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기억하시겠어요?" 그녀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물었다.
"당연하지." 대답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녀가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낯이 익었다. - page 9
사립탐정 헨리 킴볼의 사무실에 그의 옛 제자 조앤이 찾아오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과거에 이 애가 자신을 킴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것처럼 막연히 불편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런 느낌이 다시 만난 지금도 드는데...
그녀는 왜 찾아온 것일까...
"남편 때문이에요." 그녀가 마침내 말을 이었다.
"흠."
"말씀드렸다시피 아마 자주 들어보신 사연일 텐데, 남편이 바람을 피워요. 거의 그럴 거라고 생각...... 아니, 알고 있어요. 사실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아는 한 그 사람은 뭐든 원하는 대로 행동하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걸 아는데도 아직 증거를 잡지 못했어요. 그러니 진짜로 알고 있는 건 아니죠." - page 12 ~ 13
남편의 외도를 조사해달라는 조앤.
킴볼은 돈이 들어오는 일을 맡아 기분이 들떴지만 다시 조앤을 보니 다소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수사를 시작한 킴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외도 현장을 급습하기 직전 갑자기 들려온 두 차례 날카로운 소리.
그 소리가 총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잠시 동안 얼어붙어 있는 와중에 또다시 들려온 세 번째 소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남편 리처드 웨일런과 그의 외도 상대 팸 오닐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후 조앤 웨일런이 보낸 수표가 동봉된 우편물이 도착하게 됩니다.
청구서를 보내지 않았고 그 수표에 적힌 액수는 원래 지불하기로 한 수임료를 훨씬 상회하는 금액이었는데...
그리고 첨부된 짧은 메모 한 장.
킴볼 선생님, 제게 수임료를 청구지는 않으셨지만 저는 선생님이 쓰신 시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싶어요. 시체를 발견하신 것은 유감이지만 적어도 경찰에게 목격하신 것을 진술하실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리처드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만약 그런 생각을 했더라면 절대 선생님을 찾아뵙지 않았을 텐데요. 부디 잘 지내시길 바라요. 조앤 그리브 웨일런.
과거의 조앤의 기록을 되짚으며 그녀의 행적을 추적하는 킴볼.
15년 전 장래 예측 과제에 쓴 글이 떠오르게 되는데...
"킴볼 선생님, 10년 후에 저는 엄청난 부자가 될 거예요. 제 첫 번째 남편은 나터켓에서 보트를 타던 중 의문스러운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경찰은 트로피 와이프인 저를 의심하지만 리처드 기어가 사건이 일어난 시각에 저는 그의 요트에 타고 있었다고 알리바이를 제공해줄 거예요." - page 206
그 당시에는 그 내용이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석연찮은...
그리고 <테이스트 오브 홍콩>에서 팸을 처음으로 만난 날 밤 그녀가 해준 이야기가 자꾸만 신경 쓰이는데...
그녀는 자신의 관계가 둘만의 관계가 아니라 세 사람 사이의 관계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그녀는 분명 그렇게 말했고, 그 말에서 느껴지는 의미가 육체적인 '스리섬' 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세 번째 인물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 page 208
결국 킴볼은 사건을 같이 해결해 줄 조력자를 찾아가게 됩니다.
'릴리 킨트너'
"나는 계략에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증인이 되도록 말이죠."
"누가 당신을 함정에 빠뜨렸다는 거죠?"
"조앤 웨일런이라고 하는 여자가 있어요. 결혼 전 이름은 조앤 그리브라고 하고요. 나는 조앤이 자신의 남편과 남편의 애인을 살해했다고 나름 확신하는 편인데 당신 의견이 듣고 싶군요."
"알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page 209 ~ 210
사연을 들은 릴리는 단숨에 조앤이 사건의 숨은 배후임을 알아차리고 형사 킴볼과 살인자 릴리는 이번 사건을 함께 해결하기로 합니다.
의심할 만한 단서는 모두 심증뿐.
살인범마저 자신을 잡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표하는 가운데 '착한 살인자' 릴리는 결단을 내리고자 합니다.
과연 극악의 상황에서 '악을 이기는 악'은 용납될 수 있을까?
일단 그런 짓을 하고도 빠져나가는 일을 경험하게 되면 인생의 다른 모든 것들이 조금 색이 바래게 된다. 이제 그녀는 나를,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에디 로건을 찾아냈으니, 인생이 다시 흥미진진해진 것이었다. 그녀가 쫓는 것은 삶의 의미가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면서 얻는 스릴이었다. - page 442
이번 소설 역시도 제 마음의 갈피를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살인자를 잡기 위해 또 다른 살인자를 응원하게 되는 모순된 감정...
나는 비록 살인을 저질렀지만 인생에는 전혀 후회가 없었다. 내게는 언제나 그래야 할 이유가, 그래야 할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 언덕 위의 공동묘지에서 죽었다면 내가 저지른 일을 후회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그저 내 기분을 좀 나아지게 하려는 거짓말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또 누가 알겠는가? - page 466
역시나 살인의 정당성을 부여했던 릴리.
그런 그녀를 또다시 응원하는 나...
도대체 '악'이란 무엇인 걸까......
역시나 그의 작품은 엄청났습니다.
믿고 읽을 수 있는 피터 스완슨.
또다시 전작을 꺼내 그가 그려낸 이야기 속에 빠져들고자 합니다.
그리고 질문을 건네봅니다.
"당신은
살려 마땅한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