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경관 동서 미스터리 북스 23
펠 바르.마이 슈발 지음, 양원달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이 생소한 부부 작가의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알라딘 덕분입니다. 앞서 이 작품에 애정 어린 찬사를 보낸 리뷰어분들 덕분이죠. ‘팔랑귀’이자 동시에 불신으로 가득한 옹졸한 독자입니다. 거기다가 게으르기까지 하죠. 이런 이유로 다른 리뷰어들의 추천작은 보관함에 된장냄새 풍기도록 오래오래 썩고 있거나, 용케 구매한 이후에도 책장에서 존재감 없이 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죠. <웃는 경관>가 얼마나 오랫동안 책장에서 자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웃는 경관>은 읽는 동안 DMB(동서미스터리북) 시리즈에 감사하는 마음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본 DMB 시리즈 중 최강의 오탈자와 어색한 일본어식 한자어가 산재해있음에도 그다지 짜증스럽지 않았습니다. 젠장, 이 소설이 무척 재미있으니까요.

<웃는 경관>을 읽고 모스 경감 시리즈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마틴 벡 주임은 모스처럼 천재적인 머리를 지닌 것도 아니고, 잘난 척도 하는 캐릭터도 아닙니다.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요. 공통점이라면 사람 냄새가 난다는 점이 흡사합니다. 이 소설의 무대인 스톡홀롬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마틴 벡와 동료 경관들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과격한 행동을 하거나 힘을 남용하지 않습니다. 정의에 불타는 열혈경관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직업이 경관이고, 자기 직무에 충실하고자 성실하게 범인의 뒤를 쫓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할리우드식 수퍼캅 혹은 액션 히어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실함이 그들의 유일한 무기입니다. 평균 수준의 두뇌가 모여 열심히 수사하다보니 어느새 막막하기만 하던 사건의 단서가 하나 둘 씩 손에 들어옵니다. 결국 승리는 평범하지만 성실한 그들의 몫입니다. 현실 속 경관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솔직히 장르소설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경찰관들의 이야기를 다룬 순수문학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번역이 더욱 안타까웠고, 열편의 시리즈 중 한 편만이 소개된 것이 아쉬웠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만족도와는 별개로요.

부부가 공동 작업을 하는 것도 흥미롭고, 각권이 30장으로 구성된 10편의 연작(총 300장 짜리 사건일지!)을 발표하기로 기획했다는 것도 재미있고, 시리즈 완간 직후 남편 펠 바르가 죽었다는 사실도 마틴 벡 시리즈를 레전드급으로 만드는 요소인 듯 합니다. 열편의 시리즈를 책장에 좌르륵 책장에 진열하는 걸 상상해보았는데요, 젠장맞을!!! 단 한 편으로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국내 출간은 끝일까요?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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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1-2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저도 재미있게 읽었지요.마틴 벡이 상당히 인간적인 경찰로 나오는 것이 특징이지요.사실 저도 별 가망성은 없지만 이 책이 전부 출판되길 기대해 봅니다.왜냐하면 이 시리즈를 순서대로 주욱 읽으면 마틴 벡이 활약하는 도시(이게 스톡홀름인가???)의 모습이 년도별 발행순서대로 그 변화된 모습이 주욱 그려지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 책을 읽으면 한도시의 변천사도 그대로 볼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lazydevil 2009-11-21 12: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솔직히 낯선 스톡홀롬의 지명과
스웨덴 사람 이름 때문에 애먹으며 읽었어요.
이제 막 적응한다 싶었는데 더 이상 출간된 시리즈가 없네요ㅠㅜ
카스피님과 한마음으로 시리즈가 출간되기를 기대합니다~.

