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이 여행입니다 - 나를 일으켜 세워준 예술가들의 숨결과 하나 된 여정
유지안 지음 / 라온북 / 2021년 11월
평점 :
닫혀있던 하늘길도 조금씩 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변이가 등장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에 또다시 하늘의 길은 문을 하나둘씩 닫게 되었고 '여행'이란 두 글자만이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잠시나마 설레었던 마음을 달래고자 '여행 에세이'를 찾아보던 중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예순의 나이에 혼자 전 세계를 여행했다는 그녀.
그녀의 여행이 빛나 보였던 건 바람이 되고 싶다던 남편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였다는데...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슴에 귀를 대고 들어봐"
예술을 느끼며 자유롭게 떠나는 삶의 안내서
『오늘이 여행입니다』

그동안 자신을 지탱해주었던 이들과의 영원한 이별로 인한 상실감과 육체적 고통으로 그녀는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케어하기 위해,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간절하게 바람이 되고 싶어 했던 남편을 위해 홀연히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우선 애피타이저로 13박 14일 몽골 고비로의 여행.
그곳에서 남편의 숨결을 품고 몽골의 초원을 달렸다는 그녀.
바가 가즈링 촐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서 남편의 숨결 한 움큼을 초원에 놓았다.
'그대,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바람이 되기를!'
남편의 영혼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순간 나의 심장은 바람이 되었다. - page 5
그리고 비로소 그녀는 '여행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아들과 함께 시작하였는데 자신이 아들에게 기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순간.
그녀는 깨닫게 됩니다.
이 여행의 목적은 방향을 잃고 휘청거리고 있음을...
그래서 길 위에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슴에 귀를 대고 들어봐.'
옹이가 되어 박힌 두려움을 가슴팍에서 뽑아내는 일
어느 길에서든 주저앉아 감각을 줍는 일
생의 의미를 되찾는 일
이를 찾기 위해 수 세기 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켰던 예술가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그들을 통해 조금씩 상처를 치유하며 희망을 품게 됩니다.
배낭 하나를 둘러매고 떠난 여행.
900일간 31개의 나라와 160개 도시, 33명의 예술가들을 만나게 됩니다.

책은 친절하게도 여행을 시간 순서가 아닌 '출발, 치유, 열정, 용기, 미래'라는 주제별로 이야기해서 저에겐 더 의미 있게 다가왔었습니다.
유명 작가의 집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한다는 어느 저널리스트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작가와 그 작품을 보다 생생하게 이해하는 데는 자서전 수천 페이지를 읽는 것보다 작가가 살던 집에서 1시간 머무는 게 더 낫다"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 저널리스트의 말을 오늘도 실감한다. - page 76 ~ 77
그래서였을까.
그녀가 예술가들의 생가와 작업실 등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작품과 인생,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치유되는 모습이 책 속에서도 여실히 보여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제 상처도 보듬는 법을 배웠다고 할까.
언젠간 나도 그 길 위에 서 있고 싶다는 열망도 생겼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도 이렇게 예술가들의 생가와 작업실을 잘 보존했더라면...
그나마 '비석'으로 그 흔적을 남겼지만...
굳이 우리가 외국을 떠나지 않고도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란 아쉬움도 남곤 하였습니다.
작가의 책상 바로 앞 작은 탁자 위에 작가가 사망한 날짜와 운명 시간, 오후 8시 36분에 멈춘 시계가 있다. 작가의 영혼이 낳은 작품들은 불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간이다.
책상 뒤편 소파 위에는 작가가 좋아했다는 라파엘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모>가 걸려 있다. 잔혹하리만치 엄격했던 아버지와 달리 푸시킨, 고골, 찰스 디킨스, 빅토르 위고 등 러시아와 유럽 작가들이 쓴 작품들을 읽어주던 자상하고 사랑이 넘쳤다는 도스토옙스키. 아버지로서의 따뜻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그림이다.
작가의 삶의 과정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가는 여정 속에서 작가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 독자에게는 행복한 일이리라. 나는 작가가 태어나 삶을 시작한 생가를 시작으로 죽음을 맞은 공간에 서서 생과 사는 맞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 page 187
타지에서 우리의 소설가 '박경리'를 만나게 되니 저 역시도 반가웠습니다.
러시아 최고 대학 교정에 우뚝 서 있는 박경리 선생님.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 슬픔조차 찬란했을 소설가의 강한 정신이 담긴 글귀와 왜소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경이로움에 압도되는 느낌은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 page 230

나를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여정이었던 이 여행길.
혼자가 아니었으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예술가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희망을 다시 소환하지 못했을 길이기에 참으로 뜻깊었습니다.
비록 이 여행은 끝이 났지만 글로 남았기에 다시금 곱씹으며 그 길을 밟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