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1
주현성 지음 / 더좋은책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한 때는 위기론이 거론될 정도로 침체되었던 인문학(人文學)이 요즈음 “대세(大勢)”로 불린다고 한다. 대학들과 주요 지자체들, 시민단체 등에서 개설하는 인문학 강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고, 취업시장에서 찬밥 신세였던 비인기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도 경영자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채용이 조금씩이지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문학 열풍을 가장 잘 느껴볼 수 있는 곳이 출판시장인데, 인터넷 서점에서 “인문학”을 검색해보면 수십 권의 신간이 올라와 있고, 몇 몇 책들은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 목록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인문학이 인기가 있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해 묻고 답하는 학문, 곧 삶의 학문인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고(<[김덕기]인문학을 보는 사회의 이중성> 발췌, 중도일보, 2012.10.3.), 또한 기업환경이 기존 정보산업을 넘어 창조산업 중심으로 바뀌며 효율성 중심의 경영이 가지는 한계가 드러났고, 인문학이 더 요구되는 것은 그것이 융합이라는 새로운 시대 패러다임의 핵심 아이콘이기 때문(<프리즘]독서, 그리고 인문학> 발췌, 이티뉴스, 2012.10.15.)이라고 한다. 즉 인문학 열풍은 “시대의 요구”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인문학에는 어떤 학문들이 있을까? 인문학의 분야로는 언어학과 문학, 역사학, 철학, 종교학, 여성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사철(文史哲. 문학/역사/철학)로 요약되기도 한다(위키백과 발췌). 너무 방대하고 이름만 들어도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어려운 학문들 일색이다. 철학을 예로 들면 우선 지역적으로 동양과 서양으로 구분되고, 서양 철학의 경우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알아야 될 철학자 이름들과 이론들이 수백 개는 족히 될 것이며,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용어와 이론들 천지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쉬운 공부 없다고는 하지만 어디부터 공부를 시작할 지 영 난감하기만 한, 그래서 시작도 못하고 포기하기 일쑤인 학문이 바로 인문학인 것 같다. 그렇다고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근 인문학 열풍에 힘입어 인문학 입문서(入門書)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주현성 저/더좋은책/2012년 10월)>이 바로 그런 인문학 입문서이다.

 

 

저자는 서두의 “한 권의 책으로 인문의 기초 여섯 분야를 꿰뚫는다”에서 인문학 인기의 이유를 앞에서도 언급한 인문학의 창조성과 실용성, 게임, 영화 등 문화 콘텐츠 속에 담겨있는 다양한 인문학적 해석코드, 그리고 인간의 지적 욕망을 든다. 그런데 인문학은 꽤 다양한 기초 상식이 있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만만해 보이지 않은 학문이며, 그동안 많은 교양 입문서가 나왔지만 매우 산발적이거나 한 분야의 지식에만 치우쳐 있어, 인문 교양에 욕심을 내는 초심자들에게는 꽤 긴 길을 돌아가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깊이 있는 인문서를 읽는 즉시 바로 소화할 수 있는, 그런 체계적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기획했다고 말하면서, 이 책에서 다룰 인문 교양의 주제로 “심리학”, “회화”, “신화”, “역사”, “철학”, “글로벌 이슈”, 이렇게 여섯 가지 주제를 제시한다. 저자의 기획 의도는 충분히 알겠는데, 저자가 제시한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고개가 약간 갸우뚱거려졌다. 역사(歷史)와 철학(哲學)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인문학의 주요 학문이고, 신화(神話)는 역사학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으며 글로벌 이슈는 시사(時事)성 있는 주제이니 맞다 싶은데, 심리학(心理學)과 회화(繪畵)가 의외였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사회과학(社會科學)”, 회화는 “예술(藝術)”로 분류되지 않을까?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인문학의 범주(範疇)에 대해 이견(異見)이 많고, “자연과학(自然科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회과학, 예술까지 총망라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니, 심리학, 회화도 광의적인 의미에서 인문학의 분야로 봐도 맞을 것 같았다.

