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리턴즈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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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타고 다니는 귀여운 펭귄 한 마리.

그리고 빨간 머리 훈남 역무원이 있는 종점역 분실물센터의 가슴 따뜻한 에피소드들이 담겼던 소설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5년 만에 우리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펭귄철도를 타고 분실물센터로 향하는 이들.

그곳에서 진정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며 새롭게 나아가는 모습이.

벌써부터 가슴이 따뜻해지고 있었습니다.


펭귄이 사라졌다?


전철 분실물센터에 사는 치명적 펭귄과

빨간 머리 훈남 역무원 콤비의 일상 감동 판타지!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리턴즈



4편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바닷가 공장지대에 자리한 우미하자마역.

종점역까지 운행되는 오렌지색 전철.

마치 비밀의 방처럼 대합실 벽 너머에 숨어 있는 사무실.

빨간 머리 역무원.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아주는 것까진 변함없이 있었지만 그의 파트너인 펭귄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펭귄은 다른 장소에서 발견되고 펭귄을 쫓다가 또 한 명 의문의 남자를 마주하게 됩니다.

모히칸 스타일의 남자.

너무나도 수상쩍은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알고 보니 이 에피소드들은 2월 15일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이었다는 사실!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해피엔딩임에 위로받았다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부모의 재혼으로 맺어진 동급생 의붓남매가 또다시 남남이 되기 전 서로 몰랐던 점을 알게 되는 <반짝반짝 데이지>.

그들이 잃어버린 건 부모님의 이혼 신청서.

이혼 신청서를 펭귄이 물고 간 것 같다며 펭귄의 행방을 쫓게 되면서 알게 된 진심.


"저기 말이야, 부모님이 이혼하든 말든 떨어져 살든 말든, 우리는 남매로 지내도 되잖아? 난 그렇게 생각해. 앞으로도 줄곧 우에조노 군과 남매로 지내고 싶어. 더 이상 혼자가 되는 건 싫으니까 우에조노 군은 앞으로도 내 남동생으로 있어줬으면 해. 어때?"

료카는 배낭 어깨끈을 쥔 채 대답을 기다렸다. 떡 입을 벌리고 료카를 보던 히지리가 천천히 시선을 돌려 데이지가 피어 있느 ㄴ화단을 보았다.

"......데이지."

"하?"

"그러니까 데이지 꽃말이라고. 몰라?"

"'동감이에요'?" - page 78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데이지를 보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느낌이 다시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사립중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왕따인 오빠가 졸업 소풍 날 혼자 인근 수족관으로 가던 중 여동생에게 붙잡혀 원치 않은 동행을 하게 된 <나의 졸업여행>.

이들이 잃어버린 물건은 여동생의 파우치.

그 파우치 속엔 '숨겨둔 보물'인 머리끈이 있었는데...


"그럴 때 내 생일이 돼서 가족이 다 같이 축하해줬고, 오빠한테서도 이런 귀여운 머리끈을 받고는...... 가족 모두가 날 '미 짱'이라 부르며 진짜 여자아이로 생각하고 소중하게 대해주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자 싶더라고."

"에? 에? 무슨 소리야?"

이야기가 연결이 되지 않아 신노스케가 몸을 앞으로 쑥 내민다.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가족 모두가 날 여자아이라고 생각해주는데, 남들이 뭐라 생각하든, 뭐라 말하든, 뭔 상관이냐는 결론이 딱 내려지더라고. 왜냐면 그 아이들은 날 조금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데다 나도 그 아이들은 아무래도 좋았거든. 그럼, 나도 마음대로 떠들어라 싶더라고. 별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든, 그야 뭐 조금은 상처를 입겠지만, 내 전부가 흔들리거나 끽소리 한번 못 하고 죽어지내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았어." - page 153


역시나 저에겐 가족 간의 소중함이 더 애틋하게 다가왔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일하지만 트라우마로 사람을 살리는 데 강박감을 느끼는 의사가 당직 순찰을 돌던 중 외박을 내준 환자가 집 열쇠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다시 돌아왔다는 환자의 진심을 알게 되는 <UFO와 유령>. 


