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이야기 샘터 외국소설선 8
존 스칼지 지음, 이원경 옮김 / 샘터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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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칼지(John Scalzi)”의 <노인과 전쟁> 시리즈는 2부인 <유령여단>을 2010년 9월에, 시리즈 완결편인 3부 <마지막 행성을 2011년 9월에, 그리고 시리즈 외전(外傳)인 <조이 이야기(원제 Zoe's Tale/샘터/2012년 8월)>를 올해인 2012년 9월에 읽었으니 묘하게도 지난 3년간 매 해 9월에 한 권 씩 만난 셈이 되었다 - <노인의 전쟁>은 소장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 출판 시기가 7~8월 무렵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양 SF 소설에 부담감을 갖고 있는 내가 매 해 찾아 읽게 만들 정도로 재미있는 시리즈라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조이이야기>는 본 시리즈와는 별개의 주인공이나 에피소드로 구성되는 일반적인 외전의 경향과는 다르게 시리즈 완결편이자 시리즈 주인공인 “존 페리”가 화자(話者)였던 <마지막 행성> 속의 이야기를 “존 페리”의 딸인 “조이”의 시각으로 그려냈다는 점 - 그래서 원제도 “Zoe's Tale"이다 - 에서 색다르다. 1년여 만에 다시 만난 <노인과 전쟁> 시리즈의 외전인 이 책을 받자마자 즐거운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스토리는 <마지막 행성>의 줄기, 즉 “허클베리” 행성에서 민정관으로서 8년여를 한가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보냈던 “존 페리”와 아내 “제인 세이건”, 그리고 그들의 수양딸인 “조이”가 우주개척연맹의 명령으로 개척단을 이끌고 “로이노크” 행성으로 떠나고, 로이노크 행성에서의 고난스러운 개척활동 끝에 가까스로 정착을 했지만 사실은 우주개척연맹의 음모로 인류의 개척 활동을 반대하는 범우주연맹 “콘클라베”의 대함대를 격멸하는 데 본의 아니게 앞장선다는 줄거리를 그대로 따른다. <마지막 행성>에서는 이 과정을 “존 페리”의 시각으로 상세하게 묘사했다면, <조이 이야기>에서는 그런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곁에서 지켜보는 열일곱 살 소녀 “조이”의 시각으로 상황들을 묘사한다. 그렇다고 <마지막 행성> 스토리를 재탕한데 그치지 않고, 존 페리의 시야가 제대로 못 미쳤던 사건들을 조이의 시각에서 새롭게 재구성하고, 마지막 편에서 남았던 의문들을 완전히 해소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전편에서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진 로이노크 행성의 “늑대 인간”과의 이야기나 책에서 그저 간략하게 묘사하고 넘어간 콘클라베 동맹의 가우 장군에게 암살 시도를 알리러 간 조이가 겪은 일들, 그리고 그녀를 외계 종족 “오빈”이 신(神)으로 숭배하는 이유, 신의 종족인 “콘수”가 오빈에게 지능만 부여하고 의식을 부여하지 않은 이유 - 조이의 친 아버지인 “샤를 부탱”이 오빈 종족에게 의식 프로그램을 제공했었는데, 2부인 <유령여단>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 조이가 로이노크 행성으로 돌아왔을 때 외계의 침입을 방어할 콘수의 기계를 가져오게 된 사연들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가 처음부터 이런 외전을 염두에 뒀던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작품 후기격인 <감사의 말>을 보면 <마지막 행성>을 얼렁뚱땅(?) 마무리했다고 독자들에게서 꽤나 질타를 당했다니 말이다. 결국 작가는 독자들의 성화 - “제대로 써” - 에 등 떠밀려 이 외전을 쓰게 된 셈인데, 오히려 이 외전이 마치 <마지막 행성>과 요철(凹凸)처럼 아귀가 딱 맞물려 이야기의 완성도를 더 높였으니, 작가로서는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 판이고, 실제로도 지면을 통해서 감사의 말을 드리고 있다. 사실 <마지막 행성>을 읽었을 때는 저런 사건들에 대해 별로 의문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 이렇게 말하니 내가 <마지막 행성>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고백이 되어 버렸다 -,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지막 행성>을 다시 훑어보니 이 책이 아니었으면 놓치고 말았을 의문과 비밀들이 수두룩했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그만큼 이야기가 서로 보완되어 완성도가 한층 올라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있는 이야기를 다시 그려낸다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지만 작가에게는 꽤나 힘들었나 보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그려낸다는 게 쉽지 않으며, 특히 열일곱 살 소년 소녀의 말투와 시각을 담는다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춘기 소녀의 시각과 말투를 그려낼 자신이 없어 오죽하면 지인의 충고대로 어린 애인을 둘까 하는 위험(?)한 생각도 잠시 했다면서, 아내를 비롯한 주변의 십대 소녀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그네들의 말투와 행동, 사고방식을 재현해 낼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십대 소년 소녀들의 즉흥적이고 톡톡 튀는 행동과 말투를 담아내려고 작가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절로 알 수 있었다. 물론 나 또한 십대 소녀의 생각이나 경험에는 문외한인지라 제대로 표현해냈는지를 평가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떻게, 즉 <노인과 전쟁> 시리즈를 다 읽고 읽어야 할까 아니면 별개로 읽어야 할까? 앞의 2부와 3부는 별도의 스토리 전개로 시리즈에 상관없이 읽어도 이해가 되었는데, 이 책은 아무래도 시리즈를 다 읽고 난 후이거나 적어도 <마지막 행성>을 읽고 나서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마지막 행성>과 <조이이야기>에서 서로 생략된 사건과 이야기들이 아귀를 딱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전을 끝으로 “존 스칼지”의 <노인과 전쟁> 시리즈는 진정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책은 <노인과 전쟁> 시리즈 애독자들에게는 본 시리즈보다 한층 무르익은 글솜씨와 스토리 전개, 작가 특유의 유머와 재치, 그리고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까지 외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차고 넘치는 재미와 감동으로 “특별 선물”이 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또한 <노인과 전쟁> 시리즈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애독자였기에 이 책에 대한 평점은 별 다섯개 만점을 주고 싶다. 그나저나 내년 9월에는 더 이상 <노인과 전쟁> 시리즈를 만날 수 없어 아쉬움마저 든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은 아직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아직 읽지 못한 1부 <노인의 전쟁>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굳이 <노인의 전쟁>을 내년 9월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다. 올 가을이 가기 전에 챙겨 읽을 예정이다. 바람이 있다면 내년에는 “존 스칼지”의 또 다른 작품인 <신의 엔진>이 꼭 출간되기를, 그래서 내년 9월에는 그 작품으로 징크스(?)를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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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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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讀書)를 즐겨 하다 보니 한 편 두 편 작성해서 올린 감상글(讀後感)이 어느새 500 여 편을 넘어섰다. 아직은 내 글을 읽으면 얼굴이 다 화끈거리고, 제목에 “서평(書評)”이라는 단어를 붙이기가 영 민망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책을 읽었을 당시의 재미와 감동을 복기(復棋)해보는 즐거움이 제법 쏠쏠해서 가끔씩 과거 글들을 꺼내서 읽곤 한다. 내 글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서평들도 즐겨 찾아 읽는데, 좀 더 잘 쓰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제대로 책을 읽었는지 하는 공부 차원에서 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의 감성을 견줘보고 비교해보는 재미 또한 꽤나 크기 때문이다. 하물며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 특히 추리소설에 대한, 그것도 전문 평론가의 서평이라면 그 재미야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 평론가이자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의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예담/2012년 8월)>은 추리소설 마니아로서, 그리고 어쭙잖지만 장르소설 위주의 “서평”을 올리고 있는 나에게는 “공부”와 “재미”,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었다.