 

 

본문에서는 앞서 말한 여섯 가지 주제를 차례대로 다루고 있다. “1장. 인간의 영원한 화두, 마음ㆍ심리학” 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심리학자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자 심리학의 아버지요 창시자로 생각하는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 1832~1920)”를 심리학의 아버지로 인정한다고 한다 - 에서부터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뇌과학(腦科學, brain science)”과 “경제 심리학(經濟心理學,psychology of economic behavior)”을 소개하고. “2장. 눈으로 확인하는 지식의 지형ㆍ회화”에서는 인상파(印象派, Impressionism) 양식의 창시자인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에서부터 현대 미술계의 중심인 “뉴욕파(New York School)”의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 1987)”까지 소개한다. 이처럼 주로 근·현대의 심리학자들과 미술가들을 소개한 1,2장과는 달리 “3장. 은유로 가득한 또 하나의 인간 역사ㆍ신화”에서는 신화(神話)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리스 신화”와 “4장. 세계를 이해하는 기초 지도ㆍ역사”에서는 서양 세계사(世界史) 전체, 즉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의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를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철학은 인문학의 대표 학문답게 가장 많은 장을 할애했는데 현대 이전과 현대로 나누어 “5장. 역사를 움직여온 지식 동력ㆍ현대 이전의 철학”, “6장. 현재와 미래를 재구성하는 대화의 장ㆍ현대의 철학”에서 소개한다. 마지막 장인 “7장. 앞선 교양인의 궁극적 관심사ㆍ글로벌 이슈”에서는 이슈의 중심이 되고 있는 “세계화”에 포커스를 맞춰 유효수요 확대를 주장했던 경제학자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와 반대 개념인 “통화주의”를 주장하고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만든 경제학자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 ~ 2006)”의 이론을 소개하고, 세계 분쟁의 주무대인 중동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지의 세계의 화약고들를 이야기한다. 책에는 이런 설명글들과 함께 페이지 곳곳에 삽화와 도표들을 배치하여 시각적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문은 현대 철학을 다룬 “6장. 현재와 미래를 재구성하는 대화의 장ㆍ현대의 철학”이었다. 현대 이전 철학은 학창시절 세계사(世界史) 수업과 철학 입문서로 가장 유명한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 그리고 몇 몇 철학 관련 교양서들을 통해 나름 지식이 있었는데, 현대 철학은 접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현대 철학에 대해 공부해 볼 요량으로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 <좌파들의 반항> 등을 읽었었는데, 너무 어려운 책들을 골랐는지 읽다가 포기했던 아픈 경험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과학적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Karl Marx, 1815~1883)”부터 명칭만큼은 숱하게 들어봤지만 그 뜻을 모르고 있었던 “실존주의(實存主義, Existentialism), “구조주의(構造主義, Structuralism)”, “기호학(記號學, Semiotics),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까지 현대 철학자들과 철학 사조들을 일목요연하게 관통해볼 수 있었다는 점은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개괄적인 소개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 현대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학자들과 이론들을 공부해야하는지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철학 부문은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신화”와 “역사” 부문은 아쉬움이 남는다. 책에서는 그리스신화와 서양 세계사를 연대기 순으로 요약하는 수준에 그치는 데, 철학처럼 학문으로서 “신화학(神話學, Mythology)"과 ”역사학(歷史學, Historiography)“의 방법론이나 학자들을 소개했으면 어땠을까? 신화학도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자연신화학, 인류학적 비교신화학, 구조주의적(構造主義的) 신화분석 등 다양한 학파와 이론이 있으며, “프레이저( James George Frazer, 1854~1941)”,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1904~1987)”,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 등 이론가로써 또는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학자들이 많이 있다고 하며, 철학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학문이라고 하는 역사학은 더욱 더 다양하고 많은 이론들과 학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인문학 입문서로서 후속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면 다른 학문들에 비해 학문적인 지식과 정보가 생소한 신화학과 역사학을 다뤄주길 바래본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인문학 공부를 어려워하는 초보자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쉽고 친절한 기초 입문서이자 일반 상식(常識)으로 읽어도 충분히 좋을 책이었다. 관심 있는 학문은 이 책으로 전반적인 가닥을 잡은 후에 강론(講論)으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철학부문을 공부할 때는 꽤나 유용할 것 같다. 그나저나 서두에서 인용한 <[김덕기]인문학을 보는 사회의 이중성>, 중도일보, 2012.10.3.) 기사를 더 읽어 보면 인문학이 열풍이라고는 하지만 인문학의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 한다. 대학이 취업준비를 위한 기관으로 전락하면서 취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은 비인기 학문 - 이글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취업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숫자가 매우 미미하여 피부로 체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 으로 전락했고, 인문학자들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즉 대학 안에선 사라져가는 인문학이 바깥에선 열풍인 상호 모순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다는 인문학 열풍도 우리나라에서는 한 때 유행에 그칠지도 모르겠다. 학문 연구가 기본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문학도 그 중요성은 갈수록 커져 가지만 연구 시설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아직까지 노벨상 하나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기초과학(基礎科學)”과 같은 운명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가을이다.

