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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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를 마지막으로 하루키의 작품을 더 이상 읽지 않았다. 그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에세이 -<재즈의 초상>,<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는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가 마라톤을 한다는 사실은 꽤 유명한 이야기라 이 책이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라는 점이 특별히 생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읽으면서 '하루키의 마라톤에 대한 열정과 인내가 이 정도 였나' 싶을 정도로 놀랐고 한 인간의 인내와 절제, 집중,고민하는 삶의 자세에 존경의 마음까지 품게 되었다.

 

요즘 나오는 신간 책들을 보면 '삶을 즐기면서 나 편한대로 적당히 대충하며 살자'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제목의 책들이 많다. 요즘 세상이 경쟁이 치열하고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삶에 희망은 안 보이며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기도 버거운 세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식의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는것은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한 번 뿐인 인생,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관조적인 자세는 필요하지 않나 싶다.

 

내 삶의 우선 가치를 두고 하나하나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자세.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그것이 쌓여서 10년, 20년이 된다면 분명 그 인생은 적어도 하루키의 말처럼 '뒤죽박죽'은 아닐 것이다.

 

하루키는 이 책을 에세이라고 하기 보다는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솔직하게 쓰려고 했고 달리는 소설가로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나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2019년을 앞두고 감동적인 자기계발서를 본 느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는 이야기인데 왜 교훈적이며 감동적인 것인지...

어제보다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고 질문하며 노력하는 자세와 그 가운데 놓치지 않고 확실하게 누리는 소소한 행복까지...바로 이런게 '하루키스럽다' 라고 난 말하고 싶다.

 

p. 20~21

그리고 나는-그런 여러가지 흔해 빠진 일들이 쌓여서-지금 여기에 있다.

 

p.27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 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p.65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p.103

마라톤 마을의 아침 카페에서 나는 마음 내키는 대로 찬 암스텔 비어를 마신다. 맥주는 물론 맛있다. 그러나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 않다. 제 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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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밤 슈테판 츠바이크 소설 시리즈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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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백만의 오스트리아 빈의 상류사회에서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우아한 귀족생활을 하는 주인공. 부유하고 교양있는 그가 심한 권태에 빠지고 어느날 환상적인 밤의 체험으로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감정이 없는 권태로부터 빠져나온다는 이야기이다.  

심한 권태감에 빠진 한 남자의 심리 상태와 변화를 이해하기엔 현재의 나의 생활과 귀족인 그의 생활은 많은 차이가 있기에 감정이입이 쉽게 되지는 않았지만, 과거 무기력하고 암울했던 시기를 떠올려 보니 주인공의 상태가 훨씬 심각함을 고려할 때 그 절실함은 이해할 수 있을거 같았다. 

 

 권태란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을 뜻한다고 사전에 나와 있다. 그러나 책 속의 주인공은 단순한 게으름이나 싫증이 아닌 감정 자체가 무뎌져 3년이나 교제해왔던 여자로 부터 이별 편지를 받고도 어떤 감정- 슬픔, 분노와 같은-도 느끼질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런 자신의 '심적 경직 상태'를 느끼며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만 있는 삶을 살아왔음을 깨닫게 되고 심한 충격을 받는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소리에 눈뜨게 되고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되는 계기는 '밤의 세계를 살아가는 쓰레기들'-노숙자, 창녀, 거지 등-을 보면서 시작된다. 더럽고 추하며 천박한 그들을 보며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108

이때 나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놀라, 유령 같은 이 굶주린 무리들을 몰래 숨어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놀라움에는 아까와는 또 다른 마술적 쾌감이 섞여 있었다. 그 이유는 가장 비천하고 추악한 사람들의 행태를 바라봄으로써, 나는 나의 감정의 상실과 신경의 차가움을 다시 한 번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세계에는 인광을 발하며 내 감각의 내부로 타들어 오는, 뜨겁고도 끈끈한 불덩이가 있었다. 이제 저 환상의 밤이 돌연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것이 나를 얽어맨 구속을 풀어 버려, 내 내적 충동의 가장 비밀스러운 것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 얼마나 기이하고 다행한 일인가!

 

 그들의 방탕함과 비천함이 자신의 그것과 전혀 다를게 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인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몽땅 타버린' 자신과 만나게 된다. 왜 그들과 난 이토록 비천한 존재가 되었는가? 주인공은 욕정이나 혈기가 아닌 '고독에 대한 불안' 때문에, '우리들 사이에서 높아만 가는 경악스러운 이질감'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을 괴롭혀 왔던 불안의 본질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화려하고 교양있으며 고상한 세계에서 그럴 듯 하지만 가식적이고 단조로운 삶을 살던 한 인간이 삶의 가장 비천하고 원초적인 것과 마주치며 자기안에서 끓어오르는 솔직한 감정과 충동을 알게 되는 과정. 이 과정이 신비스럽고 때로는 나의 감정도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은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읽고 5년 만에 처음이다.

그 당시 너무나 인상깊에 읽었기에 그의 작품을 더 읽어보려고 보관함에 담아 뒀지만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간과 못 읽은 책들, 나의 게으름 때문에 이제야 다시 그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짧지만 강렬한 작품이다.

나에게도 환상의 밤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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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그 지적 유혹 - 책 속 음식에 숨겨진 이야기
정소영 지음 / 니케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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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음식과 요리에 별 관심이 없다. 푸짐하게 먹는 것 보다는 간소하게 먹는 걸 좋아하고 먹는 거에 돈 쓰는 것도 아까워 한다. 다만 윤리적 소비는 중요하게 생각해 동물복지를 실천한 고기와 계란, 오가닉 채소를 사 먹긴 한다. 내가 먹는 것 중 유일하게 돈을 안 아끼는 건 커피 뿐인듯 하다.

