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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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후 미군 주둔 기지촌 여성들의 삶과 그곳에서 태어나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곳에 갇혀 있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역시 어릴 때 프랑스로 입양되어 자신의 근원을 찾고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나나‘의 삶과 함께 그려진다. 내 삶이라는 무대에 등장한 배우인 타인을 그녀가 어떻게 끌어안는지 조해진 작가는 차분하면서도 따뜻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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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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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평생 도서관과 서점에서 일했던, 책을 사랑한 저자가 쓴 유일한 소설.

안타깝게도 저자는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조카에게 마무리를 부탁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저자는 '출판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을 쓰는 것이 꿈이었는데, 출판 뿐만 아니라 영화로까지 만들어졌으니 큰 성공이라 하겠다.

 

프랑스와 영국사이의 채널제도에 위치한 건지 섬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포기하면서 독일군이 점령하게 된다. 영국 영토 중 유일하게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땅으로, 독일군의 감시 속에서 건지 섬 사람들은 가축도 몰수당하고 감자와 순무로 연명을 하며 힘든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주민이 독일 군 몰래 빼돌린 돼지로 파티를 열게 되고 너무나 오랜만에 이웃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마을 사람들은 통금 시간이 지나 몰래 집으로 가다가 그만 독일군에게 발각된다. 꼼짝없이  잡히게 된 상황에서 엘리자베스가 기지를 발휘, 문학모임이 있었고 '독일식 정원'에 관한 토론이 너무나 즐거워서 늦었다며 위기를 모면한다. 근데 마침 독일 사령관이 문학애호가라 이 모임에 언젠가 참여하겠다고 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 언제 사령관이 나타날지 모르기에 문학모임이 바로 만들지고 주민들은 책을 사들이고  각자 책을 하나씩 골라 읽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시작이다

 

영국 작가 줄리엣 애슈턴은 바로 이 건지 북클럽의 멤버인 도시 애덤스로부터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찰스 램의 열렬한 팬인 도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엘리아 수필 선집> 표지 안쪽에서 줄리엣의 주소를 발견했고, 그녀에게 찰스 램의 책을 구하고 싶다며 런던 서점의 주소를 부탁하고 이를 계기로 줄리엣과 건지 섬 사람들은 편지를 주고 받게 된다.

 

이 책은 전체가 편지글로 구성되어 있다. 건지 섬의 북클럽 회원들은 줄리엣에게 각자 자신들의 사연을 편지로 보내고 이렇게 오고가는 편지 속에서 그들이 전쟁 상황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우연히 만들어진 책모임이 이들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해 주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가운데 줄리엣은 건지 섬 사람들에게 점점 애정을 갖게 되고 급기야 그들을 만나러 건지 섬으로 가게 된다. 건지 섬 주민들이 겪은 전쟁의 참상, 그 가운데서도 따뜻하게 피어난 인간애, 무엇보다 그 중심에 엘리자베스라는 당당하고 용감한 여성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줄리엣은 그녀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한다.

책을 사랑하고 책의 힘을 믿었던 작가가 선사하는 책과 사람에 관한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좋은 책은 사람을 모이게 만들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게 만들며, 그 마음은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 그것이 책의 힘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제가 독서를 좋아하는 거예요.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을 찾는 거죠. 실로 기하급수적인 진행이랄까요. 여기엔 가시적인 한계도 없고,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다른 목적도 없어요."(p.22 )

 

순수한 즐거움...아마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에 깊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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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창비세계문학 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강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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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p.104)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죽음이라는 모험의 초보적이고도 결정적인 측면이 부조리의 감정의 내용을 이룬다'(p.33 민음사)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죽음은 체험할 수 없고 죽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만 죽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죽음을 주제로 한 톨스토이의 두께는 얇지만 그 안의 내용은 묵직한 이 소설을 올 가을에 읽었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으로 흘러가는 과정을 아주 밀도있게 그린 작품으로 나처럼 톨스토이를 처음 읽는 사람이 시작하기에 좋을 듯 하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판사로서 시대에 민감하고 출세를 지향하나 사람들에게 욕 먹을 정도로 속세에 찌든 인간도 아닌 사회적으로 성공할 만큼 적당한 허영심과 속물성을 가진 평범한 관료이다. 그는 일하는 데에 있어서도 공사를 혼동하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며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대외적으로 고상하고 품위있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이반 일리치는 몸의 이상함을 느끼고 통증이 심해지면서 서서히 죽어가게 된다. 그 죽어가는 과정에서 이반 일리치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분노하고 체념도 하지만 결국엔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죽음으로 다가가는 인간의 심리와 그 주변 인물들의 반응과 행동의 묘사가 매우 인상적인 이 작품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알리는 데서 시작, 그 죽음을 둘러싼 동료 판사들과 가족들의 반응부터 매우 흥미롭다.

