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내가 태어나 자란 숲의 골짜기 동네에 살고 있던 누이동생에게서 전하가 왔다. 기이 형이 대규모의 사업을 벌였다, 그가 항상 해 온 엉뚱한 짓의 연장이라고 생각 못할 바도 아니긴 하지만 그 결과가 불안하다며 우리의 오랜 친구이며 지금은 기이 형의 아내인 오셋짱이 의논을 하러 왔다는 것이다. - page 15
이야기는 'K'로 불리는 소설가 '나'와 평생의 스승 격인 '기이 형'을 만나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고향 숲속 마을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둘의 첫 만남...
전쟁은 패전이라는 형태로 끝을 맺었던 그해 여름.
기이 형은 마쓰야마에서 다니던 중학교를 그만두고 '본동네'로 돌아와 있었고 K는 막 열 살이 되던 참이었습니다.
K와 기이 형이 함께 공부하는 상대로 뽑혔지만 나 같은 꼬맹이가 이 멋있는 중학생의 공부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후회하고 있었는데...
"'세월은 흘러간다'잖아. 힘들어 도망치고 싶을 때도 그저 그곳에 가만히 남아 있으면 '세월은 흘러간다'니까 언제까지나 힘이 드는 건 아니란다!" - page 29
그리하여 국민학교를 마칠 때쯤에는 매일 '본동네'에 올라가 기이 형과 함께 공부를 하는 습관이 붙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도쿄로 나갔었고 불문학과에 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K는 그때까지 기이 형과는 연락 없이 지냈었습니다.
(기이 형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낀 사건이 있었기에...)
그러다 대학신문에 발표한 소설을 계기로 문예 잡지에 소설을 쓰게 된 K가 그 처음 시기에 기이 형에게서 몇 가지 비평이 담긴 편지를 받음으로써 그와 참다운 교제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오랜 기간 서로 편지를 주고받게 됩니다.
K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 영화감독의 딸 오유와 결혼, 큰 아들이 머리에 장애를 지닌 아이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 기이 형이 강간살인 혐의자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K, 기이 씨가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나도 납득할 수 있게 써서 소설이 완성되면 한 권 보내 줘요. 그걸 읽어보고 싶으니까."
"내 소설에 그런 힘은 없는 게 아닐까?"
...
"K가 열심히 소설을 쓴다면 그걸로 기이 씨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뭔가를 알게 되리라고 생각하는데요! 기이 씨와 K는 아직 아이였을 때부터 몸도 마음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지 않을까?" - page 555 ~ 556
십 년이 넘는 세월을 옥중에서 보내고 난 뒤
"맞아. 성서에 입각해서 읽는 것, 말하자면 단테의 예정론에 관한 연구 같은 거 말야. 그 세밀한 지도를 따라가며 읽어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사후라고 할까 초월적 세계라고 할까 어쨌든 현세가 아닌 곳에서의 편력을 생각하려면 내 눈으로 확실히 본 현실의 땅이라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느꼈거든. 내 경우엔 골짜기와 '본동네' 숲 자체는 잘 알고 있지. 독방에서도 재료만 지급된다면 상자 모형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어.
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면 정말로 안다고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저쪽에서 나오기만 하면 적어도 일본 열도의 북쪽에서 남쪽까지는, 그게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봐 둬야지 하고 생각을 했거든. 이번에 실행해 본 거야. 먼저 규슈에서 도쿄로, 그다음에는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하는 식으로 거리와 장소만 본다면 상당한 셈이지. 이걸로 일단은 마친 걸로 하고 이제는 숲속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 page 594
다시 돌아온 고향.
K 역시도 가족들과 고향으로 향했지만 고향엔 제방 공사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게 되고...
기이 형, 이 그리운 시절 속, 언제까지나 순환하는 시간 속에 사는 우리들을 향하여 나는 몇 통이고 몇 통이고 편지를 쓸 것이다. 이 편지를 비롯한 그 편지들이 당신이 사라진 현세에서 내가 죽을 때까지 써 나갈, 이제부터 할 일이 되리라. - page 683
소설이라지만 사소설의 재해석이라 불리는 이야기.
그렇기에 쉽지 않았던 이야기.
결국 죽음과 재생을 둘러싼 근거지로서의 '시간'의 문제, '장소'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던 이야기.
이야기를 통해 소설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운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나가는 것뿐이라는 작가 오에의 결의를 느낄 수 있었던 이 작품.
'그리운 시절', 이제라도 그곳에 돌아가면 젊은 기이 형이 있고 도심의 혼란에 길을 잃기 전의 더 젊은 내가 있는 곳. 가라스야마 복지작업소의 지적 장애가 있는 직공이 아니라 아름다운 지혜로 가득 찬 내 아이 히카리도 있는 그곳. 나는 그 '그리운 시절'을 향하여 편지를 쓴다. - page 177
나에게도 그 시절이 있었을까...
마냥 그립고 그리운 '그리운 시절'...
책을 덮을 때 아련히도 남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