"'온전하게 산다'는 말에 담긴 의미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고 생각해요. 전 병원에 있었을 때 건강한 사람처럼 사는 게 '온전하게 사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아주 괴로웠어요. 나 자신이 마치 이미 죽은 사람처럼 느껴져서, 죽은 주제에 소중한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고 민폐를 엄청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더는 못 견디겠다 싶었는데...... 하지만 그분한테서 '사람은 태어나면 살아야 할 의무가 있어'라는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의무가 있다고. 의무가 있는 거면 별수 있나. 그냥 힘내서 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page 206 ~ 207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는 모히칸 헤어스타일의 그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시리즈>의 퍼즐들이 맞춰지게 됩니다.


"모든 게 펭귄을 찾으면서 시작됐으니까 펭귄 매직이네."

"펭귄 매직이라고. 그거 좋은데." - page 317


책을 덮는 순간 울컥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사람을 태우고 이곳저곳을 연결해주는 열차처럼.

펭귄을 보게 되면 '행운'인 것처럼.

펭귄열차를 만난 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어디선가 펭귄을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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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12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펭귄매직이라~ 넘 예쁜 말인데요 ㅎㅎ일본은 역관련 이야기들이 많은거 같아요.
 
바다 인문학 - 동해·서해·남해·제주도에서 건져 올린 바닷물고기 이야기
김준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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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귀한 몸이 된 '오징어'.

이젠 오징어가 아닌 '금(金)징어'라 불러야 했고 그뿐만 아니라 갈치도, 꽁치도 나의 어린 시절 식탁에 존재하던 이들이 이젠 그리운 존재로 되어버린 요즘.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너무나도 당연히 있을 거라 여겼기에 그 소중함을 몰랐던 지난날.

이제라도 알고 싶은, 아니 당연히 알아야 했습니다.

특히나 우리의 바다, 그 바다에 서식하는 바닷물고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알고 싶었습니다.

그렇게해서 읽게 된 이 책.

읽고 난 뒤 바다의 푸르름이 가슴속에 밀려들곤 하였습니다.


바다는 인간의 고향이자, 바닷물고기의 삶터다

명태에서 멸치까지, 동해에서 제주도까지,

바다와 자연과 인간의 숭고한 삶에 대해


바다 인문학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싸 수심이 깊고 대륙붕이 발달하지 않아 조석보다 해류의 영향이 큰 '동해',

수심이 얕고 대륙붕이 발달해 해루보다 조석과 조류 영향이 큰 '서해',

내만이 발달하고 섬이 많으며 역시나 조석과 조류 영향을 받는 '남해',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해안을 이루는 제주도까지.

이러한 바다와 해안의 특징은 바닷물고기를 포함한 해양생물의 서식에 큰 영향을 미치며, 다양한 물새의 먹이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도구와 방법과 어촌 생활에도 큰 영향을 주며, 음식 문화에도 영향을 주는 등 바다는 해양생물이 생활하는 삶터이자 우리 인간의 삶이 시작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바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책에서는 바닷물고기 22종을 통해 바다와 물고기와 사람살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멸치, 아귀, 조기, 전어, 대구, 갈치, 옥돔 등.

친숙한 이들의 등장은 더없이 반가웠습니다.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나의 밥도둑 '고등어'.

가을에 잡은 고등어는 값이 싸고 영양가가 높아 '바다의 보리'라고 불렸다는 이 고등어.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으로, 남획도 문제로 어획량이 줄어들곤 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과학적인 연구에 기반한 대책 수립으로 이젠 수족관에서 만나고 싱싱한 회로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안도감이 느껴지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몰랐는데 루시드 폴의 <고등어>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꼭 한 번 들어보기를 추천합니다.

고등어가 전한 위로...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루시드 폴의 <고등어> 중


흥~ 흥!

막힌 코도 뚫어주는 삭힌 맛의 일품인 '홍어'.

『자산어보』에 홍어의 생태적 특징을 적어놓았다는데...


