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로 태어나서 -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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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인 구달의 희망의 밥상을 읽고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탐욕에 눈이 먼 기업과 인간에 의해 닭과 돼지, 소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적지 않은 충격에 급기야 채식을 실천하기로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채식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기에 3개월 후 포기하게 됐다. 그렇다. 고기를 안 먹으면서 산다는건 참 눈치보이고 불편하며 때로는 짜증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먹는 고기와 달걀이 어떻게 식탁 위로 올라왔는지 알고 먹는것과 모르고 먹는건 분명 차이가 있다고 본다.

한승태의 이 책 <고기로 태어나서>는 이런 관점에서 읽을 가치가 있다. 책 표지에 부제목으로 ‘한승태 노동에세이 -닭,돼지,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라고 쓰여 있다. 작가가 한국 동물농장 열 곳에서 일하고 쓴 고기에 대한 기록이다. 뿐만 아니라 함께 일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힘든 작업 환경에도 일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 일하면서 동물들의 고통에 점점 무감각해져가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단순히 공장식 농장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동물을 식용으로 키우는 과정에 대해 직접 일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고민해야할 여러 문제점들을 우리에게 화두로 던진다. 수익과 효용성만을 위해 동물을 물건처럼 취급, 아니 물건은 고장나면 고치기라도 해서 끝까지 쓰려고 하지만 동물은 아프면 도태시켜 버린다. 일하는 노동자들은 한 달에 2번 쉬면서 150만을 받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찾을 수 없다. 너무나 힘들고 열악한 작업 환경에 노동자들도 제정신일 수 없고 자연히 동물들에게 그 스트레스를 풀며 동물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수 밖에 밖에 없는 상황...이러다 사람도 죽일 수 있을거 같다는 저자의 고백은 무서웠지만 어느정도 수긍이 갔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설득도 어떤 주장도 없다. 그저 자신의 경험을 알리고 고백할 뿐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과연 이래야만 하는가‘, ‘이것이 온당한가‘,‘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등 끊임없이 자문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책의 내용은 슬프고 때로는 혐오스럽고 역겹지만 한승태라는 작가를 알게 된 점은 너무너무 기쁜일이다.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고 말하고 싶다. 끔찍한 내용이지만 읽으면서 갑자기 빵빵 터져나오는 웃음에 덜 힘들었다. 그의 전작 <인간의 조건>도 읽어 볼 생각이다. 아무나 쓸 수 없는 이 책을 써 준 한승태 작가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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