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 : 여성, 엄마, 예술가 사이에서 균형 찾기 - What Forces Women Artists to Give Up: Balancing Being a Woman, Mother, and Artist
고동연.고윤정 지음 / 시공아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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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여성'이라면 겪고 있지 않을까.

나 역시도 육아로 휴직을, 그러다 퇴직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경력 단절까지.

(나의 무능함도 있겠지만...)

여성이면서 엄마이고, 자신의 직업을 가진 이들.

이 세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이들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이면서 엄마이고, 그리고 현직 예술가로 활동 중인 그녀들.

열한 명의 작가들에게서 솔직한 경험담과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펼쳐 나간 예술 세계로부터 저도 제 삶의 균형을, 제 정체성을 찾아보고자 하였습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여성, 엄마, 예술가의 생존기


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




한국 여성 미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연령대별로는 70대에서 80대를 바라보는 유명 원로 작가들로부터 시작해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젊은 작가들까지 여성 작가들의 고군분투가 그려져있었습니다.

인터뷰집으로 구성되어 있어 각 인터뷰이의 개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저에겐 열한 명의 예술가들이 입체적으로 다가와 더 그들에 대해 존경심이 일어났었습니다.


2018년 고암(이응노) 미술상과 2020년 '올해의 양성 평등 문화인상'에 선정된 한국 여성 미술의 발전 과정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작가 '정정엽'.

노동 운동을 계기로 사회 비판적인 이슈에 눈뜨게 되었고, 시월모임과 '입김'의 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2000)에 참여하면서 저돌적인 여성 행동가로 활동해 왔습니다.

'여성 노동'에 대한 그녀의 철학과 태도로부터 본인의 경험, 육아, 그리고 다른 여성들과의 연대로 이야기를 펼치는데...


여성들이 점점 고립되고, 고립되다 보면 도태되기도 하고, 성장할 기회나 관계를 학습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돼요. 그래서 나는 여성들은 다른 방식으로 관계해야 한다고 봐요. 자기 자신에게 맞는 방식의 위계가 없는 모임이나 관계들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그걸 통해서 정보도 나누고 일을 도모하기도 하지만 또 멋진 인간들이 그 안에 다 있더라고요. 지금은 좀 달라졌을 수 있겠지만 모든 사회적 관계와 분리된 작가상이 있고 사회 참여를 하면 그 자체를 순수하지 못하다고 표현해요. 그만큼 잘못된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현실에 참여하거든요. - page 200 ~ 201


폐쇄성에 갇히지 않기 위해 연대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순수성을 지키는 방법이었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여성 작가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


글쎄요. 여성 작가의 성공이 남성 작가의 성공보다 힘들어 보이니까 이런 질문이 나왔겠죠. 성공이라는 기준을 어디 두느냐에 따ㅏ라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작업을 지속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일차적 성공이라 할 수 있겠죠. 먹고살 수는 있어야 하니까요. 그것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요. 저는 계속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 인터뷰하잖아요. 일차적인 성공 사례일 수 있죠. 그런데, 저는 모든 여성 작가들의 삶이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공이냐 아니냐를 떠나서요. 남성들에게는 사회적 성공에 대해 이미 제도화된 무엇이 있어요. 회사에 들어가면 연봉이 얼마고 지위가 어떻고, 이런 여러 가지 사회적 성공을 쌓고 책을 내고 박사가 되고, 규칙의 전형이 있어요.

그렇지만 여성 작가는 성공 사례, 실패담 이런 것 자체가 별로 없거든요. 비극적인 어떤 삶의 스캔들만 있죠. 여성은 전형만 있을 뿐 좋은 선례가 없어요. 작가가 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이 문제, 결혼 문제 등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환경적인 제약들이 너무나 많아요. 작품만 창작이 아니라 삶의 방식도 여성 작가들은 모두 개척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요. 이 인터뷰도 어떻게 고군분투해 왔는지, 각자가 자기 사례를 만들기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참여했어요. - page 197 ~ 198


성공한 여성들의 경험담이 필요함을.

아니 성공이든 실패든 그 어떤 것이라도 '여성'들의 경험담이 쌓여야 앞으로의 여성들도 세상에 발을 내밀 수 있다는 사실을.


유독 이름이 인상적이었던 '정직성' 작가.

이 이름을 갖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남편도 작가인데 여성의 작업은 여흥이나 돈 낭비하는 취미로 여겨지는 게 불편했어요. 남편은 저보다 돈을 못 버는 시즌에도 거대한 꿈을 갖는다면서 인정해 주는데 말이죠. 이런 이중 잣대가 불편했는데, 저도 그때는 비겁하고 '범생이'라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집에는 "제가 상을 타서 해야 한다네요" 하는 식으로 살았죠.

그런데 '내가 애쓰는 걸 남편이 알아주겠지'라는 생각은 오산이었죠. 가사 노동은 '잔잔히 사라지는 노동'이 되는 거예요. '돌봄 노동'을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2005년과 2006년에 독립을 위해서 내 이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2004년에 '정직성'이란 이름을 지었어요. 박이소의 '정직성'에서 따왔는데요. 팝송을 개사해서 '정직성'이 '듣기 힘든 말, 이 더러운 세상에서'라고 번역해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 박이소 작가가 노래를 부르는데, 그 내용이 무척 청승맞다고 생각했어요. '저거 이름으로 하면 평생 들을 텐데. 나는 들을 거야. 뭘 그리 슬퍼해야 해?'라면서 시작했고, 우연이라도 박이소 씨를 만나면 이름을 돌려주고 본명으로 돌아가면 되겠지 했는데, 그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어요. - page 336 ~ 337


'정혜정'은 임신한 여성이고, 작업을 더 할지 말지 모르는 여성이라면 '정직성'으로 인식되면서 일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씁쓸하지 않은가...

그녀가 우리에게 건넨 조언은 마치 저에게 해준 충고 같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살면 좋겠어요. 너무 참거나 맞추려 하지 말고요. 자기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아는 게 일단 중요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마음이 가는 것, 자연스러운 일을 하는 게 맞아요. 너무 잘하려고 하면 고통스러우니까요. 기준을 낮추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답이 있는 때도 있지요. 그리고 계급성에서 저는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는 식이지, 집단으로 하지는 않아요. 지금 존재하는 작가 협동조합들에도 별로 관심 없어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돈이 있어야 작업을 하고 애를 키우니까 완전히 독립적으로 살 수는 없죠, 당연히. 그렇지만 내가 소유하는 자본의 규모, 내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이냐는 자율적일 수 있죠. 협동조합이 되면 내가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다른 협회에도 속하고 싶은 생각이 크게 없고요. "지금 하는 일들을 좌절되지 않고 끌고 가면 좋겠다!"에 관심 있어요. - page 363 ~ 364


결국 그녀들은 현실적 문제 앞에서도 부당함을 호소하며 주저하기보다는 당당히 맞서 싸워나아갔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는 점이 멋지고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앞으로의 그녀들의 행보에 힘찬 응원을 건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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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10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에도 나오는 정직성작가님 ㅎㅎ 넘 반가워요. 이 분 문패가 넘 독특하면서도 맘에 들어서 한참을 뵜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