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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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읽었지만 소문대로 재밌었다. 돈 앞에서 눈이 머는 인간의 모습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래도 그 추함과 막장은 볼 때마다 내 속에도 있기 마련인 더러운 욕망을 살짝 건드린다.

 

오하이오의 작은 시골마을, 추락한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거액의 현금 440만달러(약50억원으로 소설 속 시대배경이 1987년임을 생각하면 '0'하나를 더 붙여야 하지 않을까?)를 발견한 세 남자. 행크는 사료상의 회계담당 부매니저이자 임신한 아내를 두고 있는 착실하게 사는 시민으로 소설 속 '나'인 화자이다. 행크의 형인 제이콥과 형의 친구인 루는 우리가 알고있는 전형적인 백인 저소득층으로 직업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그들앞에 아무도 모르는 거액의 현금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 행크는 모범시민답게 경찰에 알려야 한다고, 이 돈을 갖는건 범죄라고 하며 두 형을 말린다. 그러나 고민도 잠깐, 어느새 고개를 들기 시작한 욕망은 그 본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며 행크는 한가지 제안을 한다. 일단 6개월 동안 돈을 보관했다가 눈이 녹아 비행기가 발견되고 아무 일 없으면 그 때 돈을 나눠 갖자고 한다. 형들은 당장 돈을 쓰고 싶은 마음에 쉽게 승낙하진 않지만 결국엔 행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혼자 발견했다면 너무 무서워 그냥 경찰에 신고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셋이서 같이 발견해서 의견이 통일되지 못하고 누군가가 전혀 들킬 일이 없다며 나의 욕망에 부채질을 한다면! '아, 모르겠다. 몰라!' 하면서 달콤한 유혹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지 않았을까? 돈으로 가질 수 있는 온갖 것들을 상상하면서...그러다가 또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지. 눈먼 돈이라고 덥썩 물었다가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인생이 불행해진 것처럼 내 인생 또한 끝장날 수 있어. 경찰에 신고하는게 맞지...' 이런 밝히기 부끄러운 고민을 하며 나 또한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6개월을 기다리고 돈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면 되는 아주 '심플한 계획'인데, 갑자기 뚝 떨어진 어마어마한 돈 앞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눈이 먼 인간들의 막장 혈투드라마가 펼쳐진다. 돈을 향한 탐욕이 평범했던 한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지 화자인 행크의 심리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행크가 살인을 하고도 내가 살기 위해 내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되뇌이며 자기 합리화를 하는 대목이 수시로 나오는데 '사람의 욕심이 이렇게까지 무섭게 변질되는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구나' 싶어서 무서웠다. 돈 때문에 평범하고 모범적인 한 사람이 이렇게 무서운 살인마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과 내안에도 이런 행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다만 이런 일확천금을 못 만나서 그것이 꽁꽁 감춰져 있는 것은 아닌지 무서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초반에 돈을 발견하고 같이 흥분했던 마음과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고민은 싹 사라졌다. 큰 돈을 발견하면 무조건 근처 경찰서로 가야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편하게...

마음이 편한게 가장 좋은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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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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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다섯번 째 소설집으로 7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부끄럽게도 권여선이란 작가를 몰랐고 책 제목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친구가 읽고 싶다며 우연히 말한 것을 기억, 얼마 전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책이다.

 

첫 작품 <봄밤>의 첫 문장.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처음에는 몰랐는데 7편의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이 문장이야 말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이 아닌가 싶다. 삶의 끔찍함은 나 자신으로부터도 올 수 있지만 뜻하지 않은 우연으로도 올 수 있고 변변치 못한 인간들, 악의로 가득찬 인간들에 의해서도 올 수 있다. 언제 어디서 튀어 나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 갈 수도 있는 삶이 들이미는 칼날이란 이해할 수 없고 때로는 그 잔인함에 슬프고 기가막히기까지 하다.

 

이런 다양한 삶이 건네는 '지독한 농담'을 7편의 이야기는 담고 있다.

모든 작품에는 항상 술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 중에는 알콜중독자도 있다. 고통당하는 인간에게 술이란 끔찍한 삶으로부터 일시적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일 것이다.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약이 될 수도 있으며 타인과의 거리를 좁혀주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기쁠 때도 술을 마시지만 슬프고 힘들 때 마시는 술은 주정뱅이의 술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이런 주정뱅이들에게 건네는 인사라는 생각이 든다. 애정과 연민을 담은 인사...

 

<봄밤>, <이모>, <실내화 한 켤레> 이 세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다.

