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와 함께 사이 - 좋은 사람과 오래가고 싶어서
최유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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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부부.

친구.

이런 관계들 속에서 솔직히 마냥 좋을 수만은 없습니다.

때론 환하기도 하지만 때론 얼굴을 붉히며 다투기도 하는 관계들.


최유나 변호사는 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누구보다 오래도록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좋은 관계에 대해 오랜 고민과 진심을 겹겹이 눌러 우리에게 다정한 조언을 건네준다고 하였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오랜 시간 함께 좋은 관계를 갖고 싶다면 그녀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지.


"혼자 애쓰지 말고, 노력의 바통을 넘기세요."

상처받는 데 지친 우리를 안아주는 단단한 위로


『혼자와 함께 사이』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무조건 '아버지'라고 답한다는 그녀.

아무리 바빠도 그녀가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와달라고 하면 당장 달려와 주었고, 관심을 보이는 것이 있으면 그에 알맞은 자극을 주려고 꾸준히 애써주셨던, 다들 "참 보기 드문 아버지"라고 했던 그런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약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변호사가 되던 해.

영원히 함께 할 줄만 알았기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슬픔을 겪으면서 이별하는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게 되었던 그녀.


관계는 결코 영원할 수 없다. 피로 맺은 관계든 호감으로 시작한 관계든 상관없이, 모든 관계의 끝에는 어떤 식으로든 이별이 자리한다. 이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으면 좋을텐데.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수시로 나와 연결된 관계들을 들여다보고, 상대에게 감사하고, 상대의 마음을 알아봐줄 수 있을 것이다. - page 22


아마 우리 대부분, 아니 나부터도 '언제든 이별할 수 있는 사이'란 당연한 진리를 잊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배려에 너무나 당연시 여겼었고 희생에는 무관심했으며 작은 것에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는, 그야말로 '횡포'를 저지르며 살아왔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상대가 관계를 정리하자고 하면 뒤늦은 후회를 하기 시작합니다.

진작 잘할걸...




관계는 항상 더 인내하는 사람에 의해 유지된다.

친구, 연인, 부부 사이 모두가 그렇다.


이 말이 참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한 사람의 배려와 인내로 관계가 이어진다는 사실이...

그럼 얼마나 지칠까...?

이에 대해 그녀는 말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에 스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를 위해 아끼지 않았던 배려와 인내를 멈춰보는 게 어떨까. 상대방이 내 배려와 인내에 보답하지 않았다고 하여 그를 추궁할 필요는 없다. 보상을 바라고 했던 배려는 아니니까. 그러나 내 인내가 한도를 초과하고 있다는 경고 신호가 울리는 순간,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 그만 참아야 한다. 혼자서만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해졌다면 당분간 상대를 만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고, 자신의 힘든 이야기만 쏟아놓는 친구에게 지쳤다면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잠시 멈추고 내 일상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배려와 노력을 멈추는 용기는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보다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려는 노력이기에, 더 건강하고 희망적이다. 좀 더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이제 노력의 바통은 상대에게 넘겨야 할 때다. - page 111 ~ 112


그럼 상대와 내가 평생 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성격, 가치관, 취향에서 발견되는 차이를 살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런 차이를 받아들이는 자세와 관계에 대한 존중의 태도다. 어떤 사이에서든 마찬가지다. 서로의 다른 부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친구여도, 동료여도, 배우자여도 좋지 않을까. - page 131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숱한 사건을 함께 겪을 때 혹은 그 사건들을 지켜볼 때 그가 보일 '태도'를 긴 안목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

다른 이에게 기대기보다 우선 제 자신부터 변화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저자의 이 말이 멋있었습니다.





자신의 본성과 학습된 능력들, 가치관, 취향 등을 잘 알고 자기 자신과 친해지는 것, 자기 자신과 친해진 후에 다른 사람들과 차근차근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 그것이 순서이기에 무엇보다 자신을 잘 가꿀 줄 알기에 다른 이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말하는 그녀의 당당함이 너무나도 좋아 보였습니다.


