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엔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 세상은 뒤채이며 무너져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지난 30일에 있은, 세간에서 '윤 일병'으로 일컬어지는 사건에 대한 재판은 위의 말을 몸소 느끼게 한다. 사건의 명명 역시 피해자로써 적들의 식별을 혼란스럽게 한다. 피해 사실은 유형으로 다가오지만 가해 사실은 무엇도 지목할 수 없는, 오직 무엇으로도 지목할 수 없음만을 지시하는 무형성처럼 숱한 가명과 익명, 알력의 이름으로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이번 재판의 결정에 대해 역시 유감이라는 마음은 같지만 판결에 맞춰진 이슈로 인해 잊히는 군의 일상성, 알면서도 어쩌 못하는 그 되풀이들, 무기명의 가해와 그것들이 빚어내는 숱한 결정들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이번도 군은 심판의 주체였지 심판의 대상은 아니었다. "군대 가서 참으면 윤 일병 되는 거고, 못 참으면 임 병장이 되는 현실"의 선택지는 가해라는 무리 속에 자신을 기입하도록 안내한다.

 

 물론 우리는 이런 전제 자체를 조금 더 큰 차원에 그리는 그림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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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대화를 나눔에 있어서 썩 그렇게 나란 인간을 고려하고 있지 않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도 언뜻 읽히는 <<파르티잔>>의 함의, 그러니까 "그 존재와 의미"만큼은 모색할 수 있는 개현성을 제공한다. 육박하는 세계의 불구성, 즉 "기술적 환상"에 있어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큰 활동 분야가 남아 있는 것"(130), "표면에 예상 못 했던 깊이라는 차원을 덧붙(이는) 것"(115)을 생각하게 한다. 옳음보다 부당이 편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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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우리를 사랑해 준 사람에 의해 빚어진다. 그 사랑이 쉬 사라진다 해도, 우리는 그들의 작품이다."



 영화 <<이터널 션샤인>>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남자 주인공으로부터 이런 대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왜 관심도 없이 쳐다만 보는 여자들을... 모두 사랑하게 되는 걸까?" <<사랑의 사막>>을 읽으며 이 구절이 많이 떠올랐다. 사랑이란 대체 뭔가? (실제로 책에서 언급되는) 칸트적인 대화로 이어가자면 대체 사랑엔 어떤 격률이 있는가? 사랑, 그건 부도수표인 마냥 무언가로 지불되어야 하는 끝없는 미룸인가? 왜 우리는 사랑에서 완벽해질 수 없고, 그러면서 그 허망함을 향해 줄달음질 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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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카페 UE (무삭제 확장판) - 아웃케이스 없음
퍼시 애들론 감독, 마리안느 제게 브레히트 외 출연 / 에이나인미디어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세계를 여는 방법. 그렇다, ˝여긴 자유 국가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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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인 글쓰기를 느끼게 된다. 부단히 무언가를 바득바득 읽고 하얀 지면을 채워가는 부단한 상상들을 머리로 하게 된다. 그런 허공의 시도들은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서고, 짤막한 이 단명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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