홍어잡이는 "동지 뒤에야 분어를 비로소 잡기 시작한다. 입춘 전후가 되어 살지고 커져서 맛이 좋다가, 3~4월이 되면 몸통이 야위어져서 맛이 떨어진다"고 했다. 또 수컷은 "날개 양쪽에는 잔가시들이 있는데, 암컷과 교미할 때는 날개가 있는 가시들로 암컷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짝짓기를 한다. 더러는 암컷이 낚시를 물고서 엎드려 있으면 수컷이 암컷에게 다가가 교미한다. 이때 낚시를 들어 올리면 수컷도 함께 따라 올라온다"고 했다. 그래서 "암컷은 식탐 때문에 죽었고 수컷은 색욕 때문에 죽었으니, 색욕을 탐하는 자의 경계로 삼을 만하다"고 적었다. - page 166


이런 사실도 있었구나!

그리고 깊은 바다에서 적응해 살기 위한 생존법을 남도 사람들이 음식 문화로 승화시켰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였습니다.


홍어는 자신의 몸에 염도를 높이는 생존 전략을 택했다. 수심 80미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이다. 싱싱한 홍어에 톡 쏘는 맛이 없는 것은 요소가 아직 암모니아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썩었다는 것은 홍어 몸속의 요소가 암모니아로 분해되는 현상이다. 맛있는 홍어를 앞에 두고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화장실에서 비슷한 냄새를 경험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흑산도에서는 막 잡아서 경매로 받아온 홍어를 손질해 썰어 놓는다. 정말 홍어회가 맑은 선홍빛이다. 어떤 바닷물고기의 속살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은근히 유혹하는 색감 못지않게 맛도 독특하다. 삭힌 홍어 맛은 코를 뻥 뚫리게 하는 강한 암모니아, 심하면 재채기를 하고 입천장을 벗겨낸다. 싱싱한 홍어의 찰지면서 입에 착 감기는 맛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씹으면 입안에서 양이 2배로 늘어나는 독특한 식감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며 상상하기 어렵다. - page 173


홍어 맛을 아는 사람들은 어창에서 새어나오는 홍어 썩는 냄새만 맡고도 환장하며 오죽하면

'명주옷 입고도 홍어 칸에 들어가 앉는다'

고 하지만... 저에겐 아직...


인상적이었던 물고기 중 하나는 '서대'였습니다.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서대.

가자미목에 속해 눈이 좌우 한쪽으로 쏠려 있어 모양새로 보면 '비목어'라고 할 만한, 완전체가 되려면 또 다른 어류가 옆에 붙어주어야 한다는, 그래서 제짝을 만나면 헤어지지 않고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고 류시화 시인이 노래한 서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서대는 여수 섬마을 빨랫줄이나 건조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생선이다. 손님이나 자식들이 찾아왔을 때 쉽게 밥상에 올릴 수 있다. 무엇보다 명절에 자식들에게 보낼 수 있는 엄마표 '슬로피시(지속가능한 어업과 책임 있는 수산물 소비)'다. 여수의 작은 섬 소경도에서는 서대를 빨랫줄에 널고 모기장을 씌워 정성스럽게 말리는 어머니를 만났다. 영감 제사에 올리고 명절에 자식들에게 보낼 것을 준비한다고 했다.

서대든 박대든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계절에 맛이 좋다. 영광 백수 해안도로에 보리밭이 누렇게 익어간다. 조기가 떠난 자리에 서대든 박대든 어느 것이나 눌러앉았으면 하는 것이 어민들의 마음이다. 갯벌은 그대로인데 그 많던 서대는 어디로 갔을까? - page 285



우리의 바닷물고기들을 살펴보면서 이런 어업이, 우리의 식문화가 지속 가능하려면 바다 환경과 생물종의 다양성을 지켜야 함을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그들과 공존하고 공생하는 관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라도 '바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들이 잘 살아갈 때 우리 역시도 건강하고 즐거운 밥상과 이웃의 삶을 지탱할 수 있음을.

새기고 또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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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장난감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박상민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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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 작가분의 전작을 읽었었습니다.