매 순간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세상과 그리고 나 자신과 조금씩 이별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척 부정하고 소중한 사람들이 영원히 내 삶의 반경 안에 있을 것처럼 무심하게 살아가다 후회한다면 이미 때는 늦어버린다는 것을.

그렇기에 이 모든 것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매 순간 인지하며 살아가기를.

저자는 상처받는 데 지친 우리에게 건넨 단단한 위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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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 가족 ㅣ 한국추리문학선 12
양시명 지음 / 책과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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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단어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단어들의 조합이었습니다.

가족과 살인

복수와 희망

뭘까...?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하였고 읽으면서 저마다 자신의 사연을 들으니 작가의 말처럼 이보다 기구한 삶이 있을까란 생각에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

아니다!

안타깝지 않고 그럼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그들에게 밝은 앞날을 위해 박수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구인 광고로부터 촉발된

범죄로 얽힌 가족의 불편한 생존기


『리아 가족』



난 이 집에 사는 리아. 예쁜 손님이라 한껏 포옹으로 맞아주고 싶은데, 아가씨가 보다시피 내 몸이 이래서. 일어설 다리는 없어도 손은 있으니까 우리, 악수 정도는 할 수 있겠죠. - page 9


입주 가사 도우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리아의 집으로 찾아온 젊은 여성 '란'.

리아가 보기에 면접을 보기 위해 온 것 같지는 않고...

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하게 되는데...

그렇게 리아 가족의 속사정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열일곱에 성폭행을 당해 쌍둥이를 낳았지만 정작 키우지 못한 리아.

그런 리아의 곁을 지켜주는(?) 남편 문형사를 짐승만도 못한 인간으로 악마 같은 인간으로 여기며 벗어나고자 하고 란이 오기 전 가사 도우미로 온 '조'라는 남자는 알고 보니 자신의 아들이었고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하필이면 문형사에게 잡혀가게 됩니다.


어디서부터 우리의 만남이 잘못되었던 걸까요? 어디서부터 불운이 싹트기 시작한 걸까요? 비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불운은 왜 우리를 덮치고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던 걸까요? - page 35


그리고 간호사로 일을 하던 리아의 딸 란은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환자로부터 추악한 얘기를 듣게 되고 혐오스럽다 못해 분노가 들끓었던 그녀는 결국...


만약에 다음 세상이 있어서 다시 태어날 기회가 내게 주어진다면 말이죠. 세상 무엇에도 쓸모없이 민폐만 일삼는 이런 내게도 황송한 그런 순간이 주어진다면 말이에요. 그때도 난 엄마의 딸로 다시 태어나길 주저하지 않을 거예요. 그때는 사랑 속에서 만들어진 축복받은 아이로, 사랑받는 아이로 그렇게 태어나고 싶은 거예요.

그런 날이 내게 과연 올까요? 무엇에도 쓸모없는 비밀 같은 걸 간직한 섬뜩한 아이로 다시 태어나고 싶진 않아요. 정녕코.

그건 정말이지 사양할래요. 내 영혼이 불타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말이죠. 내가 원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거절할래요.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 이토록 섬뜩한 악연으로도 맺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스러울 뿐이에요.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알아주세요. 내게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 엄마를 진실로 사랑했어요. - page 76 ~ 77


정말 울컥하였습니다.

왜 이런 불운한 그림자가 끈질기게 이들의 가족을 따라다니는 건지...

계속해서 이들 가족의 속사정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리아로부터 시작해 남편, 딸, 딸의 애인, 아들, 며느리, 손자까지 이어진 불편한 생존기는 아슬하지만 가족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만나지 말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아니 애당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은 일어났고 인연은 언젠가 만나게 되기에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 과정이 이렇게 힘겹다면 '포기'가 맞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리아'를 통해 '단비'를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날 향해 지어주는 미소와 그 믿음이.


리아는 내게 은인이었어.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내게 베풀어주셨지. 다시 볼 수 없으니 그리움만 사무쳐.