 

작가는 들어가는 글인 “프롤로그;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초대”에서 먼저 자신이 하드보일드 세계에 입문한 과정부터 설명한다. 작가는 아동문학전집에 끼어 있던 홈즈와 뤼팽, 연이어 아가사 크리스티와 엘러리 퀸, 동서추리문고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에게 하드보일드에 결정적으로 빠져들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본 프랜시스 코폴라의 <대부>를 보고나서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이 후로 점점 하드보일드에 빠져 들어 세상이 얼마나 거대하고 폭력적인 것인지,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자신이 그 안에서 왜,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그 하드보일드 ‘픽션’들을 통해서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하드보일드의 정의와 개념,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 이 부분은 출판사 소개글이나 다른 분들 글에서 많이 소개되어 있으므로 생략한다 -, 말미에서 하드보일드는 냉정하게, 이 세상의 법칙을 알려주며, 결코 외면하지 말고, 환상에 빠지지 말고 살아가라는 충고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것이 자신이 여전히 ‘하드보일드’에 매료되어 있는 이유이고,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이며,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무자비한 세계를 미스터리를 통해 들여다보고,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라며 프롤로그를 끝맺는다. 작가의 연배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추리소설에 입문한 과정과 똑같아서 살짝 놀라기까지 했는데, 작가처럼 <대부>에 그리 경도되지 않았다는 점은 다르다고 하겠다. 내가 <대부>를 봤을 때는 세월이 흘러 “낡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주윤발”의 우수어린 눈빛과 미소, 현란한 쌍권총 액션에 넋을 놓게 만드는 “홍콩 느와르”가 대세(大勢)였기 때문이다. 시작은 같았지만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로 들어섰다고 할까?

 

본문에 들어서면 38 편의 소설들을 5개의 챕터(Chapter)로 나눠 소개한다. 각 챕터의 제목만으로도 작가가 인지하고 있는 하드보일드 세계를 잘 보여주는데, 작가는 현실이 가히 “개 같은 세상”이라 하더라도 “외면할 수 없”으며(1장), “약해져도 좋”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아라”고 말한다(2장). 그리고 “학교는 진실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며 “인생은, 고통에서 배우는 것에서 배우는 것”이고, (3장), “구차해도 좋다. 자신만의 길을 가라”며 살아가고 살아남는 방법을 이야기하며(4장) - 어쩌면 2장과도 일맥상통하다 -, “거대한 벽”을 만나면 싸우거나 즐기거나 혹은 피하라고 충고한다(5장). 각 챕터에는 2~3 페이지 분량으로 제목과 주제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주제에 걸맞는 책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는 글을 싣고 있다. 이 글들에는 작가가 이 세상을 얼마나 비정(非情)하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지 잘 드러나 있는데, 출판사 홍보글에서 이 책이 “서평집의 외형을 띠고 있으나,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 신랄하게 파헤치고, 잔혹한 세상에서 취해야 할 삶의 방식을 탐색하는 내용”을 담은 “일종의 처세서”라는 표현이 딱 제격이라 하겠다.

