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신진 작가로는 가장 주목받는 작가라는 “미치오 슈스케(道尾秀介)”는 2011년 나오키 수상작품인 <달과 게(북폴리오/2011년 3월)>로 한번 만나본 적이 있는데, 추리소설로 유명한 작가인데다가 광고 문구인 "엄마의 남자가 사라지게 해주세요" 때문에 추리소설이겠거니 하고 읽다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심리와 성장과정을 섬세하고도 잔잔하게 그린 성장 소설이어서 다소 당황했던, 그리고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결말 때문에 “유년시절을 서정적으로만 그려낸 작품이 아닌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라는 어느 일본 작가의 감상평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참 “묘한” 소설이었다. 독특한 느낌의 작가였던 터라 그를 유명하게 만든 전작 "추리소설"들을 읽어봐야겠다 싶었는데, 이번에 바람대로 그를 추리소설로 다시 만났다. 다만 무거운 정통 추리소설이 아닌 웃음끼 가득하면서도 잔잔한 감동마저 느낄 수 있는 가볍고 유쾌한 “코지 미스터리”로 말이다.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북폴리오/2011년 10월)>이 바로 그 책이다.

친구인 “가사사기”와 함께 중고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나(히구라시)”는 매번 인근 절 스님에게서 쓸모도 없는 중고 물건들을 바가지를 써서 비싼 값에 사올 정도로 장사 수완이라고는 영 젬병인 그런 사람이다. 개장한지 3년 째 적자에 허덕이는 이 중고매장에는 숨은 사연이 있다. “머피의 법칙” 원서를 끼고 다니며 허풍끼가 다분한 가사사기가 사실은 셜록 홈즈 찜 쪄먹을 정도로 명석한 추리 솜씨를 발휘하여 중고 물품에 얽힌 수수께끼를 척척 풀어대는 것이다. 즉 중고 물품 판매가 주업이고 탐정이 부업인 셈이다. 그런데 사실 말도 안되는 추리를 남발하는 가사사기의 뒷수습은 올곧이 나의 몫으로 설레발 떠는 가사사기 대신에 나는 수수께끼를 풀고 범인을 잡아내는 숨은 탐정 노릇을 하느라 꽤나 피곤하다. 그런데 그 일을 그만둘 수 가 없다. 어떤 사건 때문에 알게 되어 매장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된 여중생 “미나미 나미”가 가사사기의 천재적 두뇌 솜씨에 홀딱 반한 나머지 그를 추종하는 지라 어린 소녀의 그런 믿음을 깨뜨릴 수 가 없기 때문이다. 책에는 가사사기와 히구라시 콤비가 중고 물품 매입과 판매 과정에서 겪은 수수께끼 사건들을 네 계절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는데, 먼저 <봄|까치로 만든 다리> 편에서는 청동 독수리 상에 얽힌 방화사건과 동상 속에 감춰진 비밀을, <여름|쓰르라미가 우는 강> 편에서는 간만에 살림살이 일체를 주문한, VIP 급 주문을 해온 공방에서 만나게 되는 미스터리를 해결한다. <가을|남쪽 인연> 편에서는 중고 매장 식구나 마찬가지인 “미나미 나미”를 만나게 된 사건을 소개하고, 마지막 편인 <겨울|귤나무가 자라는 절> 편에서는 매번 히구라시에게 바가지를 씌워 온 인근 절 주지 스님과 의붓아들에 얽힌 사건을 해결하면서 주지 스님의 의외의 면을 발견하게 된다.