<봄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철저히 삶으로부터 배신당한 두 남녀의 슬픈 사랑과 비극을,(첫 작품부터 이렇게 몰아치다니...가슴 속에서 쿵!소리가 들렸다.) <이모>는 역시나 가족으로부터 착취,이용당하고 세상의 끝으로 도망쳐나온 이모(시어머니의 언니)의 이야기를 제 3자인 조카며느리의 시선으로 그린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실내화 한 켤레>는 그 어떤 스릴러 못지 않게 묘한 긴장감을 주는데 마지막에 그 소름이란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얘기 해도 되나?" 전부터 좋아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다시는 입에 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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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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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인 보기왕이 한 가정에 옴으로써 벌어지는 사건과 그로인한 인간의 공포 심리를 그린 작품으로 제22회 일본호러소설대상 대상수상작이다.

호러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극한의 공포...어쩌구 하는 광고 문구에도 넘어가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그러던 어느 날,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잘 모르는데 이상하게 이 분 말하는 스타일에 끌리곤 한다)씨가 이 책을 추천하는 동영상을 보고 바로 도서관에 예약을 했다. 대출 중이라 더욱 믿음이 갔다. 일요일 한 낮 편안한 마음으로 순수한 독서의 즐거움에 빠질 수 있는 책으로 재밌고 무엇보다 굉장히 무섭다는 그의 말에 '저런 남자도 무서울 정도면 으흐흐 제대로 공포한 번 느껴보겠구나...!' 짜릿한 상상을 했다.

 

그러나 p.144에서 딱 한 번 무서웠고 그 외엔 무슨 만화같기도 하고(초딩 아들이 보던 요괴만화 신비아파트 같은...) 유치하며 때때로 억지스러운 설정에 읽으면서 허탈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은 건 너무나 술술 잘 읽히는 내용과 보기왕과의 결투가 어떻게 될지 결과는 봐야했기에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재미가 없다고 하진 않겠지만 내가 중학생 때 읽었다면 아마 주변에 침 튀기며 추천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시절엔 별거 아닌거에 호들갑떨며 웬만한건 다 재밌었으니...

 

반면에 같은 일본호러소설 대상수상작인 기시 유스케의 <검은집>은 아주 예전에 읽었는데, 정말 마지막 몇 장이 숨막히게 무서웠고 사회 비판 메시지도 담겨 있어 묵직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이 작품도 가정폭력과 가정내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는 있으나 아무리 좋은 메시지라도 어느 정도 탄탄한 스토리와 개연성을 기반으로 해야지 곳곳에 허술함이 보여 대상작이라고 하기엔 실망스러웠다. 어떤 인물은 도대체 왜 나온건지 너무 억지스러웠고 보기왕이 왜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까지 해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전설 속의 요괴는 무섭긴 해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나타나기에 사람들이 조심했고 또 그런 점에서 범접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거의 무섭지 않다는 사실...ㅠ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던데 영화보다는 만화가 더 어울릴 것 같은 건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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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15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화에 한 표 던집니다.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선집 4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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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1월 15일 미국 중부 캔자스 주 홀컴(Holcomb)에서 일어났던 실제 살인 사건을 다룬 '논픽션 소설'이다.

 

미국 반스앤노블 서점에 처음 갔을 때 인상깊었던 부분이 바로 이런 'true crime' 을 다룬 논픽션 소설 분야였다. 전면 책장을 가득 채운 실제 범죄 소설들을 보며 픽션 못지않은 그 방대함에 섬뜩한 기운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범죄,스릴러,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는 오직 픽션으로만 만나고 싶었기에 그 이후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트루먼 카포티의 훌륭한 소설인 이 작품을 이제야 읽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잊을 만 하면 이 작품에 대한 호평의 글을 읽게 되어 '아, 이 책 읽어야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일가족 살해라는 실제 사건을 생생하게 그렸다는 점이 끔찍해서 좀처럼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고, '내가 이 책은 사야지 읽겠구나...'싶어서 구입한 것이다.