 

책 속에 소개하고 있는 소설들 면면을 보면 작가의 이런 시각에 걸맞게 하나같이 음습하고 어둡고 폭력적인 책들이지만 그러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하는 책들 또한 빠뜨리지 않는다. 첫 번째 챕터인 <개 같은 세상, 그래도 외면할 수 없다 : 비정한 세계를 보는 눈>에서는 “우리 이웃의 범죄와 악인의 실체”를 이야기하는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 좌파 소탕이라는 명분하에 마약을 용인했던 미국 정부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돈 윈슬로”의 <개의 힘>, 공포가 지배하던 공산주의 사회에서 발생한 아동 연쇄살인을 그린 “톰 롭 스미스”의 <차일드 44>, 관계없는 타인을 향한 무차별적인 악의를 그린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없는 독>, 자신의 딸을 죽인 아이들에 대한 어머니의 복수를 그린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순도 100퍼센트의 찌질이들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아웃사이더들의 유쾌하고 통쾌한 이야기를 그린 “가네시로 카즈키”의 <레볼루션 No.0>, 자신과 다른 “특별한” 존재를 말살하려는 거대 권력의 음모와 이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다카노 카즈아키”의 <제노사이드>를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책들을 소개하면서 이 세계는 다면적이고, 아름다운 동시에 비참한 곳이며, 착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좋지만, 세상은 결코 당신에게 친절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조언하고 싶다고 말한다. 즉,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다가 뒤통수를 맞고 대체 왜 이런 거냐며 울부짖기보다는 애초에 세상은 더러운 곳이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자신을 추스르며 걸어가는 게 좋다는 뜻이다. 따라서 배신을 당하고, 이유 없는 악의에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나동그라졌다가도, 견디고 일어설 수 있는 내공을 위해 일단은 머리로 알고, 그 다음은 세상과 부딪치면서 맷집을 기르라면서 아무리 힘든 시련도 두 번째 겪고, 세 번째 만나면 조금은 수월해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뺏어날 가능성이 크고, 최소한 아무것도 주지 않을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제노사이드>의 저자 “가네시로 카즈키”의 말을 그 해법으로 제시한다.

 

벗어나라. 바깥에서. 달리는 거다. 누구의 편도 아니고. 어떤 조직의 하수인도 아닌 독립적인 자신이 되어라. 그게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대학시절 선배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순해 빠진 신입생들에게 혀를 끌끌 차면서 “정신 똑바로 차려!”하고 일갈(一喝)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 너희가 생각하는 것만큼 따뜻하고 관대하지 않다고, 세상 호락호락하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칠 거라는 그런 충고 말이다.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오는 충고이고, 이런 교훈을 범죄소설인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이끌어냈다는 것이 놀랍기까지 하지만 작가의 생각에는 살짝 동의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온갖 질병과 불운으로 가득차 있는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있는 것은 더 큰 불행이 아니라 바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정하고 음습한 어둠만 가득 찬 세계라도 어느 한 구석에는 희망의 작은 불씨가 결코 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바로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물론 작가가 이런 희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서 말한 대로 환상에 빠져 냉정하기만 한 세상의 법칙에 외면하지 말기를 당부하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하드보일드 소설이 잠깐의 졸음과 미몽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생을 깨우치는 스님들의 죽비(竹篦)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들을 소개하다 보니 감상글이 심각(?)해졌지만 이 책, 책 속 책들의 서평들만 읽어도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특히 하드보일드 소설 입문서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제격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서두에서 말한 “공부”는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와 주제 전달, 감상과 철학을 적절하게 녹여낸 서평의 진수를 만나 한 수 배웠다는 점과 다소 낯설었던 하드보일드 소설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었던 점을 들 수 있겠고, “재미”는 역시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 추리소설의 다양한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책 속의 38권의 책 들 중 읽었거나 또는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헤아려 보니 14권에 이르니 나도 “준” 마니아급은 될 것 같다. 물론 하드보일드의 상위 장르인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들과 계속 출간될 추리소설들은 앞으로도 내 독서 목록과 감상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굳이 심각하게 읽을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작가의 말들을 한번쯤은 상기시키며 읽으면 더욱 재미있고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추리소설은 나에게 어떤 것일까? 작가의 “나의 힘”처럼 강렬하면서도 명쾌한 단어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데, 그냥 “나의 최고의 즐거움(遊戱)” 라고 할까? 써놓고 보니 참 유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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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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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상한 동물원 "세렝게티 동물원"

 

