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 ㅣ 현대지성 클래식 13
이디스 해밀턴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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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분은 '이윤기' 교수님이었습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책을 읽으면서 그전까지는 '신화'에 대해 관심도 없었는데 이렇게나 재미있다니!

그리고 단순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고 명화로 표현되면서 보다 생생하게 다가왔었던 신화.

벌써 읽은 지 10년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물가물해지던 찰나.

이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디스 해밀턴만큼 그리스의 영광과 로마의 장엄함을 생생하게 되살린 작가는 없다.

수많은 원전 중 최고의 걸작을 엄선한 그녀는 2,000년 전의 지혜와 해학이

지금 우리에게도 얼마나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_『뉴욕타임스』


이 책이 끌렸던 건 '컬러 도판 100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신화 이야기만으로도 재미있지만 이를 주제로 수십 명의 예술가가 창작한 회화 및 조각 작품을 같이 만난다면 더없이 좋은 것 아닐까!

또다시 신화 속으로 빠질 생각을 하니 흥분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80년간 전 세계 수백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불멸의 스테디셀러!

고대의 수많은 원전에서 최고 작품만 엄선해 담아낸

그리스 로마 신화 읽기의 즐거움


『해밀턴의 그리스 로마 신화』



기독교의 『성경』과 더불어 서양 문명의 두 기둥을 형성한 '그리스 로마 신화'.

문학, 역사학, 인류학, 심리학 등 서양 학문과 사상의 원천이 되어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등 예술 분야에도 영감과 창의성을 제공해왔고 오늘날에는 소설,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대중문화에도 모티브를 제공하는 '스토리텔링의 근원'이 되는 신화에 대한 이해는 당연했습니다.


이 책은 여느 책과 달리 각색보다는 원전의 맛을 최대한 살렸고 거장들의 작품을 가려 뽑아 총 100편을 정선해 밀도 있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신화가 살아 있는 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신'이라 하면 두려움의 대상이자 그들의 분노는 강력하고 무섭지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 인간들과도 잘 지낼 수 있는 그들.

때론 질투하고 분노하고 실수를 저지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친숙하면서 비집고 나오는 웃음에 '신화'라는 거창함은 사라지고 맙니다.


여인들과 끊임없이 사랑에 빠지며 아내에게 자신의 부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온갖 파렴치한 속임수를 썼던 '제우스'.

최고의 신인 그는 굳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여러 신들이 한데 융합되어 제우스에 대한 노래와 이야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배 신이 존재하고 있던 도시에 제우스 숭배가 퍼지면서 두 신은 서서히 하나로 융합되었다. 그리고 기존에 존재하던 신의 아내는 제우스에게 양도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불행했고 후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의 끝없는 연애 행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 page 35


<신들, 세상의 창조, 초기의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뒤 <사랑과 모험 이야기>, <트로이 전쟁 이전의 위대한 영웅들>,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 <신화에 등장하는 위대한 가문들>, <기타 신화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간절함과 노력으로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던 '큐피드와 프시케'이야기.

행복한 결말의 사랑 이야기는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사랑과 영혼(프시케는 정신을 의미한다)은 서로 찾아 헤매다가 쓰라린 시련을 겪은 후에야 상대방을 찾았으니 이제 영원히 깨질 수 없는 굳건한 결합을 맺은 것이다. - page 181


(참고로 정신병을 뜻하는 psychosis는 프시케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참고 : 두산백과 두피디아)


신들과 영웅들이 개입한, 도시국가 트로이와 그리스를 주축으로 한 트로이 전쟁은 말해 뭐할까.

오디세우스의 제안으로 만든 '트로이의 목마'로 그리스군이 트로이성으로 들어가게 되고


위대한 도시 트로이는 스러져갔네.

이제 그곳에는 붉은 화염만이 살아 있다네.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 거대한 연기처럼 퍼져 나가며,

모든 것을 가리는구나.

우리는 이제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진다네.