 

이 책은 작가가 실제 살인사건을 6년 동안 조사하여 재구성한 작품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마을,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한 모범적인 가족, 그들을 둘러싼 이웃들의 생생한 묘사가 마치 내가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무엇보다 인간이란 존재가 파멸의 길로 들어서서 살인까지 하게 되는 그 과정의 심리와 행동을 두 명의 인물, 딕과 페리(살인자들)를 통해 보여주는데, 그 과정이 때로는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며 잔인하고 어린애들 장난같기도 해서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또한 운명의 잔인한 장난과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이야기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하루 전인 평화로운 캔자스 주의 홀컴 마을에 사는 존경받는 부유한 농장주인 클러터 가족(희생자들)과 그 마을에서 640km 동쪽으로 떨어져 범죄를 준비하는 미래의 두 살인자들의 상황을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읽는 사람은 이 두명의 예비 살인자들이 하루만 지나면 홀컴의 훌륭한 한 가정을 몰살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보기 때문에 이들의 거리가 좁혀질 수록 그 안타까움과 비극을 느끼며 읽을 수 밖에 없다. 챕터가 바뀔 때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희생자와 살인자들의 묘사가 팽팽한 긴장감을 주고 이런 구성은 작품의 강렬함을 이끌어내는 카포티의 치밀한 계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생각했던 점은 '어떻게 이런 살인자들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였다. 보통 우리는 살인자들을 생각할 때 그들은 필시 불우하고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가정교육은 커녕 공교육도 제대로 못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 속 두 명의 살인자 중 페리 스미스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페리는 지적 허영심도 많고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다. 그러나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 이혼으로 인해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소년원에서 원장에게 구타당한 기억, 나중에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었을 때도 자신의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고 일만 시키는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분노,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수치, 이런 것들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이다. 감수성이 예민하여 때로는 이런 엄청난 살인을 일으킬 인물로 보이지도 않지만 결국에 4명을 다 죽인 건 자신이라고 자백한다. 딕보다는 그래도 좀 더 믿음이 갔던 페리가 살인현장에서 4명을 다 죽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말 '일시적 광기'였을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책에서는 페리가 원래는 죽일 의도는 없었는데 순간의 수치침, 모욕감을 느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칼로 클러터씨의 목을 그었다고 페리의 자백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페리의 진술이기 때문에 진실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처받은 외롭고 연약한 영혼이 얼마나 쉽게 잔인해 질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p.373

"난 그 빌어먹을 1달러, 1달러 동전을 생각했어요. 부끄럽고, 구역질 나고. 그리고 경찰들은 나한테 다시 캔자스로 돌아오지 말라고 했는데. 하지만 소리를 들을 때까지는 나는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지 못했어요. 누가 익사하는 것 같은 소리, 물 밑에서 소리 지르는 것 같은 소리."

 

 

반면에 일그러진 외모와 비열한 눈빛 등으로 묘사되는 딕 히콕이야 말로 인간 쓰레기 중 쓰레기로 보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 의외이다. 중산층은 아닌 잘해야 중하위층이었지만 그의 부모는 다정한 사람들이었고 딕은 고등학교 졸업, 대학에도 합격하지만 대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하게된다. 페리의 경우라면 살인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지만 딕은 일반인의 상식으로 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원인을 굳이 찾는다면 가난밖엔 없다. 가난이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 보편적으로 그렇진 않을 것이다. 딕 히콕을 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그런 살인자의 피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카포티는 딕에게는 소위 흔히 보는 더러운 범죄자의 이미지를 덧씌우지만 페리에게는 감정적으로 접근한다.

 

p.515

듀이는 언제나 히콕을 경멸했다. 단지 "텅 비어 있고 가치 없는 내면을 드러낸, 풋내기 사기꾼"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살인자가 스미스라고 해도, 듀이는 그에게는 다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스미스는 추방당한 동물, 상처 입고 돌아다니는 짐승의 오라를 가지고 있어 형사는 그를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사관 듀이를 통해 두 살인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딕은 태생적으로 쓰레기같은 인간이기에 살인을 저질렀지만 페리에게는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처럼 생각이 들게 만든다. 책 마지막, 옮긴이의 글에서 보면 카포티 자신이 페리 스미스와 유년 시절, 성격 등 비슷한 부분이 많았고 수사관 중 한 명은 그 둘 사이에 애정이 있었기에 작품의 공정성을 잃었다라고 비난 했다고 한다.

나중에 딕과 페리가 체포 되어 법정에 섰을 때 정신과 의사는 살인을 저지를 당시 페리가 '일시적 광기'에 의해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법정에서 이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듯이 묘사된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의 진실성에 여러 의문이 제기 되었지만, 이 문제는 이 작품을 단순 다큐멘터리 기록으로 보느냐 사실에 기반한 문학작품으로 보느냐의 차이에 있다고 본다. 나는 이 작품이 문학이라고 생각하기에 작가의 감정과 생각이 투영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카포티가 페리에게 어떤 감정을 느껴 썼다면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돈 40달러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넷이나 앗아간 막말로 싸이코 살인마이지만 이런 인간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던 그 비천한 삶과 타고난 천성이 카포티 자신과 같이 상처받기 쉬운 영혼이라고 감정이입되어 이런 작품을 썼다면 그런 작가의 의도를 나쁘게 보고 싶지는 않다.