여기 "이상한“ 동물원이 있다. 이름은 TV 다큐 <동물의 왕국>의 단골 무대인 “세렝게티 동물원”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았다. 겉모습만 보면 고릴라, 코끼리, 곰, 악어, 호랑이 등 여느 동물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동물들을 빠짐없이 구비(?)해놨고, 편의시설이나 유락시설도 그다지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모습들인데 뭐가 이상한 걸까? 이 동물원의 인기 동물인 “고릴라” 우리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가 고릴라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킹콩”일 것이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가슴을 쳐대는 그 모습 말이다. 그런데 실제 고릴라들은 으르렁대거나 가슴을 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잘 움직이지도 않고, 한 자리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전혀 구경꺼리가 없는 심심한 곳이 바로 “고릴라” 사육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동물원에서는 고릴라들이 마치 연기(演技)라도 하듯이 구경꾼들을 향해 수시로 으르렁대고 가슴을 쳐대며, 구경꾼들이 던져 주는 바나나를 척척 받아먹는다고 한다. 심지어 한 시간에 한번은 우리 가운데 있는 높이 12m 짜리 철제 탑 - 이름도 킹콩이 기어 올라갔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다 - 을 기어 올라가 포효하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한다고 하니 말만 들어도 당장 달려가 구경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고릴라 뿐만이 아니다. 이 동물원의 곰들은 비닐 공을 수시로 몸으로 터뜨리고, 하마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둥에, 그것도 철제 기둥에 머리를 시시때때로 쳐박곤 한단다. 거기에 구경꾼들이 뜨문뜨문해지면 으르렁대던 동물들이 끼리끼리 모여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아니 이건 동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것도 앵무새나 구관조가 사람을 따라하는 그런 부자연스러운 소리가 아니고 또박또박 단어를 발음하고, 적절하게 감탄사나 추임새도 섞어서 말이다! 이 무슨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인가? 제17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강태식”의 <굿바이 동물원(한겨레 출판/2012년 7월)>은 바로 이 “세렝게티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유쾌하고 즐거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가슴이 찡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세렝게티 동물원의 정체와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각각의 사연들

 

중소기업에서 과장으로 재직하던 “나(김영수)”는 몇 달 전 회사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 바람에 그만 실직하고는 집에 들어 앉아 마늘 까기 알바를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종이학과 공룡알 접기, 인형 눈깔 붙이기를 하다가 본드를 불기까지 하는 등 소소한 재택 알바를 전전하던 나는 부업 브로커 “돼지 엄마”의 소개로 혹독한 체력시험을 거쳐 “세렝게티 동물원”에 취직하게 된다. 부푼 꿈을 안고 첫 출근하던 날, 엉뚱하게도 나에게 주어진 것은 고릴라 탈과 털옷이었다. 고릴라 옷을 입고 고릴라 우리에 들어간 나는 고릴라 세 마리를 만나게 된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안절부절하는 나에게 고릴라 한 마리가 다가와서는 어깨를 툭 치면서 말을 건네는 게 아닌가. 그것도 사람 말을 말이다! 나는 그 순간 기절하고야 만다. 앞서 말한 이상한 동물원 “세렝게티 동물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들이 동물 옷을 입고 동물 연기를 하는 것, 그렇다 보니 여느 동물원의 동물들보다 더 관객들의 기호에 맞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고릴라 연기(?)에 적응한 나는 고릴라 동료들과 친해지면서 퇴근 후 술자리를 기울이는데, 그들이 터놓는 사연들 또한 나 못지않게 기가 막히고 기구하기 짝이 없다. 먼저 대장 만딩고는 남파 간첩이었지만 동료의 배신으로 경찰과 자신을 배신한 동료에게 쫓기고 있는 그런 신세이고, 대기업에서 오물처리반 - 동료와 부하직원들을 자진 사직하게 만드는 - 에 있다가 같은 신세가 되어 퇴직하고 동물원에 온 “조풍년” 과장,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하고 결국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보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 몇 년 째 공부 중인 “암컷” 고릴라 “앤”이 그들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서로를 격려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고릴라 우리에 한 남자가 찾아온다. “소생”이라는 이상한 말투를 쓰며 자신도 이 동물원에서 동물로 근무했다는 여행사 직원인 그는 고릴라들에게 이상한 제안을 한다. 동물원을 탈출하여 대자연(大自然)의 품으로 돌아가 실제 동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가 싶은데 벌써 몇 몇 동물들이 그의 제안에 따라 자연에서 동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대장 만딩고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자신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동물원 우리로 찾아오는 옛 간첩 동료의 눈을 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프리카 케냐로 떠난 대장 만딩고는 매일 밤 고릴라 동료들과 다른 동물들에게 전화를 해온다.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이다. 그러자 동물원 동물들이 동요를 하기 시작한다. 하루에도 몇 몇 동물들이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동물원에 비상이 걸리고, 사육사 - 동물 탈을 쓴 사람을 관리하는 이상한 사육사들이지만 - 들이 나서 보지만 동물들의 “탈출”은 계속 늘어만 간다. 제목 그대로 “굿바이 동물원” 하면서 말이다.

 

이 책, 참 재미있다.