4편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사실 “범죄”라 부르기에 민망한 소소한 사건들이지만 각 사건들에는 결코 밋밋하지 않은 트릭들이 숨겨져 있다. 나서기 좋아하고 자칭 타칭 - 여기서 타칭은 여중생 소녀 “미나미 나미”에게만 해당되겠지만 - 천재적 추리 솜씨를 가지고 있는 중고매장 사장 가사사기는 나설 때 안 나설 때 가리지 않고 사건 속의 트릭을 밝혀내겠다고 나서는데, 부점장이자 친구인 “히구라시”는 친구를 위해 증거를 조작하고, 징역 3년 이하의 엄벌에 처할 수 도 있는 한밤중 월담도 서슴치 않으며,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림에도 불구하고 가사사기의 엉터리 추리를 증명해야 하는 밤샘 작업을 해야 하는 등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그런데 그 의도가 수시로 드나들며 가사사기를 해바라기하는 소녀 “미나미 나미”의 그 믿음을 깨지 않기 위해서라니 그 마음이 참 갸륵하고 이쁘기까지 하다 -왠지 성적 취향이 의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불순한 마음은 접어두기로 하자 -. 이처럼 반대로 뒤집혀 버린 셜록 홈스(가사사기)와 와트슨(히구라시) 콤비가 벌이는 추리극(推理劇)이 꽤나 유쾌하고 즐겁게 펼쳐진다. 이런 기발한 트릭과 추리, 코믹스러운 인물 관계 설정에서 오는 재미 외에도 에피소드들도 재미와 함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 남편의 유언을 지키려고 도둑질과 방화까지 저지르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감싸려고 어설픈 연극을 벌이는 아들(->까치로 만든 다리), 여자에게는 힘들기 짝이 없는 공방 일을 마치고 이제 정식 제자로 임명되지만 진로 문제로 갈등하는 여자 후배와 그런 후배를 격려하려는 남자 선배의 따뜻한 배려(->쓰르라미가 우는 강), 사업 실패로 가족을 떠나야 했지만 딸이 못내 걱정되어 몰래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남쪽 인연), 사별(死別)한 아내의 유언을 가슴 속에 깊이 새겨 의붓아들에게 사랑을 쏟는 주지 스님(-> 귤나무가 자라는 절) 등의 사연들은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 흘리는 큰 감동은 아니지만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흐뭇하고 잔잔한 감동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절묘한 트릭과 플롯, 뒷통수를 후려치는 충격적인 반전, 그리고 자극적인 살인사건 등 무거운 느낌의 미스터리를 선호하는 독자들에게는 영 심심하고 밋밋한 추리 소설이겠지만 역시나 묵직한 정통 추리소설 매니아를 자처하는 나이지만 읽는 내내 입가를 떠나지 않은 미소와 함께 잔잔한 감동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읽고 나서도 유쾌하고 즐거운 느낌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 이런 작품을 읽는 것도 꽤나 기분 좋은 책 읽기였다고 생각된다.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은 앞에서 말한 <달과 게> 한 편 밖에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간의 작품들이 인간의 나약함과 어두운 본성을 파고드는 묵직한 글들이었다는데, 작가가 이번에는 작품의 출발점을 ‘이런 녀석들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녀석들을 만나고 싶다’라는 꿈에 가까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자신이 만든 가공의 세계 속에서 제약 없이 자유롭고 즐겁게 지내도록 한, 그래서 이 작품이 자신의 ‘진지한 놀이’라고 자평했다고 하니 작가도 이 작품을 쓰면서 꽤나 낄낄대고 웃었을 것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달과 게>를 읽고 성장소설 특유의 감동을 느끼는 데는 실패해서 결코 편히 읽히는 책은 아니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작가가 의도한 재미와 감동 코드를 올곧이 이해할 수 있었던, 그래서 더 유쾌하고 즐거웠던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즈 가든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6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일본 하드보일드 소설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 “기리노 나쓰오(桐野夏生)” - 작가 사진을 보면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 의 대표 작품인 “미로” 시리즈는 “무라노 미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비채/2011년 5월)>과 미로 외전(外傳)격으로 미로의 아버지인 “무라노 젠조”가 주인공인 <물의 잠, 재의 꿈(비채/2011년 5월)>을 지난 2011년 6월에 함께 읽었었다. 두 권 다 그동안 읽어본 일본 추리소설 전형 - 현실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천재 탐정, 틀에 박힌 스토리와 억지스러운 반전 - 과는 구별되는 현실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주인공들의 활약에 신선하고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터라 느낌이 좋아서 후한 평가를 줬던 그런 작품이었다. 두 책을 읽은 지 4개월 여 만에 “무라노 미로” 시리즈를 단편 모음집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로즈가든(원제 ロ-ズガ-デン/비채/2011년 10월)>이 바로 그 책이다. 하나의 사건을 긴호흡으로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미로의 활약을 맛보는 전작의 재미도 좋았지만 여러 사건 속에서 다양한 모습의 미로를 만나는 재미 또한 꽤나 쏠쏠했던 그런 작품이었다.