요즈음이야 사시사철 책읽기 좋지 않은 계절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가을만큼 “독서(讀書)의 계절”이 잘 어울리는 계절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수많은 소설들 중 어떤 장르가 가을에 잘 어울릴까? 개인적으로 즐겨 읽는 추리·스릴러 소설은 아무래도 여름이 제격이고, 아침저녁으로 옷깃이 절로 여며지는 추운 가을 날씨에는 가슴을 따뜻함으로 물들이는 감동적인 소설이나 감성이 충만한 가슴 아픈 연애 소설이 딱 어울릴 듯하다. 그래서일까? 장르소설 마니아인 나에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았을, 거기에 처음 만나는 작가에 대한 울렁증이 있는 내가 이름만 들어봤을 뿐 아직 만나본 적이 없었던 “김연수” 작가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자음과모음/2012년 8월)>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 이었다

 

 

시(詩) 한 구절을 연상시키는 띠지와 책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위 문구는 평소라면 손발이 오그라들었을 문구였겠지만 갈수록 깊어가는 가을과 딱 어울리는, 처음부터 눈길을 확 잡아끄는 문구였다. 다른 책들은 책 읽기 전에 출판사 홍보글과 다른 독자들의 서평, 그리고 책 앞 뒤 면의 작가의 말들부터 꼼꼼히 읽고 시작하는데, 이 책은 그런 사전 조사 없이 이 문구로 바로 시작했다. 이 가을에 어울리는 가슴 시린 로맨스 소설이겠거니 하고 말이다.

 

 

