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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2월 알라딘 신간평가단 소설부문 선정 책은 묘하게도 2권 다 “일본작가” 작품이었다. 두 한 권은 일본소설을 읽은 분들이라면 낯설지 않을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이었고, 다른 한 권은 일본 추리소설 작가들 중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원제 ナミヤ雜貨店の奇蹟 /현대문학/2012년 12월)>이었다. 추리소설 마니아를 자청하고 있다 보니 국내에 번역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 작품 - 인기답게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이 언뜻 헤아려 봐도 수십 권은 족히 넘는다 - 을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꽤나 많이 읽어봤었고, 그의 신간(新刊) 소식이 들릴 때면 늘 눈여겨 봐왔던 터라 이 책 또한 기대하고 있던 책인데 마침 신간평가단 책으로 선정되어 꽤나 반가웠다. 그렇다면 책 내용 또한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었을까?

 

얼치기 삼인조 도둑인 쇼타, 아쓰야, 고헤이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30 여 년간 버려져 있던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든다. 하룻밤 잠시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피신(避身)항 요량이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셔터의 우편함에 밀어 넣는다. 오래전부터 비어 있는 이 곳에 편지라니. 혹 경찰차가 둘러 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밖을 내다보지만 바깥은 깜깜할 뿐이었고, 조금은 안심한 마음에 편지를 열어보는데, 자신을 "달 토끼“라고 밝히는 여자가 중병에 걸린 남자친구에 대한 고민을 상담해오는 기묘한 편지였다. 세 명에게는 참 뜬금없는 편지였지만 가게에서 발견한 오래된 주간지에서 원래 나미야 잡화점이 고민을 상담하고 해결해주는 것으로 유명했다는 기사를 발견한다. 셋은 장난반 진심반으로 편지에 대한 답장을 써서 편지함에 넣는데 바로 답장이 날라오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우연찮게 시작한 고민상담은 한 통에 그치지 않고 답장도 이어지면서 하룻밤 내내 이어지고 세 사람은 시공간을 초월한 이 낡은 잡화점에서 ”기적(奇蹟)“을 경험하게 된다.

 

책은 이처럼 고민상담의뢰와 답신, 그리고 관련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형식으로 다섯 명의 사연이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섯 개 사연 하나하나를 소개할 수 는 없지만 각각의 사연들은 때로는 가슴 먹먹해지고 때로는 가슴에 훈훈한 느낌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다. 특히 과거의 인물들이 편지를 보내고 현재의 3인의 도둑들이 이를 답장해주는, 시공간을 초월한 판타지적인 구성이 제법 기발했고, “타인의 고민 따위에는 무관심하고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일이라고는 단 한 번도 없었던 그들이 과거에서 날아온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 라는 생각에서 결점투성이의 젊은이들을 등장시켰다는 작가의 말처럼 어리숙하고 모자란 도둑 3인방이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면서 서서히 변화해가는 과정 또한 절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자기계발서적들처럼 작위(作爲)적인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는 어떨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하나둘씩 밝혀지는 나미야 잡화점에 얽힌 비밀들이라는 미스터리적인 요소들은 있지만 전작(前作)들에서 보여줬던 “정통 추리소설”로서의 자극적인 재미를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밋밋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멋진 트릭과 반전을 기대하고 시작했다가 싱겁다는 느낌에 다소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한편 한편의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에 실망감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고, 책의 이야기에 절로 빠져들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읽었다. 감정이 메말랐는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는 일본 아마존 독자처럼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이런 상담소(?)하나 있다면 나는 어떤 고민을 상담할까, 도둑 3인방은 나에게 어떻게 상담해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정도로 여운이 제법 오랫동안 남았다.