첫 번째 작품이자 표제작(標題作)이기도 한 <로즈 가든>은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미로의 남편 “히로오”의 회상(回想)을 통해서 미로의 여고 시절을 들려준다. 도립고등학교 2학년 같은 반 동급생였지만 결석을 밥 먹듯이 하던 터라 서로의 존재를 잘 모르던 히로오와 미로는 등굣길에 우연히 만나 학교에 가지 말자고 의기투합하지만 빈약한 주머니 사정 탓에 미로의 집으로 가게 된다. 미로에게 같이 자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너무 빠른 진도에 주저하는 히로오에게 미로는 야쿠자 조사원으로 일하는 의붓아버지 “무라노 젠조”와 잠자리를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말과 함께 그를 아버지 침실로 이끈다. 그 후로 히로오와 미로의 만남은 계속되고, 몇 년 후 히로오는 미로의 어머니 - 무라노 젠조와 미로의 어머니의 만남은 전작인 <물의 잠 재의 꿈>에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 를 못 잊은 나머지 의붓딸인 미로와 잠자리를 한 배덕(背德)한 미로의 아버지를 만나서 미로와 결혼하겠다고 밝히고 미로의 아버지는 의외로 순순히 결혼을 승낙하게 된다. 결혼한 지 몇 년 후 아내에게서 도망치다시피 하여 인도네시아 지사로 부임한 히로오는 오지(奧地)의 마을로 A/S 가던 중 그런 아내와의 만남을 떠올린다. 이처럼 충격적이기까지 한 첫 편이 끝나고 나면 미로의 수사집이라 할 수 있는 단편들이 펼쳐지는 데, 두 번째 단편인 <표류하는 영혼>에서는 미로가 살고 있는 맨션에서 벌어지는 귀신 소동과 그 소동에 숨겨진 사연들을 수사하고, 세 번째 단편인 <혼자 두지 말아요>에서는 우연찮게 한 두 번 스쳐 지나갔던 한 남자가 미모의 중국인 접대부 여성의 사랑을 확인해달라고 의뢰하지만 거절했던 미로가 결국 길거리에서 살해당한 의뢰인의 죽음과 여성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수사에 나서며, 마지막 단편인 <사랑의 터널>에서는 SM 클럽의 에이스 접대부였던 여인이 전철역에서 취객에게 떠밀려 함께 추락사하고, 고인의 집에 남아 있을 클럽 흔적을 없애달라는 아버지의 의뢰를 받아들인 미로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전작들을 보면서 미로가 결코 정의롭거나 도덕적이지만은 않은, 거기에 허술하기까지 한 캐릭터 -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에서는 자신을 위협하던 AV(Adult Video) 제작사 사장에게 빠져 일을 망쳐버릴 뻔 하기도 한다 - 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첫 편부터 의붓아버지와 잠자리를 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등장하니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 보니 어머니의 죽음으로 상심한 미로가 어머니를 못 잊어하는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에 거짓으로 지어낸 이야기쯤으로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있어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봐도 대부분 진실이 아닌 지어낸 이야기쯤으로 여기는 것을 보면 그만큼 충격적인 이야기라는 반증일 것이다. 미로의 첫남편인 히로오는 이렇게 부도덕하기까지 하고 냉소적인 미로에게 빠져 결국 그녀와 결혼하고,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인도네시아까지 오게 되지만 그녀를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미로에게는 제목인 <로즈 가든>처럼 가시가 있음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손을 갖다대어 피를 흘리고서야 그 아픔과 위험을 알게 되는, 그러면서도 못잊개 하는 위험하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이 있음을 알게 해준다. 두 번째 작품부터가 미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인데, 특히 미로의 든든한 파트너인 옆집 게이 청년 “도모”는 역시나 반가운 그런 등장이라 할 수 있겠다. 하드보일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거친 액션과 일대 활극이 없어 좀 아쉽지만 - 그러고 보면 전작들도 그렇게 눈에 띄는 활극들은 펼쳐지지 않는다. 이 작품을 하드보일드로 분류하는 것은 액션 씬 들 때문이 아니라 게이, 접대부, SM 클럽 등 도쿄 뒷골목 하류 인생들의 어둡고 음습한 이야기라는 “소재” 때문으로 여겨진다 - 미로 시리즈 특유의 좌충우돌하는 수사과정을 “단편”이라는 압축된 이야기로 만나볼 수 있어 장편 못지 않은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이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장점은 쉽게 부서질 것 만 같은 연약한 여인이지만 실제로는 여느 남자 못지않은 강단(剛斷)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무라노 미로”의 사회적·도덕적 규범과 일탈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활약이 아닐까? 이번 작품 또한 그 경계의 묘미를 잘 살린 작품으로 평가 - 첫 번째 작품에 대한 내 “믿음”이 맞다면 말이다 - 하고 싶다. 너무 환한 대낮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자정 너머의 칠흑같은 어둠도 아닌 새벽이나 황혼 어스름한 시간대의 잿빛 이미지를 자신만의 필치로 절묘하게 그려내는 기리노 나쓰오, 앞으로도 계속 만나보고 싶어질 독특하고 색다른 작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땅의 전쟁 1 - 생존의 땅
이원호 지음 / 네오픽션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품성과 감동 등 소설을 평가하는 많은 잣대 중 “재미” 하나 만으로 평가한다면 “이원호” 작가는 단연 수위(首位)를 차지할 것이다. 현재까지 출간한 50 여 편의 소설들의 누적 판매 부수가 1,000 만 부에 이르고, 조직 폭력배와 기업, 정치를 다룬 현대 소설 뿐만 아니라 역사, 추리, SF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들을 집필한, “대중소설” - 다수 대중에게 읽히기 위해 흥미 위주로 지은 소설을 일컫는 말로 순수 문학과 구별하기 위해 통속소설과 비슷한 정의의 “대중소설”로 정의하는데,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대중적인 통속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한다(네이버 발췌) - 작가로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분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 뿐만 아니라 <도시의 남자>, <대한국인>, <유라시아>, <프로페셔널> 등과 SF 소설인 <신의 제국>을 읽어 봤으니 꽤 많은 작품 - 작품목록을 보니 낯익은 작품들이 몇 작품 더 있는데 읽었는지를 알 수 없어 제외했다 - 을 읽은 셈이다. 이 분 작품의 특징은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로 가독성이 꽤나 높으며, 조폭, 기업, 정경유착 등 대중적으로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는 소재들,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사건의 연속과 속도감 있는 전개, 갈수록 고조되는 긴장감과 결말에 이르러 놀랄 만한 반전 등 소설적 재미 요소들을 모두 갖춘데 있다고 할 것이다. 즉 소설적인 “재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계속 읽다 보면 비슷비슷한 소재와 줄거리로 식상해질 수 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마지막 그의 작품을 읽은 지가 꽤나 오래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그를 신작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1970년대 강남 개발을 둘러싼 조폭들의 전쟁을 그린 <땅의 전쟁 1,2(네오픽션/2011년 9월)>이 바로 그 작품이다. 