2012년 현재, 양모(養母)인 “앤”이 죽고 난 후 집을 나와 혼자 살고 있는 26세 미혼 여성인 “카밀라 포트만”에게 양부(養父)인 “에릭”이 카밀라가 쓰던 2층 방을 정리했다며 여섯 상자에 카밀라의 유년 시절 물건들을 가득 담아 보내온다. 상자들이 배달되던 날, 상자에 담겨 있던 테디 베어 인형을 보고 눈물을 흘린 뒤로 상자를 더 이상 열어보지 않고 방 한쪽 벽에 쌓아놓았다가 남자 친구 “유이치”의 권유로 상자 속 물품들을 꺼내보며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글이 출판되면서 제법 인기를 끌게 되고 뜻하지 않게 작가가 되어 버린 카밀라에게 출판사에서 의뢰가 들어온다. 생후 6개월 만에 미국으로 입양되어 온 카밀라가 모국인 한국에서의 과거를 찾아보는 논픽션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카밀라에게 한국에 대해 남은 거라고는 양모인 앤이 죽기 몇 해 전 카밀라의 친오빠라며 보내온 편지에서 경남 진남이라는 지명과 카밀라의 생모가 진남여고 재학생이었다는 내용, 그리고 함께 동봉해온 생모로 추정되는 여자의 낡은 사진 한 장 뿐이었다. 앤은 카밀라에게 편지와 사진을 주면 곁을 떠날까봐 편지를 없애버리고 사진만 남겨뒀던 것이다. 카밀라는 유이치와 함께 한국 진남으로 찾아와 진남여고를 방문해보지만 현 교장 선생님이자 카밀라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정지은”이 학교를 다녔던 1988년 선생으로 근무했던 “신혜숙” 교장은 진남여고에서 순결을 중요시하는 학교여서 재학생이 아기를 가졌던 일은 절대 없었다고 부인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수소문과 당시 엄마의 친구들, 그리고 엄마와 추문이 돌았던 선생님 - 신혜숙의 남편이기도 하다 -의 증언들을 통해 하나 둘씩 과거의 진실이 그 베일을 벗게 된다. 카밀라이자 재희가 마주하게 된 과거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앞서 말한 대로 가슴 시린 로맨스 소설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어릴 적 입양되어 이제는 성인이 된 한 여성이 자신의 과거를 찾는 과정이 전개되면서 솔직히 당황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앞서 인용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과 같은 아름답고 감성적인 시어(詩語)들이 계속 이어지고, 카밀라가 과거를 찾는 과정이 미스터리하게 전개되면서 제법 흥미가 느껴져 이내 당황스러움을 지우고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카밀라가 마주하게 되는 과거는 결코 간단치가 않다. 그녀의 엄마 지은은 미성년인 여고 2학년 때 카밀라를 임신한다. 그것도 자신의 친오빠와의 패륜적인 관계로 말이다. 결국 그녀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야 만다. 카밀라는 어쩌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그런 아이였던 것이다. 이렇게 그녀의 과거는 밝혀지면 밝혀질 수 록 그녀의 존재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기까지 한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과거의 점들이 모두 드러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점들을 밟고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인생은 지금보다 좋아질 수 도 있고, 나빠질 수 도 있다. 하지만 너 같은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과거의 점들이 모두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네 인생은 몇 번이고 달라지리라. 인생의 행로가 달라진다는 말이 아니다. 너라는 존재 자체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P.201.~202.

 

 

그러나 카밀라는 그런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똑바로 직시한다. 엄마와 자신과 관계된 추문(醜聞)속에 감춰진 진실은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남들처럼 살지 못한 과거의 점의 인생을 선의 인생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입양아”라는 삶에서 벗어나 비록 불행하고 비참하더라도 자신의 과거를 올곧이 갖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불행하다고 외면해서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자신이 온몸으로 그것을 껴안았을 때 비로소 불행은 사라지고 자신에게 온전한 과거의 삶이 주어지기 때문 말이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과거를 찾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에 짠한 그런 느낌마저 들었다. 다행히 점점 밝혀지는 과거의 진실은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의 추문은 거짓으로 밝혀졌고 결말에서 자신의 아버지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짧았지만 엄마와 손을 마주 잡았을 때부터 불타오르는 강렬한 사랑을 느꼈던 아버지를 말이다.

