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전쟁 1 - 생존의 땅
이원호 지음 / 네오픽션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작품성과 감동 등 소설을 평가하는 많은 잣대 중 “재미” 하나 만으로 평가한다면 “이원호” 작가는 단연 수위(首位)를 차지할 것이다. 현재까지 출간한 50 여 편의 소설들의 누적 판매 부수가 1,000 만 부에 이르고, 조직 폭력배와 기업, 정치를 다룬 현대 소설 뿐만 아니라 역사, 추리, SF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들을 집필한, “대중소설” - 다수 대중에게 읽히기 위해 흥미 위주로 지은 소설을 일컫는 말로 순수 문학과 구별하기 위해 통속소설과 비슷한 정의의 “대중소설”로 정의하는데,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대중적인 통속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한다(네이버 발췌) - 작가로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분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 뿐만 아니라 <도시의 남자>, <대한국인>, <유라시아>, <프로페셔널> 등과 SF 소설인 <신의 제국>을 읽어 봤으니 꽤 많은 작품 - 작품목록을 보니 낯익은 작품들이 몇 작품 더 있는데 읽었는지를 알 수 없어 제외했다 - 을 읽은 셈이다. 이 분 작품의 특징은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로 가독성이 꽤나 높으며, 조폭, 기업, 정경유착 등 대중적으로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는 소재들,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사건의 연속과 속도감 있는 전개, 갈수록 고조되는 긴장감과 결말에 이르러 놀랄 만한 반전 등 소설적 재미 요소들을 모두 갖춘데 있다고 할 것이다. 즉 소설적인 “재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계속 읽다 보면 비슷비슷한 소재와 줄거리로 식상해질 수 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마지막 그의 작품을 읽은 지가 꽤나 오래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그를 신작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1970년대 강남 개발을 둘러싼 조폭들의 전쟁을 그린 <땅의 전쟁 1,2(네오픽션/2011년 9월)>이 바로 그 작품이다. 

 하룻밤 사이에 땅 값이 열 배 스무 배 씩 천정부지로 치솟을 정도로 강남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 대, 군 제대 후 고향인 전주에서 시장에서 행상을 하는 어머니와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면서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며 은행원이 되기를 꿈꾸는 여동생과 살던 “김기승”은 공사판을 전전하던 중 아르바이트 겸해서 새로 생긴 “룸싸롱” 관리를 맡았다가 이권(利權)을 차지하기 위해 찝쩍대던 지역 건달들을 고등학교 시절 전국체전에 나갈 정도였던 권투와 군 시절 특공무술 교관을 했던 무술 실력으로 쉽게 물리치면서 지역 조폭들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 결국 '프린스파’와 함께 전주를 양분하던 조폭 ‘모나코파’에 스카웃되어 건달 세계에 입문한 그는 서울 진출을 꾀하는 보스의 명령으로 선발대로 서울에 파견된다. 서울은 이미 ‘명동파’와 ‘종로파’가 서울 중심가를 양분하고 개발 붐이 일고 있는 강남 지역으로 새롭게 진출하고 있는 상황으로 여기에 역시 강남진출을 노리는 ‘장수회’와 영등포 일대의 ‘막창파’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혼란스런 상황이었다. 김기승은 강남 개발 지역을 방문했다가 낯선 사람을 수상히 여긴 장수회 조직원들과 시비가 붙어 순식간에 다섯 명을 때려눕혀 화려한 신고식을 치루지만 장수회 조직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막창파에 의탁한 김기승은 자신을 쫓고 있던 장수회 간부를 협박하여 사건을 무마하고 차츰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명동파 보스를 제거하려는 간부와 손을 잡고 명동파 보스를 칼로 제거하는 수훈을 올려 일약 유명 인사로 발돋움한다. 국회의원을 검은 돈으로 매수하여 강남 개발 계획을 입수한 김기승은 개발 요지를 차례차례 확보하게 되고, 조직들의 견제와 위협 속에서도 강남 진출에 성공하면서 어느새 모나코파에서도 그 위상이 서열 3위까지 수직 상승하게 된다. 김기승이 서울 조폭 구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급부상하자 위협을 느낀 기존 조직들과 모나코파 보스는 그를 제거할 계획을 꾸미는데, 김기승은 그동안 자신이 키운 세력들과 연합하여 그들을 한꺼번에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서울 조폭 구도를 일거에 바꿔 놓을 한 밤의 대 난투극과 암살 사건들이 한꺼번에 벌어지고야 만다.  

