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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할미 ㅣ 책좋아 옛이야기 36
최은규 지음, 백남원 그림 / 웅진씽크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풍만한 마고할미. 그녀 날다
마고할미. 그녀는 완전 풍만하다.
이쁘게 말해서 풍만함이요 노골적으로 말해서 뚱뚱하다.
우리 아들은 최고로 뚱뚱 하다면서 엄마랑 똑 닮았다고 웃어대며 뒤집어진다.
마고할미 (정근.보림.) 솔거나라시리즈물로 먼저 만났었다.
푸른빛과 위로 옆으로 펼쳐지게 되는 면들이 인상적이었던 책.
제주도에 설문대할망으로 알려진 이야기를 많이 끌어왔던 마고할미.
그녀가 오줌을 누면 강이 되어 흐를 만큼 거대하지만 늘씬한 할머니였다.
한참 지나서 웅진에서 만든 마고할미 그림책을 다시 만났다.
1. 마고할미가 나를 위해 나타났다
표지그림을 펼치면 찢어진 작은 눈, 작은 코, 도톰하나 크지 않은 입술
그리고 두둑한 광대뼈를 가진 여인이 거대한 팔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나온다.
오호. 저 팔에 맞으면 최소한 8주 나오겠다 싶을 만큼 힘이 좋아보였다
느낌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튼실한 팔을 가진 중년의 여인네가 마고할미로 나왔다면
뭔가는 다를 것 같았다.
네 귀퉁이의 각을 지운 하드보드 표지다. 신경을 조금 썼다는 느낌 든다
표지를 넘어 이면지로 넘어가면 뭔가 빽빽이 채워져 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그린 졸라맨 식으로 막대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처음 긴 막대기에서 머리가 생기고 다리가 생겨 걸어가고 팔이 생기고
걸어가다가 땅에서 무언가를 주워 다른 사람을 만들어 같이 걸어간다.
한명이 두명이 되고 두명이 세명이 되어서 걸어간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임이 짐작된다.
이렇게 인류가 시작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보인다.
글이 시작되는 첫 페이지. 연한 보랏빛으로 가득하다. 그 안에 수많은 삼각형들,
노랗게 빛이 올라오는 듯한 바닥. 별들이 가득한 은하수 같은 기분이 든다.
다음으로 넘어가면 보랏빛들이 리듬을 타는 것처럼 신비한 밤하늘에
수많은 동심원들이 그려져 있다.
동심원들의 간격은 일정치 않으나 나름의 질서가 유지되는 듯하다.
짐작도 할 수 없이 커다란 삶이 움직이는 질서가 있는 듯하다.
우리의 태양계만이 아니라 다른 은하계들까지 있어 보인다.
좋아하는 색은 아니지만 신비로워 보이는 분위기의 보랏빛이 근사하다.
그렇게 또 한 장을 넘어가면 표지의 그녀가 거대한 팔에 어울리는 풍만한 가슴과
배와 엉덩이를 보이며 몸을 일으키고 있다.
여름에 더울 때는 저 가슴 밑이 땀으로 차서 가끔 닦아줘야 할텐데,,
열기가 꽤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쓸데없이 지나가면서 웃음이 실실 나온다.
손으로 배를 찰싹 맞춰볼라치면 떡매로 인절미를 치듯이 쫀득쫀득 달라 붙는
나노1초 정도의 느낌을 받을 거 같다.
가볍게 출렁거리는 파도와 같은 살결이 갖는 배의 무게감.
양팔로 끌어안아 보면 한 바구리네, 하는 기분 들 거 같다.
저 몸에 끌어안아지면 포근해질 거 같은,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을 거 같은
풍만함이 있다. 언제 내가 저렇게 안겨보았던가?
내 기억에 나를 안아주웠던 엄마의 모습은 떠오르지를 않는다.
내 기억의 한참 저편에는 있나보다.
안아주는 것을 떠 올리는 것을 보면 기억에는 없지만
몸의 어딘가에 새겨져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의식에도 남아 있을만큼 안겨보았던 기억이 있음 좋았을텐데.
엄마도 이런 생각을 할까? 다음에 만나면 내가 한번 꼭 안아줘야지한다.
그렇게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키고 있다.
아지랑이들이 노랗게 피어오르며 세상의 시작을 알려주는 듯하다
땅덩이를 들어 물에 담갔다 뺄 수 있는 저 괴력.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얼굴의
찡그림도 보인다. 이쁜 얼굴은 아니긴 하다.
그렇게 몇 장 넘어가면 정말 환상적인 그림이 있는 면이 나온다.
2. 풍만한 마고할미 . 그녀 날다.
머리에 꽂은 비녀 외에는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은, 깨둥이라고 부르는 모습으로,
양팔을 벌리고 고개를 들고 바람과 생명의 숨결을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날고 있다.
이 대목에서 쓴 소주 한잔을 마시고 부러 내는 카~소리가 절로 나온다.
저 육중함이라니... 뚱뚱하나 처지지 않은 젖가슴, 서 있다면 처져보일게 분명한 아랫배, 목욕탕 의자에 절대 앉아지지 않을 만큼 풍만한 엉덩이, 아기처럼 뽀얗게 보들보들 해서 눈 감고 한번 비벼보고 싶은 피부.
그녀 아래 세상에 땅이 이제 생겨나고 생명이 불어 넣어진 노루며 토끼들. 살짜기 그네들을
걱정해보았다. 저리 풍만한 그녀가 날다가 떨어져서 철퍼덕 하면 그네들은 바로 깔끔하게 펴질거 같아서.^^
하지만 날고 있는 그녀의 표정이 정말 자유롭게 보인다.