트로이는 영원히 사라져버렸네.

안녕, 정들었던 도시여.

안녕, 조국이여, 어린 자식들이 살았던 곳이여.

저기 저 아래, 그리스 배가 기다리고 있구나. - page 368


거대한 전쟁의 서사.

왠지 긴 여운이 남곤 합니다.


이 책의 또 하나의 매력은 <주요 가계도>가 있었습니다.

사실 신화를 읽다 보면 이름이...

한두 명 나오는 건 괜찮은데 서서히 많아지면서

너는 어느 가문의 누구였더라...?

하면서 나중엔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얽히고설켜 괴로움을 호소하곤 하는데 깔끔히 정리된 가계도를 뒤적거리면서 읽으니 한결 정리된 느낌.

(사실 예전에는 읽으면서 가계도를 손수 작성하곤 하였는데 그 번거로움이 사라져서 좋았다는...)





역시나 그리스 로마 신화는 흥미로웠습니다.

여기서 파생된 것들 중 하나를 꼽자면 스타벅스의 심벌마크.

'세이렌이 뱃사람을 홀린 것처럼, 사람들을 홀려서 커피를 마시게 하겠다'라는 의미를 지닌 로고.

뿐만 아니라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도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인 니케의 미국식 발음을 땄다는 점 등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신화들도 관심 있게 찾아보면 또 다른 신화의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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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 : 여성, 엄마, 예술가 사이에서 균형 찾기 - What Forces Women Artists to Give Up: Balancing Being a Woman, Mother, and Artist
고동연.고윤정 지음 / 시공아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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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여성'이라면 겪고 있지 않을까.

나 역시도 육아로 휴직을, 그러다 퇴직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경력 단절까지.

(나의 무능함도 있겠지만...)

여성이면서 엄마이고, 자신의 직업을 가진 이들.

이 세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이들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이면서 엄마이고, 그리고 현직 예술가로 활동 중인 그녀들.

열한 명의 작가들에게서 솔직한 경험담과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펼쳐 나간 예술 세계로부터 저도 제 삶의 균형을, 제 정체성을 찾아보고자 하였습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여성, 엄마, 예술가의 생존기


『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




한국 여성 미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연령대별로는 70대에서 80대를 바라보는 유명 원로 작가들로부터 시작해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젊은 작가들까지 여성 작가들의 고군분투가 그려져있었습니다.

인터뷰집으로 구성되어 있어 각 인터뷰이의 개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저에겐 열한 명의 예술가들이 입체적으로 다가와 더 그들에 대해 존경심이 일어났었습니다.


2018년 고암(이응노) 미술상과 2020년 '올해의 양성 평등 문화인상'에 선정된 한국 여성 미술의 발전 과정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작가 '정정엽'.

노동 운동을 계기로 사회 비판적인 이슈에 눈뜨게 되었고, 시월모임과 '입김'의 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2000)에 참여하면서 저돌적인 여성 행동가로 활동해 왔습니다.

'여성 노동'에 대한 그녀의 철학과 태도로부터 본인의 경험, 육아, 그리고 다른 여성들과의 연대로 이야기를 펼치는데...


여성들이 점점 고립되고, 고립되다 보면 도태되기도 하고, 성장할 기회나 관계를 학습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돼요. 그래서 나는 여성들은 다른 방식으로 관계해야 한다고 봐요. 자기 자신에게 맞는 방식의 위계가 없는 모임이나 관계들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그걸 통해서 정보도 나누고 일을 도모하기도 하지만 또 멋진 인간들이 그 안에 다 있더라고요. 지금은 좀 달라졌을 수 있겠지만 모든 사회적 관계와 분리된 작가상이 있고 사회 참여를 하면 그 자체를 순수하지 못하다고 표현해요. 그만큼 잘못된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현실에 참여하거든요. - page 200 ~ 201


폐쇄성에 갇히지 않기 위해 연대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순수성을 지키는 방법이었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여성 작가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


