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엔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1
윌리엄 요르츠버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영화 <엔젤 하트>를 그리 재미있게 보지 않았습니다. 축축하고 을씨년스러운 화면과 미키 루크의 잘생긴 외모, 로버트 드니로가 섬뜩한 손톱으로 삶은 달걀의 껍질을 벗기던 것 정도만 기억납니다. 솔직히 기대를 많이 하고 봤던 작품인데 그저그랬습니다. <엔젤 하트>를 연출한 알란 파커를 좋아했었거든요.
영화의 원작인 <폴링 엔젤>도 제법 기대를 하고 읽었습니다. 영화 때문이 아닙니다. 순전히 하드보일드 탐정소설과 오컬트 호러가 결합했다는 이유 때문이죠.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은 물론이거니와 호러(영화)도 좋아하거든요. 결과는 이건 하드보일드 탐정소설도 아니고 오컬트 호러도 아닌 게 아닐까??? 아니 하드보일드 탐정소설 같기도 하고, 오컬트 호러 같기도 한가??? 매몰차게 말하면 어느 쪽도 모양새만 갖췄을 뿐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소설을 읽다가 너무 짧다는 불평을 하기는 처음입니다. 숨 가쁘게 읽다보니 벌써 마지막 챕터군! 조그만 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줘, 제발!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이도 저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다가 끝나버리니 이런 불평을 하는 겁니다.
특히 부두교와 악마숭배자에 관해서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았으련만 호기심만 자극하고 넘어가더군요. 관심 있으면 도서관에서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라는 건가요? 소설은 백과사전이 아니라 이야기책이란 건가요? 그러기에는 <폴링 엔젤>의 이야기는 시시하고 재미없어요. 영화를 진작 본 이유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폴링 엔젤>의 이야기는 그닥 흥미롭게 전개되지 않습니다. 사건의 반전을 위해 도식적으로 전개될 뿐, 하드보일드 소설의 키포인트인 음습한 욕망이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독자 맘대로 의심의 눈초리를 던져봅니다. 작가는 뼛속까지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팬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악마숭배와 부두교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를 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만약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광팬이라면 이렇게 밋밋한 탐정 캐릭터를 자기도 용납할 수 없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악마숭배와 부두교에 대한 많은 공부를 했다면 잘난 척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을 테니까요. 소설은 분량의 제약을 받는 영화 시나리오가 아니거든요.

그래도 소설의 핵심 아이디어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것이 진작 예측 가능한 것일 지라도, 악마의 포로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이야기는 알고도 듣고 싶은 소재니까요. 그런데 기계적으로 페이지만 넘어갈 뿐 독자를 잡아당기지 못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욕망에 대한 묘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출발이자 핵심인 자니 페이버릿이 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는지, 그리고 왜 악마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는지를 알 수 없어요. 그러니 사건의 실체가 밝혀졌을 때 해리 엔젤이 받은 충격도 뭐 때문인지 모호합니다. 정체성에 관한 문제인가요? 악마에게 놀아난 것에 대한 공포인가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절망인가요? 아니면 여주인공인 이피퍼니 때문인가요? 작가는 알아서 짐작하고 그 충격에 동참하라는 식입니다. 너무 불친절해요.

<폴링 엔젤>을 읽으면서 영화 <올드 보이>가 떠올랐습니다. 풋, 여러모로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물론 <올드 보이>은 <폴링 엔젤>에는 없는 강력한 엔진이 있고, 그에 어울리는 숨은 진실도 있습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영화 <올드 보이>가 영화 <엔젤 하트>(혹은 원작 <폴링 엔젤>)보다 훨씬 명민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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