리아는 단비가 태어나고 자라는 걸 지켜 봐줬어.

우리 단비는 태어나자마자 날 향해 미소를 지어주었어. 사람들은 다들 찡그린 거라고 했지만, 나는 아니라고 주장했지. 온 세상이 내 것인 양 황홀하고 행복한 순간이었으니까.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라. - page 264


읽고 난 뒤 참 먹먹하였습니다.

세상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존재로 위안을 얻고 희망을 찾아가는 이 가족을 보며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지 되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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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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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50개국 출간, 누적 판매 1200만 부를 기록한 맨부커상 최대 베스트셀러.

유명하다는 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고 2012년 이를 환상적인 영상미로 그려내기까지 했으니 말해 뭐할까!


하지만...

그만큼 명성이 있는데...

벌써 읽어봤어야 하는 건데...

너무 유명해서였을까...

라며 왜 안 읽었을까? 머리를 굴려보지만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이제라도 읽으면 되지!


One boy, One boat, One tiger......

끝없이 펼쳐진 바다 한가운데 작은 구명보트 위,

거대한 벵골 호랑이와 함께 남겨진

열여섯 살 소년 파이

놀랍고 감동적인 227일간의 인도 소년 표류기


『파이 이야기』



인도 폰디체리, 동물원을 운영하는 부모님 아래서 태어나 사랑과 종교, 세상의 이야기들을 열렬히 탐구하던 인도 소년 '피신 몰리토 파텔'.

하지만 이 본명이 오줌을 싼다는 '피싱'과 비슷한 발음으로 놀림을 받게 되자 칠판으로 나가


내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입니다.


이름의 철자 밑에 두 줄을 그었다.


간단히 부르면

파이 파텔


인심 쓰는 셈 치고, 이렇게 덧붙였다.


π = 3.14 - page 44


그렇게 그는 파이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건만 없었다면...


파이가 열여섯이 되던 해, 캐나다로 이주하기 위해 파나마 선적의 일본 화물선 '침춤 호'에 오릅니다.

동물들과 함께 말입니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일을 우리가 어쩔 수 있을까? 다가오는 삶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는것을. - page 143


마닐라를 떠나 태평양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미드웨이 제도로 가던 중 배가 흔들리고 괴물 같은 금속성 트림 소리가 났습니다.


무슨 소리일까? 다가오는 죽음에 저항하여 인간과 동물들이 입을 맞춰 내지르는 비명일까? 배가 유령 노릇을 포기하는 소리일까? - page 159


배는 가라앉고 한 척의 구명보트에 오르게 된 파이.

그리고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과 오랑우탄, 하이에나, 커다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뿐이었습니다.


리처드 파커가 나타난다 해도, 노에서 떨어지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하지만 공포는 여전히 남아 있어서, 호랑이보다 태평양이 더 두려웠다. - page 163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살아남은 건 파이와 리처드 파커뿐이었습니다.


"난 죽지 않아. 죽음을 거부할 거야. 이 악몽을 헤쳐나갈 거야. 아무리 큰 난관이라도 물리칠 거야. 지금까지 기적처럼 살아났어. 이제 기적을 당연한 일로 만들 테야. 매일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필요하다면 뭐든 하라 테야. 그래. 신이 나와 함께하는 한 난 죽지 않아. 아멘." - page 219


처음에는 리처드 파커를 없애고 구명보트를 혼자 독차지할 계획도 세워보지만 오히려 리처드 파커의 존재로 힘을 얻게 된 파이.

그렇게 파이는 호랑이를 길들이는 일, 정체불명의 해초와 미어캣이 사는 식인 섬, 바다 한가운데서 우연히 만난 눈먼 조난자 등 227일간의 표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사랑한다!"

터져 나온 그 말은 순수하고, 자유롭고, 무한했다. 내 가슴에서 감정이 넘쳐났다.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리처드 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포기하지 마, 리처드 파커.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구!" - page 339 ~ 340


마침내 육지에 도착하고 그의 구조 소식을 듣고 배의 침몰 원인을 조사하러 나온 선박회사 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믿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두 분께, 그사이 227일 동안 일어난 일을 두 가지로 이야기해드렸어요."

