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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선택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7
윌리엄 스타이런 지음, 한정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평점 :
<소피의 선택>은 미국 버지니아 출신의 윌리엄 스타이런(William Styron 1925~2006)의 대표작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1980년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을 수상했다. 또한 이 소설은 1982년에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 되어 주연을 맡은 메릴 스트립(1947~ )에게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이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영화 역사에 있어 손에 꼽히는 명연기로 알려져 있다.
1947년 뉴욕, 미국 남부 버지니아 출신의 22살 청년 스팅고는 맨해튼에 있는 출판사에서 편집일을 하면서 소설을 쓰는 작가 지망생이다. 그러나 직장에서 해고 당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그는 브루클린으로 거처를 옮긴다. 스팅고는 새로 이사한 하숙집에서 이상한 이웃을 만나게 되는데,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폴란드 출신 소피와 그의 연인인 유대인 남성 네이선이다.
하숙집에서의 첫날, 스팅고는 윗층에서 '광포한 야생동물들처럼 섹스를 하는 두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 긴 시간 동안 지속되던 '마라톤 섹스'가 끝나고 샤워하면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남자의 욕설과 여자의 애처로운 흐느낌, 유리 깨지는 소리,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리고 남자가 거칠게 열고 나가는 문소리와 함께 싸움은 끝난다.
얼굴도 모르는 두 사람의 이 기이한 행위에 스팅고는 화가 나면서도, 그토록 격정적인 사랑이 어떻게 한 순간에 분노의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커플에게 묘한 호기심을 느끼며 다음날 코니 아일랜드로 놀러도 가는 등 가까운 사이가 된다. 지적이고 재미있는 네이선도 호감이 가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소피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바르샤바에 살던 소피는 아픈 엄마를 위해 몰래 고기를 들여오다가 검문에서 체포당하고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게 된다. 유대인이 아니기에 도착하자마자 가스실로 향하진 않았지만 강제수용소에서 지내면서 나치의 대량학살을 직접 목격하고, 전쟁이 끝나기 5개월 전에는 아우슈비츠에서 멀지 않은 비르케나우 여자 수용소로 옮겨져 극심한 굶주림과 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난민수용소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온 그녀는 위기의 순간 우연히 네이선을 만나 도움을 받고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이 소설은 소설가로 나름 성공한 스팅고가 30년이 흐른 후(1977년으로 추정), 과거 소피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회상하며 쓴 이야기이다.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소피와 네이선. 그러나 거의 발작에 가까운 네이선의 분노와 변태적인 폭력, 폭언으로 세 사람의 관계에는 균열이 오고, 혼자 남은 소피는 그때마다 스팅고에게 자신의 가슴 아픈 전쟁의 경험을 들려주게 된다. 그 가운데 조금씩 새롭게 드러나는 진실은 읽는이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며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보게 한다.
스팅고는 소피로부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들으면서 소피가 아우슈비츠에 도착하던 1943년 4월 1일, 자신은 그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을 들춰낸다. 그는 해병대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몸무게를 늘리려고 미친 듯이 바나나를 먹고 있었던 것.
스팅고는 당시 아우슈비츠는 커녕 나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고, 전쟁에서의 적은 일본군이었음을 고백하며 같은 시간을 살았음에도 어쩌면 그렇게 다른 시간을 산 거 처럼 모를 수가 있었는지 평론가 스타이너의 말을 빌어 "의사소통할 수 없는 다른 종류의 시간이 존재하다는 개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1권-p.388)라고 말한다.
1,2권 합쳐 90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할 틈이 없이 푹 빠져서 읽었다. 전쟁으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죄책감으로 일그러진 소피의 삶을 통해 전쟁이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잔인하게 파괴하며 인간의 존재를 얼마나 무력하게 만들며, '절대적인 악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한 인간을 마비시킬 수 있는지'(2권-p.259)를 보여준다.
'소피는 과거의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궁금한 가운데, 그것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알게되는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는 슬프면서도 그런 상황을 만든 역사의 광포함에 치를 떨게 만든다.
다만 이 소설을 읽으며 조금 당황한 점은 화자인 스팅고의 주체할 수 없는 성적 호기심과 집착이 너무 과하게 나와 비극적인 역사를 다룬 이 작품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조금 의아하기도 했지만, '22살의 혈기왕성한 청년이 제대로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으면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 생각하며 웃어 넘겼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노골적인 표현과 묘사는 혼자 읽으면서도 낯 뜨거워 혼났다.
<소피의 선택>은 소피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알아가는 여정이다. 몇 차례에 걸쳐 스팅고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 소피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전쟁의 광기와 비극뿐아니라 미국 남부의 노예제도, 인종차별도 스팅고의 입을 통해 고발함으로써 인류가 겪은 또다른 역사의 비극을 다룬다.
소피가 숨기고 있는 과거는 무엇인가? 소피의 선택은 무엇인가?
궁금하시면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