Forgettable. 2009-11-20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어제까지만해도 데빌님 책과의 권태기에 빠지시는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이런 재밌는 책도 읽고 계셨네요 ^^
이번달에 읽을 책에 어제 도착했는데 이거 사고 싶어서 또 마음이 간질간질 해요;;

일단은 나중에 원서로 읽어볼 후보작으로 고고씽ㅋㅋ

lazydevil 2009-11-21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영화보기도, 음악듣기도 시큰둥한데 책마저 권태기면 전 심심해서 못살아요^^
포겟님, 원서해독가능 외국어실력 부러워요.ㅠㅜ

ris 2009-11-22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저도 오래 썩히다가 읽고 나서 심봤다를 외쳤어요~이렇게 내 취향일수가..라면서.
아마 동서 아니었음 한국에선 영영 못읽을수도 있었을거 같아서 감사하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lazydevil 2009-11-22 22:26   좋아요 0 | URL
저와 같은 생각인 분들을 만나니 더욱 안타깝네요!!! 한번 더 마틴 벡 시리즈 출간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제발~~^^*

느린산책 2009-11-23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책 선택의 폭이 참 넓으시군요~ 궁궐에 관련된 책서부터 미스터리물까지..이렇게 새로운 책을 접할 수 있는게 이곳의 장점 같아요. 제 서재에 마실도 오시고 감사드려요. 저도 자주 들를게요^^

lazydevil 2009-11-24 11:27   좋아요 0 | URL
으음.. 요즘은 책편식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제법 다양하게 읽으려 노력했는데ㅎㅎ
암튼 만나서 반갑습니다^^
 
폴링 엔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1
윌리엄 요르츠버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영화 <엔젤 하트>를 그리 재미있게 보지 않았습니다. 축축하고 을씨년스러운 화면과 미키 루크의 잘생긴 외모, 로버트 드니로가 섬뜩한 손톱으로 삶은 달걀의 껍질을 벗기던 것 정도만 기억납니다. 솔직히 기대를 많이 하고 봤던 작품인데 그저그랬습니다. <엔젤 하트>를 연출한 알란 파커를 좋아했었거든요.
영화의 원작인 <폴링 엔젤>도 제법 기대를 하고 읽었습니다. 영화 때문이 아닙니다. 순전히 하드보일드 탐정소설과 오컬트 호러가 결합했다는 이유 때문이죠.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은 물론이거니와 호러(영화)도 좋아하거든요. 결과는 이건 하드보일드 탐정소설도 아니고 오컬트 호러도 아닌 게 아닐까??? 아니 하드보일드 탐정소설 같기도 하고, 오컬트 호러 같기도 한가??? 매몰차게 말하면 어느 쪽도 모양새만 갖췄을 뿐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소설을 읽다가 너무 짧다는 불평을 하기는 처음입니다. 숨 가쁘게 읽다보니 벌써 마지막 챕터군! 조그만 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줘, 제발!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이도 저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다가 끝나버리니 이런 불평을 하는 겁니다.
특히 부두교와 악마숭배자에 관해서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았으련만 호기심만 자극하고 넘어가더군요. 관심 있으면 도서관에서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라는 건가요? 소설은 백과사전이 아니라 이야기책이란 건가요? 그러기에는 <폴링 엔젤>의 이야기는 시시하고 재미없어요. 영화를 진작 본 이유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폴링 엔젤>의 이야기는 그닥 흥미롭게 전개되지 않습니다. 사건의 반전을 위해 도식적으로 전개될 뿐, 하드보일드 소설의 키포인트인 음습한 욕망이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독자 맘대로 의심의 눈초리를 던져봅니다. 작가는 뼛속까지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팬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악마숭배와 부두교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를 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만약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광팬이라면 이렇게 밋밋한 탐정 캐릭터를 자기도 용납할 수 없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악마숭배와 부두교에 대한 많은 공부를 했다면 잘난 척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을 테니까요. 소설은 분량의 제약을 받는 영화 시나리오가 아니거든요.

그래도 소설의 핵심 아이디어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것이 진작 예측 가능한 것일 지라도, 악마의 포로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이야기는 알고도 듣고 싶은 소재니까요. 그런데 기계적으로 페이지만 넘어갈 뿐 독자를 잡아당기지 못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욕망에 대한 묘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출발이자 핵심인 자니 페이버릿이 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는지, 그리고 왜 악마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는지를 알 수 없어요. 그러니 사건의 실체가 밝혀졌을 때 해리 엔젤이 받은 충격도 뭐 때문인지 모호합니다. 정체성에 관한 문제인가요? 악마에게 놀아난 것에 대한 공포인가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절망인가요? 아니면 여주인공인 이피퍼니 때문인가요? 작가는 알아서 짐작하고 그 충격에 동참하라는 식입니다. 너무 불친절해요.

