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아저씨, 행복의 도구를 찾다 - 잘하려 애쓰는 대신 즐기는 마음으로, 취미생활 1년의 기록
이경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취미가 뭔가요?'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해보면 딱히 답할 것이 없었습니다.

음악감상?

독서?

이런 상투적인 거 말고는 없을까...


한때는 뭐라도 배워 나만의 '취미'로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마음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 돈 쓰는 것에 조금은 어색해져 버렸고 무엇보다 '즐기면서 하는 마음가짐'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줄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멋진 결과를!

안되면 스트레스로...

이러니 취미생활이 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멋진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오래 사는 세상이다. 뭔가 할 게 필요해. 죽을 때까지 일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재미를 느낄 취미가 필요하다. 취미를 노후에 찾겠다고 나서면 이미 늦어. 젊을 때 하나 마련해라." - page 17 ~ 18


매일 반복되는 삶에 지쳐 뭔가 재미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아들이 다니는 화실에 다니게 된 그.

아니, 그 역시도 우물쭈물하다가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할 뻔했지만 결혼 선물로 화실에 등록해준 아내 덕분에 시작하게 된 그의 그림 그리기.

그렇게 이 책은 그림을 그리며 저자가 자신의 삶과 일, 가족과 사회에 대해 생각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읽기도 전이지만 왠지 그가 부러워집니다.


"삶은 팍팍해지고, 인생은 의미를 잃어가고

일에 대한 열정도 점점 사그라질 땐

오롯이 재미에 빠져들 행복의 도구가 필요하다."


무채색 아저씨, 행복의 도구를 찾다



"생각 없이 그을 때 가장 잘될 거예요."

"살수록 힘들어지는 게 '생각 없이'던데요"라고 속으로 답했다. - page 21


점, 선, 면 중에 가장 중요한 '선'.

연필을 쥐고 선만 계속 긋는 기본을 하면서 온전히 무언가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게 된 그.

그렇게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고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며 '자기만의 방'의 그림을 완성해가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림을 그리며 생각한 것들에 관한 1년간의 기록이었습니다.


기자는 스스로 올바른 생각만 지녔다면 약자를 돕는 작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직업이라고 믿지만, 직장 상사나 취재원 독자들의 평가 등으로 쌓이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아 그것들을 완전히 잊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다행히 나는 그림에서 그 답을 찾았다. 게다가 직업 화가가 아니니, 취미로서 더 자유롭게, 온전히 내 맘대로 즐길 수 있다. - page 28


특히나 그는 자신의 아내를 그리면서 '부부'의 의미를 되짚어보는데...



"머리에는 엔젤링이라는 게 있어요. 빛이 반사돼 반짝이는 부분인데 마치 하얀 띠처럼 보이지요."

선생님이 지우개를 들고 머리카락 중간 부분을 이곳저곳 지우기 시작했다. 지우개를 받아들고 마저 지우면서 아내의 분위기가 사뭇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림을 그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결혼을 하고 13년간 함께 지내면서 변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부부간에는 엔젤링처럼 간과하기 쉽지만 좋은 모습이 생각보다 많을지 모른다. - page 41


거대한 세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내편인 유일한 사람.

그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그렇게 서로를 닮아가는 부부의 모습이 사진보다 그림으로 더 가슴에 와닿았다고 할까.


그림을 그리면서 그가 세상을 바라본 시선이 저에게도 울림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눈길 닿는 곳마다 테두리가 도드라지고, 물체 곳곳이 덩어리져 명암으로 보인다. 세상은 참 단순하다. 알고 보면 대부분이 삼각형, 사각형, 원 모양인 것을, 왜 이리 별다르게 살고 싶은지 모르겠다. - page 13


어쩌면 나는 길을 잃기 위해, 실수를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늘 "같은 사진을 그리라고 해도 모두 다른 그림을 그린다"라고 했다. 색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고 아무리 자로 재서 비율을 맞춰 그려도 인간은 실수를 한다. 정확히 정정하자면 사진이나 AI의 영역에서 보면 실수지만, 인간의 창조적 영역에서는 개성이 된다. 도화지 위에서 수만 번 연필을 놀리거나 붓질을 하는 동안 실수에 실수가 겹친다. 인생의 수많은 실수가 겹쳐 그나마 만족스럽다고 합리화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된 것처럼 우연의 힘은 신기할 정도로 아름답다. - page 115 ~ 116


그리고 이 그림을 통해 전한 이야기.



생각은 자연히 세월의 한복판에 선 나는 어떤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에 미쳤다. 세월이 지날수록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편하게 하며, 사회에 작게나마 공헌하는 것과 같이 평이하게 들리는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잔디처럼 동시대의 사람들과 함께하고 쑥처럼 겸허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 page 163


저자가 '취미'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취미는 산책처럼 마음 가는 대로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 내게도 그림은 하고 싶은 때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 되는 '일상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게으름이 허용되고, 그리다 중도에 포기해도 상관없다. '하면 된다'의 영역이 아니라 '되면 한다'의 영역인 것이다. 남의 평가로부터 벗어나고, 오롯이 내 마음에서 떠오르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편안해진다. - page 181


오롯이 재미에 빠져들 행복의 도구를 찾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 덕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채색 아저씨가 행복의 도구 '그림 그리기'를 통해 자신만의 색으로 다채롭게 물들인 세상.

그 어떤 삶보다 멋진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나의 도구를 찾아 떠나봐야 하지 않을까?

무채색처럼 단조롭고 재미없는 나의 일상에 물들여질 색은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