 

동물원 동물들이 사람이 동물 탈을 쓰고 연기를 하는 것이라니 이런 기발한 상상이 또 어디 있을까? 요즘이야 분장술과 SF 효과가 워낙 발달해서 최근 개봉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을 보면 도저히 사람과 침팬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지만 영화가 아닌 실제 동물원이라면 표가 나는 게 당연할 텐데 작가는 시치미를 뚝 뗀다. 그렇다면 고릴라, 곰은 사람 체형과 비슷해서 그렇다 하더라도 개미핥기나 하마, 기린, 악어는 어쩔건가. 역시나 작가는 아무런 부연 설명이 없다. 하긴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사람이 동물 연기를 가능한지 안한지를 따질 독자가 누가 있을까. 동물원은 작품의 장소적 배경이자 “루저(looser)"의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사람답게 살고 싶다”라는 소망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장치이니 말이다. 그래서 “사람 동물” - 표현이 맞나 모르겠다 - 들이 초원과 밀림으로 가서 동물들과 어울려 산다는 것도 실현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그냥 참 기발하다고만 느끼게 만든다. 이처럼 동물원에 대한 설정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 동물”간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참 재미있고 기발하다.

 

그런데 이 책, 한편으로는 참 슬프다.

 

주인공인 김영수는 마늘을 까면서 눈물을 흘린다. 마늘의 매운 알리신 성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초라하고 처량한 신세에 대한 한탄이 눈물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울고 싶을 때는 마늘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우는데,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마늘을 깔 때란다. 그는 마늘도 맵지만 사는 건 더 맵다고 말한다. 실직하고 집에 앉아 마늘을 까는 지난 몇 달을 돌아보면 코끝이 찡해지고, 화장실 같은 곳에 숨어서 남몰래 울고 싶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실 그는 정리해고 소식을 부장에게서 듣던 날 울고 싶은 마음에 숨어서 울고 싶어 회사 화장실을 갔었다. 그런데 화장실에는 이미 자신처럼 숨어서 울고 있는 사람으로 꽉 차 있어서 울지 못하고 나왔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마늘은 울고 싶은 그를 울리는 참 좋은 수단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슬픔은 주인공 뿐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실직 때문에 통장을 하나 둘씩 깨먹었고, 마지막 하나 남은 통장 만큼은 지키기 위해 남편처럼 마늘을 까고 봉투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가 그만 본드에 중독되고 만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심정은 오죽할까? 고릴라 동료 조풍년씨 사연 또한 서글프다. 살아남기 위해 동료와 후배들을 사직케 하는 “오물처리반” 활동을 하던 그를 아내와 딸은 무섭다며 곁을 떠나버린다. 그런 아내와 딸을 붙잡지 못하고 집에 남겨진 그의 어깨는 슬픔에 영 처량하고 무겁기만 하다. 대장 만딩고는 자신을 배신한 선배 간첩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회 칼을 들고 찾아가지만 이 선배 간첩은 칼침을 여러번 맞았는 데도 죽기는 커녕 그에게 달려든다. 그러면서 그에게 자네의 칼은 전혀 무섭지 않다고,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돈이라고 말한다. 북(北)에서의 공작금이 끊기고 남한에 정착하여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그 선배 간첩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돈”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를 죽이지 못하고, 거꾸로 그에게 쫓겨 숨어 살아야 하는 만딩고의 삶은 생각만 해도 슬프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도 이 책, 가슴 찡하게 만드는 감동이 있다.

 

고릴라들이 위험천만한 12m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오르는 이유는 꼭대기에 설치된 부저를 누르기 위해서다. 그 부저를 눌러야만 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조풍년 씨는 그 빌딩을 오르다가 그만 떨어져 허리를 다친다. 그런데 고릴라 동료들인 만딩고, 앤, 그리고 주인공은 번갈아 가면서 조풍년씨에게 할당된 부저를 대신 눌러준다. 자신들도 수당을 받아야 하는 근근한 처지이지만 다친 동료를 위해 기꺼이 동료의 부저를 눌러주는 것이다. 모두가 다 떠난 텅빈 고릴라 우리에 나는 남아 있다. 그래도 이 동물원은 가족의 생계 수단임과 동시에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본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뱃속에 있는 3개월 된 애기 때문에 본드를 과감히 끊어버린 아내가 찾아온다. 고릴라 우리로 다가온 그녀에게 고릴라 탈을 쓰고 있던 나는 손을 내밀고, 평소에 고릴라 구경을 좋아했던 아내는 그 손을 만지며 즐거워한다. 그 고릴라가 사실은 남편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부부의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옛 고릴라 동료들은 내색하지 않고 박수를 쳐준다. 그리고 세렝게티 초원에서 고릴라들과 어울려 살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만딩고, 그처럼 동물원을 탈출하여 대자연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 동물들, 그리고 미처 다 소개 못하는 여러 감동 코드들을 떠올리면 저절로 가슴 한 켠에 찡한 울림과 함께 입가에는 웃음이 절로 지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책, 낄낄거리고 웃다가도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책이다.