<폴링 엔젤>을 읽으면서 영화 <올드 보이>가 떠올랐습니다. 풋, 여러모로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물론 <올드 보이>은 <폴링 엔젤>에는 없는 강력한 엔진이 있고, 그에 어울리는 숨은 진실도 있습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영화 <올드 보이>가 영화 <엔젤 하트>(혹은 원작 <폴링 엔젤>)보다 훨씬 명민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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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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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특히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하는 1권의 시작은 정말 대단합니다. 거두절미하고 꽉 막혀버린 도시고가도로에서 시작하는 아오마메의 이야기나, 엄마가 외간남자에게 젖을 빨리고 있는 기억으로 시작하는 덴고의 이야기 모두 흥미롭습니다. 거기에 더욱 더 간결해진 하루키의 문체가 좋았습니다.
아오마메가 새로운 유형의 킬러라는 것을 소개하는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작가 지망생인 덴고가 유령작가로 다른 사람이 쓴 작품을 리라이팅하는 설정도 좋았고요. 하루키가 작품 속에서 글쓰기와 문학에 대해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을 처음 봤기에 새롭게 느껴졌죠.(<해변의 카프카>나 <어둠의 저편>에서 글쓰기를 이야기한 적있나요? 두 작품은 읽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어라, 이거 하루키답지 않을 걸. 그리고 신선한 걸. 하루키가 변했구나. 나쁘지 않아. 아니 재미있어. 그래서 이 이야기는 어떻게 되지? 조지 오웰의 <1984>의 영향은 어떤 식으로 드리워져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가며 1권을 신나게 읽어갔습니다.

현재 <1Q84>는 온전히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하루키 작품 중 가장 길었던 <태엽 감는 새>처럼 시차를 두고 뒷이야기가 발표되어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1Q84>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 작품은 천상 하루키 소설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변화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1Q84>는 이전 하루키 작품과 다르지 않은 작품입니다.

솔직히 1권의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작품의 신선함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맙니다. 하루키 작품에서 익히 보아왔던 인물이 등장해서 익숙한 감성의 대화를 나누며, 전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리고 익숙한 설정들이 등장합니다. 기묘한 소녀가 등장하고, 주인공의 세계에 균열이 생기고, 아주 쿨하게 섹스를 하고... 뭐 이런 것들 있잖아요.
조금 더 뒤로 가면 사건 전개마저 예측가능하죠. 이 작품은 아오마메와 덴고라는 두 인물의 상황을 번갈아 보여주고 있는데, 두 인물이 서로의 존재를 깨닫고 만나는 것이 이야기의 끝이라는 걸 쉽게, 아주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사실 <1Q84>는 작가의 초기작 <양을 쫓는 모험>(작가의 첫 장편!)이나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보여준 세계관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작품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리틀 피플은 <양을 쫓는 모험>의 ‘양’과 일치하는 설정입니다. 양에게 육체와 정신을 바디 스내치 당한 양사나이는 <1Q84>의 리더와 판박이죠.
구성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흡사합니다. 거기에 2권부터는 다음 상황이 너무 쉽게 읽혀 이야기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습니다. 2권 즈음부터 하루키답지 않게 중언부언 반복하며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종종 눈에 띄고요.

무엇보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현실(혹은 삶)에서 부유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고집스러울 만치 한결같습니다. 이 작품이나 저 작품이나 어쩜 그렇게 똑같은 지요. 현실(혹은 삶)이 반드시 작품 속에 구현되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실이 거의 완벽하게 거세된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보면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듭니다. 종종 ‘하루키의 작품은 탐정소설보다 삶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장을 거부하는 하루키의 작품을 보면 궁금해집니다. 이 사람은 나이를 어디로 먹을까요?