글쎄요. 여성 작가의 성공이 남성 작가의 성공보다 힘들어 보이니까 이런 질문이 나왔겠죠. 성공이라는 기준을 어디 두느냐에 따ㅏ라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작업을 지속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일차적 성공이라 할 수 있겠죠. 먹고살 수는 있어야 하니까요. 그것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요. 저는 계속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 인터뷰하잖아요. 일차적인 성공 사례일 수 있죠. 그런데, 저는 모든 여성 작가들의 삶이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공이냐 아니냐를 떠나서요. 남성들에게는 사회적 성공에 대해 이미 제도화된 무엇이 있어요. 회사에 들어가면 연봉이 얼마고 지위가 어떻고, 이런 여러 가지 사회적 성공을 쌓고 책을 내고 박사가 되고, 규칙의 전형이 있어요.

그렇지만 여성 작가는 성공 사례, 실패담 이런 것 자체가 별로 없거든요. 비극적인 어떤 삶의 스캔들만 있죠. 여성은 전형만 있을 뿐 좋은 선례가 없어요. 작가가 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이 문제, 결혼 문제 등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환경적인 제약들이 너무나 많아요. 작품만 창작이 아니라 삶의 방식도 여성 작가들은 모두 개척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요. 이 인터뷰도 어떻게 고군분투해 왔는지, 각자가 자기 사례를 만들기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참여했어요. - page 197 ~ 198


성공한 여성들의 경험담이 필요함을.

아니 성공이든 실패든 그 어떤 것이라도 '여성'들의 경험담이 쌓여야 앞으로의 여성들도 세상에 발을 내밀 수 있다는 사실을.


유독 이름이 인상적이었던 '정직성' 작가.

이 이름을 갖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남편도 작가인데 여성의 작업은 여흥이나 돈 낭비하는 취미로 여겨지는 게 불편했어요. 남편은 저보다 돈을 못 버는 시즌에도 거대한 꿈을 갖는다면서 인정해 주는데 말이죠. 이런 이중 잣대가 불편했는데, 저도 그때는 비겁하고 '범생이'라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집에는 "제가 상을 타서 해야 한다네요" 하는 식으로 살았죠.

그런데 '내가 애쓰는 걸 남편이 알아주겠지'라는 생각은 오산이었죠. 가사 노동은 '잔잔히 사라지는 노동'이 되는 거예요. '돌봄 노동'을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2005년과 2006년에 독립을 위해서 내 이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2004년에 '정직성'이란 이름을 지었어요. 박이소의 '정직성'에서 따왔는데요. 팝송을 개사해서 '정직성'이 '듣기 힘든 말, 이 더러운 세상에서'라고 번역해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 박이소 작가가 노래를 부르는데, 그 내용이 무척 청승맞다고 생각했어요. '저거 이름으로 하면 평생 들을 텐데. 나는 들을 거야. 뭘 그리 슬퍼해야 해?'라면서 시작했고, 우연이라도 박이소 씨를 만나면 이름을 돌려주고 본명으로 돌아가면 되겠지 했는데, 그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어요. - page 336 ~ 337


'정혜정'은 임신한 여성이고, 작업을 더 할지 말지 모르는 여성이라면 '정직성'으로 인식되면서 일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씁쓸하지 않은가...

그녀가 우리에게 건넨 조언은 마치 저에게 해준 충고 같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살면 좋겠어요. 너무 참거나 맞추려 하지 말고요. 자기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아는 게 일단 중요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마음이 가는 것, 자연스러운 일을 하는 게 맞아요. 너무 잘하려고 하면 고통스러우니까요. 기준을 낮추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답이 있는 때도 있지요. 그리고 계급성에서 저는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는 식이지, 집단으로 하지는 않아요. 지금 존재하는 작가 협동조합들에도 별로 관심 없어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돈이 있어야 작업을 하고 애를 키우니까 완전히 독립적으로 살 수는 없죠, 당연히. 그렇지만 내가 소유하는 자본의 규모, 내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이냐는 자율적일 수 있죠. 협동조합이 되면 내가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다른 협회에도 속하고 싶은 생각이 크게 없고요. "지금 하는 일들을 좌절되지 않고 끌고 가면 좋겠다!"에 관심 있어요. - page 363 ~ 364