『차가운 숨결』

그때 '현직 의사가 썼다는 점'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고 아무래도 직업이기에 보다 현장감 있고 사실적으로 다가와 소름 끼치면서 강한 인상으로 남았었습니다.


그가 또다시 우리 앞에 등장하니 반가웠습니다.

'의학 미스터리'라는 새로운 한 획을 그은 그의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그려낼지 기대를 해 보며...


모든 가식을 떨쳐버린 그의 얼굴에서는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악의가

꿈틀꿈틀 표피를 통해 스며 나왔다.

"괴물은 당신입니다."


위험한 장난감』 



'이건 무슨 장난감이지?'

소녀는 눈앞의 모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 정체 모를 물건에 호기심이 일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 page 6


결혼기념일을 단둘이서 보내고 싶다는 부모님의 뜻대로 할아버지와 지내게 된 소녀.

말수가 없는 편이지만 손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불편이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할아버지.

사실 소녀는 할아버지가 평소에 어떤 일을 하는지, 매일 아침 어디로 가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언젠가 아빠한테서 어딘가를 관리한다는 것 정도만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 보니 병원모형과 수상한 종이에 적힌 이름.

뭘까...?


"이제부터 할애비랑 재밌게 놀아보자꾸나. 준비됐어요, 지수?"

"응, 재밌을 것 같아. 근데 이거 무슨 장난감이야?"

"위험한 장난감이지요."

할아버지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조그맣고 귀여운 장난감이 뭐가 위험하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page 256 ~ 257


- 코드블루, 코드블루. 6병동, 6병동. 코드블루, 코드블루. 6병동, 6병동.


마음 같아서는 가운 주머니에 있는 귀마개를 끼고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대학병원 최하층 계급인 인턴 '강석호'.

하루에도 다섯 명의 환자가 세상을 떠나고 그들의 침대가 즉시 말끔히 정돈되는 광경에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죽음에 특별한 의미를 받지 못하는 자신은 그렇게 오늘도 고군분투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 코드블루, 코드블루. 10병동, 10병동. 코드블루, 코드블루. 10병동, 10병동.


알고 보니 이 환자는 흉부외과 최병우 교수님의 은사였고 교수님이 개흉 심장마사지를 했지만 결국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석호의 눈에 띄고 설마...? 하며 넘어갑니다.

그러다 석호가 엘튜브를 끼우던 환자가 갑자기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고...


"오늘 수련교육부로 선생님에 대한 신고가 두 건 들어왔어요. 강 선생님도 무슨 일 때문인지 짐작 가는 바가 있을 겁니다."

"두 건이라고요?" - page 116


한 건이면 몰라도 두 건이라니.

이건 예상 범위에 속해 있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업무상 과실치사로 징계위원회에 넘겨진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연달아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수상한 장난감'을 마주하게 됩니다.

명성대학교병원에서 마주하게 된 충격적인 진실.


"그래, 그래. 의사에게는 청결이 필수지. 아까도 말했듯이 자네 같은 의사들이 우리 병원에 많아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네. 의사로서의 사명감, 환자에 대한 책임감, 다른 의료진과의 협력 같은 것이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팽배한 젊은 의사들에게는 부족하단 말이야. 그렇게 자질이 안 되는 의사들이 나중에는 의료 윤리를 망각한 괴물이 되기 십상이고. 그런 의사들은 웬만하면 우리 명성대학교병원에 안 왔으면 좋겠네, 허허."

조원기는 뒷짐을 진 채 고고한 자세로 걸어 나갔다. 그의 등짝을 바라보던 석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괴물은 당신입니다." - page 415 ~ 416


생명을 살리는 일이자 죽음을 관장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

하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이, 복수가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니 그 느낌이란...


