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히스토리아 1 - 불멸의 소년과 떠나는 역사 시간여행 피터 히스토리아
교육공동체 나다 지음, 송동근 그림 / 북인더갭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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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피터 히스토리아; 불멸의 소년과 떠나는 역사 시간여행(교육공동체 나다 글/송동근 그림/북인더갭/2011년 8월)>을 선택했을 때는 한 아이가 시간 여행을 통해서 역사를 공부한다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판타지 풍의 역사 교양 만화쯤으로 생각했었다. 요즈음 이렇게 “학습 만화” 형식의 책들이 참 많이 출간 - 인근 시립도서관 아동 도서 코너를 가보면 책장 한 줄 전체가 아예 학습 만화들이 빼곡히 꼽혀 있을 정도이다 - 되는 지라 흥미 위주의 “그저 그런” 책 정도로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면서 몇 번을 책 날개의 지은이 소개글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어른인 내가 읽어도 곱씹어 생각할 꺼리가 많은 가볍지 않은 이야기와 학습 만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유치한 그림체가 아닌 세련되고 유려한 그림체 때문에 “이 책, 우리나라에서 만든 만화 맞어?”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역사 속 이면에 감춰진 이야기나 각종 음모론 등을 엮어낸 흥미 위주의 역사 교양서보다 훨씬 나은 주제의식과 감동을 담고 있는 이 책, 한마디로 “물건”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페테루”는 기원전 27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 살던 소년이었다. “죽은 후엔 어떻게 될까, 신은 있을까, 사람은 왜 생겨났을까?” 등 호기심이 많았던 피터는 하늘에 닿을만한 엄청난 탑들이 솟아 있고 자신의 마을보다는 열 배- 실제로는 수천 수만 배쯤 차이가 날 것으로 보이는 그 당시 가장 큰 도시인 “우르”로 짐작된다- 나 클 것으로 여겨지는 이웃 초승달 모양의 거대한 마을인 “초승달 마을”을 궁금해하며 아버지를 도와 보리농사를 지으며 절친한 친구인 “엔키두”와 함께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런데 어느날 바로 페테루가 궁금해하고 동경하던 "초승달 마을"의 지배자 “길가메시”가 이끄는 군대가 마을로 쳐들어오고 아버지를 잃은 페테루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잡혀가 노예가 되어 노역에 시달리게 된다. 페테루는 같이 붙잡혀 온 엔키두와 함께 탈출을 하기로 결심하지만 엔키두는 시름시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두고 떠날 수 가 없어 페테루만 보내게 된다. 집요한 추적에 의해 절벽까지 몰리게 된 페테루는 절벽에서 뛰어 내리지만 동굴에 거주하고 있는 노인에 의해 목숨을 건지게 된다. 페테루는 왜 자신에게 이렇게 비참한 일이 발생했는지, 지배자와 피지배자(노예)라는 계급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여정에 나선다. 그런데 그 여정은 단순히 주변 국가들을 둘러보는 그런 여행이 아니라 4,700 여 년이라는 시간 속으로의 불멸(不滅)의 여행이었다. 먼저 고대 그리스에서 노예였던 “아이소포스(이솝)”를 만나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피터 - 페테루가 방문하게 되는 나라들의 언어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 는 오늘날 구세주로 많은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는 “예수”의 죽음을 목격하고, 중세 마녀 사냥이 한참이던 시절에는 갈릴레이의 책을 통해 “과학”의 의미에 대해 공부한다. 피터의 여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신대륙에서의 원주민 학살과 약탈 현장에서는 유럽인들과 맞서 싸우고 원주민 소년 소녀를 피신시키는가 하면 , 프랑스 혁명 시대에는 분노한 시민들과 함께 봉기에 나서기도 하고, 어린이 노동 착취가 한참이었던 19세기 영국 산업 혁명 시절에는 어린이들을 이끌고 공장을 탈출하고, 폴란드를 침공한 나치에 맞서 산속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는 레지스탕스들과 함께 지내기도 한다. 반전운동과 흑인인권운동, 히피 문화의 시대였던 1960년대를 거친 피터는 마지막으로 미국의 공습이 한참이던 자신의 옛 고향 이라크로 돌아온다. 수십 세기를 거쳐 온 그의 여행은 과연 어떻게 끝을 맺게 될까.

