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권위주의 체제로 굳히게 되는 과정에 있어서 박헌영의 숙청은 그 사건 자체였다. 그리고 거기, 박헌영의 숙청에서 등장하는 다소 역사적으로는 생소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녀가 바로 '현앨리스'이다. 그녀는 박헌영이 '미제의 앞잡이'라는 죄명에 구속되게 하는 근거로써 제시된 인물로, 한국 현대사에서 진보의 아이덴티티를 조명하고 있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 해방 이후 북한이라는 공간과 진보의 좌표라고 하는 문제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해외를 오가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속박될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여성을 (단순히) '어머니'에 우선하는 기존의 가부장질서를 거부하고 '다른 조국'을 꿈꾸었던 현앨리스는, 광복과 해방 정국이라는 시대적 격동과 그 질곡에 고스란히 위치 지어졌다. 광복을 위해 미군에 복무했지만, 해방을 위해 미군 업무에 지장을 주었던 현앨리스의 아이러니는 그러한 것이었다.
민간통신검열단으로 통칭되는 CCIG-K에 대해 주한미24군단 정보참모부장이었던 니스트 대령이 작성한 'CCIG-K의 목적'이라는 비망록 … 에 따르면 … 현앨리스는 1946년 2월 CCIG-K의 활동을 파괴하는 데 거의 성공한 "악마"였으며, 그 방법은 북한 출신 인사들을 대거 CCIG-K에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현앨리스는 신분상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었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광복과 해방은 동의어가 아니었고 해방 역시 '생각한 광복'의 모습은 아니었다. 남한에는 자유가 있었지만 진보를 위한 것은 아니었고, 북한은 좌경만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문제였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가야 했다. 삶은 조국에 있었으므로...
그녀의 삶은 여기서 끝난다. 그녀가 택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은 결국 그녀를 '미제 스파이'로 몰아 박헌영 숙청에 단초를 마련한다. 그녀는 문서상 섬광처럼 등장했다 사라졌을 뿐, 그 이후 지면 밖 어디에서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