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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조명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아르헨티나 작가로는 <식인종의 요리책>, <서른 살, 최고의 날>의 작가인 “카를로스 발마세다”를 만나본 적이 있는데, 입에 잘 붙지 않는 스페인식 이름과 지명으로 낯설기는 했지만 소재와 이야기 전개에서 독특하고 이색적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그런 작가였다. 최근 또 한 명의 아르헨티나 작가 작품을 만났는데, 바로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이다. 작가이자 번역가, 편집자로 <독서의 역사>, <밤의 도서관>으로 책과 세상에 관한 깊이 있는 에세이를 선보였던 작가라고 하는데, 이번에 만난 작품은 에세이가 아니라 지난 2008년에 발표했던 소설인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원제 Todos los Hombres son Mentirosos / All Men Are Liars/세종서적/2011년 8월)>이었다. 30 년 전 불의의 죽음을 당한 한 남자를 네 명의 진술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성한다고 하니 꽤나 흥미로운 소재여서 이번에는 어떤 색다른 재미를 줄지 기대감을 가지고 책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에스파냐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신예작가 “알레한드로 베빌라쿠아”로 그의 첫 작품 <거짓말 예찬> 출판기념회가 있은 지 이틀이 지난 후 였다. 그로부터 30년 후 프랑스인 기자 “ 장 뤽 테라디요스”는 베빌라쿠아 주변 인물 네 명의 증언을 통해서 그의 죽음을 재조명해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들 네 명의 증언이 서로 제각각이다. 이 책은 그들의 증언을 하나하나 담아내고 마지막에 테라디요스의 코멘트를 싣고 있다.  

먼저 베빌라쿠아의 친구 “알베르토 망구엘(작가 본인이 화자(話者)로 등장한다)”은 베빌라쿠아의 생애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엄하기만 했던 외할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란 어린 시절과 독재에 저항했던 아내와의 만남과 그녀의 죽음, 감옥에서의 고문과 에스파냐로의 추방 등을 겪으면서 우울하고 연약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며, 그가 죽은 이유는 애인인 “안드레아”가 그의 작품인 <거짓말 예찬>을 몰래 출간하자,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그걸 이기지 못해 결국 자살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장의 화자이자 망구엘이 베빌라쿠아의 죽음을 가져오게 한 장본인이라 칭하는 “안드레아”는 베빌라쿠아가 매력적이고 섬세하고 현명한 “천재 작가”라고 부르며 망구엘과는 전혀 다른 시점으로 베빌라쿠아의 어린 시절을 그려내고 그의 감옥살이 시절 - 세 번째 화자로 등장하는 “돼지”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 을 좀 더 상세하게 들려준다. 세 번째 화자이자 베빌라쿠아의 감방 동료였던 쿠바인 “돼지” - 용모 때문에 이렇게 별명으로 불리운다 - 는 감옥 시절의 베빌라쿠아와의 일화를 회상하면서 <거짓말 예찬>의 실제 저자는 사실 자신이었으며 그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 그 작품이 베빌라쿠아의 이름을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출판기념회로 그를 찾아가지만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결국 그의 숙소로 찾아가 그에게 따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즉 작품의 실제 저자와 죽음의 원인이 비로소 밝혀지게 된다. 네 번째 화자는 에스파냐로 추방된 베빌라쿠아가 마드리드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으로 이미 죽은 사람인 “티토 고로스티사”의 유령이 테라디요스의 꿈에 나타나 베빌라쿠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자신의 애인이었던 여인이 그를 떠나 베빌라쿠아의 아내가 되자 베빌라쿠아의 적(適)이 되어 버린다. 그에게 있어 베빌라쿠아는 겉모습은 순결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비열함이 감춰져 있는 그런 남자였던 것이다. 네 명의 증언이 끝나면 마지막에 필자인 테라디요스가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네 명의 증언을 통해서 베빌라쿠아의 생애와 죽음을 복원해내려고 했지만 관점에 따라 너무나도 다른 평가로 그의 진정한 실체와 죽음의 진실을 알아낼 수 없었다며 베빌라쿠아의 이야기를 쓰지 않겠다고 밝히며 끝을 맺는다. 

종종 신문들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나의 사건 - 예를 들어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 시위나 4대강 개발에 대한 각 언론사의 기사들만 검색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 을 가지고 이렇게 극명하게 상반된 분석과 평가가 내릴 수 있는지 놀랄 때가 있다. 즉 사건을 입체적으로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전체의 모습과 진실을 구성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또는 자신에게 유리할 것 같은 한 면(面)만 들여다보고 전체를 평가하기 때문에 이런 오류가 발생하는 것일테다.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말이다. 이 책에서 베빌라쿠아의 지인(知人) 네 명도 자신들의 관점과 시각에 따라 그를 연약한 사람으로, 또는 천재적인 작가로, 또는 작품과 연인을 훔쳐간 비열한 남자로 그리는데, 어느 것이 진짜 베빌라쿠아의 모습인지 영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어쩌면 그들이 진술한 모든 모습이 베빌라쿠아가 가지고 있는 진짜 모습일 수 도 있겠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그들 모두가 “거짓말쟁이”, 즉 진실과 거짓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버려 그에 대한 “진실”은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저 너머로 깊숙이 감춰져 버린 듯한 그런 느낌이다. 작가는 어쩌면 이 세상에 알려진 모든 사실은 저마다의 해석에 따라 달리 평가되는, 사실과 진실에는 깊고도 넓은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간극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책의 필자처럼 진실을 밝히는 것을 포기해버릴 수도, 또는 어느 한사람의 진술에 의거하여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작가는 어떤 결론이 맞는지를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어쩌면 “진짜” 진실은 있을 수 없다는 작가의 허무적이고 냉소적 시각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참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기이지만 단순하다 싶은 사건에 대하여 그걸 마주하는 사람의 관점과 시각에 따라 너무나도 달라지는 이야기가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일견 혼란스럽기까지 해서 전체 얼개를 머릿 속에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던, 읽는데 꽤나 애를 먹어 더디게 읽혔던 책이었다. 다 읽고 나서 그저 이야기를 복잡하게 꼬아 놓은, 일종의 구성적 유희(遊戱)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아 다시 한번 읽게 된다 해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카를로스 발마세다”도 그렇고 이 작품의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도 그렇고 남미, 정확히는 아르헨티나 작품들이 기존 서구권 작품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하고 색다른 구성과 재미를 준다는 점 만큼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재미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알베르토 망구엘, 내 취향은 아니지만 “묘한” 느낌의 작가로 앞으로도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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