 

오랜만에 웃기면서도 슬프고, 감동적인, 책 한 권으로 여러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책을 만났다. 이 책과 비슷한 외국 소설을 꼽아보자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떠오르는데, 나는 <공중 그네>보다 <굿바이 동물원>에 훨씬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비록 소설 속 허구의 인물들이긴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들 이웃, 아니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읽는 내내 감정이입되어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따라 때론 웃다가도 때론 눈물 한 방울 흘리게 되고, 마지막에는 가슴에 아련한 슬픔과 함께 감동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소시민들 - 1%의 최상위 계급들에게는 영 찌질하고 못난 사람들 이야기겠지만 - 이라면 한번쯤은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들에게 이 책은 즐거움과 함께 가슴 깊이 새겨진 생채기를 어루만져주는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분들은 <굿바이 동물원>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모두들 동물원에 가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동물원의 그 많은 동물 우리 중에서 제일 먼저 고릴라 우리를 찾아갈 것이다. 예전에는 바나나나 던져 주고 말았겠지만 이제는 철망에 바짝 다가가서 말 한마디를 건넬 것이다. 당신이 사람 동물인 것 안다고, 힘내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고릴라가 움찔하는지, 즉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그러나 고릴라가 움찔하지 않으면 어떠랴. 어쩌면 그 말은 고릴라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하는 말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이 험하고 고달프기만 현실에서 결코 쓰러지지 말고 힘을 내라는 자신들에 대한 격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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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6 0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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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8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크로스 2 : 진중권 + 정재승 - 은밀한 욕망을 엿보는 크로스 2
진중권.정재승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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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논객이자 미학자인 “진중권”과 <과학콘서트>의 저자이자 과학자인 “정재승”이 21개의 주제에 대해 각자의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진중권+정재승, 크로스; 무한 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를 읽고 감상글을 올린 지가 벌써 2년이 넘었다. TV 토론 프로그램으로 기획해도 꽤나 인기 있었을 “이벤트”였는지라 책도 인문 교양 서적으로는 드물게 10만 부 이상 팔렸을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분명 2편이 나오겠구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 시리즈 2편이 나왔다. <진중권+정재승, 크로스 2; 은밀한 욕망을 엿보는(웅진지식하우스/2012년 8월)>이 바로 그 책이다. 지난 1권보다는 주제 개수를 하나 늘려 22개를 이야기하는 이 책, 읽기 시작하자마자 이 시대의 대표 입담꾼 - 논객(論客)이나 지성(知性)이란 말이 더 어울릴 수 도 있겠지만 두 분이 더 낯 간지러워 할 것 같다 - 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두 남자가 펼쳐내는 유쾌하고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고 말았다.

 

 

책에는 “로또”, “낙서”, “라디오”, “트위터”, “컵라면” 들처럼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주제에서부터 “오디션”, “레이디가가”,“트랜스포머”, “뽀로로”, “고현정”, “테오 얀센” 등 문화·연예계의 화제 꺼리들, “자살”, “학교짱”, “나는 꼼수다”, “아랍의 봄”, “4대강” 등 시사성 있는 주제들에 이르기까지 22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구성은 전편처럼 각자 4~5페이지(삽화 포함) 분량으로 주제에 대한 자신의 시각에서의 해석을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어떤 주제는 영 생소하기만 하고, 어떤 주제는 좀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주제도 있으며, 미학자와 과학자라는 서로 다른 입장임에도 같은 결론을 낸다 싶은, 즉 차별화된 시각이 느껴지지 않는 주제도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전편 못지않은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글들이었다. 22개 주제를 다 소개할 순 없을 것 같고 그중 “UFO”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을 간단하게 소개해보자.

 

 

"UFO" 편에서 진중권 교수는 UFO를 믿고 싶어 하는 이유를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자, 외계인이 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 아니냐고 물으며 과거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신의 역사로 돌렸으나, 오늘날에는 그것을 즐겨 외계인의 소행으로 돌린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는 피데이즘(Fideism)의 거의 본능적 욕구가 있는데, 오늘날에는 과학이 그런 믿음의 대상을 제거해버렸고, 그것을 보충해주는 것이 UFO 신앙이 아니냐면서 하늘에서 목격된 물체 중 일부는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니 UFO가 새로운 신앙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두 갈래 길이 있는데, 하나는 글자 그대로 외계인의 전능과 선의를 믿음으로써 라엘리언 같은 신흥종교에 이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UFO의 실존을 진지하게 믿지는 않으나 그것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하며 또 믿는 척해주는 것’ 이라고 말한다. 현대인의 UFO 신앙은 대부분 후자에 가깝다며, 이 넓은 우주에 달랑 우리만 존재한다면 그 얼마나 외롭고 심심하겠는가 하고 물으며 글을 끝맺는다.

 

 

그렇다면 과학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정재승 교수는 자신의 UFO 목격담을 예로 들면서 비록 외계 생명체를 찾는 탐사계획(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이 제대로 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해도, 외계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면서, 지구가 ‘인간 같은 지적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주 어딘가에 생명체가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뜻하고 확률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UFO를 만들어 보냈다고 확대해석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진 않으며, 만약 실제로 먼 행성에서 지구까지 와서 우리를 몰래 관찰할 정도의 지적 생명체라면, UFO 같은 비겁한 방식으로 지구인과의 접촉을 시도하진 않으리라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 교수 역시 ‘미확인’이라는 꼬리표가 한동안은 유효했으면 한다고 말하는 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째, UFO에서 외계 생명체가 내려오는 순간, ‘외계인은 우리가 전문’이라며 인간을 대표한답시고 떠들 미국이 몹시 아니꼽다. 둘째, 현재 유엔은 외계 생명체와 협상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협상과 설득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보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외계 생명체에 대한 정치적 대응 능력’은 아직 검증된 바 없다. 셋째, 기독교 같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종교들이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심리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돼 있다. 넷째, 무엇보다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엔 진실을 전해줄 스컬리와 멀더가 없다.