우선 이 책의 재미로 성인 독자들이 흥미롭게 여길 만한 “소재”를 먼저 꼽을 수 있겠다. 즉 일대일로 자웅을 겨루던 50~60년대 낭만파 시절을 지나 횟칼과 쇠사슬이 난무하고 떼로 몰려가 린치를 가하는 집단 패싸움이 당연시되던 1970년대 조폭 상황을 사실감있고 생동감있게 그려내고 있고, 여기에 강남 개발을 둘러싼 조폭과 정치권의 결탁과 물고 물리는 추악한 이권 다툼, 자주 등장하는 성애(性愛) 장면 등 말초적인 욕망을 자극할 만한 흥미롭고 재미있는 소재와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다. 물론 지나친 폭력묘사와 낯 뜨거운 성애장면에 눈살 찌푸리는 분들도 많겠지만 말이다. 여기에 위선(僞善)보다는 진정성(眞正性)마저 느껴질 정도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주인공의 위험한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주인공인 “김기승”은 작가 전작들의 주인공들처럼 “정의(正義)”나 “도덕(道德)”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다. 반대파 조직원들에게 수도 없이 칼부림을 하고, 자신과 불륜관계를 맺은 국회의원의 처를 공갈협박해서 돈을 뜯어내기도 하며, 상대편 조직이 운영하고 있는 금융회사 - 일본 야쿠자와 손잡고 세운 회사이지만 - 를 털어 돈을 강탈하질 않나, 보스 몰래 강남 노른자 땅을 사들여 자신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사용하질 않나, 심지어 자신을 제거하려는 보스에게 총질을 해댄다. 이 모든 것이 법으로나 도덕적으로는 분명 비난받고 처벌받아야 할 불의한 행위들이지만 정의나 도덕에 대하여 일말의 고민 - 고민했다면 오히려 위선적으로 느껴졌겠지만 - 없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의 방식과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즉 배신과 음모,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생존(生存)을 위해, 또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 세계의 방식과 룰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차라리 위선 떨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그에게서 성격은 다르겠지만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면 너무 과한 감상일까? 또한 싸움실력과 기민한 두뇌 회전,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과감성을 가진 그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일개 지방 조폭 말단에서  서울 지역을 휘어잡는 거물로 한단계 한단계 성장하는 과정은 마치 판타지 소설의 영지물(領地物)처럼 읽는 재미 - 성장소설의 재미처럼 - 가 꽤나 쏠쏠하다. 이런 소재와 주인공 이외에 하나 더 꼽는다면 바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스릴일 것이다. 매번 주인공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 위기가 닥치는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까 하는 궁금증에 절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고, 주인공이 이를 아슬아슬하게 극복해내는 장면에서는 절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물론 그런 위기를 극복하고 한층 더 성장한다는 뻔한 통속성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환한 아침에 조폭들이 경찰들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전쟁을 벌이고, 권력층의 부정부패가 연일 뉴스에 터져 나오는 작금의 상황을 40 여 년 전 과거와 견주어 풀어낸 세태 고발 소설로, 또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추악하고 덧없는지를 낱낱이 보여주는 소설로도 볼 수 있겠지만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그저 “재미”있는 소설 정도로 읽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리고 잔인한 폭력과 자극적인 장면으로 인해 “나쁜” 소설 로 비난할 수 도 있겠지만 어차피 이 책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훈”적인 소설이 아닌 알거 다 아는 성인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본다면 이 또한 너무 과한 비난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냥 시간 때우기용 재미있는 소설 정도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 것이 맞을 것 같다. 

 1, 2권 합쳐 800 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사건의 연속으로 숨 돌릴 겨를 없이 내처 읽게 만드는, “이원호”식 재미가 무엇인지 확인케 해주는 몰입감과 재미가 뛰어난 작품이었다. 품격 있는 재미와 감동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영 마땅치 않은 “불량식품”이겠지만, 매번 좋은 음식만 먹다 보면 질려서 뭔가 자극적이고 색다른 음식을 찾게 되듯 가끔은 이런 불량식품도 잘 소화해낼 수 만 있다면 “정상식품”보다 더 나은 재미와 스릴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해 준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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