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포비아
김진우 지음 / 북퀘스트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김진우” 작가는 작년(2012년) 8월에 <애드리브(북퀘스트/2012년 8월)>라는 소설로 만나본 적이 있다. 처음 만나보는 작가인데다가 우리나라 장르소설 분야에서는 거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SF소설이라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읽고 나서 “깜짝” 놀랐었다. SF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악"을 소재로 하는 독특하고 기발한 설정과 흥미진진한 스토리 라인, 그리고 기대를 뛰어넘는 작가의 상상력과 글솜씨에 홀딱 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모 인터넷 서점의 “2012년 최고의 책” 추천에서 이 책을 “2012년 숨은 걸작”으로 추천했었다. 이렇게 강렬한 첫 만남을 선사했던 김진우 작가를 신작 SF 소설로 다시 만났다. 태양 표면의 대폭발(Superflare) 이후 인류의 삶을 그린 <소셜 포비아(북퀘스트/2013년 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어느날, 태양의 불길이 높이 치솟았다. 마치 거대한 불도마뱀 살리만드라와 같이 변한 태양의 입김에 지구는 화염 지옥으로 변했고 만년빙은 녹아내렸으며 더운 바다는 해안가를 집어삼켰다. 숱한 인간들이 거세게 덮친 열파에 목숨을 잃었고, 지구상 곳곳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급기야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숱한 생명들이 사라지고 오랜 핵겨울이 지속되면서 세상이 그렇게 끝나는 듯했지만 시간이 흘러 하늘을 가렸던 검은 장막이 걷히고 지구상의 생존자들이 다시 등장하는 인류사의 제 2막이 펼쳐진다.

지구 종말적 상황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인간들이 건설한 인공 도시이자 “바깥 세상”과 단절된 그들만의 낙원인 “밀양림”의 주민인 청년 “유울모”는 3년간의 바깥 세상에서의 파견 근무를 마치고 밀양림으로 무사히 귀환하게 된다. 도착하자마자 노인들의 거주지인 “샹그릴라”에서 살고 있는 친할머니 “이환”을 찾아간 그는 그 곳에서 할머니의 친구이자 조로증(早老證)을 앓고 있는 소년인 “미즈마루”와 인사를 나누게 된다. 할머니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미즈마루는 남의 마음을 감지하고 텔레파시를 보내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시(市)에서 새로이 주거지를 배정받고, 자신이 근무했던 애완동물 생산 회사에 “리페트” 사에 복귀한 그에게 어느날 밤 자신의 주거지 바로 위층에 거주하고 있는 여인인 “미아보라”가 찾아온다. 그의 집에 쥐가 출몰하고 있으니 생포해서 자신에게 건네 달라는 것이다. 괴물처럼 추한 얼굴과 꼬리를 가진 이상하기만 한 생김새였지만 유울모는 그녀의 묘한 매력에 이끌리고 만다. 홀연히 나타났나가 사라지는 미아보라의 행적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던 유울모는 밀양림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테러 조직의 비밀 거주지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서 밀양림과 밀양림을 건설한 기업 제국 “파나샤”의 전복을 꾀하는 테러 집단의 조직원이자 밀양림의 시장인 “비잇”의 연인이라는 사연을 듣고, 원래의 순수한 뜻을 잃어버리고 타락한 비잇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그녀를 동정하게 된다. 그러던 중 테러조직에 맞서기 위한 자위 군대 창설을 주도하던 비잇은 암살당하고, 비밀 거주지 또한 초토화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비교적 짧은 분량(320 P) 임에도 줄거리에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설정과 이야기, 그리고 메시지(含意)들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소재와 스토리 라인, 등장인물 등 모든 면에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전편 - 내가 읽은 순서로는 <애드리브> 다음에 이 책이었는데 작가 소개글을 보니 <밀양림>이 첫 작품이고 <애드리브>가 두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밀양림>과 <소셜 포비아>와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미뤄 짐작컨대 데뷔작인 <밀양림>을 재출간, 개정 출간한 작품이 <소셜 포비아>로 생각된다. - 못지 않게 기발하고 독특한 상상력과 이야기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SF 수작(秀作)으로 평가할 만 하다. 특히 미래 도시이자 낙원이라 할 수 있는 밀양림에 대한 설정과 묘사는 머릿 속에 그대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고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어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게 만든다. 그러나 SF 소설이 밝고 희망찬 미래보다는 어둡고비관적인 미래를 그려낸다는 특유의 “디스토피아(Distopia)”적인 설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몇몇 설정과 사건에서는 이해하는 데 필요한 부연 설명을 생략하고 있어 책 속에서의 미래 모습을 머릿 속에 이미지로 구현해내고 여러 사건들과 등장인물의 행동에 대한 연유를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운 점들이 없지 않았다.

특히 소설의 제목인“소셜 포비아(Social Phobia)"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좀 어려웠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거나 바보스러워 보일 것 같은 사회 불안을 경험한 후,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정신적 질환이라고 하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회 기피증(혐오증)’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인터넷 서점 책 소개글에서 인용). 이런 정의를 바탕으로 내 나름으로는 바깥 세상을 경험하고 온 주인공 유울모가 지옥같은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중앙 통제 인공 지능체와 ‘천사’라 불리는 기계들에 의한 완벽한 통제 시스템을 통해 바깥 세상의 온갖 위험으로부터 완전한 안정을 보장하여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는 낙원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바깥 세상 못지 않게 불안과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밀양림"에 대한 주인공의 탈낙원(脫樂園)을 꿈꾸는, 즉 안(밀양림)과 밖(바깥 세상)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하고 이해해보지만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소셜 포비아에 대한 이해는 내 해석보다는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글이 더 정확할 것 같아 인용해본다.

(중략)작가는 특히 그 가운데서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 듯, 떠돌이 인간인 ‘호모비아토르형’의 캐릭터들을 내세워, 인간은 원래부터가 지옥 같은 현실 사회에서건, 천국 같은 낙원 사회에서건 사회적 기피증(소셜 포비아)을 떨쳐 내지 못하여, 탈사회적 떠돌이 존재, 즉 또 다른 낙원을 찾아 떠나는 ‘소셜 포비안(Social Phobian)’이 됨을 극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사회적 동물성과, 또다시 사회에 안주하지 못하고 떠나는 떠돌이 인간, 이 두 상충적인 관계를 유토피아적 가공 도시 ‘밀양림’이라는 무대에서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제대로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웠고, SF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대중적이기 보단 매니아적 성향이 더 다분한 소설이지만 그래도 소재와 설정, 이야기 전개 면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신선하고 독특한 SF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이 소설에 대한 나의 평가는 척박한 SF 소설 작품 환경 속에서도 이렇게 기대 이상의 성취를 보여주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에게 경의와 격려의 의미로써 별점 만점을 준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평가이지만 말이다^^. 이제 김진우 작가는 나에게 있어 꼭 기억해두어야 할, 그리고 후속작들은 꼭 챙겨 읽어야 할 이름으로 확실히 각인되었다. 그의 후속작을 빠른 시일 안에 다시 만나보길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