 

그간 50 여 편이 넘는 소설을 써낸 대표적인 다작(多作) 작가이자 작품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여주는 작가라는 기대에 걸맞게 이야기 설정과 전개, 결말이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이 뛰어나고, 소설의 본령(本領)이라 할 수 있는 재미와 감동, 두 가지 모두를 아우르는 그만의 글솜씨가 어떤 것인지를 다시금 맛볼 수 있었고, “주위의 친지 모두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라는 역자(譯者)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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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게의 전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낯설지 않을 이름인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 국내에 번역 출간된 스무 권 남짓의 그의 작품들 중 <퍼레이드>, <동경만경>, <악인>, <요노스케 이야기>, <일요일들> 등 다섯 권을 읽었으니 나에게도 꽤나 익숙한 일본 작가들 중 한 명에 속할 것 같다. 그의 작품들 중 추리소설인 <악인>을 제외한 네 권은 그다지 감흥이 없었던 것을 보면 나는 그를 추리소설 작가로 기억하고 있는 듯 하다. 이번에 그를 “일반소설”로 다시 만났다. 일본 전래 동화인 “원숭이와 게의 이야기”를 빗대어 평범한 듯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원숭이와 게의 전쟁(은행나무/2012년 12월)>이 바로 그 소설이다.

 

 

나가사키의 외딴 섬 “후쿠에지마”에 있는 술집 “주얼”에서 호스티스를 하던 “미쓰키”는 돈을 벌겠다며 뭍으로 나간 남편 “도모키”가 한달 넘게 감감무소식이자 그를 찾기 위해갓난 아기를 들춰 업고 물어물어 도쿄까지 찾아온다. 남편이 호스트로 일했다는 클럽을 찾아갔지만 남편은 이미 그곳을 그만두었고, 막막해하던 참에 남편이 근무한 클럽과 같은 건물에 있는 한국식 술집 “란(蘭)”의 바텐더이자 몇 번인가 남편을 자신의 집에 재워졌을 정도로 친분이 있던 “준페이”를 만나 하룻밤 그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준페이는 미쓰키에게 남편의 집이 자신의 집에 있으니 언제고 자신에게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며 연락이 오면 미쓰키에게 꼭 연락하라고 하겠다며 미쓰키 모자(母子)를 섬에 돌려보낸다. 며칠 후 준페이의 집에 돌아온 도모키는 준페이의 말대로 섬으로 돌아간 미쓰키에게 연락을 한다. 그런데 준페이와 도모키는 무슨 일인가를 꾸미고 있다. 준페이가 얼마전 뺑소니 사건을 목격했는데, 범인이라고 자수한 사람이 자기가 사건 당시 본 사람이 아닌, 말그대로 누군가가 진짜 범인을 대신해 거짓 자수를 한 것이다. 조사를 해보니 뺑소니 사건을 저지른 장본인은 거짓 자수한 사람의 동생이자 세계적인 첼리스트인 “미나토”였고 준페이와 도모키는 그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협박에는 영 초짜인 이 둘의 협박은 영 어설프기만 하고, 미나토의 행동을 의심쩍어하는 그의 매니저 “유코”가 이 일을 알게 되고 해결사로 나서면서 일은 점점 꼬이게 된다. 여기에 미나토를 대신해 감방에 들어간 형의 가족들과 미나토의 고령(高齡)의 할머니, 준페이가 근무하는 술집의 마담과 주변인물 등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연이어 등장하고 그 시점에서 이야기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된다. 원래 정치인 비서였던 유코가 술집 바텐더이자 어설픈 협박범에 불과한 준페이를 국회의원 후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5선(選) 의원인 거물 정치인과의 격돌이라니. 이 불가능할 것 같은 해프닝에 대한 결말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만 줄이기로 하자.

 

 