슬픔, 외로움, 분노, 좌절감, 죄책감, 고단함, 무력감. 그 외에도 이름 붙이기 어려운 수많은 감정이 각각의 농도는 다르지만, 혈액에 녹아들어 위력을 떨쳤다.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대동맥에서 온몸의 모세혈관으로, 모세혈관에서 대정맥으로, 대정맥에서 우심방으로, 우심방에서 우심실로, 우심실에서 폐동맥으로, 폐동맥에서 폐로, 폐에서 폐정맥으로, 폐정맥에서 좌심방으로, 좌심방에서 다시 좌심실로 이어지는 무한한 순환의 고리를 거치며 그 감정들은 극한의 농도에 이르렀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혈관을 뚫고 온몸을 잠식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 page 421 ~ 422


예전에 보았던 <하얀거탑>이란 드라마도 어렴풋이 떠올리게 되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초심을 잃지 말자.

라는 것을.

그리고 함부로 장난감을 가지고 장난하면 안 된다는 것을.

책을 덮으며 잠시나마 곱씹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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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 아저씨, 행복의 도구를 찾다 - 잘하려 애쓰는 대신 즐기는 마음으로, 취미생활 1년의 기록
이경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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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뭔가요?'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해보면 딱히 답할 것이 없었습니다.

음악감상?

독서?

이런 상투적인 거 말고는 없을까...


한때는 뭐라도 배워 나만의 '취미'로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마음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 돈 쓰는 것에 조금은 어색해져 버렸고 무엇보다 '즐기면서 하는 마음가짐'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줄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멋진 결과를!

안되면 스트레스로...

이러니 취미생활이 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멋진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오래 사는 세상이다. 뭔가 할 게 필요해. 죽을 때까지 일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재미를 느낄 취미가 필요하다. 취미를 노후에 찾겠다고 나서면 이미 늦어. 젊을 때 하나 마련해라." - page 17 ~ 18


매일 반복되는 삶에 지쳐 뭔가 재미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아들이 다니는 화실에 다니게 된 그.

아니, 그 역시도 우물쭈물하다가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할 뻔했지만 결혼 선물로 화실에 등록해준 아내 덕분에 시작하게 된 그의 그림 그리기.

그렇게 이 책은 그림을 그리며 저자가 자신의 삶과 일, 가족과 사회에 대해 생각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읽기도 전이지만 왠지 그가 부러워집니다.


"삶은 팍팍해지고, 인생은 의미를 잃어가고

일에 대한 열정도 점점 사그라질 땐

오롯이 재미에 빠져들 행복의 도구가 필요하다."


무채색 아저씨, 행복의 도구를 찾다



"생각 없이 그을 때 가장 잘될 거예요."

"살수록 힘들어지는 게 '생각 없이'던데요"라고 속으로 답했다. - page 21


점, 선, 면 중에 가장 중요한 '선'.

연필을 쥐고 선만 계속 긋는 기본을 하면서 온전히 무언가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게 된 그.

그렇게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고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며 '자기만의 방'의 그림을 완성해가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림을 그리며 생각한 것들에 관한 1년간의 기록이었습니다.


기자는 스스로 올바른 생각만 지녔다면 약자를 돕는 작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직업이라고 믿지만, 직장 상사나 취재원 독자들의 평가 등으로 쌓이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아 그것들을 완전히 잊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다행히 나는 그림에서 그 답을 찾았다. 게다가 직업 화가가 아니니, 취미로서 더 자유롭게, 온전히 내 맘대로 즐길 수 있다. - page 28


특히나 그는 자신의 아내를 그리면서 '부부'의 의미를 되짚어보는데...



"머리에는 엔젤링이라는 게 있어요. 빛이 반사돼 반짝이는 부분인데 마치 하얀 띠처럼 보이지요."

선생님이 지우개를 들고 머리카락 중간 부분을 이곳저곳 지우기 시작했다. 지우개를 받아들고 마저 지우면서 아내의 분위기가 사뭇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림을 그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결혼을 하고 13년간 함께 지내면서 변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부부간에는 엔젤링처럼 간과하기 쉽지만 좋은 모습이 생각보다 많을지 모른다. - page 41


거대한 세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내편인 유일한 사람.

그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그렇게 서로를 닮아가는 부부의 모습이 사진보다 그림으로 더 가슴에 와닿았다고 할까.