동료들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자신과 동료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p.8)을 계산한다. 또한 '죽은 게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라는 사실에 안도감'(p.10)도 느낀다.

미망인이 된 이반 일리치의 부인 역시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기 보다는 '남편이 사망한 경우에 국고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p.20)에 더 관심이 많다.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자신들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언뜻 나의 모습이 보이는것도 같아 가슴이 뜨끔거리기도 했다. 이렇듯 첫 장면부터 톨스토의 묘사는 날카롭고 섬세하다.

 

2장부터는 과거 이반 일리치의 삶과 어느 날 병에 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반 일리치는 알 수 없는 통증에 괴로워하고 가족의 무심함에 증오심이 커져간다. 의사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의학적인 지식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그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죽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지 '나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p.72)인 것이다.

 

특히나 그를 힘들게 하는건 치료만 잘 하면 곧 나아질거라는 사람들의 거짓말이다. 또한 누군가 자신을 가엾게 보살펴 주기를, '사람들과 하느님의 냉혹함'에 '도대체 왜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왜 저를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만드는 겁니까?'(p.100) 라며 울며 절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기뻤던 일들보다 덧없고 의심스러운 일들이 많았음을 알게 된다. '언제나 똑같은 생활', '하루를 살면 하루 더 죽어가는 그런 삶', 삶의 무의미함에 치를 떨며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p.103)

 

'왜?!'에서 시작한 원망섞인 질문이 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반 일리치는 생각하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게 없다. 내가 정말 죽는가, 왜 이런 고통을 내가 겪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할 수 없다.

 

죽음의 절망과 치유의 희망 사이에서 외로운 방황을 하던 이반 일리치는 과거를 회상하며 거짓과 위선 앞에서 자신의 양심이 고개를 들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자신의 일과 삶의 방식, 사교계 이 모든 것들 속에 얽혀 있는 이해관계가 다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가족과 의사를 보면서 그들의 모습에서 '바로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p.112)을 보게 된다. 그 모든 것이 삶과 죽음도 가려버리는 '거대한 기만'이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인생이 정당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주변을 살펴보지 못하고 그 안에 갇혀있던 자신을 알게 되고 그 순간 힘들어하는 가족과 미워하던 아내도 이해하게 된다.

 

'그래, 내가 모두를 괴롭히고 있구나.'(p.117)

 

죽기 전 그는 가족을 진심으로 불쌍하게 여기고 비록 제대로 전달되지는 못하나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던 통증도 사라지고 평온함을 느낀다.

죽음 대신 그가 본 것은 빛이었고, 그가 마지막으로 외친 말은 다음과 같다.

 

"아, 이렇게 기쁠 수가!"(p.119)

 

죽음의 순간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받아들이고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고 떠나는 이반 일리치를 보며 모든 독자는 앞으로 다가올 각자의 죽음을 머리 속에 그려볼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이반 일리치처럼 평안하게 기쁜 마음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인사하며 떠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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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18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오래 전에 사두고,
또 올해 창비 리뷰대회 선물로도
받아 두었는데...