초중반까지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 - 도시로 상경한 남편을 찾아오는 아내, 도시의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 등 - 를 그리고 있겠거니 하고 사실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 - 자리에 누워서 설렁설렁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 했다. 뺑소니 사고가 나오고 준페이와 도모코가 어설프게 협박하는 장면에서도 결국 이 두 친구, 호되게 당하고 삶의 무상함을 깨닫고 끝맺겠군 싶었고 준페이와 도모코, 두 인물 위주로 진행된 이야기가 점점 주변 사람들로 확대될 때도 물론 저마다의 사연이 꽤나 짜임새있게 그려져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지만 그냥 분량을 채우려는 것이겠니 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초반 주인공인 준페이와 도모코, 미쓰키에 이어 가장 유력(?)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유코가 등장하면서 초반의 다소 지루한 전개가 막을 내리고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저 도시 어두운 곳에 살고 있는 실패한 청춘들의 삶의 단편들 쯤으로 여겨졌던 이야기가 뺑소니 사건으로 등장인물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어우러짐이 전혀 이야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특히 바텐더에 단순 협박범에 불과했던 준페이가 엉뚱하게도 정치인으로 나선다는 설정은 처음에는 일견 당황스럽게까지 만들었는데, 이미 일본의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작가로 평가받는다는 작가의 명성답게 치밀하면서도 개연성있는 글솜씨는 비현실적인 설정에 따른 위화감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상황이라면 실제에서도 가능할 법도 하겠구나 하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어느새 준페이와 그의 무리(?)들을 응원하게 만들 정도로 절로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때부터 느슨했던 책읽기는 바짝 탄력이 붙었고, 어떻게 결말이 날까 하는 궁금증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읽게 만들었으며, 만족스러운 결말에 기분 좋은 끝맺음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미나토의 할머니인 96세 고령의 “사와” 할머니가 유치원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보다 더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이 책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책의 마지막 장면은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 소설의 메시지를 찾고자 한다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원숭이와 게의 이야기”의 교훈처럼 보잘 것 없는 약자들이 한데 힘을 합쳐 통쾌한 승리를 거둔다는 면에서 “희망”의 메세지 쯤으로 요약해볼 수 있겠지만 굳이 이런 메시지를 염두해 두지 않더라도 이야기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자못 감동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아뭏튼 이 소설은 이제 “요시다 슈이치”를 추리소설 작가로만 여긴 나의 오해를 한 번에 불식(拂拭)시켜준, 아니 글 참 잘 쓰는 작가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 소설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요시다 슈이치, 앞으로 계속 만나봐야 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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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던 무지막지(?)한 추위도 1월 중순이 넘어서면서 한결 누그러졌고, 입춘(2.4.)도 지났으니 이제 봄이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상청에서는 2월말까지 매서운 추위가 몇 번 있을 것이라고 예보하지만 그래도 오는 봄을 막을 수 는 없겠죠. 봄의 시작인 3월에 만나보고 싶은 소설을 추천해봅니다.

 

1. 끝까지 연기하라(로버트 고다드/검은숲/2013-01-22)

 

 

알라딘 신간평가단 소설부문 리뷰어들의 추천도서 목록을 보니 이 소설이 가장 많이 올라온 것을 보면 그만큼 "핫(hot)"한 소설임을 입증하는 것 같습니다. 줄거리 소개글이나 출판사 홍보글도 구미를 당기지만 무엇보다도 "스티븐 킹마저 두렵게 한 작가"라는 문구가 읽고 싶은 욕구를 무럭무럭 셈솟게 하네요^^ 처음 만나는 작가라 낯설긴 하지만 로버트 고다드가 선보이는 새로운 추리/스릴러 세계를 만난다는 설레임이 더 큰 이 소설, 3월에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2. 절망노트(우타노 쇼고/한스미디어/2013-01-29)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우타노 쇼고", 말이 필요없는 작가이지요. 최근에 그의 다른 신작인 "봄에서 여름 그리고 겨울"로 만나본 적이 있었는데, "벚꽃 지는 ~" 만큼 기막힌 반전은 없었지만 잔잔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반전이 참 인상적이었던 책이었습니다. 이번 신작에서도 전작들 못지 않은 재미와 반전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3. 일곱 명의 술래잡기(미쓰다 신조/북로드/2013-01-11)

 

 