 

 

사랑이 끝난 뒤에야 나는 언제 그 사랑이 시작됐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잡고 있던 게 정말 불이라면, 그게 첫사랑의 불꽃같은 게 맞다면, 집에 도착했을 때 내 어린 심장은 완전히 불타올라 잿더미로 바뀌었으리라 - P. 314

 

 

내 나름대로 카밀라에게 있어 과거의 의미와 있는 그대로 과거를 마주하려 한 카밀라를 응원하며 읽긴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작가가 나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메세지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입양아의 정체성 찾기인지, 아니면 불꽃같은 사랑을 하다 간 지은의 사랑인지, 아니면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심연을 건너가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서처럼 어떤 비참하고 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이 존재한다는 메시지였는지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이 책을 온전히 읽어내는 데 실패했다.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남겨 놓은

 

 

가끔, 설명하기 곤란하지만 나의 말들이 심연을 건너 당신에게 가닿는 경우가 있다. 소설가는 그런 식으로 신비를 체험한다. (중략)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

 

 

당부처럼 작가가 쓰지 않은 이야기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 읽고 나서도 쉽게 가시지 않은 가슴 속 울림과 여운에 책을 쉬이 덮지 못하는 것이 작가가 말한 이야기 때문이라면 아직은 여지가 남아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호흡을 길게 갖고 찬찬히 글자 한자 한자를 꼼꼼히 읽어볼 생각이다. 작가가 텔레파시로 계속 보내고 있는 메시지를 계속상기하면서 말이다.

 

 

가슴시린 로맨스 소설은 아니었지만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은, 감수성이 절로 예민해지는 이 계절에 참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김연수 작가, 첫 만남이었는데 나쁘지 않은 그런 느낌의 작가이다. 이야기(敍事)의 구성력은 이 책 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책 속 곳곳에 등장하는 시와 문구들은 연습장에 따로 적어두고 싶을 정도로 참 아름답고 감성적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될 작가가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 그러면 아비규환]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외 지음, 엄일녀 옮김 / 톨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르소설”을 즐겨 읽는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장르소설이란 “이전에는 ‘대중소설’로 통칭되던 소설의 하위 장르들을 두루 포함하는 말”로 장르로는 “SF·무협·판타지·추리·호러·로맨스 소설”(네이버 지식백과사전 발췌) 등이 있다고 한다. 순수 소설과 비교하여 너무 “흥미” 위주여서 문학성이 떨어진다고 경원시 - 원래 장르소설의 전(前) 명칭인 “대중소설(통속소설)”이 순수 소설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이며 이 말에는 “멸시”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 하는 분들도 있지만 특유의 장르적 흥미와 재미 때문에 베스트셀러 목록 상단을 늘 차지하며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번에 읽은 <안 그러면 아비규환(원제 McSweeney's Mammoth Treasury of Thrilling Tales /2012년 7월)>은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그 이름과 작품을 들어봤을 영미권의 장르소설 스타작가 20인의 단편들을 한데 모은 소설집이다. 이 책을 받아들고서 살짝 걱정이 먼저 앞섰다. 750 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동안 읽었던 여러 작가들의 작품 선집(選集)에서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작품 하나하나만 보면 충분히 개성 넘치고 흥미로운 작품들이지만 한데 모아놓으면 서로의 강렬한 개성과 색깔이 잘 어우리지 못하고 그저 나열식 밖에 되지 않는, 차라리 한 작가만의 단편 모음집보다 못한 소설집들을 여럿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책 표지를 열었다.

 

 

영미권의 스타작가 20인을 한자리에 모은 사람은 누굴까? 바로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여기에 모인 19인의 작가 못지않게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 작가인 “마이클 셰이본” - 이 단편집의 마지막 수록 작품인 <화성에서 온 요원; 행성 로맨스>의 작가이기도 하다 - 이다. 저자 섭외부터 디자인 콘셉트까지 책의 기획을 총괄했다는 그는 책 말미에 실린 “제작노트”에서 앞서 말한 “장르소설”의 정의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장르소설 작가에 대한 폄하를 꼬집는다. ‘문학’을 숭배하는 신성한 전통은 소위 ‘장르’ 작가들을 늘 홀대해왔고, 범죄·공포소설은 ‘펄프픽션’이라서 선정적이고 허섭스레기 같은 대중지에나 게재될 뿐, 자존심 강하고 명망 높은 잡지들에는 감히 실릴 수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장르문학’과 ‘순문학’을 구분 지으려는 시도는 뚜렷한 근거와 이유가 없음에도 완강하게 이어지고 있고, 이 작품집은 이런 편 가르기와 선입견에 반대해 최고의 작가들이 던지는 도전장이며, “지금은 잊히고 만 단편소설의 초기 장르를 부활시키고,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단편을 쓰던 전통을 복구하는 것”이이 책의 목표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나름 야심차지만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한 포부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작품을 수록한 작가들의 면면을 보고 선택하지 기획자의 의도 때문에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뭏튼 기획자의 의도는 충분히 알았으니 이제 속살을 들여다보자.