"그랬지요."

"두 이야기 다 침춤 호의 침몰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어요."

"그렇죠."

"두 분은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고,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 아닌지 증명할 수 없어요. 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지요."

"그렇죠."

"두 이야기가 다 배가 가라앉고, 내 가족 전부가 죽고, 나는 고생하지요."

"그럼 말해보세요.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든 여러분으로선 상관없고, 또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 증명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묻는데요,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어느 쪽이 더 나은가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요, 동물이 안 나오는 이야기요?" - page 455 ~ 456


이 물음이 이 소설에서 우리에게 묻는 것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하지만 이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 거입니다.


절망의 순간에서 희망을 찾은 한 소년의 이야기.

무엇보다 그가 삶의 의지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존재를 통해서였습니다.

혼자보단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그 '함께'의 의미가 참 와닿았습니다.


소설도 이렇게 진한 감동을 주는데 영화는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다가오는 주말엔 세계적 거장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원작 소설과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던데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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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20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뇨네트호?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난파선에서 잡아먹힌 고아소년이름이 리처드 파커라고 들었어요 ~ 전 섬이 참 충격적이었던 ㅎㅎ 표지가 더 예뻐진거같아요 페넬로페님 ~ 영화도 즐겝게 보시길 *^^*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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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작품들 중에서 이 작품은 제130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다양한 사랑의 파국에 직면한 여성들의 섬세한 심리를 그린 단편 소설집이라 하였습니다.

그동안은 긴 호흡의 작품들로만 만났었기에 단편에서 전해질 그녀만의 섬세함이 어떨지 궁금하였습니다.


사랑이 끝나 가는 자리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울 준비는 되어 있다』



12편의 이야기.

관계의 끝이라는 부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이들의 모습이 애처롭지만 덤덤하게 그려져 더 슬픔에 젖어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나고나면 저에겐 준비되지 않았기에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잠시 방황하곤 하였습니다.


책의 제목인 <울 준비가 되어 있다>의 이야기.

영국 노퍽 지방의 해변 술집에서, 다카시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 아야노.

여행지에서 만난 그에게 흠뻑 빠져들게 된 그녀.

이들의 사랑은 조금 위태롭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싶었다. 또 언젠가 어느 한쪽의 마음이 변하면 무조건 용서하고 떠날 수 있으리라 믿고 싶었다. - page 185


결국 변해 버린 그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자신을 더 증오하는 그녀의 심리를 표현하는데...


이 나라 저 나라를 여행하던 때, 묘지를 즐겨 산책했다. 묘비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묘비명을 상상하기도 했다.

'여기 유키무라 아야노 잠들다. 강한 여자였다.'

하지만 실은 그때 이미, 울 준비는 되어 있었다.

"나츠키, 너 울보니?"

나는 조카에게 묻는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다가,

"가끔은 울어."

라고 대답했다. 우는 것은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나는 왠지 행복해진다.

"더 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나츠키는 또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하고는 머리를 어깨에  닿을 정도로 갸웃하고서,

"모르겠어."

라며 강아지처럼 귀엽고 깜찍한 얼굴로 웃었다.

"이모는 강한데." - page 188 ~ 189


사실은 한없이 약했던 그녀.

이미 울 준비가 되어 있었던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참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골>이었습니다.

어젯밤 설거지를 하던 시호가 이런 말을 합니다.


"미안하지만 나, 당신 동생 싫어."

...

"당신 집에 가면, 나는 있을 자리가 없는 듯한 기분이야." - page 76


그리고 반년 전에도 히로키에게 시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바람 같은 거 안 피워. 피운 적도 없고. 하지만 당신하고는 헤어지고 싶어. 이런 마음, 바람피우는 것보다 더 잔인하지." - page 82


정작 바람을 피운 적이 있는 건 히로키였는데 정작 헤어지자고 얘기하는 그녀.