이 작품을 읽으며 뒤늦게 느낀 것은 하루키 소설이 매우 남성 중심적이며 남성 환타지에 충실하다는 겁니다. 하루키 소설의 남성들은 한결같이 현실을 도피합니다. 어느 날 달이 두 개가 떠있고,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고 어쩌구...하며 치장하고 변명하지만 그들은 결국 현실도피자입니다. 반면 하루키 소설의 여성들은 남성들의 도피를 인도하는 안내자이자 조력자입니다. 그들은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못난 남성들’의 도망을 응원합니다. 특히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섹스나 성적 코드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남성 환타지입니다. 작가의 나긋나긋한 문체 때문에 노골적인 남성성이 가려져있을 뿐이죠. 갑자기 독자들의 성비와 그에 따른 만족도가 궁금해지네요.

암튼 하루키는 정말 개성이 뚜렷한 작가입니다. 다른 작가와는 확실히 다르죠. 분명히 자기만의 뚜렷한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독자의 선택이죠. 다만 자기가 만들어놓은 성곽에 웅크리고 앉아 요지부동이니 변화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결코 사람은 변하지 않는 걸까요? 하루키는 여전히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갇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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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2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2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ris 2009-11-1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멋진 리뷰입니다...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댄스댄스댄스와 양을 쫓는,세계의 끝 세작품인데요.하루키의 소설들은 제겐 영원히 판타지 소설입니다.

lazydevil 2009-11-14 16: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양모험과 세계의 끝을 가장 좋아합니다. 하루키 소설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작가가 매너리즘에 빠지기 한참 전이라 지금 봐도 풋풋해요.
 
스탠드 2 - 학살 밀리언셀러 클럽 71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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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석영이 언젠가 아는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나중에 만나기로 약속까지 했는데, 알고 보니 자기가 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닮은 사람이었다, 라는 어이없는 일화를 듣고 분개했습니다. 그것이 진정 뻥이 아니라면 황석영은 작가로서 천재성을 타고 난 사람입니다. 좀 괴상하고 지극히 대중적이기는 하지만 스티븐 킹이 그 짝입니다. 더도 덜도 아닌 대중소설인 <스탠드>를 읽다보면 작가의 빌어먹을 천재성 때문에 눈이 부실 지경이니까요.

다른 건 모르겠습니다. <스탠드>에 등장하는 인물은 실제로 살아있습니다! 팬들이 “<스탠드>에 나온 그 사람 그 후로 어떻게 지내요?”라는 식의 질문을 던진다고 하는데... 이것은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작가의 호들갑이 아닙니다. 번역된 작품만 봐도 <스탠드>에 등장하는 인물을 실제로 살아있는 듯 합니다. 한마디로 <스탠드1,2>에 등장하는 인물 묘사는 환상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작가의 자의식이 드러나는 작품이 아니라 등장인물이 살아 숨 쉬는 작품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이 경이로운 상상력을 가진 작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에 대한 통찰력도 그냥저냥이고요. 한 번도 그의 작품을 읽고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혀 불만이 없었어요. 그의 무시무시한 필력과 지칠 줄 모르는 창작력은 항상 감탄을 자아내게 하니까요.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유려하고 재치있는 입담, 살아있는 캐릭터는 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지칠 줄 모르는 창작력...! 그의 작품 목록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자들이 책을 읽는 속도보다 빠르게 작품을 써내는 그는 괴물입니다!!

<스탠드2>를 읽으며 짜릿짜릿했던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무시무시할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 때문입니다. 1편과 함께 2편은 <스탠드>의 서두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기에 앞서 중심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죠. 인물소개가 어찌나 흥미로운지 중심 사건이 이만큼 재미있을 지 걱정될 지경입니다. 솔직히 사건은 예측 가능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거든요.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인거죠.

