치스러운 복을 누리는 이기적이고 무능력한 아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샌가부터 사용자성이 문제 되지 않는 계약직, 그러니까 사용기간에 정함이 있는 있는 근로지위에 일을 하고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 앞에 아버지가 선택한 방법은 '로또'였다. 일이 없어 늘 고용불안에 놓인 아버지가 퇴근하고 가장 먼저 집에 돌아와 서툰 노트북을 키고 확인하는 건 지난 당첨된 로또 번호들. 자신의 말씀으로는 매주 기대를 품게 되는 낛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시지만, 어느 자리에서도 빠지지 않고 지난 로또를 화제로 삼는 모습 속에서 나는 깊게 자리한 불안의 증거를 느끼고야 말고, 그때마다 내가 있는 자리의 현실이 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채워지지 않은 45개의 공백들이 내 자리처럼 느껴지고-나 자신이-그 대상이 혐오스러웠다. 나는 그렇게 지난 공백을 메우기 위해 허겁지겁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배속한 부서에는 나와 같은 계약직이 4명이 배정되었다. 약식이지만 면접도 보고 이런저런 설명회도 있었던 만큼 어디선가 마주쳤을 테였지만 서로가 서로를 모른 채로 첫날이 되어서야 우리는, 그러니까 '우리'라는 집합은 전적으로 내 망상에 사로잡힌 개념이지만,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별다른 인사 없이 서먹한 채로 담당할 업무를 배우기 위해 흩어졌다. 셋이었다. 한명은 그날 출근하지 않았다.


 일은 처음 무언가를 한다는 그 막연함에서 가졌던 내 걱정과는 달랐다. 어차피 나중에는 보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식의 차별도 없었고(있었다손 치더라도 당사자인 나는 느끼지 않았다), 질문이 있으면 성심껏 답해주며 많은 걸 도와주었다.


 업무를 맡은 첫날이기에 딱히 회사가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크지 않았으므로 셋은 중간중간 어쩌다 마주치게 되었고, 짧게나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 회사, 실질적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이 비인간적일 정도로 너무나 짧다..)


 A는 먼 타지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소위 남들이 돈 먹이고 뒤 봐줘서 들어간다는 회사에 있었는데, 무연고로 들어간 탓에 오히려 그게 화근이 되어서 사내에서 찍혀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나온 지금 후회는 되지만 다시 마찬가지의 상황에 놓이면 그때의 선택도 같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 이유가 안타까웠고, 그래서 실없이 웃었다.


 B는 멀지 않게 지낸다고 했다. 같은 회사의 계열사에 친구 소개로 갔었는데 일이 너무 단순하고 그래서 지겨워 나왔다고 했다. 나는 "그럼 여긴 좀 다른가요?" 물었다. B는 그건 아니라고, 비슷하다고 답했다. "그럼.."하고 내가 개운하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B는 그때는 여유가 좀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우리는 웃었다.


 C는 가까운 곳에 산다고 말했다. 놀다보니 조급한 마음이 생겨서 하게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A는 4개월 정도는 요즘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라고 얘기했고, C는 그 마음씀을 고맙게 생각한다. 궁금했는지 A는 C의 내력을 물어왔다.


 "지역 전문대 나왔어요."

 "아.. 타지는요?"

 "군대 때 정도."

 "계속 여기서 사셨구나."

 "다른 데 가면 또 그만큼 나가는 돈이 있으니까요.."

 (향후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고..)

 "과는 무슨 과 나오셨는데요?"

 "들으시면 웃으실 텐데."

 "왜요?"

 "사회복지과요."


 그 말을 들은 A는 웃었고, C는 "것 봐요."하며 같이 웃었다.


 우리는 그날 아침을 등지고 퇴근했다. A와 서로 고생했다고 수고를 전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A를 볼 수 없었다. 기숙사로 문제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었는데, 그게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근처에 살고 있는 나로써 도와줄 수 없어 아쉽게 생각했다. 출근한 나는 B의 모습을 확인하고 인사를 건넸다. 피곤한 기력이 역력했다. 첫 업무를 마친 B는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결국 우리 가운데 C만이 남게 되었다. 물론 이 서술은 기만적이다. 눈앞에 적게는 수십이 오가며 작업이 이루어지고, 때에 따라 수백에 달하는 사람의 동선이 어지러이 엇갈리는 그 현장에서, 나는 분명히 홀로가 아니다. 하지만 개폐된 그 공간에 문득 이따금 내가 우리 가운데 혼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면 심박이 빨라지는 걸 느꼈다. 그럴 때면 C는 쉼호흡을 했다. C는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이따금 저 문이 열리지 않아 영원히 갇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불안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얘기를 하는 내가 약해보이지는 않을까 C는 내심 걱정도 했다. C의 친구는 그렇게 걱정이면 관두라고 했다. C는 별 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C의 친구는 "집에 눈치 안 사려면 별 수 없겠다."고 농을 건넸다. C는 뒤따라 웃었다. 나는 다만 그 짐작할 무게를 가늠하며, 여전히 태어나지 못한 그 미숙함을 생각할 따름이었다.