그런 그녀와 자신의 부모님 집에 다녀온 후 차 안에서 울고 있던 시호의 이야기가...


"우리 집 토스터 고장 났어, 알아? 나 어제 이 뽑았어. 이 뽑은 입으로 키스했고. 바람은 안 피우지만 키스 정도는 해. 냉장고 청소 오래 안 했으니까, 아마 구석에 작년에 먹다 남은 채소하고 햄, 치즈 그런 게 들어 있을 거야. 알고 있었어? 우리 살기는 같이 살아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어, 알아, 그거?" - page 87 ~ 88


소통의 단절 끝에 찾아온...

그렇게 혼자서 울 준비를 했던 시호가 전한 마지막 말이...


"우리 한때는 서로 사랑했는데, 참 이상하지. 이제 아무 느낌도 없어."

시호가 말했다.

"당신, 그거 어떻게 생각해?" - page 89


사람과 사람 사이.

한때는 사랑했지만 결국 이별할 수밖에 없는 이들.

그리고 그 속에 가리워졌던 눈물들.

우리 모두도 울 준비가 되어 있기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공감하며 가슴 저미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저자가 말했습니다.


가령 슬픔을 통과할 때, 그 슬픔이 아무리 갑작스러운 것이라도 그사람은 이미 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잃기 위해서는 소유가 필요하고, 적어도 거기에 분명하게 있었다는 의심 없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거기에 있었겠죠. - page 210


하지만...

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이 말이 참으로 슬프게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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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의 밤과 고흐의 별 - 39인의 예술가를 통해 본 클래식과 미술 이야기
김희경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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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면 좋은 친구처럼 언제나 '예술'과의 만남은 설레곤 합니다.

그렇기에 이번 역시도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책을 맞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될지...


예술가들의 고뇌와 철학을 경유하며 얻는 오늘의 영감

인간이 영혼을 치유하고 가슴을 채울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는 한,

클래식과 미술은 우리 곁에 함께 흘러간다


『브람스의 밤과 고흐의 별』



총 11장에 걸쳐 39명의 예술가들.

1~3장에서는 결코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그러나 한 번쯤은 따라 해보고 싶은 파격과 변신의 귀재들이,

4~5장에서는 살짝 무서울 정도로 강한 의지와 집념을 가졌던,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뜨거운 창작혼을 불태웠던 예술가들이,

6~7장에서는 천재 중의 천재로 꼽히는 예술가들이,

8~11장에서는 예술가들의 가장 사적이고 깊은 이야기인 낭만과 감성에 대해 다루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친숙했던 이들을, 어쩌면 그들의 작품만 친숙했던 이들의 삶, 생각과 철학을 되새기며 그림이나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했던 건 음악과 미술에 보다 친구가 될 수 있게끔 성큼 다가와 주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이 느꼈던 그 감정들이,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고자 했던 저자로 인하여 저에게도 전달되어 뭔가 연결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감동은 참으로 컸습니다.


여름처럼 뜨겁고 강렬하며 매혹적인 춤 '탱고'.

영화 <여인의 향기><해피투게더>등에서 탱고를 추는 장면은 쉬이 잊혀지지 않는데 '탱고 음악의 대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2021년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었다고 하지만 낯선 그의 이름.

하지만 그의 작품은 너무나도 익숙하였습니다.

탱고 대표 음악으로 꼽히는 <리베르탱고>.

애수 깊은 반도네온 소리와 악기들의 화음은 음악이 끝나도 여운으로 남곤 하는데 사실 그는 어느 순간 탱고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탱고 음악을 그만두고 클래식으로 재능을 펼치고 싶어 했는데 그가 쓴 악보들을 본 작곡가 나디아 블랑제가 결정적인 조언을 해 줍니다.


"잘 썼어. 그런데 여긴 스트라빈스키, 여긴 라벨이군. 피아졸라는 어딨지?" - page 36


그의 조언에 따라 탱고 음악을 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간 피아졸라.

