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폭력과 테러, 시작도 끝도 불평등했다"[참세상] 16-04-20  기사의 한 토막이다.


2003년, 친척 결혼식에 가기 위해 회사에 월차를 신청했다. 과장이 나를 불렀다. “네가 회사 경영하냐?” 하청 노동자가 감히 월차를 쓰느냐는 듯한 말투다. 말싸움이 났다. 과장이 나를 밀치고 목을 졸랐다. 폭행을 당한 뒤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조퇴 후 병원에 갔다. 의사가 입원을 권했다. 병원에 입원한 그날 밤. 과장이 남자 둘을 데리고 찾아왔다. “돈을 원해?” 과장이 말했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황당한 소리를 한다. “당신이랑 얘기하기 싫습니다.” 대화 거부 의사를 밝혔다. “뭘 원하느냐고. 편하게 해 주면 돼?”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에 돌아누웠다. 그러자 “편하게 해 줄게”라며 갑자기 이불을 잡아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식칼로 아킬레스건을 그었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발목에서 피가 흘렀다.


현대차 아산 공장 사내 하청 노동자 송성훈 씨는 하청 업체 과장으로부터 식칼 테러를 당했다. 이 사건으로 아킬레스건 70%가 손상돼 수술을 받아야 했다. 4개월간 입원 치료, 3개월간의 물리 치료가 이어졌다. 가해자는 도망쳤다. 경찰이 수배를 내리자 다음 날 자수했다. 하지만 과장을 제외한 나머지 2명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과장은 징역 2년에 집행 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송 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어이가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당시 현대차 사내 하청 지회장은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에 집행 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살인 미수에 가까운 식칼 테러와 노동자 파업. 형량은 같았다. “과장과 경찰은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몰고 갔어요. 식칼까지 준비했는데 우발적인 범행이라뇨. 그 후에도 회사의 폭행은 이어졌습니다. 납치, 미행, 폭행 등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다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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