 하룻밤 사이에 땅 값이 열 배 스무 배 씩 천정부지로 치솟을 정도로 강남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 대, 군 제대 후 고향인 전주에서 시장에서 행상을 하는 어머니와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면서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며 은행원이 되기를 꿈꾸는 여동생과 살던 “김기승”은 공사판을 전전하던 중 아르바이트 겸해서 새로 생긴 “룸싸롱” 관리를 맡았다가 이권(利權)을 차지하기 위해 찝쩍대던 지역 건달들을 고등학교 시절 전국체전에 나갈 정도였던 권투와 군 시절 특공무술 교관을 했던 무술 실력으로 쉽게 물리치면서 지역 조폭들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 결국 '프린스파’와 함께 전주를 양분하던 조폭 ‘모나코파’에 스카웃되어 건달 세계에 입문한 그는 서울 진출을 꾀하는 보스의 명령으로 선발대로 서울에 파견된다. 서울은 이미 ‘명동파’와 ‘종로파’가 서울 중심가를 양분하고 개발 붐이 일고 있는 강남 지역으로 새롭게 진출하고 있는 상황으로 여기에 역시 강남진출을 노리는 ‘장수회’와 영등포 일대의 ‘막창파’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혼란스런 상황이었다. 김기승은 강남 개발 지역을 방문했다가 낯선 사람을 수상히 여긴 장수회 조직원들과 시비가 붙어 순식간에 다섯 명을 때려눕혀 화려한 신고식을 치루지만 장수회 조직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막창파에 의탁한 김기승은 자신을 쫓고 있던 장수회 간부를 협박하여 사건을 무마하고 차츰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명동파 보스를 제거하려는 간부와 손을 잡고 명동파 보스를 칼로 제거하는 수훈을 올려 일약 유명 인사로 발돋움한다. 국회의원을 검은 돈으로 매수하여 강남 개발 계획을 입수한 김기승은 개발 요지를 차례차례 확보하게 되고, 조직들의 견제와 위협 속에서도 강남 진출에 성공하면서 어느새 모나코파에서도 그 위상이 서열 3위까지 수직 상승하게 된다. 김기승이 서울 조폭 구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급부상하자 위협을 느낀 기존 조직들과 모나코파 보스는 그를 제거할 계획을 꾸미는데, 김기승은 그동안 자신이 키운 세력들과 연합하여 그들을 한꺼번에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서울 조폭 구도를 일거에 바꿔 놓을 한 밤의 대 난투극과 암살 사건들이 한꺼번에 벌어지고야 만다.  