 

 

책에는 장르소설 모음집에 걸맞게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장르가 총망라되어 있는데, <안 그러면 아비규환>을 잠깐 소개해본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표제작(表題作)이자 첫 번째 수록 작품이기도 하지만 책 속 단편들 중에서 “데이브 에거스”의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와 “셔먼 알렉시”의 <고스트 댄스>와 함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작가는 “닉 혼비” 인데 영국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 높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이다. “SF"로 분류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열 다섯 살 소년이 우연히 중고 전자제품 가게에서 낡은 VCR를 구입하게 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밴드 연습 때문에 좋아하는 NBA 플레이오프를 시청할 수 없었던 소년은 엄마를 졸라 낡은 VCR를 한 대 사게 된다. 그런데 주인이 가장 중요한 녹화와 재생이 안 된다는 것 아닌가. 계속 물어보면 가격을 올리겠다는 주인의 협박(?)에 서둘러 사가지고 나온 소년에게 주인은 신경 쓰지 말라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집으로 와서 설치하고 시험작동을 해보니 웬걸 작동이 잘된다. 안심한 소년은 농구 경기 예약 녹화를 해놓고 연습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녹화 테이프를 재생해보는데 아뿔싸 공 테이프를 넣어두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테이프를 넣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소년은 VCR 리모컨의 빨리 감기 버튼을 눌렀는데 현재 시청하고 있는 지상파 TV 프로그램이 빨리 감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녹화해 놓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미래 방송“을 빨리 감기로 시청하던 소년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6주가 지나면 모든 지상파 TV, 모든 채널에서 해주는 프로는 뉴스 하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을 알게 된다. 마치 9/11이 일어난 직후 며칠간과 비슷한 상황 말이다. 그러더니 화면에 백악관 집무실에 앉아 있는 대통령이 비장한 모습으로 연설을 하고, 그 후에는 사람들이 보따리와 어린애를 안고 집집마다 빠져나와 지하로 피신하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보여준다. 그러고는 몇 시간 더 뉴스를 하더니 그 다음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지상파 TV가 끊긴 것이다. 혹시나 해서 계속 빨리 감아 보지만 TV에는 검은 화면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즉 6 주 후에 세상이 끝나 버리는 것이다. 소년은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동급생 소녀 ”마사“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미래를 보여주는 TV 이야기를 한다. 이 단편은 세상이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된 소년이 세상이 끝나간다는 것을 알기에 용기를 내서 평소라면 절대 엄두도 못 냈을 제일 예쁜 여자애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그녀와 자게 된 이유를 소개하는 어쩌면 응큼한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처음의 걱정을 잊게 만들지만 역시나 계속 읽다보니 각 편의 재미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들쑥날쑥 편차가 있다. 그래서 몇 몇 작품은 읽고 나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어떤 작품들은 작가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조금은 지루한 작품들도 없지 않았다. 그런 작품들은 과감히 건너뛰고 -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 첫 문장과 이야기가 구미를 당기는 작품들과 기존에 만났던 작가들 - 사실 이 책의 작가들 중 만나본 작가는 “닐 게이먼”, “스티븐 킹”, “마이클 크라이튼”, “로리 킹”, “마이클 셰이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작가의 1/4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 위주로 골라 읽었는데, 헤아려 보니 13편 정도는 읽은 것 같다. 어떤 작품이 그랬는지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개인 취향에 따라 선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작가들이라고는 하지만 알고 있는 작가들이 몇 되지 않았고, 작품마다 편차가 있어 모든 작품들의 재미를 올곧이 다 읽어내지 못한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래도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처음의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소문난 잔치에도 제법 먹을 것이 많다" - 물론 다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 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롭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아 즐거웠던 책읽기였다. 장르 소설, 특히 영미권 작품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진수성찬”과도 같은 책일 테고, 다양한 장르소설들의 재미를 맛보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안성맞춤이 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누구에게나 추억 깃든 음식 하나 둘 쯤은 있기 마련이다. 소풍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소풍날이 되면 내일 비올까 싶어 밤에 몇 번씩 잠을 깨어 창문을 내다보던 초등학생들에게는 엄마가 싸주셨던 김밥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북(北)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에게는 어릴적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고향 음식이, 가난했던 시절 수도 없이 먹어 성공하면 절대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성공하고 나니 다시금 그 맛이 그리워 찾게 된다는 어느 여배우의 수제비가 바로 그런 음식들일 것이다. 이렇게 추억과 사연이 있는 음식의 맛은 가슴 속 깊은 곳에 각인(刻印)이 되어 세월이 한참이 흘러도 결코 잊어지지가 않고 엊그제 먹은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음식은 식재료와 양념 본연의 맛과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하는 걸까? 음식과 이야기가 한데 잘 어우러진 음식 소설인 <달팽이 식당>으로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는 일본작가 “오가와 이토”가 또 다른 음식 소설을 선보였다. 제목부터 음식으로 맛보는 감동이 느껴지는 <따뜻함을 드세요(원제 あつあつを召し上がれ/북폴리오/2012년 8월)>가 바로 그 책이다.