그림을 그리면서 그가 세상을 바라본 시선이 저에게도 울림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눈길 닿는 곳마다 테두리가 도드라지고, 물체 곳곳이 덩어리져 명암으로 보인다. 세상은 참 단순하다. 알고 보면 대부분이 삼각형, 사각형, 원 모양인 것을, 왜 이리 별다르게 살고 싶은지 모르겠다. - page 13


어쩌면 나는 길을 잃기 위해, 실수를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늘 "같은 사진을 그리라고 해도 모두 다른 그림을 그린다"라고 했다. 색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고 아무리 자로 재서 비율을 맞춰 그려도 인간은 실수를 한다. 정확히 정정하자면 사진이나 AI의 영역에서 보면 실수지만, 인간의 창조적 영역에서는 개성이 된다. 도화지 위에서 수만 번 연필을 놀리거나 붓질을 하는 동안 실수에 실수가 겹친다. 인생의 수많은 실수가 겹쳐 그나마 만족스럽다고 합리화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된 것처럼 우연의 힘은 신기할 정도로 아름답다. - page 115 ~ 116


그리고 이 그림을 통해 전한 이야기.



생각은 자연히 세월의 한복판에 선 나는 어떤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에 미쳤다. 세월이 지날수록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편하게 하며, 사회에 작게나마 공헌하는 것과 같이 평이하게 들리는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잔디처럼 동시대의 사람들과 함께하고 쑥처럼 겸허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 page 163


저자가 '취미'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취미는 산책처럼 마음 가는 대로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 내게도 그림은 하고 싶은 때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 되는 '일상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게으름이 허용되고, 그리다 중도에 포기해도 상관없다. '하면 된다'의 영역이 아니라 '되면 한다'의 영역인 것이다. 남의 평가로부터 벗어나고, 오롯이 내 마음에서 떠오르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편안해진다. - page 181


오롯이 재미에 빠져들 행복의 도구를 찾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 덕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채색 아저씨가 행복의 도구 '그림 그리기'를 통해 자신만의 색으로 다채롭게 물들인 세상.

그 어떤 삶보다 멋진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나의 도구를 찾아 떠나봐야 하지 않을까?

무채색처럼 단조롭고 재미없는 나의 일상에 물들여질 색은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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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
해원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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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어느 곳에선 일어나고 있을 비극적 사건들.

가슴이 아프다...

란 말로 표현이 될까...?!


그러다 이 소설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음...

이 또한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픽션이라 믿고 싶지만 논픽션일 것 같기에, 무엇보다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와도 같기에 강렬하고 묵직했던 이 소설.

그래도 읽고 난 뒤 희망의 한 줄기를 보았던 이 소설.


버려진 폐허 위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 page 365


이 울림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이 사회의 지하에는 우리가 모르는

은밀하고 방대한 범죄 세계가 있다.


굿잡』 



매일 음성사서함에 쌍년으로 시작해서 망할 년으로 끝나는 안부 인사, 이자를 갚지 않으면 사창가에 팔아 버리겠다거나 통나무장사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협박을 하던 사채업자의 메시지를 들으며 벼랑 끝 삶을 살아가던 '모연희'.

오늘은 어쩐 일인지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미래클리닝이라는 곳인데, 청소할 사람 찾는대. 생각 있으면 연락해." - page  11
 

다달이 갚아야 할 빚이 있고 가진 거라곤 주머니 속의 3천 원뿐인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꾸역꾸역 계단을 올라 미래클리닝 다섯 글자가 박힌 문에 들어가니 장교동이란 사장이 그녀에게 말을 건넵니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말, 어떻게 생각해요?"

남자가 물었다.

"요새 그런 게 어딨어요."

연희가 원론적으로 대답했다.

"아직도 체면 타령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세상이 다 망했는데 체면은 개뿔. 뭔 짓을 하든 돈만 벌면 장땡이지. 안그래요?"

연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넌 꿈이 뭐니?"

담배를 피우던 중년 여자가 대뜸 물었다.