결국 그녀들은 현실적 문제 앞에서도 부당함을 호소하며 주저하기보다는 당당히 맞서 싸워나아갔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는 점이 멋지고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앞으로의 그녀들의 행보에 힘찬 응원을 건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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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10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에도 나오는 정직성작가님 ㅎㅎ 넘 반가워요. 이 분 문패가 넘 독특하면서도 맘에 들어서 한참을 뵜어요 ~~
 
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ㅣ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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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작가님의 명성은 익히 알지만...

아직 한 작품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또 핑계처럼 읽어야지! 다짐만 하다가 시간이 흘렀고..

그러다 이번에 '같이' 작가분의 작품 도장 깨기가 있었고 이제야 '인연'이라는(끼워 맞추기란...) 생각에 어떤 작품부터 읽어볼까 하다가 '소설'보단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에세이'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

특히나 제목에서부터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게 되면 두근거리는 짜릿함을 느끼게 되는데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마냥 가볍지 않았던.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았던.

무던히 건네 안부 인사에 마음을 기대게 되었던.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

"사랑이 내게 있으니,

사는 동안에 내가 그것을 잃지 않기를"

어느 날의 일상이 펼쳐내는 감동과 환희

​

『일기』



첫 문장부터 울컥했다고 할까.

​

건강하시기를.

오랫동안 이 말을 마지막 인사로 써왔다. 불완전하고 모호하고 순진한 데다 공평하지 않은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늘 마음을 담아 썼다. 당신이 내내 건강하기를 바랐다. 지금도 당신의 건강,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우리가 각자 건강해서, 또 봅시다. 언제고 어디에서든 다시. - page 8

​

예전에 무심코 썼던 이 말.

지난 3년을 지내고 나니 더없이 다정한 이 말.

이 말만 몇 번을 읊조리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시기를...

​

책에는 작가의 일상에서 길어 올린 에피소드부터 아동학대 사망사건, 목포항에서 본 세월호 등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두터운 상념까지 그녀의 사유를 같이 공감하며 생각하게끔 해 주었습니다.

특히나 저 역시도 좋아하는 「빨강머리 앤」으로부터 학대당하는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 반전은 저도 한 방을 먹고 말았습니다.

어린이가 죽어가는 일을 막으려면...

​

일단은 법을 더 세심하게, 절차는 더 간소하게.

그러나 제도란 요구가 없는 상태에서 저절로 마련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조에 그걸 내놓으라고 요구하야 하지 않을까. 매번 미안하다는 손글씨 릴레이를 반복할 수는 없다. 몇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아는 바와 같이, 미안하다는 말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 page 60 ~ 61

​

아우로라 모랄레스는 『망명과 자긍심』을 추천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꺼이 우리 자신을 알고자 하고, 우리가 기여한 모든 것을 더욱더 제대로 인식하고, 우리의 구체적이고 다층적인 삶을 바탕으로 정직하게 책임을 지고 발언해야 한다."

언제든 그 페이지로 돌아가려고 스티커를 붙여두었고 며칠째 그것을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기여한 모든 것. - page 62

​

2021년 대규모 재난에 자국민들이 죽어가도록 내버려 둔 미얀마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의 전쟁도 그렇고...

이 말이 참 묵직했습니다.

​

무섭지도 않은가? 사람들은 기억한다.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 page 76

​

그녀는 일기를 통해서 '어른'이 된다는 건.

상처도 내가 살아 있기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참 모든 것에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언가에 과정이 있다는 걸 알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도 늘어간다. 용서하지 못할 사람과 차마 용서를 청하지 못할 사람이 늘어가는 일이기도 한데 그건 내가 살아 있어서. 그리고 나는 그게 괜찮다. - page 164

​

그리고 저도 다짐을 하게 됩니다.