 

지역사회에서 선량하고 마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한 가족을 소위 인간 말종같은 자들이 별 이유도 없이 잔인하게 살해를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신의 존재를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비극 앞에서 한없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사형제도의 옳고 그름 같은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소중한 목숨을 넷이나 앗아갔으니 너희도 죽어야지! 이 말이 내 안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정신 이상으로 판정받아 정신병원에 수용된다해도 살인자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을까? 죽음으로서 조금이나마 그 값을 치루는게 나은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다.

 

한 가족이 살해 당하기까지 심장을 조여오는 긴장감은 있었으나 생각보다 그렇게 잔인한 묘사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표현이 없어서 혹시 읽고 싶지만 무서워서 못 읽었던 분들에게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겪고 예민한 성격에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고 동성애자 였으며,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었던 트루먼 카포티. 그의 댄디한 옷차림과 큰 눈망울이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더 슬퍼보이는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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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시크릿 파일 - 우리가 몰랐던 조선 왕들의 인성과 사생활 이야기
박영규 지음 / 옥당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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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조선 왕들의 인성과 사생활 이야기'가 이 책의 부제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왕들의 성격과 사생활이 실록을 기반으로 나타나 있어 매우 흥미로웠고 신뢰가 갔다. 우리가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대부분 업적이었고, 그에 따라서 성군과 폭군으로 약간은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해 왔던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실록에 나타난 왕들의 실제 성격과 사생활을 보여줌으로서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던 왕들도 왕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고 단순히 좋고 나쁨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이 복잡하고 입체적이지 않은가...

 

이 책은 총 16명의 왕들을 다루고 있는데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세종에 관한 것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대왕이 형인 양녕대군의 잘못을 아버지인 태종에게 낱낱히 일러바쳤던 고자질쟁이였다는 사실. 또한 며느리를 4명이나 내쫓은 비정한 시아버지였다는 것이 참 의외였다. 인자한 성품으로 신하들의 허물까지도 눈감아 주며 그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도록 한 세종이 며느리들에겐 그토록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사실이 역시 인간은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책 전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선조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다. 임진왜란 때 도성을 버리고 도주한 사실때문에 우리는 선조를 비겁하고 능력없는 왕으로 평가하곤 한다. 나또한 이런 사실때문에 선조를 좋지 않게 생각 했던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그렇다면 만약 임진왜란 당시에 선조가 도주하지 않고 한성을 지키며 일본군과 맞섰다면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물으며 이에 대해 만약 그랬다면 병자호란 때의 인조처럼 되지 않았겠는가 하고 추측한다. 당시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달아난 것은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려 시대의 공민왕도 홍건적이 쳐들어오자 성을 버리고 일단 몸을 피한 후 때를 기다려 도성을 복구한 뒤 홍건적을 몰아내고 영토를 확장했다. 또 반대로 백제의 개로왕은 고구려 장수왕이 공격해왔을 때 도성을 사수하며 싸우다 처참히 패배하여 죽고 주변의 영토를 고구려에게 빼앗겨 결과적으로 백제가 망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조의 몽진은 '작전상 도주'라고 볼 수도 있다는 관점이다. 물론  선조가 왕으로서 비호감인 부분은 이 외에도 더 있지만 가장 큰 오점으로 남아있는 임진왜란 때의 몽진 하나 만을 두고 무조건 무능력하고 비겁한 왕이라는 평가는 너무 성급한 결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악랄 뒤끝 대마왕 태종(무섭고 싫다),우유부단한 중종(싫다), 최고 좀팽이 아비이자 지질한 인조(개인적으로 제일 싫다), 살벌한 세조(무섭고 역시 싫다), 조선시대 최고 사이코패스 연산군, 밤만되면 호색한으로 변하는 성종, 단 한명의 후궁도 두지 않은 현종 등 우리가 알거나 알지 못했던 조선 왕들의 인간적인 삶을 통해 파란만장 했던 조선의 역사를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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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08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종-중종-세조 그리고 인조 ...

최악은 두 번이나 도성을 버리고 몽진
에 나선 인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성종이 그렇게 야!~한 임금이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선조는 아예 조선을 버리고 안전한 중
국 땅으로 들어갈 궁리를 했다는 게 문
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렬하게
도성을 지키다가 전사했어도 분조해서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한 세자 광해군
이 있어서 그닥... 제 상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