 

책에는 추억과 사연 있는 음식에 관한 7편의 짤막한 소설이 실려 있다. 첫 편인 <할머니의 빙수>에서는 치매 걸린 할머니의 “음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유는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할머니, 셋이서 살고 있는 여자 아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기 조금 전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시고, 엄마는 할머니 뒷바라지를 2년 가까이 계속해왔지만 과로로 회사에서 쓰러지면서 어쩔 수 없이 요양원으로 모시게 된다. 엄마와 마유는 자주 찾아가 음식을 권해보지만 할머니는 입을 굳게 다물고 드시려 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마유가 캐러멜을 꺼내 입에 물려 드리려 하자 할머니의 입가가 느슨해지며 “후”라는 소리를 낸다. 마유는 후지산을 보고 싶어 하신다 생각하고 침대 창가의 커튼을 열었다가 순간 깨닫는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후”가 바로 몇 년 전에 가족 모두 빙수를 먹으러 갔을 때 할머니가 빙수를 보시면서 “마유, 꼭 후지 산 같지?”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말이다. 마유는 부리나케 빙수를 사가지고 오고 할머니는 그제서야 입을 벌려 빙수를 드시고 손녀딸인 마유에게 먹어보라고 스푼을 내밀기까지 하셨다. 할머니는 지금 몇 년 전 여름, 가족끼리 갔던 빙수 가게의 그 정원,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책에는 음식에 얽힌 소소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다만 표지 그림의 이야기인 애완용 돼지와 프랑스로 음식 여행을 떠난 남성을 그린 <폴크의 만찬>만은 꽤나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전작인 <달팽이 식당>을 읽지 않아 이 작가의 경향이 원래 이런가 싶어 다른 독자들의 감상을 읽어보니 전작에서도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었다고 하니 전혀 의외의 글은 아닌 듯 싶은데,  잔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툭 튀어나오는 이 단편은 어째 음식의 감동을 “따뜻함”으로 표현한 이 책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점 하나, 이 단편에서 돼지는 과연 “진짜” 돼지일까 아니면 뚱뚱한 동성 연인에 대한 비유적 표현일까? 아무래도 후자가 맞을 것 같은데 삽화들은 “진짜” 돼지가 그려져 있으니 그것 참 요상하기만 하다.