 

 

그리고는 ‘미확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은 비행물체뿐만 아니라 호수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고, 원자력발전소 근처,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수많은 사건·사고에도 어쩌면 확인된 것보다 ‘미확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이 더 많을지 모른다면서 해결되지 않은 ‘의혹’이 많은 나라일수록, UFO를 목격하는 시민도 더 많은 듯하며, ‘미확인’과 ‘의혹’이 둥둥 떠다니는 나라,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라는, 과학자답지 않은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에서 가장 “백미(白眉)”는 마지막 서로를 평가(?)하는 글이었다. 즉 “진중권과 정재승”, 본인들을 23번째 주제로 등장시킨 셈이다. 각자 중반까지는 의례적으로 서로에 대한 칭찬(?)을 이야기하는데, 끝에 가서는 험담(?) 한 마디씩을 늘어놓는다. 정재승 교수는 진중권 선생이 맞는 말을 하면서도 대중에게 욕을 먹는 건 결국 나중에 자신의 말이 맞았다고 결론이 났을 때 멋있게 가만히 있어주면 좋으련만 그러지 않고 “거봐, 내 말이 맞았지?” 하며 끊임없이 트윗글을 쏟아내기 때문이라는 만화가 강풀의 말에 동의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요즘 그가 평소 스스로를 ‘장동건·원빈급으로 잘생겼다. 미학적으로 완벽하다’는 취지의 트윗글을 종종 남기는데, 이게 ‘진심’이라는 것, 자신을 ‘조각미남’이라고 믿는 이 ‘각진 남자’는 자신의 외모를 평가할 때만은 평소 그가 보여준 고급스런 미적 취향을 전혀 발휘하지 않는다는 게 큰 흠이며, 심지어 호전의 기미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진중권 교수는 여기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정재승 교수가 자기만큼의 미모(?)만 가졌더라도, 그는 지금 가진 것보다 몇 배의 사회적 영향력을 즐기고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물론 핑계는 정재승 선생에 관한 글을 쓴다고 트위터에 올렸더니, 여러 트위터러로부터 그를 꼭 “미학적으로 디스”해달라는 간곡한 주문이 올라왔기 때문에 이렇게 평한다고 변명하지만 말이다. 정재승 교수 말대로 심각한 수준이다^^

 

 

