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71년생(올해 만 40세) 돼지띠 남성들 절반이 94세 이상 산다"(조선일보, 2010.1.3.)
“...노인인구비율 2050년 38.2%로 세계 최고”(연합뉴스, 2010.12.23.)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 … 남 77세, 여 83.8세”(중앙일보, 2010.12.10.)

 인구 고령화(高齡化) 문제가 이웃 나라 일본 문제인줄만 알았는데 최근 뉴스들을 보니 우리나라도 사실상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꽤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출산율이 200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1.15명으로 이웃 일본의 1.37명보다도 낮은, 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 누구가 예측하듯이 생산 가능 인구 감소에 따른 고령 인구 부양 부담 증가, 저축 감소, 연금과 의료비 등 고령화 관련 지출로 인한 정부의 공공 지출 증가 하는 등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물론 출산율을 높여 노인 인구 비율을 낮추는 방법이 있겠지만 정부가 온갖 출산 장려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오히려 출산율은 더 떨어지고만 있으니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노인 인구 자체를 줄이는 방법은 어떨까? 경을 칠 소리임에는 분명한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소설로 담아낸 작품이 있다. 일본 SF 문학 1세대이자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저자인 츠츠이 야스타카의 <인구조절구역(원제 銀齡の果て/북스토리/2011년 1월)>이 바로 그 소설이다. 

  가까운 미래, 일본은 더 이상 고령화 시대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자 노인 인구 자체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해낸다. 일본의 중앙인구조절기구(CJCK)는 행정구역을 일정 지구(地區)로 나누어 지구 내 70세 이상의 노인들이 한 달 기한 내에 서로를 죽이는 “배틀”을 벌인 후 최후 생존자 1인만 살아남는, 완료 시점 이후에 생존자가 한명 이상이라도 남으면 모든 생존자를 처형하는 “노인상호처형제도”을 실행하게 된다. “노인이 노인인 것 그 자체가 죄”가 되는 세상이 드디어 도래한 것이다. 배틀이 드디어 개시되고 노인들의 반응은 실로 다양한데, 살아남기 위해 야쿠자에게 총기(銃器)나 수류탄을 구입하거나 다른 노인들과 연합해 생존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도전하기도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살하거나 또는 조용히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기도 하며, 자신이 흠모했던 연인을 위해 집을 요새화하거나 또는 모든 경쟁자를 죽이고 연인에게 총을 건네 죽기도 하고, 자신의 남편들을 죽인 노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거짓 자작극을 펼쳐 칼을 들이대는 아내들 등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한다. 그렇다면 이런 노인 배틀을 보는 자식들이나 주변 젊은 사람들은 어떨까? 부모를 잃는 슬픔에 가슴 아파하고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에게 배틀 기간이 끝나고 복수하겠다고 울부짖는 자식들도 있지만, 자신을 괴롭혀온 시어머니를 다른 노인의 손을 빌어 죽이기도 하고, TV에서 스포츠처럼 중계하는 뉴스들을 보며 즐기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죽고 죽이는 배틀 기간이 어느새 끝나가고 드디어 종료 전날, 살아남은 노인들은 먼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부터 차례로 살해해서 리스트에서 지워나가고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를 죽이기 위한 일대 난리법석을 펼친 끝에 한 명의 생존자가 살아남으며 배틀을 끝내게 된다. 그런데 각 지구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1인 생존자들은 더 이상 이런 끔찍한 배틀을 종식시키기 위해 작당 모의하여 CJCK를 습격하지만 사전에 알고 있던 정부 당국에 의해 모두 사살되고 습격 직전 발걸음을 돌린 미야와키초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구이치로”만 살아남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적지 않은 분량(역자 후기 포함해서 391페이지)임에도 금세 읽어낼 만큼 재미와 몰입도가 뛰어난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작가의 의도가 노인문제를 갈수록 심각해지는 인구 고령화 사회 문제에 대한 일대 경종을 울리기 위해 쓴 블랙 코미디 소설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심정을 감출 수 가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그런 살인 장면의 끔찍함보다는 -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살인 장면들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한 소설들이 많다 - 그냥 웃고 즐기기에는 뭔가 꺼림칙한, 즉 실제로 이런 미래가 도래할 수 있다는 끔찍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마녀사냥, 종교전쟁, 유태인 대학살, 생체 실험 등 나와 종교나 피부색,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학살하고 노예로 부려먹는 일들이 얼마나 비일비재했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라는 말을 스스로 입증하는 그런 잔인한 일들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잔인한 학살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과연 명분이 없었을까? 다들 신의 명령에 의한 성스러운 집행, 우생학적 우월성, 정부 정책 등 온갖 명분을 다 끌어 들여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노인 인구 증가가 실제로 경제에 타격을 줄 정도로 심각해진다면 이 책에서처럼 노인 인구 자체를 줄이는 정책이 결코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게 이 책에서처럼 노인들 스스로 서로 죽고 죽이는 “배틀”일수도 있고, 아님 일정 나이가 되면 안락사(安樂死)시키거나 별도의 시설물에 공동 수용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하는 등 다양한 방법의 시도가 있을 거라는 예상에 절로 흠칫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이제 중년의 나이에 들어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현실인 이상 이 책의 이야기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닌 불과 몇 십 년 후 내 미래일 수 도 있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작가 특유의 유머 코드들이나 우스꽝스러운 죽음들 - 집으로 쳐들어오는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포경선 작살을 발포하지만 너무 큰 위력으로 그만 휩쓸려 같이 죽어버리는 노부부 이야기나 난데없이 코끼리를 타고 나타나 난동을 피우는 장면, 신체적 조건으로 배틀 대상에서 제외되었음에도 그 사실을 모르고 같이 죽어버리는 노인 등 - 장면을 읽으면서도 그리 재미있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끔찍한 그런 장면으로만 느껴졌다. 물론 내가 너무 과민(過敏)한 반응을 보인 탓이겠지만^^ 

  츠츠이 야스타카의 작품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 <최악의 외계인>에 이어 이번 작품이 세 번째 작품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야 워낙 유명한 애니메이션이라 차치하더라도 단편집이었던 <최악의 외계인>에서도 온갖 기괴망측한 상상력의 진수를 보여주더니, 이번 소설은 그걸 뛰어 넘는 독특하면서도 기괴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는걸 보면 결코 유쾌한 상상은 아니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는 그런 재미를 보여주는 작가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책이 본토인 일본에서는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작가가 썼다면 사회 매장까지 각오할 정도로 끔찍한 상상을 일본에서는 잡지에 연재되고 버젓이 소설로 나올 수 있다니 일본의 문학적 다양성과 포용성이 부러워진다. 이 책에 나오는 노인들처럼 이미 칠순을 훌쩍 넘긴 - 1934년 생이니 올해 한국 나이로 일흔 여덟이다 - 작가가 부디 앞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해주기를, 그래서 우리의 상상의 한계를 통렬히 깨부수는 그런 작품들을 계속 선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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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캣 2011-02-1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미르님 축하드립니다~ ^ㅡ^

레드미르 2011-02-17 10:46   좋아요 0 | URL
서평올릴 때나 들어오다 보니 러브캣님 댓글을 이제야 확인했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