​

그래도 나는 자주 바란다고 말하고 믿는다고 말한다. 예컨대 당신의 건강을 바라고 사람의 선의를 믿고 굳이 희망하는 마음을 나는 믿는다. 믿어 의심치 않겠다는 믿음 말고, 희구하며 그쪽으로 움직이려는 믿음이 아직 내게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이 내게 있으니, 사는 동안엔 내가 그것을 잃지 않기를.

천둥 사이에 빌고. - page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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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칵 뒤집힌 현대 미술 - 세상을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 작품들
수지 호지 지음, 이지원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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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관련된 책도 열심히 찾아 읽어보고 전시회도 종종 찾아가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요즘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변기가 예술작품이 되고 벽에 바나나를 붙였는데 12만 달러에 낙찰되었던 '비싼' 바나나.

근데 그 바나나를 배가 고프다면서 떼어먹었는데 이에 대해 바나나는 작품의 모티브이기 때문에 작품이 파괴된 것이 아니라며 새 바나나를 붙여 전시하기까지.

커다란 혼란과 충격을 안겨 주는 작품에 마냥 놀라기보단 더 많이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과거의 유화 그림이나 조각들처럼 그 앞에 섰을 때 곧장 이해할 수 있던 사실적인 작품들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미술은 언제, 그리고 왜 변했을까?

변해도 된다고 결정한 사람들은 누구이고, 어떤 일들이 그러한 변화를 촉발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물음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미술계에 파장을 일으킨 몇몇 작가들을 짚어가며 그들이 어째서 그런 일을 했고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왜 중요했는지에 대해 밝혀 주었습니다.


"모든 창조 행위의

시작은

파괴 행위다."

파블로 피카소


『발칵 뒤집힌 현대 미술』



책 속엔 세상을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 작품 50점을 소개하고 그 창작과 수용 및 유산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목욕하는 사람들>(1985)과 마르셀 뒤샹의 <샘>(1917)으로부터 이브 클랭의 <제목 없는 인체 측정>(1960), 주디 시카고의 <디너 파티>(1974~1979), 그리고 안드레스 세라노의 <오줌 그리스도>(1987)와 뱅크시의 <사랑은 쓰레기통 속에>(2018)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현대 미술이 전달하고자 한 바를 이제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마냥 엉뚱하고 뜬금없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듯이 그 당시에 파격적이고 평판이 좋지 않았지만 이들이 있기에 미술계가 진일보 할 수 있었음에 모든 작품에 대한 관대한 포용과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예술'에 대한 정의를 다시 써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재현적 이미지보다는 추상을 통해 내면의 탐구.


무엇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가?

미술은 무엇인가? - page 68


그렇다고 너무 자극적인 표현은 삼가야 함을 예술과 외설, 파격, 도발은 한 끗 차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대 미술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존 미술로부터 멀어졌고, 어떤 이들은 삶의 사적, 문화적, 정치적 영역 및 그 밖의 측면에 대해 비판하거나 항의하며, 어떤 이들은 대담한 진술을 던지는데 이 문장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한 권의 책으로 무엇이 왜 어디서 어떻게 언제 미술사를 변화시켰는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미술'이라고는 했지만 우리에게 철학적 사유를 남겨주었습니다.

끊임없는 질문과 답을 찾기 위해선 미술 작품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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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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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스크도 벗게 되고(아직 실내에선 벗을 수 없지만) 조금씩 일상으로의 회복이 된 요즘.

날도 좋고 여행 가기 딱 좋지만...

그렇다고 마냥 나갈 수가 없는 처지라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지인이 이 책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주었습니다.

'베를린'은 어떤 매력을 지니고 저자는 어떻게 느꼈을지 기대를 해 보며...