이야기가 나중에 어떻게 되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읽기로 했습니다. 타자기가 설사하든 글을 쏟아낸다는 작가처럼 강박에 시달리는 독자가 되긴 싫습니다. 작가는 열심히 쓰고, 독자는 게으르게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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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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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라부라는 흥미로운 정신과 의사가 등장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연작 시리즈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각종 강박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등장합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이라부에게 진료를 받는 환자들은 깜짝 놀랍니다. 이라부와 간호사 마유미 때문이죠. 이 엽기적인 커플을 못미더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병원을 잘못 골랐다고 후회하지만 이라부의 묘한 화술에 넘어가 영락없이 다음 번에도 찾게 됩니다.
이라부가 환자들에게 내리는 처방은 간단합니다. 그들의 강박증을 직시하도록 유도하는 거죠. 이라부는 환자들이 시달리는 강박증에 동조하고 부추깁니다.
예를 들면 핸드폰 문자메세지에 중독된 소년에게 집요하게 문자를 보내고, ‘자뻑’ 증세에 시달리는 아가씨 앞에서 대책 없는 자뻑남 행세를 하거나, 수영에 중독된 사람에게는 수영을 적극 권하는 식입니다. 역지사지인지 타산지석인지 황당무계인지 얼토당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이라부 덕분에 강박증에서 서서히 벗어납니다.

<인터폴>에 실린 첫 단편을 읽고 이라부 시리즈는 현대인들의 삶을 꼬집는 매콤함이 있다, 라고 생각했지만 금세 철회했습니다. 그냥 현대인들의 강박적인 삶을 소재로 만들어낸 가벼운 에피소드들일 뿐입니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말 그대로 지나친 기대입니다.
이라부 시리즈가 왜 그토록 많은 팔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뿐입니다. 그 재미라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이상하게 저에게는 먹혀들지 않더군요. 환자마다 똑같은 처방(주사 한방과 강박증 부추기기)으로 성공을 거둔 이라부. 그가 골 때리는 명의라고 소문났지만 어째 저에게는 그 처방전이 무용지물인 것 같습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중 <남쪽으로 튀어>를 처음 읽은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남쪽으로 튀어>는 좋은 작품입니다. 돌이켜보면 재미와 풍자, 아이러니 등이 유쾌하게 뒤섞인 괜찮은 성장 소설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이 작가와는 끝냈어야 했습니다. 아니 <최악>도 괜찮았어요. 하지만 <한밤중의 행진> <인더풀>은 기계적으로 페이지를 넘겼을 뿐입니다.(그나마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작가의 가벼운 문체 덕분입니다.) 솔직히 마지막 에피소드에 이르러서는 지루했습니다. <인더풀>과 함께 구입한 <공중그네>는 결국 끝까지 읽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이라부라는 정신과 의사와 안녕을 고한 거죠.

이렇게 가볍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재주입니다. 대중들이 그 글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작가는 돈을 벌고, 독자들은 즐거워하고, 출판사는 흐뭇해하며, 공식적인 독서인구의 수치도 증가합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가볍고 한심한 작품을 읽고 좋아라 하냐고 끌탕을 치는 녀석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녀석들이야말로 한심한 놈들입니다. 그들을 지지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이라부 시리즈가 저는 재미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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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10-28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학교 선배가 이걸로 연극을 만들어서 보러간 적이 있었는데, 아무 기대없이 본거라 유쾌하게 봤던 기억이에요. 사실 기억이 확실하진 않은데;; 일본소설이 원작 + 이쁜 간호사 + 주사한방과 강박증 부추기기 - 정도로 떠오르네요 ㅎㅎ 바늘을 무서워하는 조폭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고.. 지금생각해보니 제목이 [공중그네]였던건가.. 아 이런 기억력^^

이게 오쿠다 히데오 작품이었군요. 개인적으로 오쿠다 히데오는 읽어보지도 않고 좋아하지 않는 작가 무리에 속하는지라; 이거 읽지 마시고 얼른 캐드펠 시리즈의 세계로 들어오세요 ㅎ

lazydevil 2009-10-28 14:28   좋아요 0 | URL
캐드펠 시리즈 첫권이 절판이라 눈물나요. 현재 중고서점을 뒤적이고 있습니다.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