 

이렇게 튀는 단편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무난한 이야기들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금세 읽을 만한 소설 - 물론 분량이 161 페이지로 보통 소설의 반도 채 되지 않았고 이야기도 가벼운 음식 에세이 수준에 그치긴 하지만 - 이었다. 작가는 책에 나와 있는 문구(P.38)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기분 나쁜 일도 괴로운 일도 그때만큼은 전부 잊을 수 있다고 이 책의 일곱 편의 단편 - 위에서 말한 “이상한” 단편도 프랑스 정찬에 대한 세세한 묘사만큼은 절로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든다 - 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너무 짧은 이야기라 작가가 말하는 음식의 행복을 올곧이 읽어내기가 어려웠지만 전작을 재미있게 본 분들이나 음식 이야기를 즐겨 읽는 분들, 그리고 가벼운 읽을꺼리를 찾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다 읽고 나니 문득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던 따뜻한 된장국이 그리워졌다. 그저 된장 풀어 야채 넣고 끓인 평범한 된장국이지만 특제 조미료인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들어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 된장국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어머니 된장국을 먹으러 다녀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올여름이 너무 대단해서 과연 가을이 올까 싶었는데, 아침 저녁으로는 옷깃이 절로 여며지는 것을 보니 가을이 건너뛰지 않고 어김없이 우리들 곁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책이야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늘 가까이 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독서는 가을이 제격인 것 같습니다. 지난 9월에 출간된, 만나기는 가을이 끝자락을 보일 11월에 만나보고 싶은 소설들입니다.

 

1. 존은 끝에 가서 죽는다 1,2(데이비드 윙 저/황금가지/2012-09-10)

 

 

 

책 소개글을 읽어 보니 "더글라스 애덤스"의 코믹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나 역시 유머와 재치 가득한 "닐 게이먼"의 <멋진 징조들>을 연상시키는  재미있는 책일 것 같습니다. 사실 서양식 유머 코드가 낯설어 부담스럽기까지 했었는데 이 책은 그런 부담스러움을 한방에 날릴 정도로 재미있을 것 같아 읽고 싶은 책 첫 번째로 꼽아봅니다.

 

2. 소울 케이지(혼다 테쓰야 저 / 씨엘북스/2012-09-18)

 

 

섬뜩한  잘린 손목 표지 그림이 인상적인  소설이네요. 그동안 일본 추리/공포 소설 꽤 읽었다고 자부하는 데 이 책의 작가인 "혼다 테쓰야"는 처음 들어보네요. 일본에는 얼마나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이 있는지 그 저력에 다시 한번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올라와 있는 서평들을 읽어보니 칭찬들이 많아서 더욱 기대되는 이 책, 늦가을을 더욱 스산하게 만들어 가슴 떨리게 하는 멋진 책일 것 같네요.

 

 

3. 디클레어 1,2(팀 파워스 저/열린책들/2012-09-05)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가 맞물리는 판타지 스릴러 소설이라니 두 장르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재미가 두배가 될 소설입니다. 소개글을 봐도 여러 유명 작품상을 수상했고, 처음 만나는 작가이지만 그의 최고 걸작이라 평가받는다니 재미는 충분히 보장되었을 책인 것 같습니다. 올 가을 별다른 여행 없이 집에 콕 쳐박히게 될 것 같은데 이 책의 무대인 런던, 파리, 베를린, 베이루트, 터키 등 유럽과 중동을 간접 여행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알라딘 11기 신간평가단도 이번 주목 신간 포스트로 사실상 마지막이네요. 6개월이라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난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12기에도 선정되는 행운을 바래보며 남은 11기 활동 성실하게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즐거움과 행복이 가득한 시간들 되시기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