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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최인호” 이름 석 자만 보고 책을 집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가슴 벅차 오르는 감동에 불면(不眠)의 밤을 보낸 적이 참 많았던, 어쩌면 그는 내 젊은 날을 올곧이 지배했던 “군주(君主)”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이제 나도 젊음이 지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그를 띄엄띄엄 만나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의 이름 석 자는 젊은 시절 그에게 열광했던 시간들이 떠올리게 하며 아련한 추억에 젖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다. 그런데 그가 암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최근 들어 많은 문인(文人)들의 부고(訃告) 소식을 들어 그 또한 우리 곁을 떠나려고 서두르는 것은 아닌지, 내 젊음 또한 그와 함께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슬픔마저 느꼈었는데, 최근 “사람은 병(病)으로 죽지 않는다. 명(命)으로 죽는다”며 손톱 발톱이 빠지는 고통과 싸우며 골무를 끼고 소설 한 편을 완성했다는 기사를 읽고는 그의 건재를 확인할 수 있어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래서 그런 고통 속에서 완성해낸 신간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여백미디어/2011년 5월)>은 그가 이때까지 선보이는 그 어떤 작품들보다 반가웠던,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가슴 두근 거리는 설레임을 다시 한번 맛보게 한 그런 소설이었다. 

느닷없는 소음에 잠을 깬 “K", 그 소음이 머리맡 탁자 위에 놓인 자명종 소리임을 깨닫고는 버튼을 누르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회사에 출근할 필요가 없는 토요일, 도대체 누가 토요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7시에 자명종이 울리도록 미리 버튼을 눌러놓았을까? 기계치인 아내가 그랬을 리도 없고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늦게 돌아오긴 했지만 술김에 자명종의 버튼을 누를 만큼 정신이 없거나 기억을 잃을 만큼 과음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한번도 잠옷을 걸치지 않은 나체로 잠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잠자리에서 일어난 K의 모습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한 나신(裸身)이었고, 거기에 미혼의 청년시절부터 사용해온 "V"라는 브랜드의 스킨이 "Y"로 바뀌어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휴일 전날이면 사랑을 나누는 아내도 어제는 마치 몸이 얼음처럼 차가웠던 그런 냉기가 느껴졌었을 정도로 낯설었었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도 착각도 아니며, 가상의 무대 위에 세워진 연극 세트도 아니며 가상현실도 아니라며 애써 자위하던 K, 누가 잠옷을 벗겼냐는 질문에 웃으면서 답하며 자신의 손등을 때리는 아내의 손에서 섬뜩함을 느낀다. 지금까지의 친숙하고 정겹고 익숙하고 다정했던 아내의 손이 아니라 살기와 같은 적의와 함께 겨우내 동면을 하는 변온동물의 살갗처럼 차가움과 예리함, 날카로움이 느껴진 것이다. 이때부터 K에게 그동안 익숙했던 가족과 사람들이 모두 낯설게만 느껴지는 ”특별한“ 시간이 시작된다.  

청탁으로 쓴 연재소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쓴 최초의 전작소설이자 원래의 본령인 “현대소설”로의 회귀한 “제 3기의 문학”의 첫 출발이라는 이 작품, 솔직히 그동안 보여준 그의 작품과는 다른 경향에 낯설음을 먼저 느꼈다. 질투가 날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체, 벅찬 감동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가 그의 본 모습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런 그의 글에 반해 열광했던 것인데 이 작품은 그런 그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과연 이 책이 그의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첫 시작이 낯설었다. 그러나 책 읽기가 계속되면서 그런 낯설음은 금세 잊게 되고 독자들의 시선을 꼼짝없이 붙들어 놓는 이야기의 “힘”에 나또한 푹 빠져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읽게 만들고는 다 읽고 나서 “역시 최인호!” 라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남에게 읽히기 위한 문학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나중에는 단 하나의 독자인 나마저도 사라져버리는 본지풍광(本地風光)과 본래면목(本來面目) - 둘 다 근원의 모습을 뜻하는 불교 용어다 - 의 창세기를 향해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한때 인기에 영합하는 대중소설 작가라는 폄하를 이제는 당당히 벗어버리고 새로운 문학을 출발하겠다는 그의 각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주제를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에서도 등장하는 “도플갱어”와 “매트릭스”처럼 실재(實在)라고 여겼던 현실이 사실은 가상현실과도 같은 그런 부질없는 허상(虛像) - 이 때문에 SF소설이나 판타지 소설 쯤으로 여기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 임을 말한다고 여길 수 도 있겠고, 수많은 사람들 - 여기에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친구, 직장동료,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혼자일 수 밖에 없다는 현대인의 “고독(孤獨)”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으며, 안정된 삶이라는 것이 사실은 언제든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삶의 불안함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 도 있겠다. 즉 독자의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이 마냥 낯설기만 할 수 도 있을 것이고, 월요일 아침 출근 길에 지난 이틀 동안 등장했던 등장인물과 인사를 나누는 결말 - 김연수 작가는 “현실이 붕괴된 뒤 K 자신과 함께 사라질 현실의 꼭두각시들과 작별하는 의식이라고 말하면서, 이 모든 것과 작별한 뒤에야 우리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힌다. -이 영 분명치 않아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 도 있을 것이며, 기존의 최인호가 아닌 새로운 “최인호”를 만나는 신선한 충격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르게 읽혀지고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틀에 박힌 정형화된 느낌이 아니라 진동으로 인해 사물이 두 겹 세 겹으로 겹쳐 보이는 , 그래서 눈에 더 힘을 주어 한 글자 한 글자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그러나 끝에 이르러서는 불안함이 아닌 어느새 명확한 이미지를 완성해 낼 수 있었던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다시 읽게 된다면 또 다른 이미지를 그려낼 수 도 있겠지만.

원래 남의 글을 비판할 만한 능력과 재주도 없을 뿐더러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작가의 책이다 보니 평가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후할 수 밖에 없음을 이 서평을 읽고 책을 선택하는 혹시 모를 분들께 미리 양해를 구해야겠다. 끝으로 작가에게 바라는 것으로 이 부끄러운 서평을 끝내야겠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이라는 작가의 믿음이 부디 몇 십 년 후에나 이루어지길, 그래서 새로운 문학의 출발점에 선 그의 작품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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