 밤이 찾아오고 있다. 이야기는 픽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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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뉴스 노동 섹션을 보면 갑을오토텍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물론 김포공항 미화원 이야기는 더 말할 것도 없겠고..


 이제야 새삼 알게되었다. 예전 오너에 의해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공작이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창조적인' 컨설팅의 혐의가 드러나는 등.. 구형이 8개월이었는데 구속이 10개월이니 여전히 미진하다는 인상이지만 그 정도가 가늠된다.


 이와 함께 한동안 잊었던 유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른바 '현대와의 내부 문건'이 알려지면서 사용자성이 문제되고 있다. 이것도 지금에야 알려진 게 아니라 좀 된 얘기라는 점에서 기분이 복잡하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언제나 내가 배반적이라기보다는 이율적이라는 구속감이 든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이런?"이라면서 소스라치고 놀라게 되지만 그 물음표의 거리감과 '아직도'의 시차감은 좀처럼 좁히지 않는다.


 분명 이건 비단 별개의 것이나 일탈한 사건이 아닐 테다. 어떻게든 품삯을 아끼려고 물건을 주워 담아 장바구니에 올리는 내 모습에서 그 흔적을 깨닫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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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폭력과 테러, 시작도 끝도 불평등했다"[참세상] 16-04-20  기사의 한 토막이다.


2003년, 친척 결혼식에 가기 위해 회사에 월차를 신청했다. 과장이 나를 불렀다. “네가 회사 경영하냐?” 하청 노동자가 감히 월차를 쓰느냐는 듯한 말투다. 말싸움이 났다. 과장이 나를 밀치고 목을 졸랐다. 폭행을 당한 뒤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조퇴 후 병원에 갔다. 의사가 입원을 권했다. 병원에 입원한 그날 밤. 과장이 남자 둘을 데리고 찾아왔다. “돈을 원해?” 과장이 말했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황당한 소리를 한다. “당신이랑 얘기하기 싫습니다.” 대화 거부 의사를 밝혔다. “뭘 원하느냐고. 편하게 해 주면 돼?”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에 돌아누웠다. 그러자 “편하게 해 줄게”라며 갑자기 이불을 잡아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식칼로 아킬레스건을 그었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발목에서 피가 흘렀다.


현대차 아산 공장 사내 하청 노동자 송성훈 씨는 하청 업체 과장으로부터 식칼 테러를 당했다. 이 사건으로 아킬레스건 70%가 손상돼 수술을 받아야 했다. 4개월간 입원 치료, 3개월간의 물리 치료가 이어졌다. 가해자는 도망쳤다. 경찰이 수배를 내리자 다음 날 자수했다. 하지만 과장을 제외한 나머지 2명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과장은 징역 2년에 집행 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송 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어이가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당시 현대차 사내 하청 지회장은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에 집행 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살인 미수에 가까운 식칼 테러와 노동자 파업. 형량은 같았다. “과장과 경찰은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몰고 갔어요. 식칼까지 준비했는데 우발적인 범행이라뇨. 그 후에도 회사의 폭행은 이어졌습니다. 납치, 미행, 폭행 등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다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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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시작된 대화였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으로 학을 떼고는 하는 아버지의 경제 (엄밀하게 따지자면 경영이지만) 이야기는 계속되는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찬란한 치정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괴씸하게도 거기에는 어두운 부분이 공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대론이 부상했고, 요즘 젊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결국 현재가 있기 위해서 그런 일은 -잘못되었지만- 끌어 안고 가야하는 문제라고, 그러한 요구는 순진한 욕심에 기인한 편집증이라는 식으로 나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한 경영인들의 이력을 봐라.. 내 생각으로 우리시대 신화가 있다면 그러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경영주의의 그 혼용에 말이다.


 한 친구는 하루가 멀다하고 업데이트 되는 '헬조센' 자료를 수집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아마 유행처럼(?) 일상 영역에 쓰이는 헬조센이라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마 진행되고 있었던 탓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왜 그런 일을 하냐고 묻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 친구가 왜 그와 같은 일을 하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아마 그랬으리라 짐작한다. 나는 궁금하다. 그와 같은 개개의 사실을 모으는 까닭은 뭘까? 그리고 그것이 모인다고 무엇이 되기나 하는 걸까? 근거 있고 구체성 있는 헬조센을 현실화하기 위해?


 나는 아마 이전/이후의 구체성을 규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존적인 역사성의 자각은 일상이고, 그러한 활동은 스케치 정도면 적당한 자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로 재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현실은 전방위적이기 때문이다. 으레 이런 문제를 통해 우리는 어제와 다른 내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으로 장단을 맞추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원인적으로나 결과적으로 메타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 생각해 보라. 경영인의 불법한 행위에 대한 공개적인 보도와 거기서 반응하는 질타가 과연 그 사안에 구속되어 있지 않은 다른 경영인들에게 얼마나 경각으로 작용할지. 한 영화의 예화처럼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기 위해 '부족'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방법'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문제의 방향도, 정답도 장담할 수 없는 이 빈곤한 세계에서, 그런데도 나는 실로 실체성 없는 이유에서 부단히 잊고 살아가는 것을 기억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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