꿈. 흔한 말인데 낯설게 느껴졌다. 어렸을 땐 꿈이 있었다. 멋지게 차려입고 도시를 활보하는 커리어 우먼. 지금은 꿈은커녕, 내일도 없다. - page 14 ~ 15


바로 일이 있었고 이왕 온 거 한 번 해 보고자 선글라스를 낀 중년 여자 '김 여사'와 장교동, 청년 '김성수'와 함께 쓰레기를 치우러 가는데...


"사람이 죽으면 뭐가 될까요?"

교동이 비 내리는 골목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생활 쓰레기가 되죠. 그걸 치우는 게 우리 일이에요. 특수청소하고는 다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살인을 없던 일로 만드는 거예요. 시체는 치우고 현장에 남아 있는 모든 증거를 인멸하는 거죠."

연희는 멍청하게 교동을 따라온 자신을 탓했다.

"연희 씨가 본 시체는 기술자였어요. 요샛말로 하면 킬러라고 할까. 저 녀석 칼질에 죽어 나간 사람이 한 트럭은 될 겁니다. 우리는 죽어도 싼 놈만 치워요. 여자, 어린애, 무고한 민간인 시체는 건들지 않고."

양심적인 척해 봤자 범죄잖아! - page 25


바로 이 회사는 범죄 현장의 시체 청소업체였던 것이었습니다.

끔찍한 현장을 마주하게 된 연희.

이 일을 계속 해야하는 것일까...


연희는 손아귀에 느껴지는 두툼한 지폐의 감촉에 취해서 돈을 내려놓지 못했다. 이제 밀린 방세를 낼 수 있다. 한 끼 정도 따듯한 밥을 사 먹어도 좋겠다. 마음 한편이 훈훈해졌다.

나 지금 좋아하는 거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입안이 씁쓸해졌다. 나머지 소주 반병을 뱃속에 털어 넣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무게 추가 달린 것처럼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 page 30


결국 연희는 계속해서 일을 하게 되고 돈이 모이면서 생활은 나아지지만 그럴수록 조금씩 범죄세계의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이 아이러니함 속에서...


크리스마스이브.

성수와 영화 보기로 했는데 1시간 넘게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납치당한 적도 있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쓰여 막막한 심정으로 자신의 고시원에 돌아왔더니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여기 성동경찰섭니다."

경찰이라는 말에 하마터면 전화기를 떨어트릴 뻔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저한테 무슨 일로?"

"김성수 씨 때문에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성수가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상대방이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돌아가셨습니다." - page 141


갑작스러운 성수의 죽음.

그렇지 않아도 자신과 같이 사회의 비극의 안고 있던 그였기에 더 신경이 쓰였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가 죽게 된 것일까...

그 내막을 파헤쳐 보니 범죄 현장보다 더 더럽고도 피비린내보다 더 독한 냄새를 풍기는데...

그녀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벗어나셨어요?"

연희의 질문에 황 약사가 잠시 입을 다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 가로등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황 약사는 가로등 불빛이 아니라 지난날을 더듬는 듯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은 기회가 온다고 하잖아. 기회를 잡은 것뿐이에요."

황 약사가 말했다. 

연희는 곰곰이 생각했다.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올까? - page 206


소설 속 비극들-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 여성 혐오 범죄들, 크고 작은 화재와 살인 사건 등-을 이 한 권의 소설로 마주하게 되니 조금은 받아들이기가 힘겨웠다고 할까.

시간이 흘러도 이렇게 마음이 저린데 피해자들은 어떨지...


그리고 연희의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에 쉬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전했던 김 여사의 나지막한 충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살아보니까 세상 사는 게 파도 타는 걸아 비슷하더라. 파도치는 대로 휩쓸리다 보면 지도 모르는 사이에 망망대해로 떠내려가는 거야."

김 여사가 젓가락을 꼿꼿이 세우며 테이블을 탁 내리찍었다.

"나만의 원칙이 있어야 해. 그래야 버틸 수 있어. 좆같은 세상, 파도가 아무리 몰아쳐도." - page 178


그래서인지 연희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에 박수와 응원을, 그리고 그 에너지를 저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들.

다시금 곱씹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희에게 외쳐봅니다.

Good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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