우선 이 책의 재미로 성인 독자들이 흥미롭게 여길 만한 “소재”를 먼저 꼽을 수 있겠다. 즉 일대일로 자웅을 겨루던 50~60년대 낭만파 시절을 지나 횟칼과 쇠사슬이 난무하고 떼로 몰려가 린치를 가하는 집단 패싸움이 당연시되던 1970년대 조폭 상황을 사실감있고 생동감있게 그려내고 있고, 여기에 강남 개발을 둘러싼 조폭과 정치권의 결탁과 물고 물리는 추악한 이권 다툼, 자주 등장하는 성애(性愛) 장면 등 말초적인 욕망을 자극할 만한 흥미롭고 재미있는 소재와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다. 물론 지나친 폭력묘사와 낯 뜨거운 성애장면에 눈살 찌푸리는 분들도 많겠지만 말이다. 여기에 위선(僞善)보다는 진정성(眞正性)마저 느껴질 정도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주인공의 위험한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주인공인 “김기승”은 작가 전작들의 주인공들처럼 “정의(正義)”나 “도덕(道德)”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다. 반대파 조직원들에게 수도 없이 칼부림을 하고, 자신과 불륜관계를 맺은 국회의원의 처를 공갈협박해서 돈을 뜯어내기도 하며, 상대편 조직이 운영하고 있는 금융회사 - 일본 야쿠자와 손잡고 세운 회사이지만 - 를 털어 돈을 강탈하질 않나, 보스 몰래 강남 노른자 땅을 사들여 자신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사용하질 않나, 심지어 자신을 제거하려는 보스에게 총질을 해댄다. 이 모든 것이 법으로나 도덕적으로는 분명 비난받고 처벌받아야 할 불의한 행위들이지만 정의나 도덕에 대하여 일말의 고민 - 고민했다면 오히려 위선적으로 느껴졌겠지만 - 없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의 방식과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즉 배신과 음모,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생존(生存)을 위해, 또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 세계의 방식과 룰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차라리 위선 떨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그에게서 성격은 다르겠지만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면 너무 과한 감상일까? 또한 싸움실력과 기민한 두뇌 회전,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과감성을 가진 그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일개 지방 조폭 말단에서  서울 지역을 휘어잡는 거물로 한단계 한단계 성장하는 과정은 마치 판타지 소설의 영지물(領地物)처럼 읽는 재미 - 성장소설의 재미처럼 - 가 꽤나 쏠쏠하다. 이런 소재와 주인공 이외에 하나 더 꼽는다면 바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스릴일 것이다. 매번 주인공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 위기가 닥치는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까 하는 궁금증에 절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고, 주인공이 이를 아슬아슬하게 극복해내는 장면에서는 절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물론 그런 위기를 극복하고 한층 더 성장한다는 뻔한 통속성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환한 아침에 조폭들이 경찰들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전쟁을 벌이고, 권력층의 부정부패가 연일 뉴스에 터져 나오는 작금의 상황을 40 여 년 전 과거와 견주어 풀어낸 세태 고발 소설로, 또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추악하고 덧없는지를 낱낱이 보여주는 소설로도 볼 수 있겠지만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그저 “재미”있는 소설 정도로 읽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리고 잔인한 폭력과 자극적인 장면으로 인해 “나쁜” 소설 로 비난할 수 도 있겠지만 어차피 이 책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훈”적인 소설이 아닌 알거 다 아는 성인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본다면 이 또한 너무 과한 비난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냥 시간 때우기용 재미있는 소설 정도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 것이 맞을 것 같다. 

