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밤 슈테판 츠바이크 소설 시리즈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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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백만의 오스트리아 빈의 상류사회에서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우아한 귀족생활을 하는 주인공. 부유하고 교양있는 그가 심한 권태에 빠지고 어느날 환상적인 밤의 체험으로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감정이 없는 권태로부터 빠져나온다는 이야기이다.  

심한 권태감에 빠진 한 남자의 심리 상태와 변화를 이해하기엔 현재의 나의 생활과 귀족인 그의 생활은 많은 차이가 있기에 감정이입이 쉽게 되지는 않았지만, 과거 무기력하고 암울했던 시기를 떠올려 보니 주인공의 상태가 훨씬 심각함을 고려할 때 그 절실함은 이해할 수 있을거 같았다. 

 

 권태란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을 뜻한다고 사전에 나와 있다. 그러나 책 속의 주인공은 단순한 게으름이나 싫증이 아닌 감정 자체가 무뎌져 3년이나 교제해왔던 여자로 부터 이별 편지를 받고도 어떤 감정- 슬픔, 분노와 같은-도 느끼질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런 자신의 '심적 경직 상태'를 느끼며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만 있는 삶을 살아왔음을 깨닫게 되고 심한 충격을 받는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소리에 눈뜨게 되고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되는 계기는 '밤의 세계를 살아가는 쓰레기들'-노숙자, 창녀, 거지 등-을 보면서 시작된다. 더럽고 추하며 천박한 그들을 보며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108

이때 나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놀라, 유령 같은 이 굶주린 무리들을 몰래 숨어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놀라움에는 아까와는 또 다른 마술적 쾌감이 섞여 있었다. 그 이유는 가장 비천하고 추악한 사람들의 행태를 바라봄으로써, 나는 나의 감정의 상실과 신경의 차가움을 다시 한 번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세계에는 인광을 발하며 내 감각의 내부로 타들어 오는, 뜨겁고도 끈끈한 불덩이가 있었다. 이제 저 환상의 밤이 돌연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것이 나를 얽어맨 구속을 풀어 버려, 내 내적 충동의 가장 비밀스러운 것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 얼마나 기이하고 다행한 일인가!

 

 그들의 방탕함과 비천함이 자신의 그것과 전혀 다를게 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인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몽땅 타버린' 자신과 만나게 된다. 왜 그들과 난 이토록 비천한 존재가 되었는가? 주인공은 욕정이나 혈기가 아닌 '고독에 대한 불안' 때문에, '우리들 사이에서 높아만 가는 경악스러운 이질감'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을 괴롭혀 왔던 불안의 본질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화려하고 교양있으며 고상한 세계에서 그럴 듯 하지만 가식적이고 단조로운 삶을 살던 한 인간이 삶의 가장 비천하고 원초적인 것과 마주치며 자기안에서 끓어오르는 솔직한 감정과 충동을 알게 되는 과정. 이 과정이 신비스럽고 때로는 나의 감정도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은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읽고 5년 만에 처음이다.

그 당시 너무나 인상깊에 읽었기에 그의 작품을 더 읽어보려고 보관함에 담아 뒀지만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간과 못 읽은 책들, 나의 게으름 때문에 이제야 다시 그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짧지만 강렬한 작품이다.

나에게도 환상의 밤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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