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일기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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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스크도 벗게 되고(아직 실내에선 벗을 수 없지만) 조금씩 일상으로의 회복이 된 요즘.

날도 좋고 여행 가기 딱 좋지만...

그렇다고 마냥 나갈 수가 없는 처지라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지인이 이 책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주었습니다.

'베를린'은 어떤 매력을 지니고 저자는 어떻게 느꼈을지 기대를 해 보며...


고독한 작가 최민석이 고독한 도시 베를린에 90일간 머물면서

뼈저리게 외로움을 느끼며 뼈에 새긴 진실은 오직 하나,

사람에게 필요한 건 사람뿐!


베를린 일기』 



고독한 작가가 바라본 고독한 도시 베를린은...

어라?

왜 자꾸 웃음이 삐져나오지!

하지만 단순히 재미만 있지 않았습니다.

90일간 꾸준히 적어내려간 그의 일기 속엔 '진실'이, '진심'이 담겨 있어서 여행의 마지막이 참 찡했습니다.


베를린 둘째 날.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절망의 절정이었고,

희망의 종말이었으며,

지식의 뇌사였고,

소통의 괴사였으며,

고독의 과잉이었으며,

시간의 폭력이었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도 않는 이곳에서의 깨달음이 처절하지 않은가!


언젠가 메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 중 자아실현 욕구는 물론, 존경의 욕구와 애정 · 공감의 욕구, 그리고 안전의 욕구와 생리적 욕구를 초월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와이파이'라는 도형을 본 적이 있는데, 처절히 공감하고 있다. - page 13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ATM기가 작동하지 않고, 물건을 살 때마다 호갱님이 되고, 기차는 매번 연착하는가 하면, 온수가 나오지 않아 찬물로 샤워를 하고,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아우토반을 달리는 등 어쩌다보니 국제 호구로 등극하게 된 그.

정말 찐웃음이 터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엔 그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진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일기를 써 내려간 이유는 인상적이었는데...


48일 전 나는 교통사고를 겪으며 인간의 목숨은 유리잔처럼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극히 일부로나마 맛보았다. 그러기에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기록하고, 나누고, 무엇보다 자신의 생에 남겨진 길을 기쁨을 찾아 떠나는 지도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 순간 느끼고 있다.


이 일기는 그런 차원의 기록이다. - page 75


사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 '쓴다는 행위'에 대해 강한 회의를 품고 있었는데


하지만, 이곳에 온 뒤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마구, 되는대로, 그럭저럭, 이랬다저랬다, 조삼모사, 조변석개의 자세로 쓰다 보니, 글쓰기가 내게 일종의 걷기나 식사, 혹은 수면처럼, 매일 치러야 일상이 가능해지는 대상으로 변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키는 대로 산다는 일은 좋은 일이다. 고작 한 달 동안 일기를 써 놓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실로 어쭙잖은 짓거리지만, 나는 원래부터 줄곧 이런 인물이었으므로 말하자면, 일기를 쓰는 건 자신의 마음이 가고 있는 지도를 스스로 그려 가는 일이다. - page 162


일기를 쓰면서 


돌이켜 보니, 일기를 쓰는 시간이 큰 힘이 됐던 것 같다.


돌아갈 날까지 일기를 계속 쓸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실수하면 인정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사과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감사하고, 남은 시간을 소중히 쓰기로 했다. - page 319


그렇게 마음의 지도를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낯선 땅, 낯선 이들 사이에서 해가 뜨면 고독도 뜨고 시간이 흘러가면 고독도 흘러갔습니다.

이 고독에 지칠 수밖에 없었던...

어쩌면 작가에게 고독은 실로 떨쳐 내고 싶은 지긋지긋한 존재이지만, 떨쳐 내 버리면 자기 자신이 생존 불가능해지는 필요악 같은 존재이기에 함께할 수밖에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이 여행을 통해 깨달았던 건...


결국 인생에서 필요한 건 상대에게 웃음을 짓는 것, 상대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그 실천인 것 같다.

어디에 있건, 남은 시간들은 소중히 쓰기로 했다. - page 492


역시나 사람에게 필요한 건 '사람'뿐이라는 것을.

유쾌한 웃음 뒤에 진한 여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의 일기는 베를린에 그치지 않고 남미 일주도 있다던데...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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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04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건 즐거움과 감동도 있지만 실수 혹은 흑역사도 더 기억에 오래 남는거 같아요. 이제 슬슬 여행가고 싶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