그의 음악 인생의 모습을 저자가 전한 이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 <여인의 향기>의 주인공 프랭크(알 파치노)는 이런 말을 합니다. "탱고엔 실수가 없어요. 실수를 하고 스텝이 엉켜도, 그게 바로 탱고예요." 실제 탱고엔 실수가 없습니다. 실수가 곧 새로운 동작이 됩니다. 피아졸라의 음악 인생도 이런 탱고 특성과 쏙 빼닮은 것 같습니다. 탱고 음악의 거장이 오히려 그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방황했단 사실, 그러나 이 또한 새로운 탱고 음악을 만드는 또 다른 스텝이 됐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여름처럼 뜨거운 그의 탱고 음악과 춤에 흠뻑 취하고 싶어집니다. - page 37


그리고 최악의 혹평,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최고의 자신감, 강철 멘탈을 가진 '앙리 루소'.

정규 미술교육은 단 한 번도 받지 않고 순전히 독학으로 그림을 그린 그.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기에 매주 60시간 이상 일해야만 했고 그래서 평일엔 아예 붓을 들지도 못하다가, 일요일에만 시간을 쪼개 그림을 그려 '일요 화가'라는 조롱마저 들었던 그가 60대에 이르러 인정을 받게 된 건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해 굳은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강철 멘탈에 놀라웠지만 조금 애잔했던 사실...


사람들이 작품 속 원시 정글을 어디서 봤냐고 물어보면, 그는 주로 멕시코를 언급했습니다. 군대에서 멕시코 파병을 간 적이 있었고,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했다고 했죠. 하지만 그는 실제 한 번도 프랑스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습니다. 생계를 어렵게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외국에 갈 수 없었던 겁니다. 그가 정글을 자주 그렸던 이유는 식물원에 가서 이국적인 식물들을 보고 영감을 받은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상상을 더해 정글을 완성했죠. 그렇다고 이 얘기를 솔직하게 하면 더욱 놀림을 당할 것 같아, 그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page 123


어떤 굴욕에도 자신의 신념과 확신을 지켰기에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화가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의 <꿈>이란 작품을 보며 되새겨봅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낭만의 대명사가 된 '요하네스 브람스'.

왜 그가 책 제목에 등장했을까...?

그의 스승의 아내이자 자신보다 14살 많았던 클라라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 브람스.


"은빛 달빛이 숲 사이로 빛날 때, 잠결의 달빛이 초원 위에 흩날릴 때, 밤꾀꼬리가 노래할 때, 나는 슬픔에 잠겨 천천히 걷네. 나뭇잎 쌓인 곳, 한 쌍의 비둘기의 행복을 노래하네. 난 고개 돌리며 어두운 그늘을 찾네."

아름다운 봄밤에 거리를 거닐며 느꼈을 브람스의 짙은 고독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 page 231


마지막 순간까지 낭만적이었던, 그러나 그만큼 고독했던 그의 삶이 예술가들의 삶과도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미치거나, 시대를 앞서거나"

...그런데 둘 다 했네

역시나 빼놓을 수 없는 '빈센트 반 고흐'.

고흐에게 별이란...


그에게 별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놓지 않는 '꿈'이었습니다. 그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만든다"라고 말했죠.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 1년 전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습니다. 작품을 보면 밤하늘의 별들이 스스로를 마음껏 뽐내며 빛의 축제를 여는 것만 같습니다. - page 149


찬란히 빛나기 위해선 어둠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바라보며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을 들으며 커피 한 잔과 함께 잠시 그들의 숨결을 느껴보곤 하였습니다.

 

이들의 삶을 바라보면 왜 그 끝엔 '애잔함'이 남는 것일까...

그래서 그들이 남긴 작품들이 가슴을 울리는 것일까...

그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베토벤이 전한 이 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가장 뛰어난 사람은 고독과 고뇌를 통해 환희를 차지한다." - page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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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18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장바구니에 담아놨는데 페넬로페님 별 다섯이라니 ㅎㅎ 글에서 반도네온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