<~것> 시리즈 - 그동안 출간된 미쓰다 신조 작품들 제목이 <신마처럼 비웃는 것>,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잘린 머리처럼 비웃는 것> 등 <~ 것>으로 끝나서 <~것>시리즈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 로 유명한 "미쓰다 신조"의 신작이 나왔네요. <~것> 시리즈가 민속학적 괴담을 소재로 한 반면 이 소설은 어린 시절 옛 친구들과의 추억과 전화, 그리고 자살이라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소재로 하고 있다니 의외네요. 그래도 "호러 미스터리"의 거장인 그의 글솜씨가 사라진 것은 아닐테니 이 소설에서도 모골이 송연한 공포와 기막힌 추리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책을 꼽다 보니 으스스한 추리/스릴러 소설 일색이네요. 3월 봄 볕의 따사로움이 이 소설들 때문에 무색해질까봐 살짝 걱정이 되긴 하지만 추리소설은 계절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장르이니 과감히(?) 추천해봅니다. 세 권의 책 중 하나라도 선택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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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포비아
김진우 지음 / 북퀘스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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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작가는 작년(2012년) 8월에 <애드리브(북퀘스트/2012년 8월)>라는 소설로 만나본 적이 있다. 처음 만나보는 작가인데다가 우리나라 장르소설 분야에서는 거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SF소설이라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읽고 나서 “깜짝” 놀랐었다. SF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악"을 소재로 하는 독특하고 기발한 설정과 흥미진진한 스토리 라인, 그리고 기대를 뛰어넘는 작가의 상상력과 글솜씨에 홀딱 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모 인터넷 서점의 “2012년 최고의 책” 추천에서 이 책을 “2012년 숨은 걸작”으로 추천했었다. 이렇게 강렬한 첫 만남을 선사했던 김진우 작가를 신작 SF 소설로 다시 만났다. 태양 표면의 대폭발(Superflare) 이후 인류의 삶을 그린 <소셜 포비아(북퀘스트/2013년 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어느날, 태양의 불길이 높이 치솟았다. 마치 거대한 불도마뱀 살리만드라와 같이 변한 태양의 입김에 지구는 화염 지옥으로 변했고 만년빙은 녹아내렸으며 더운 바다는 해안가를 집어삼켰다. 숱한 인간들이 거세게 덮친 열파에 목숨을 잃었고, 지구상 곳곳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급기야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숱한 생명들이 사라지고 오랜 핵겨울이 지속되면서 세상이 그렇게 끝나는 듯했지만 시간이 흘러 하늘을 가렸던 검은 장막이 걷히고 지구상의 생존자들이 다시 등장하는 인류사의 제 2막이 펼쳐진다.

지구 종말적 상황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인간들이 건설한 인공 도시이자 “바깥 세상”과 단절된 그들만의 낙원인 “밀양림”의 주민인 청년 “유울모”는 3년간의 바깥 세상에서의 파견 근무를 마치고 밀양림으로 무사히 귀환하게 된다. 도착하자마자 노인들의 거주지인 “샹그릴라”에서 살고 있는 친할머니 “이환”을 찾아간 그는 그 곳에서 할머니의 친구이자 조로증(早老證)을 앓고 있는 소년인 “미즈마루”와 인사를 나누게 된다. 할머니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미즈마루는 남의 마음을 감지하고 텔레파시를 보내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시(市)에서 새로이 주거지를 배정받고, 자신이 근무했던 애완동물 생산 회사에 “리페트” 사에 복귀한 그에게 어느날 밤 자신의 주거지 바로 위층에 거주하고 있는 여인인 “미아보라”가 찾아온다. 그의 집에 쥐가 출몰하고 있으니 생포해서 자신에게 건네 달라는 것이다. 괴물처럼 추한 얼굴과 꼬리를 가진 이상하기만 한 생김새였지만 유울모는 그녀의 묘한 매력에 이끌리고 만다. 홀연히 나타났나가 사라지는 미아보라의 행적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던 유울모는 밀양림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테러 조직의 비밀 거주지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서 밀양림과 밀양림을 건설한 기업 제국 “파나샤”의 전복을 꾀하는 테러 집단의 조직원이자 밀양림의 시장인 “비잇”의 연인이라는 사연을 듣고, 원래의 순수한 뜻을 잃어버리고 타락한 비잇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그녀를 동정하게 된다. 그러던 중 테러조직에 맞서기 위한 자위 군대 창설을 주도하던 비잇은 암살당하고, 비밀 거주지 또한 초토화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비교적 짧은 분량(320 P) 임에도 줄거리에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설정과 이야기, 그리고 메시지(含意)들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소재와 스토리 라인, 등장인물 등 모든 면에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전편 - 내가 읽은 순서로는 <애드리브> 다음에 이 책이었는데 작가 소개글을 보니 <밀양림>이 첫 작품이고 <애드리브>가 두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밀양림>과 <소셜 포비아>와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미뤄 짐작컨대 데뷔작인 <밀양림>을 재출간, 개정 출간한 작품이 <소셜 포비아>로 생각된다. - 못지 않게 기발하고 독특한 상상력과 이야기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SF 수작(秀作)으로 평가할 만 하다. 특히 미래 도시이자 낙원이라 할 수 있는 밀양림에 대한 설정과 묘사는 머릿 속에 그대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고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어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게 만든다. 그러나 SF 소설이 밝고 희망찬 미래보다는 어둡고비관적인 미래를 그려낸다는 특유의 “디스토피아(Distopia)”적인 설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몇몇 설정과 사건에서는 이해하는 데 필요한 부연 설명을 생략하고 있어 책 속에서의 미래 모습을 머릿 속에 이미지로 구현해내고 여러 사건들과 등장인물의 행동에 대한 연유를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운 점들이 없지 않았다.