고독한 작가 최민석이 고독한 도시 베를린에 90일간 머물면서

뼈저리게 외로움을 느끼며 뼈에 새긴 진실은 오직 하나,

사람에게 필요한 건 사람뿐!


『베를린 일기』 



고독한 작가가 바라본 고독한 도시 베를린은...

어라?

왜 자꾸 웃음이 삐져나오지!

하지만 단순히 재미만 있지 않았습니다.

90일간 꾸준히 적어내려간 그의 일기 속엔 '진실'이, '진심'이 담겨 있어서 여행의 마지막이 참 찡했습니다.


베를린 둘째 날.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절망의 절정이었고,

희망의 종말이었으며,

지식의 뇌사였고,

소통의 괴사였으며,

고독의 과잉이었으며,

시간의 폭력이었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도 않는 이곳에서의 깨달음이 처절하지 않은가!


언젠가 메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 중 자아실현 욕구는 물론, 존경의 욕구와 애정 · 공감의 욕구, 그리고 안전의 욕구와 생리적 욕구를 초월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와이파이'라는 도형을 본 적이 있는데, 처절히 공감하고 있다. - page 13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ATM기가 작동하지 않고, 물건을 살 때마다 호갱님이 되고, 기차는 매번 연착하는가 하면, 온수가 나오지 않아 찬물로 샤워를 하고,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아우토반을 달리는 등 어쩌다보니 국제 호구로 등극하게 된 그.

정말 찐웃음이 터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엔 그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진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일기를 써 내려간 이유는 인상적이었는데...


48일 전 나는 교통사고를 겪으며 인간의 목숨은 유리잔처럼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극히 일부로나마 맛보았다. 그러기에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기록하고, 나누고, 무엇보다 자신의 생에 남겨진 길을 기쁨을 찾아 떠나는 지도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 순간 느끼고 있다.


이 일기는 그런 차원의 기록이다. - page 75


사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 '쓴다는 행위'에 대해 강한 회의를 품고 있었는데


하지만, 이곳에 온 뒤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마구, 되는대로, 그럭저럭, 이랬다저랬다, 조삼모사, 조변석개의 자세로 쓰다 보니, 글쓰기가 내게 일종의 걷기나 식사, 혹은 수면처럼, 매일 치러야 일상이 가능해지는 대상으로 변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키는 대로 산다는 일은 좋은 일이다. 고작 한 달 동안 일기를 써 놓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실로 어쭙잖은 짓거리지만, 나는 원래부터 줄곧 이런 인물이었으므로 말하자면, 일기를 쓰는 건 자신의 마음이 가고 있는 지도를 스스로 그려 가는 일이다. - page 162


일기를 쓰면서 


돌이켜 보니, 일기를 쓰는 시간이 큰 힘이 됐던 것 같다.


돌아갈 날까지 일기를 계속 쓸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실수하면 인정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사과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감사하고, 남은 시간을 소중히 쓰기로 했다. - page 319


그렇게 마음의 지도를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낯선 땅, 낯선 이들 사이에서 해가 뜨면 고독도 뜨고 시간이 흘러가면 고독도 흘러갔습니다.

이 고독에 지칠 수밖에 없었던...

어쩌면 작가에게 고독은 실로 떨쳐 내고 싶은 지긋지긋한 존재이지만, 떨쳐 내 버리면 자기 자신이 생존 불가능해지는 필요악 같은 존재이기에 함께할 수밖에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이 여행을 통해 깨달았던 건...


결국 인생에서 필요한 건 상대에게 웃음을 짓는 것, 상대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그 실천인 것 같다.

어디에 있건, 남은 시간들은 소중히 쓰기로 했다. - page 492


역시나 사람에게 필요한 건 '사람'뿐이라는 것을.

유쾌한 웃음 뒤에 진한 여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의 일기는 베를린에 그치지 않고 남미 일주도 있다던데...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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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04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건 즐거움과 감동도 있지만 실수 혹은 흑역사도 더 기억에 오래 남는거 같아요. 이제 슬슬 여행가고 싶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