 1, 2권 합쳐 800 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사건의 연속으로 숨 돌릴 겨를 없이 내처 읽게 만드는, “이원호”식 재미가 무엇인지 확인케 해주는 몰입감과 재미가 뛰어난 작품이었다. 품격 있는 재미와 감동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영 마땅치 않은 “불량식품”이겠지만, 매번 좋은 음식만 먹다 보면 질려서 뭔가 자극적이고 색다른 음식을 찾게 되듯 가끔은 이런 불량식품도 잘 소화해낼 수 만 있다면 “정상식품”보다 더 나은 재미와 스릴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해 준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활동마감] 9기 신간평가단 마지막 도서를 발송했습니다.

 

 알라딘 신간 평가단 9기 소설부문이 6개월의 장정 끝에 마무리가 되었네요. 매월 2권 씩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들과 만날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신간평가단을 통해서 만났던 책들은 

  

 

이렇게 12권이었습니다. 마지막 "직설"은 인문/사회/과학 평가단과 책이 바뀌는 바람에 읽게 된 책인데 읽고 싶었던 책이었던 터라 저에게는 의외의 반가운 선물이기도 했던 책이었습니다^^

 1.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12권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9기 첫 시작 도서였던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이었습니다.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 페이지 당 24줄이나 되는 빽빽한 줄 간격, 거기에 평소에 즐겨 읽지 않은 여성 작가라는,  내가 싫어하는 삼박자를 모두 갖춘 책이어서 처음 시작하기가 여간 만만치가 않았던 책이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읽기를 주저하게 만든 세가지 모두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재미와 몰입감을 선사해 준 멋진 책이었습니다. 아직 몇 개월 남았지만 2011년 올해 읽은 전체 책들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만한 그런 책으로 추천하고 싶네요. 참고가 되시라고 부족한 제 서평 링크걸어봅니다^^ 

http://blog.aladin.co.kr/754445166/4770370 


2.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 우선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2) 조지오웰의 <숨쉬러 나가다>  http://blog.aladin.co.kr/754445166/4853463 

그동안 조지 오웰은 어렵다라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 한 권으로 그런 부담감을 떨쳐 버렸다고 할 순 없겠지만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를 새롭게 알아가게 만드는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3)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http://blog.aladin.co.kr/754445166/4918902 

한때 "최인호" 이름 석자만으로 책을 선택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그의 이름을 잊은지가 꽤나 오래되었네요. 이 책은 그가 이때까지 선보이는 그 어떤 작품들보다 반가웠던,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가슴 두근 거리는 설레임을 다시 한번 맛보게 한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그가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아 많은 글을 우리에게 선물해주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4) 발 맥더미드의 <인어의 노래> http://blog.aladin.co.kr/754445166/5000200 

요즈음 인기있는 "미드"의 단골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프로파일러"에 대해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 책은 프로파일러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겨를이 없이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긴장감과 재미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기존 추리소설과는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습니다. 올 여름에 읽은 스릴러 소설 중에서도 눈에 띄는 그런 작품입니다. 