왜 읽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내년에나 도전해 볼까 합니다...

coolcat329 2020-12-18 13:32   좋아요 2 | URL
어머나! 레삭매냐님이 이 책을 안 읽으셨나니, 정말 의외네요 ㅎㅎ 요즘 워낙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그러실거에요.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0-12-18 14:23   좋아요 1 | URL
이 작품 정말 좋아요. 꼭 읽어 보세요. 두께도 얇잖아요? ㅎㅎㅎㅎ

scott 2020-12-22 19:29   좋아요 0 | URL
ㅋㅋㅋ 레삭매냐님이 깜빡하시고 묵혀둔 책
요기!
(=ⁿ-ⁿ=)ノ

페크pek0501 2020-12-19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독한 작품입니다. 주인공도 그렇지만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주목하게 되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지 놀랍더군요. 대단한 작품 같아요.

scott 2020-12-22 19:30   좋아요 1 | URL
전 개인적으로 톨스토이 작품중 안나 카레니나 다음으로 이책이 명작중에 명작이라고 생각해요.^0^
 
운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임레 케르테스 지음, 유진일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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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생 작가 임레 케르테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14살 때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1년 동안 처참한 경험을 하고 2차 대전이 끝나면서 구사일생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이 소설은 작가의 그런 경험을 담은 책으로 13년 간의 집필 끝에 그의 나이 46세인 1975년에 발표되었다.

 

부다페스트에 사는 14살 소년 죄르지는 유대인 차별 속에서 체펠 섬에 있는 정유회사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죄르지가 타고 있던 버스가 세워지고 버스 안에 있던 유대인들은 강제로 끌려 나온다. 이렇게 색출된 유대인들은 독일로 일하러 가는 줄 알고 열차에 오르는데 이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아우슈비츠이다. 이 소설은 영문도 모른 채 어느 날 아우슈비츠로 끌려와 다시 부헨발트를 거쳐 차이츠로 이동,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참혹한 현실을 경험한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다른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들과는 그 상황을 기술하는 점에서 많이 다르다. 매일매일이 죽음과 배고픔, 잔혹한 노동으로 고통스러운 수용소를 죄르지는 15세 소년답지 않게 담담하게 묘사한다. 감정의 동요도 없고 그저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해 나간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차량 바닥에서 잔 터라 조금 아팠다. 다른 때도 자주 그랬듯 기차가 멈춰 섰고 사이렌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중략) 새벽녘이라 바깥 공기가 서늘하고 향기도 좋았다.드넓은 들판 위로 회색빛 안개가 드리워 있었다.(중략)나는 일출광경을 보게 되었다. 아름답고 흥미로웠다. (p.85)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로 이동하는 화물열차 안을 '남녀노소가 싸구려 상품들처럼 무자비하게 포개'져 있다고 묘사한다. 추위와 갈증,구타로 절망을 느낄 수도 없었다고 하는 그 상황을 죄르지는 바닥에서 자서 '조금아팠다'고 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일출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레비가 수용소로 이동하면서 나흘 동안 물을 못마시고 극심한 갈증 상태로 도착한 곳에서 (마시지 말라는)수도꼭지를 발견, 물을 마시지만 이내 뱉고 마는데, 죄르지는 '이렇게 맛있는 물을 마신 적은 없었다'(p.101)고 말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원제는 '운명없음'이다.
잔혹한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작가가 운명이란 없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죄르지에게 이웃 노인들은 끔찍했던 기억들을 다 잊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죄르지는 왜 잊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인데 내 기억에 대고 명령을 할 수는 없다'(p.278)고 항변한다.

 

"특히 저는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끔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p.278)

 

놀라운 말이다. 끔찍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니...

작가는 이 말을 통해 홀로코스트라는 악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 모두가 크고 작게 연관되어 일어난 범죄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거 같다. 죄르지는 홀로코스트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착오이고 우연이고 일종의 탈선이었다고 말하는 것을'(p.281) 견딜 수 없다. 광기어린 악이 자신 앞에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그것과 함께 갔다'(p.279)고 말하는 점이 그렇다. 

 

사르트르가 인간은 '자유를 선고 받은 존재'라고 했다. 운명이라고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모든 선택과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자세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자는 운명에 지배당하는 것일테고, 후자는 나 '자신이 곧 운명'이 되는 것이리라.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다. 그런데 만약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운명이란 없다. 그 말은 우리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p.282)

 

이제 우리 과장하지 말자!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정말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논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나는 잘 안다. (p.284)

 

 

죄르지는 '그것은 나의 운명이 아니었지만 나는 끝까지 살아 냈다'(p.281) 고, '나의 운명 속에서 끝까지 정직하게 걸어왔'고, '도저히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삶을 지속해 가겠다'(p.284)고 말한다.