 위에서 소개한 줄거리처럼 피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대에서부터 현대 미국-이라크 전쟁 시점까지 세계사 속 여러 사건들이 벌어지는 그 시간과 장소를 직접 거쳐가며 수십세기에 이르는 기나긴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런데 피터가 그 사건들 속에서 깨닫게 되는 진실은 소수의 인물들이 이끌어가는 영웅담이나 혁명적인 제도와 문화로 과대 포장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춰진 추악하고 탐욕스럽기만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태동시킨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사실은 여성에 대한 비인격적인 차별과 노예 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을 보면서도 어찌 신(神)이 특정 민족만 구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기도 한다. 방직기계가 발명되면서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하루 열 두 시간 이상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어린이들이 있었으며, 독재 정권의 폭압에서 이라크 민중을 해방시키겠다며 시작한 이라크 전쟁이지만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씩 죽어나가는 것은 바로 그 이라크 국민들이었다는 점을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역사는 몇 몇 인물들의 위대한 발견이나 업적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업적이나 사건들의 이면에서 이름조차 전해져 오지 않는 수많은 “민중”들의 피와 눈물이 바로 그런 역사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영웅이나 국가 중심이 아닌 피지배계층, 즉 “민중”에 초점을 맞춘 역사 인식 - 그렇다고 “민중사관”이라고 말할 정도로 편향되거나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 은 여러 진보 성향의 역사 교양서들을 통해서는 접해 봤었는데, 이처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학습 만화 형식으로는 나로서는 이 책이 처음 접해보는 것 같아 읽는 내내 꽤나 놀라우면서도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보수적인 성향의 독자들이라면 이 책이 “의식화”, 즉 불온 서적 쯤으로 삐딱하게 볼 수 도 있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소수의 영웅들이나 지역의 패권을 다투던 국가 등 지배권력 중심의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역사 인식이 아니라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힘없는 피지배계층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역사라는 다른 시각으로서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책이어서 청소년들에게도 꽤나 유익한 책으로 여겨진다. 특히 자신과 생각이나 생김새,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틀리다고 여기고 차별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쉬운 청소년들에게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교재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을 쓴 "교육공동체 나다"가 궁금해서 홈페이지(http://nada.jinbo.net/)를 찾아보니 공교육의 대안될 수업모델을 만들기 위해 청소년들과 '인문학 토론'이란 이름의 만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자기 주관을 가졌으면 바라면서도 지금은 세상을 잘 알지 못하면서 나서는 것은 섣부르니 사회에 대한 발언은 대학가서 해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모순에 인문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부조리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행동이며, 학부모, 교사 등과 마찬가지로 청소년은 삶의, 교육의 주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다 다시 한 번 못 박으려 “교육공동체 나다”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단체라고 소개하고 있다. 진보 성향의 교육단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이러한 그들의 교육에 대한 시각과 방법론들이 색깔론이나 이분법으로 폄하되지 않고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서 충분히 존중받고 가치를 인정받기를 바래본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라면 마지막 에필로그에서의 “이솝의 최후”에 대한 장면을 꼽고 싶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솝이 델포이 인들의 손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솝의 죽음의 이유에 대해서 후세의 작가들은 그의 모욕적인 풍자 때문에, 또는 크로이소스가 델포이에 배달하라며 맡긴 돈을 횡령해서, 또는 은잔에 대해 신성 모독을 해서 그랬다고도 하는 등 여러 추측을 내놓았다고 하는데, 책에서는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한다. 노예의 신분에서 풀려난 이솝은 모함을 받아 절벽에서 떨어지는 형벌에 처하게 된다. 이솝이 노예이던 시절 그의 지혜에 매료되었던 한 관료가 그를 구하기 위해 이솝은 다른 사람의 노예이므로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 그를 구해내려고 하지만, 이솝은 자신은 남에 의해 생사가 결정되는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결정하고 싶다면서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즉 “자유”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셈이다. 물론 실존 인물 여부 조차 불투명한 이솝을 미화하는 그런 이야기로 비춰질 수 도 있겠지만 “자유”의 의미와 소중함을 한번쯤 되새겨 보게 만드는 인상 깊은 대목으로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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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방울 2012-07-18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피터 히스토리아를 출판한 교육공동체 나다는 인문학으로 청소년들을 만나오던 단체랍니다. 이번 7월 30일 부터 단행본이 나오고 처음으로 피터 히스토리아를 교재로 하는 10강의 서양사 강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피터를 재밌게 읽고나서 더 이야기를 해나가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으셨거나, 청소년을 위한 역사수업이 늘 연도를 외우고 옛날 이야기로만 끝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신다면, 이번 교육공동체 나다 여름특강에 오셔서 피터히스토리아와 함께 서양사를 살펴보는 게 어떨까요? 주변에 홍보도 살짝 부탁드려볼께요 :)
자세한 설명은 http://nada.jinbo.net 나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