특히 소설의 제목인“소셜 포비아(Social Phobia)"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좀 어려웠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거나 바보스러워 보일 것 같은 사회 불안을 경험한 후,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정신적 질환이라고 하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회 기피증(혐오증)’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인터넷 서점 책 소개글에서 인용). 이런 정의를 바탕으로 내 나름으로는 바깥 세상을 경험하고 온 주인공 유울모가 지옥같은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중앙 통제 인공 지능체와 ‘천사’라 불리는 기계들에 의한 완벽한 통제 시스템을 통해 바깥 세상의 온갖 위험으로부터 완전한 안정을 보장하여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는 낙원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바깥 세상 못지 않게 불안과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밀양림"에 대한 주인공의 탈낙원(脫樂園)을 꿈꾸는, 즉 안(밀양림)과 밖(바깥 세상)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하고 이해해보지만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소셜 포비아에 대한 이해는 내 해석보다는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글이 더 정확할 것 같아 인용해본다.

(중략)작가는 특히 그 가운데서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 듯, 떠돌이 인간인 ‘호모비아토르형’의 캐릭터들을 내세워, 인간은 원래부터가 지옥 같은 현실 사회에서건, 천국 같은 낙원 사회에서건 사회적 기피증(소셜 포비아)을 떨쳐 내지 못하여, 탈사회적 떠돌이 존재, 즉 또 다른 낙원을 찾아 떠나는 ‘소셜 포비안(Social Phobian)’이 됨을 극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사회적 동물성과, 또다시 사회에 안주하지 못하고 떠나는 떠돌이 인간, 이 두 상충적인 관계를 유토피아적 가공 도시 ‘밀양림’이라는 무대에서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제대로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웠고, SF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대중적이기 보단 매니아적 성향이 더 다분한 소설이지만 그래도 소재와 설정, 이야기 전개 면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신선하고 독특한 SF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이 소설에 대한 나의 평가는 척박한 SF 소설 작품 환경 속에서도 이렇게 기대 이상의 성취를 보여주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에게 경의와 격려의 의미로써 별점 만점을 준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평가이지만 말이다^^. 이제 김진우 작가는 나에게 있어 꼭 기억해두어야 할, 그리고 후속작들은 꼭 챙겨 읽어야 할 이름으로 확실히 각인되었다. 그의 후속작을 빠른 시일 안에 다시 만나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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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설계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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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책읽기의 시작은 “오랜만의 만남”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올해 들어 처음 읽은 “황석영” 소설과 두 번째이자 이 감상글의 대상 소설인 “이인화”의 <지옥설계도(해냄/2012년 11월)> 모두 대학 시절 이후 정말 오랜만에 신작 소설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너무 오랜만의 만남이다 보니 처음에는 둘 다 “낯섦”과 “반가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느끼면서 읽기 시작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읽고 나서의 감상은 서로 확연하게 달랐다. “황석영”은 초반 몇 십 페이지 만에 낯섦을 싹 잊고 오래전 그를 만났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금세 책에 몰입할 수 있었는데 이 책은 흥미롭고 신선한 소재와 장르소설적인 재미를 한껏 담고 있었음에도 마지막 페이지까지 낯섦이 가시지 않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설정과 설명에 읽어내기가 영 어려웠던 것이다. 이 책의 어떤 점이 나를 이렇게 곤혹(?)스럽게 했을까?