따라서 음식과 관련한 소설,에세이,인문교양서도 자연히 안 읽게 되었다. 책 속에서 모르는 음식이 나와도 그냥 넘어갔지 굳이 레시피를 찾아 보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다. (음식이 담고 있는 그 은밀한 은유를 모른채 책장을 넘겼다니! 한탄스럽다.)

 

처음 제목과 표지가 내 눈길을 끌었는데, 결정적으로 단순히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소설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라는 설정과 대체로 내가 좋아하고 읽고 싶었던 작품들이라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총 14편의 소설과 3편의 비소설을 다루고 있는데, 처음 작품은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 Gone Girl>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중 많이 아끼는 작품이라 제목만 들어도 감탄사가 나오는 작품이다. 데이비드 핀처가 만든 영화로도 보고 이 작품을 나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고급 와인을 마시면서 그 향과 맛을 입안에서 충분히 느끼지 않고 목구멍으로 꿀꺽 삼켜버린 것과 같은 그런 낭비를 하며 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짝 충격이 왔다. 서로에게 강하게 끌려 결혼까지 했던 완벽한 커플로만 보였던 닉과 에이미가 서서히 그 차이를 드러내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음식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니...각각의 음식이 품고 있는 상징을 제대로 알고 읽었다면 닉과 에이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 미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계층,지역 간의 갈등 또한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뮈리엘 바르베리의 <맛>,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F.S.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한강의 <채식주의자> 등 작품 속 음식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분명 인상 깊게 읽은 책인데도 '아니! 이 책에 이런 음식이 나왔단 말야?!' 하며 혼자 뒷북을 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우스웠던, 그러나 책 속 음식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는 시간은 굉장히 즐거웠고 배부른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음식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의 삶과 욕망, 정체성,생각 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 인물이 살고 있는 시대의 사회상과 문화까지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어찌 보면 매일 먹는 음식이란게 인간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그동안 너무 우습게 봐왔던 내 자신이 좀 부끄러웠다.

 

정소영이란 작가는 얼굴도 모르고 처음 듣는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며 그녀의 음식에 대한 심미안과 문학 작품에 대한 깊은 통찰, 해박한 지식 등에 매료되었다. 그녀처럼 '나도 나만의 정체성이 담긴 레시피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녀의 된장찌개에는 베이컨과 화이트와인이 들어간다.)

다음 책도 기대가 되서 신간 알리미 신청도 했다.

 

아! 마지막 음식을 밥 딜런의 <One more cup of coffee>로 정한 건 너무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었어도 마지막에 커피 한 잔 없다면 얼마나 허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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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12-15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 다음 책은 ‘media‘관련 쓰시려나보더라고요
 
고기로 태어나서 -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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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인 구달의 희망의 밥상을 읽고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탐욕에 눈이 먼 기업과 인간에 의해 닭과 돼지, 소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적지 않은 충격에 급기야 채식을 실천하기로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채식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기에 3개월 후 포기하게 됐다. 그렇다. 고기를 안 먹으면서 산다는건 참 눈치보이고 불편하며 때로는 짜증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먹는 고기와 달걀이 어떻게 식탁 위로 올라왔는지 알고 먹는것과 모르고 먹는건 분명 차이가 있다고 본다.

한승태의 이 책 <고기로 태어나서>는 이런 관점에서 읽을 가치가 있다. 책 표지에 부제목으로 ‘한승태 노동에세이 -닭,돼지,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라고 쓰여 있다. 작가가 한국 동물농장 열 곳에서 일하고 쓴 고기에 대한 기록이다. 뿐만 아니라 함께 일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힘든 작업 환경에도 일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 일하면서 동물들의 고통에 점점 무감각해져가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단순히 공장식 농장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동물을 식용으로 키우는 과정에 대해 직접 일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고민해야할 여러 문제점들을 우리에게 화두로 던진다. 수익과 효용성만을 위해 동물을 물건처럼 취급, 아니 물건은 고장나면 고치기라도 해서 끝까지 쓰려고 하지만 동물은 아프면 도태시켜 버린다. 일하는 노동자들은 한 달에 2번 쉬면서 150만을 받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찾을 수 없다. 너무나 힘들고 열악한 작업 환경에 노동자들도 제정신일 수 없고 자연히 동물들에게 그 스트레스를 풀며 동물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수 밖에 밖에 없는 상황...이러다 사람도 죽일 수 있을거 같다는 저자의 고백은 무서웠지만 어느정도 수긍이 갔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설득도 어떤 주장도 없다. 그저 자신의 경험을 알리고 고백할 뿐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과연 이래야만 하는가‘, ‘이것이 온당한가‘,‘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등 끊임없이 자문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책의 내용은 슬프고 때로는 혐오스럽고 역겹지만 한승태라는 작가를 알게 된 점은 너무너무 기쁜일이다.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고 말하고 싶다. 끔찍한 내용이지만 읽으면서 갑자기 빵빵 터져나오는 웃음에 덜 힘들었다. 그의 전작 <인간의 조건>도 읽어 볼 생각이다. 아무나 쓸 수 없는 이 책을 써 준 한승태 작가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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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블렌드 겨울 - 1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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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커피 처음 구입해봤는데, 기대 만큼 훌륭합니다.
드립해서 마시는데 겨울 블렌드 고급스럽고 향도 좋고 따뜻한 느낌이 맘에 듭니다.
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커피~오늘도 행복한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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