나치의 만행이 유대인의 운명이었다고 체념하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 잊는다면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은 언제든지 다시 인간 세상에 출현할 것임을 작가는 말하고 싶은 거 같다. 그래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논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 소설의 마지막은 나를 숙연케 한다.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운 휴식 시간에도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내게 수용소에서의 역경과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만 묻는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가장 기억할 만한 일들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래, 사람들이 나중에 묻는다면 그때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p.284,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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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17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마 이 책을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구해서 가지고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읽었나 안 읽었나. 하도 오래 전
의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coolcat329 2020-12-17 15:36   좋아요 1 | URL
빨간 표지 맞으시죠? 다른우리 출판. 저 이 책도 같이 비교하면서 읽었는데, 몇 군데 이해 안가는 문장 도움이 됐어요. 레삭님은 읽으셨을거에요~^^

Falstaff 2020-12-17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르테스는.... 낯설고 어렵더라고요. 거의 모든 작품이 그런데 그중 편안한 게 <운명>아니었나 싶습니다.

coolcat329 2020-12-17 15:39   좋아요 0 | URL
그렇잖아도 폴님의 <좌절>리뷰 읽고 ‘아, 이건 좀 어렵겠다...‘ 생각했답니다.🤭

han22598 2020-12-18 0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 좋네요 ^^ 어쩌면 세상은 계속되는 홀로코스트 같은 악이 진행중일지도... 요란하지도 하지만 무심코 지나칠수 없는 운명같은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이 책은 정말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

coolcat329 2020-12-18 11:56   좋아요 1 | URL
제가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으나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네요. 부끄러운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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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태어난 프리모 레비는 제2차 세계대전 말, 1943년 12월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강제 이송된다.

저자는 처음에 목적지를 알고 안도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이 세상 어느 곳엔가 존재할 어떤 지역을 지칭'하는 그 이름에 마음이 놓였고, 언젠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거라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당시 같이 이송된 인원은 650명, 레비와 같은 객차에 탔던 사람은 45명이었는데 나중에 살아서 집에 돌아간 사람은 4명에 불과, 그런데 '이 객차가 가장 운이 좋은 경우'였다고 한다.

이런 끔찍한 결론으로 시작하는 이 책의 저자 프리모 레비는 운 좋게도 1945년 극적으로 살아남아 다시 토리노로 돌아오긴 했지만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10개월간의 체험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우리 이탈리아인들은 매주 일요일 저녁 수용소 한쪽 귀퉁이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곧 그만두어야 했다. 숫자를 세는 게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우리의 수는 매번 줄어들었고 매번 몰골이 더 사납고 더 비참해졌다. 모임에 나가려고 몇 발짝 떼어놓는 것도 힘이 들었다. 게다가 다시 만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기억을 떠올리고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 (p.51)

 

읽가다 눈물이 나올 뻔한 대목이다. 내가 어딘가로 끌려가 강제 수용되었는데, 여러 인종이 섞여있는 그 낯선 곳에서 한국인들을 만나 의지하는 가운데 그 수가 매 주 줄어든다고 생각해보니 너무나 끔찍하고 가슴이 아팠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체험기이면서도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보다 근본적인 질문과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수용소는 사고가 아니었다고, '유럽에서 파시즘이 강세를 떨치고 가장 기괴한 모습을 보일 때 가장 번성'했다고 말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는 것을 용납하기 시작하면, 결국은 수용소 체제를 향해 가게 된다'는 것. 프리모 레비는 이 무서운 진실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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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2-01 0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을 걸고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사라져 버린 공포와 고독감. 인간은 그런것일까요? 서로가 서로의 생을 바라보면 힘을 얻어가는 존재인가봐요.

coolcat329 2020-12-01 11:28   좋아요 0 | URL
자기 자신만을 위해 투쟁해야하는, 인간이 인간에게 바랄 것이 거의 없는 수용소의 절박한 상황에서도 타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사례들을 보면 ‘인간의 삶이란 참으로 모순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서 헤쳐나가야 하는 삶이지만 또 서로 돕기도 해야 하는...
네 han님 말씀대로 ‘서로의 생을 바라보며 힘을 얻어가는 존재‘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