느긋하게 눈을 감고 온 몸을 스쳐가고 감아 지나가는 생명의 숨결들을
사랑스럽게 음미하는 거처럼 보인다.
몸에서 부드러운 곡선의 자유로움을 자극적이지 않게 상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지금 나는 왜 실실 쪼개면서 웃고 있을까?
내가 여기서 얻고 있는 이 즐거움이 도대체 무엇이지?
세상을 창조하는 마고할미.
그 능력에 걸맞게 표현되어질 법한 권위나
엄숙함과 같은 분위기를 전혀 나타내지 않는 소탈함일까?
풍만한 여인네의 나체를 솔직하게 나타내는 점이 즐거운가?
이런 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린이 책 시장의 융통성이 좋은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난 이 장면이 정말 좋다. 홀딱 반하게 좋다.
저 풍만한 육체를 통해서 마고할미의 엄청난 풍요로움을 상징하고
있는 듯해서 좋다.
그리고 날고 있는 풍만한 마고할미의 모습에서 아이들
빵~ 터진다. 핸드폰 있는 아이는 사진으로 찍는다.
생각보다 잘 찍히는 핸드폰의 기술.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돌려보겠단다.
어린아이보다 나이가 있는 여고생들의 반응이 더 좋다. 편안한 느낌이 든단다.
3. 한 세기를 접고 있는 마고할미
그렇게 날고 있는 마고를 지나서 그녀가 딸을 낳고 낳고 낳아서
많아진 인류들이 펼쳐진다. 너무 많아져서 마고의 젖으로는
살아갈 수 없어진 인류가 사냥을 한다. 젖을 먹다가 다른 생명을 취하면서
미움이 생기고 욕심을 부려서 점점 흉해져간다.
그들을 지켜보던 마고. 그녀는 그들에게 씨 뿌려 농사짓는 것을 가르친다.
농사짓기 위해 뿔뿔히 흩어져 가는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졸라맨으로 그려진다.
아직 무언가의 의미를 담기에는 그들이 성숙하지 못해서인가
졸라맨과 같은 만화풍과 마고할미를 그려낸 기법이 상당히 다르면서 어울린다..
그림 작가가 그리는 기법을 다르게 함으로서 성숙한 존재와 성장 해 나가야 할
존재들을 말하나...다름의 존재들이 한 그림안에 서로 어울리도록
배치하고 있는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라고 해석해본다.
(아..이 잘난척하는 허영을 어찌할까^^)
마지막에 풍만한 그녀가 세찬 하늘의 빗물을 두 손으로 거르고 걸러서
조록조록 부어주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렇게 마고가 한 세기를 끝내고 있다.
비어있어야 다른 무엇이 그 자리를 채우고 성장해 나갈 수 있다.
그렇게 마고는 자리를 비켜주고 물러나간다
그리고 따라오는 부록 -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마고할미 그후 이야기처럼
마고할미가 다시 마을에 나타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놓고 있다.
차라리 이 대목에 여운이 남도록 그냥 빈 여백으로 남겨 놓았음 더 좋을텐데
-마고할미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나누어 줄까요? ..
이런 질문 두 개 붙어 온다. 나누어주기는 뭘 나눌까. 지금도 겁나게 많이 주었는데
그 마저도 잘 간직하지도 못하는데 하는 개인적 의견 붙는다.
웅진에서 욕심을 조금 덜 부렸더라면
정말 최고로 멋진 책이었을텐데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그러나 내게 날고 있는 풍만한 마고할미를 주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
4. 마고할미 풍만함의 자락을 잡고
마고할미는 그림책에서만이 아니라 동화책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우리 동화나 그림책에서 능력이 있는 다양한 할망의 모습들이 마고할미의
여러 가지 변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거대하고 힘이 세어, 오줌을 싸서 강을 만들고 산을 만든 제주도의 마고할미에서
우리집에 온 마고할미(유은실,바람의 아이들)에서는 도우미로 나타난다. 집안살림에 귀재. 한꺼번에 음식을 12개씩 만들어 낼 수 있고 정리정돈도 잘한다.
집안을 지켜주는 자리의 중요함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마고할미 본연의 모습에서 많이 축소된 모습이 아쉬웠다.
그 외 여러 곳에서 마고할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혼자 다 차지하면 질투를 살게 뻔하므로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마고할미에게 흥미가 당기면 그 님이 할 수 있도록 남겨도^^좋겠다
그녀는 힘세고 거대하기만 한 게 아니라 풍요로움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생명의 여신인 거다. 단군신화의 진취적이고 도전하는 에너지보다
생명을 낳고 키우는 여성성의 에너지가 마고할미 안에 담겨 잇는 듯하다
하늘과 땅을 열고 비옥함을 가져오고 인류를 낳아 기르는 마고할미
그 거대함을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녀를 작게 세분화했을까?
아니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마고할미를 만지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만한 그녀를 통해서 마고할미가 갖는 여성성의 거대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그녀가 아니라 그였다면 마고신화를 우리가 배우고 있을까?
그가 아니라 그녀였기에 생명력 있는 풍요로움을 보여줄 수 있는건가?
잠시 지나가는 생각하나.
그도 아니고 그녀도 아닌, 남성과 여성의 두 갈래의 성으로 구분짓기
전에 통합된 모든 생명 안에서 마고할미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 그렇다면 생명의 여신이라면 죽음의 여신이기도 할 텐데.
풍요로움의 뒤편에는 허기짐도 있을까.
스쳐가는 상상이 꼬리에 꼬리는 물고 지나가지만
내 삶의 시간은 아주 짧기에 오늘은 여기에서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