5) 알베르토 망구엘의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http://blog.aladin.co.kr/754445166/5164322 

책의 구성과 전개때문에 읽는 데 꽤 애를 먹은 책이긴 하지만 참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기로 묘한 여운이 남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사실 이 책보다는 의외의 선물인 <직설>을 꼽고 싶긴 한데 의외는 의외로 남겨 놓을 게 좋을 것 같아 이 책을 선택해봅니다^^ 

 지난 6개월간 참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이번 10기에도 소설부문에 선정되어 행복이 6개월 더 연장되는 행운을 얻었네요^^ 10기에도 열심히 활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활동해온 신간평가단 종료 페이퍼를 쓰면서 마지막 인사로 남기는 인사글이 있습니다. 바로 예전 신간평가단 담당자님께서 종료글에서 남기셨던 인사글인데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 것보다 더욱 가슴에 와닿는 단어라 다시 한번 표절해봅니다^^ 


그간 너무 고마웠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직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직설 - 한국 사회의 위선을 향해 씹고, 뱉고, 쏘다!
한홍구.서해성.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설(直說)”, 사전(辭典)적으로는 “바른대로 또는 있는 그대로 말을 함. 또는 그 말(네이버 사전 발췌)”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의견이나 견해를 우회하여 표현(곡설, 曲說)하거나 비유를 들어 말(은유, 隱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한다는 뜻 일 텐데 시절이 하 수상하다 보니 직설은 커녕 목청조차 높이기 어렵다보니 하고 싶은 말조차 내뱉지 못하고 우물우물 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개인간의 인간관계에서도 직설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우리 사회의 모순과 위선에 대한 비판은 오죽 더 그럴까. “미네르바 사건”이나 시사 고발 프로그램들에 대한 잇따른 고소·고발 사건들, 소신있는 방송인들의 잇따른 퇴출, 그리고 최근 들어 이슈화되고 있는 SNS 제재 시도 등 갈수록 할 말 다하고 살 수 없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 “다하는” 그런 움직임들이 아직은 있어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해주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인 한홍구 교수와 서해성 작가가 지난 2010년 5월부터 1년 동안 한겨레신문 지면을 통해 각계 각층 유명 인사들과 나눈 인터뷰 글인 “직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서 “직설”의 인터뷰 글들을 몇 번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지난 1년 간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책으로 올곧이 만날 기회가 생겼다. 바로 <직설; 한국 사회의 위선을 향해 씹고, 뱉고, 쏘다 (한홍구·서해성·고경태 공저/한겨레출판/2011년 8월)>이 그 책이다. 