사실 이 책의 글들은 지난 2011년 3월 28일 <한겨레 21> 제853호에서 첫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계속 찾아 읽었던 글들이라 이 책을 통해서 “복습(復習)”을 한 셈이 되었다, 그래도 연재 당시에는 격주에 한번씩 감질나게 만나다가 이렇게 책으로 한꺼번에, 그리고 연재 지면에는 싣지 못했던 삽화들과 함께 만나니 더 새롭고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쉽다면 1권 감상에서도 밝힌 것처럼, 그리고 진중권 교수의 마지막 글에서도 말한 것처럼 “미학(美學)”과 “과학(科學)”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의 시각에서의 “예술-인문학-자연과학의 통섭을 위한 본격적인 이론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이 정도 수준이 딱 맞을 것 같다. 괜히 어려운 이론이나 공식들 보다는 이 책처럼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들이 눈과 귀를 더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즌 3도 나올까? 두 분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시즌3을 언급하고 있으니 분명 나올 듯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주기(週期)를 당겨 주기 바란다. 그 어느 때 보다 유행이 빨라지고, 그만큼 화제꺼리가 많아지고 있는 요즈음, 두 분의 해석과 평가를 좀 더 빠르게 듣고 싶기 때문이다. <크로스 시즌3>도 조만간에 이렇게 감상글을 올릴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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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알렉스>의 저자 “피에르 르메트르”를 신작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원제 Robe De Marie/다산책방/2012년 7월)>로 다시 만났다. 전작이 추리소설로서의 스릴과 재미는 만점이었지만 눈살이 찌푸려지는 잔인한 장면들, “유니크”하지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 캐릭터 등 아쉬움도 들어서 “피에르 르메트르”에 대한 판단은 후속편으로 유보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판단을 할 기회가 2개월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전편(P.536) 보다는 줄어든 분량(P.372)이지만 표지만큼은 전편 못지않게 매혹적인 이 책, 기대반 걱정반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외무부 국장 부부의 여섯 살 난 사내아이 “레오”의 보모인 소피는 레오 어머니의 권유로 부부의 집에서 잠을 자고는 수많은 다른 아침과 마찬가지로, 그날 아침 특별히 불안해할 이유가 없는데도 눈물에 젖고 목이 꽉 멘 상태로 깨어났다. 남편인 “벵상”이 죽고 난 후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그녀에게 눈물은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녀의 허벅지에 머리를 얹은 레오의 몸에 전혀 움직임이 없다. 발가벗긴 채 세우처럼 웅크리고 있는 레오의 두 손과 두 발목은 한데 묶였고, 머리는 무릎 사이에 처박혀 있었으며, 아이의 목에는 자신의 신발 끈이 묶여 있었는데, 얼마나 세게 조였는지 살 속 깊이 파인 가느다란 홈처럼 보인다. 자신이 무의식 중에 그만 아이를 죽여 버린 것이다. 서둘러 집을 빠져 나온 소피는 자신의 집으로 가 소지품을 챙기고 은행에서 현금을 찾고는 기차역으로 간다. 그러나 기차역에서 가방을 분실한 소피는 자신의 가방을 훔쳐가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 했던 젊은 여인 “베로니크”와 실랑이를 벌이고, 소피는 사과하는 그녀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가 식사와 술을 함께 하게 된다. 술이 과했는지 잠시 정신을 잃었던 소피, 그런데 소피 옆에 베로니크가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 있지 않은가. 레오처럼 베로니크도 소피가 무의식 중에 살해하고 만 것이다. 소피는 베로니크의 신분증과 현금을 훔쳐 서둘러 도망쳐 나오고, 금세 잡힐 것이라고 장담하던 경찰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몇 년을 숨어 산다. 그러나 경찰의 1급 수배 대상으로 불안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소피는 출생증명서를 위조하여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기로 맘을 먹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가불하러 온 자신에게 성적 행위를 요구하는 아르바이트 매장 점장을 살해하고야 만다. 결국 소피는 현역 군인인 평범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아슬아슬한 도피 생활은 이렇게 끝을 맺는 듯 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소피가 벌여온 살인 행각이 소피의 정신질환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이가 치밀한 계산에 의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음모”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줄거리는 책의 첫 장(章)인 <소피> 편만 요약한 것이다. 분량이 150 여 페이지 남짓 되는데 소피가 아이와 여인을 잇달아 살해하고 숨어 사는 과정과 심리묘사가 꽤나 재미있고 스릴 있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 출근길에 버스에서 읽다가 책에 푹 빠져서 정류장을 놓칠 뻔 했다-. 그런데 장의 말미에서 소피가 도피 생활을 종지부 찍기 위해 낯선 남자와 결혼하는 장면이 나와서 이렇게 끝나 버린다면 남은 200 여 페이지 분량을 무엇으로 채우려고 그러나 하는 걱정이 들 무렵 작가는 <프란츠>라는 장으로 변경하여 장의 제목과 같은 “프란츠”라는 남자의 일기를 소개한다.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더 남아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남자의 일기가 거듭되면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소피의 살인과 도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소피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 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정신질환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 프란츠라는 남자가 수 년 동안 스토킹하면서 그녀에게 약물을 몰래 먹여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빠뜨려 버리고, 시어머니와 남편을 죽게 만든 것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치밀하고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지 누구라도 저런 음모에 빠진다면 “실성”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프란츠라는 남자는 왜 이렇게 소피를 나락에 빠뜨리려고 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절로 들 즈음 다시 한번 장이 바뀌고, 그 이유가 밝혀지고 그렇다면 소피는 이렇게 영문도 모르고 속절없이 당하기만 하다가 죽고 말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 쯤 또 장이 바뀐다. 이렇게 반전과 시점전환이 절묘한 타이밍 - 살짝 지루해지면서 궁금증이 증폭되는 시점을 작가는 마치 타이머로 계산이라도 하듯 정확하게 맞춘다 - 에 일어나다 보니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눈을 떼려야 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이 강력하다. 전작에서도 이야기의 전환점으로 동시에 지루해질 찰나에 새롭게 긴장감을 불어 넣고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장치로 반전을 활용하더니 이 책에서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반전과 이야기 전개를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주인공 소피와 그녀를 나락에 떨어뜨린 프란츠라는 인물 설정과 심리 묘사 또한 탁월해서 추리소설로서의 서사구조와 플롯, 인물 설정 두 가지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재미와 스릴을 선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도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전작보다는 수위가 덜하고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잔인하진 않아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던 점도 괜찮았던 점으로 꼽고 싶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프란츠가 소피를 스토킹하고 그녀를 정신질환에 빠뜨리는 과정이 꽤나 사실적이지만 그렇다 해도 몇 년 동안이나 발각되지 않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고, 너무 치밀하게 그린 나머지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소피가 자신에게 가해진 음모를 알아채는 장면에서도 몇 년을 약물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니었던 그녀가 그냥 지나쳐 버릴 수 도 있는 사소한 발견으로 단번에 추리해내는 장면이나 모든 음모를 알게 된 소피가 프란츠와 대결하는 장면들, 그리고 마지막 결말 - 원제는 <웨딩드레스>였는데 번역 제목에서 <그 남자>가 삽입된 이유이기도 하다 - 들도 다소 억지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작은” 아쉬움들은 책의 재미와 스릴이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으니 굳이 유념해두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판단을 유보했던 작가 “피에르 르메르트”에 대해서 후속작을 읽었으니 이제는 약속(?)- 저 혼자 약속하고 저 혼자 지킨단다^^ -대로 판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 내 판단은 이 작가, 앞으로도 계속 만나게 될 것 같은, 아니 “반드시 만나봐야 할 작가” 이다 . 그래서 출간 예정인 <세밀한 작업>과 <사악한 관리인>, 그리고 영화로도 제작 중이라는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조바심이 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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