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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알렉스>의 저자 “피에르 르메트르”를 신작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원제 Robe De Marie/다산책방/2012년 7월)>로 다시 만났다. 전작이 추리소설로서의 스릴과 재미는 만점이었지만 눈살이 찌푸려지는 잔인한 장면들, “유니크”하지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 캐릭터 등 아쉬움도 들어서 “피에르 르메트르”에 대한 판단은 후속편으로 유보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판단을 할 기회가 2개월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전편(P.536) 보다는 줄어든 분량(P.372)이지만 표지만큼은 전편 못지않게 매혹적인 이 책, 기대반 걱정반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외무부 국장 부부의 여섯 살 난 사내아이 “레오”의 보모인 소피는 레오 어머니의 권유로 부부의 집에서 잠을 자고는 수많은 다른 아침과 마찬가지로, 그날 아침 특별히 불안해할 이유가 없는데도 눈물에 젖고 목이 꽉 멘 상태로 깨어났다. 남편인 “벵상”이 죽고 난 후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그녀에게 눈물은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녀의 허벅지에 머리를 얹은 레오의 몸에 전혀 움직임이 없다. 발가벗긴 채 세우처럼 웅크리고 있는 레오의 두 손과 두 발목은 한데 묶였고, 머리는 무릎 사이에 처박혀 있었으며, 아이의 목에는 자신의 신발 끈이 묶여 있었는데, 얼마나 세게 조였는지 살 속 깊이 파인 가느다란 홈처럼 보인다. 자신이 무의식 중에 그만 아이를 죽여 버린 것이다. 서둘러 집을 빠져 나온 소피는 자신의 집으로 가 소지품을 챙기고 은행에서 현금을 찾고는 기차역으로 간다. 그러나 기차역에서 가방을 분실한 소피는 자신의 가방을 훔쳐가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 했던 젊은 여인 “베로니크”와 실랑이를 벌이고, 소피는 사과하는 그녀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가 식사와 술을 함께 하게 된다. 술이 과했는지 잠시 정신을 잃었던 소피, 그런데 소피 옆에 베로니크가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 있지 않은가. 레오처럼 베로니크도 소피가 무의식 중에 살해하고 만 것이다. 소피는 베로니크의 신분증과 현금을 훔쳐 서둘러 도망쳐 나오고, 금세 잡힐 것이라고 장담하던 경찰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몇 년을 숨어 산다. 그러나 경찰의 1급 수배 대상으로 불안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소피는 출생증명서를 위조하여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기로 맘을 먹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가불하러 온 자신에게 성적 행위를 요구하는 아르바이트 매장 점장을 살해하고야 만다. 결국 소피는 현역 군인인 평범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아슬아슬한 도피 생활은 이렇게 끝을 맺는 듯 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소피가 벌여온 살인 행각이 소피의 정신질환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이가 치밀한 계산에 의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음모”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줄거리는 책의 첫 장(章)인 <소피> 편만 요약한 것이다. 분량이 150 여 페이지 남짓 되는데 소피가 아이와 여인을 잇달아 살해하고 숨어 사는 과정과 심리묘사가 꽤나 재미있고 스릴 있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 출근길에 버스에서 읽다가 책에 푹 빠져서 정류장을 놓칠 뻔 했다-. 그런데 장의 말미에서 소피가 도피 생활을 종지부 찍기 위해 낯선 남자와 결혼하는 장면이 나와서 이렇게 끝나 버린다면 남은 200 여 페이지 분량을 무엇으로 채우려고 그러나 하는 걱정이 들 무렵 작가는 <프란츠>라는 장으로 변경하여 장의 제목과 같은 “프란츠”라는 남자의 일기를 소개한다.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더 남아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남자의 일기가 거듭되면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소피의 살인과 도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소피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 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정신질환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 프란츠라는 남자가 수 년 동안 스토킹하면서 그녀에게 약물을 몰래 먹여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빠뜨려 버리고, 시어머니와 남편을 죽게 만든 것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치밀하고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지 누구라도 저런 음모에 빠진다면 “실성”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프란츠라는 남자는 왜 이렇게 소피를 나락에 빠뜨리려고 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절로 들 즈음 다시 한번 장이 바뀌고, 그 이유가 밝혀지고 그렇다면 소피는 이렇게 영문도 모르고 속절없이 당하기만 하다가 죽고 말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 쯤 또 장이 바뀐다. 이렇게 반전과 시점전환이 절묘한 타이밍 - 살짝 지루해지면서 궁금증이 증폭되는 시점을 작가는 마치 타이머로 계산이라도 하듯 정확하게 맞춘다 - 에 일어나다 보니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눈을 떼려야 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이 강력하다. 전작에서도 이야기의 전환점으로 동시에 지루해질 찰나에 새롭게 긴장감을 불어 넣고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장치로 반전을 활용하더니 이 책에서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반전과 이야기 전개를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주인공 소피와 그녀를 나락에 떨어뜨린 프란츠라는 인물 설정과 심리 묘사 또한 탁월해서 추리소설로서의 서사구조와 플롯, 인물 설정 두 가지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재미와 스릴을 선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도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전작보다는 수위가 덜하고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잔인하진 않아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던 점도 괜찮았던 점으로 꼽고 싶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프란츠가 소피를 스토킹하고 그녀를 정신질환에 빠뜨리는 과정이 꽤나 사실적이지만 그렇다 해도 몇 년 동안이나 발각되지 않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고, 너무 치밀하게 그린 나머지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소피가 자신에게 가해진 음모를 알아채는 장면에서도 몇 년을 약물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니었던 그녀가 그냥 지나쳐 버릴 수 도 있는 사소한 발견으로 단번에 추리해내는 장면이나 모든 음모를 알게 된 소피가 프란츠와 대결하는 장면들, 그리고 마지막 결말 - 원제는 <웨딩드레스>였는데 번역 제목에서 <그 남자>가 삽입된 이유이기도 하다 - 들도 다소 억지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작은” 아쉬움들은 책의 재미와 스릴이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으니 굳이 유념해두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판단을 유보했던 작가 “피에르 르메르트”에 대해서 후속작을 읽었으니 이제는 약속(?)- 저 혼자 약속하고 저 혼자 지킨단다^^ -대로 판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 내 판단은 이 작가, 앞으로도 계속 만나게 될 것 같은, 아니 “반드시 만나봐야 할 작가” 이다 . 그래서 출간 예정인 <세밀한 작업>과 <사악한 관리인>, 그리고 영화로도 제작 중이라는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조바심이 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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