 이 책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2010년 5월 17일 한겨레신문이 창간 22돌을 맞아 시작해서 매주 금요일마다 연재하여 2011년 5월 12일 총 50회로 막을 내린 기획 기사를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 우선 인터넷부터 검색을 해봤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마지막 회(“[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진 팀이 이길 때까지! 유쾌해야 오래가지” 편, 2011년 5월 12일. 책에는 에필로그에 실려 있다)를 보면 기획했던 50회를 무사히(?) 마친 것을 행복하고 고마워할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제4화 ‘민주당 천정배 의원’ 편(2010년 6월11일) - 책에서는 “DJ유훈통치와 노무현을 넘어|천정배” 편에 실려 있다 - 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독하고 비하했다는 이유로 유시민씨가 <한겨레> 절독을 선언했고, 이는 노사모로 옮겨 붙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급기야 1면에 사과문을 내보냈을 정도로 폐지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런 부담스러움을 이기고 약속했던 1년을 채웠으니 기획자나 대담자들로서는 분명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이 “직설”의 원칙은 첫째, 구어체로 떠든다. 둘째, 우아 떨지 않는다고 하는데 때로는 거칠고 상스러웠던 이유가 바로 이 원칙 때문으로 이로 인해 끝까지 ‘안티’로 남은 일부 독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읽어본 몇 몇 회들에서 타이틀 자체가 “직설”이다 보니 조금은 과하다 싶은 말들도 있었지만 그다지 심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진행했던 분들이나 신문사 측은 그런 비판들을 나름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책에는 지금은 작고하신 故 리영희 선생님부터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총 36명과의 인터뷰 글이 “1부 통찰 혹은 구라”, “2부 분노의 무늬”, “3부 시대의 생각들”, “4부 그들의 변명, 그들의 희망” 등 총 4 부(部)로 나뉘어 실려 있고 각 부(部)마다 대담자인 한홍구 교수와 서해성 작가의 정리글들이 실려 있다. 인터뷰 대상 면면을 보면 앞에서 언급한 두 분 이외에도 유명 정치인들 - 천정배, 강기갑, 정두언, 박지원, 홍준표 등 -들에서부터 백기완, 유홍준, 조국, 고은, 진중권, 이만열, 최열, 안철수, 박원순, 이강택 등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주요 지식인들과 시민 단체 인사들, 류승완 감독, 김영희 PD, 김제동 등 방송· 영화계 인사들 등 유명 인사들이 총망라되었고 이 외에도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이마트 피자 논쟁으로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었던 나우콤 문영진 사장과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홍대 청소 노동자 분들, 이주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지난 1년 동안 이슈로 등장했던 분들까지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인터뷰이((interviewee, 인터뷰에 응한 사람)”로 등장한다. 보통 인터뷰 글들은 대담자(인터뷰어, Interviewer)의 질문에 인터뷰이가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형식, 즉 인터뷰이의 답변 분량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 이 책은 워낙 대담자들의 카리스마(?)가 세서 그런지 대담자들의 말 분량이 적지 않게 실려 있으며, 어떤 회에서는 인터뷰이 대답보다 대담자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기도 한다. 즉 정색을 하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슈 - 주로 인터뷰이에 직접 해당되는 이슈가 대부분이지만 - 에 대하여 한홍구, 서해성 두 대담자와 인터뷰이가 주고 받는 일종의 담화 또는 토론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한 편 한 편이 오늘날 우리가 안고 살아가는 사회 모순과 위선을 콕 짚어내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어 속 시원해지는 통쾌함과 함께 때로는 너무나도 견고하고 거대하기만 해서 결코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을 다시금 깨닫게 해줘 절로 한숨도 나오게 만드는 그런 글들이었다. 아쉽다면 신문 연재글이다 보니 한정된 분량에 많은 분들과의 이야기들을 담으려다 보니 좀 더 내밀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을 들고 싶다. 

많은 분들과의 대담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글을 꼽는다면 이제는 만나 뵐 수 없는 故 “리영희” 선생님과의 가상(假想) 대담을 꼽고 싶다. 리영희 선생님은 내가 다니던 학교 교수님으로 재직하셨던 터라 생전에 몇 번 그 분 수업을 청강(聽講)한 적이 있었음에도 그 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가 “드물게도 선생님의 독자는 곧 제자가 되었습니다”라는 서해성 작가의 말처럼 나는 너무 뒤늦게 21세기 들어서야 선생님의 책들을 읽게 되고 나서 정신적 은사(恩師)로 모셨던 터라 더욱 각별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대담을 끝내면서 마지막 남기신 말씀, “어느 세대에나 책무만이 아니라 이를 극복할 능력 또한 동시에 주어진다는 설 의심치 말기 바라네. 가보지 않았다고 해서 두려울 건 없지”라는 말씀이 물론 한홍구, 서해성 두 대담자가 가상으로 만들어냈겠지만 마치 선생님의 육성(肉聲)을 직접 듣는 것처럼 가슴 속에 큰 울림으로 남았다. 

오늘(10/26) 아침 도올 김용옥 교수가 모 방송 강연에서 정권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계약 분량을 다 마치지 못하고 - 심지어 녹화가 완료된 분량도 방송하지 못한다고 한다 -  강의 프로그램을 중단하게 될 처지에 놓였다는 기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정권 비판이 아니라 다른 이유라는 방송국의 해명도 있었고 아직은 결정된 것이 아니라 검토 단계라니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 기사를 읽으면서 “직설”의 반대말은 “곡설”이나 “은유”가 아니라 바로 “침묵”이라는 이 책의 에피소드에 실려 있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이 정권이 자신들에게 직언과 비판을 해대는 목소리들을 온갖 잣대를 들이대어 자꾸 “침묵”시키려는 이유가. 다른 목소리를 포용할 줄 모르는 자신들의 속좁음을 만천하에 광고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나저나.......이러다가 “나는 꼼수다” 마저 없어지면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나 에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