 

 

백 년 만의 큰 폭우가 내렸다는 7월 어느날, 대구의 시내 한복판에 있는 “리젠트”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살자는 “이유진”이라는 청년으로 등 뒤에서 총을 맞아 살해되었고, 피의자는 “자오얼”이라는 중국인 청년으로 서울역에서 긴급 체포된다. 일반 경찰이 아닌 모 “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수사관 “김호”는 이 살인 사건을 담당하게 되는데, 살해 현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 왜 그런지는 말할 수 없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런 그의 직감은 수사가 진행되면서도 결코 뇌리에서 가시지 않는다. 이렇다 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수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기관의 상관은 김호에게 살인 사건의 배경에 관한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피살자 이유진과 피의자 자오얼은 보통 사람보다 10 배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화인간”들이고 이들은 “더불어 사는 행성당(공생당)”이라는 비밀 조직원이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연쇄 테러가 발생하여 강화인간들이 죽거나 혹은 최면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김호의 딸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또 다른 강화 인간이자 이유진을 사랑했던 여인인 "새라 워튼“이 연쇄 테러 사건의 배후를 밝혀내고, 최면 상태에 빠진 강화 인간들의 의식이 갇혀 있는 가상 세계이자 이유진이 창조해낸 세계이기도 한 ”인페르노 나인“의 설계도를 얻기 위해서였다. 김호는 새라의 요구대로 이유진이 남겼다는 설계도를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이유진 살인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고, 강화 인간들에게 가해진 연쇄 테러의 실체 또한 그 베일을 벗게 된다.

 

 

줄거리는 책 도입부부터 등장하는 이유진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요약했지만 이야기는 강화인간의 탄생 비화(秘話)와 그들이 조직한 공생당과 각국 첩보기관들 간의 암투와 배신, 그리고 이유진이 만들어 낸 가상 최면의 세계 “인페르노 나인”, 이렇게 세가지 축으로 전개된다. 이처럼 “추리(스릴러)”, “첩보”, “SF", ”판타지“ 등 내가 즐겨 읽는 장르들이 총망라되어 있는데다가,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익히 다루어진 소재 - 영화로도 제작된 “앨런 글린”의 <리미트리스>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 이긴 하지만 “강화 인간”이라는 설정이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어 읽는데 탄력이 붙어 도입부와 중반 초입까지는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갔다. 그런데 중반부터 강화인간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그려지고, 가상 최면 세계인 “인페르노 나인”이 등장하면서는 너무 복잡한 설정과 설명이 이어지면서 처음의 흥미와 재미는 이내 반감되고야 말았다. 즉 강화인간들의 비밀결사조직인 “공생당”이 꾸미고 있다는 전세계적인 음모(陰謀)의 불명확성, 최면술로 사람을 죽이고 코마(koma) 상태에 빠뜨리는 장면들에서의 개연성 부족과 비현실성, MMORPG 게임이나 또는 이차원(異次元)의 판타지 세계를 연상케 하는 가상 세계인 “인페르노(Inferno, 지옥) 나인”과 책의 제목이자 책 후반부에서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열쇠로 등장하는 인페르노 나인의 설계도라는 이야기의 난해함 등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여러 장르의 장점들만을 끌어다 잘 혼합하려 했던 작가의 시도는 제대로 어우러지지 않고 영 성글게만 느껴졌고, 작가가 하고자 싶었던 이야기였을 인간 사회의 모순과 병폐에 대한 신랄한 비판 또한 텍스트로는 읽어낼 수 있지만 가슴에는 영 공감이 되지 않는 피상적인 주제로만 느껴졌다. 복잡하고 난해하기만 한 설정과 이야기 구조가 소재의 신선함과 흥미로움을 반감시켰고, 그 때문인지 결말에서의 반전 또한 그 충격과 강도가 영 밋밋하게만 느껴졌다.

 

 

서두에서 던진 질문인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 이 책의 요소는 이렇게 복잡하고 난해하기만 한 설정과 세 가지 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의 성글기만 한 구성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며, 그 이유도 중견 작가이자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고 있는 작가의 글솜씨 탓이 아니라 책의 설정과 구성, 그리고 주제를 올곧이 이해해내지 못한 내 이해력 부족 탓일 것이다, 여기에 유일하게 읽어본 그의 작품인 역사 소설 <영원한 제국>에서의 익숙함을 이 소설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계속 투영하려고 했던 탓일 것이다. 결국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작가에게서 예전 모습들과 익숙함만을 찾으려고 했었지 그의 새롭게 변화된 모습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의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이 책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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